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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39화 (637/1,567)

639화. 계속하자고. 이제 시작이니까. (4)

폭풍과도 같은 살기였다.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던 이들조차 몸을 떨며 물러나게 만드는 살기. 도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대체 얼마나 분노해야 저만한 살기를 뿜는단 말인가?

모든 이들이 직감했다. 저 싸움은 이제 비무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서로의 무를 견주어 배우는 것이 비무의 정의라 할 때, 지금 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확실히 비무와 거리가 멀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생사결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지독한 살기가 쏟아져 나오겠는가?

카아아아아앙!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경종처럼 모두의 귀를 파고들었다.

가가가가각!

날카로운 날끼리 긁히니 사방으로 불똥이 흩날렸다. 두 사람의 머리는 그 맞닿은 검보다도 더 가까이 붙어 있었다. 살기를 품은 날것의 눈빛이 짐승처럼 얽혀 들었다.

짙은 피냄새가 풍길 만큼 노골적인 살기였다.

흡사 서로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 넣기 위해 으르렁대는 짐승들의 싸움과도 같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무당과 화산.

도가를 대표하는 두 문파간 비무의 마지막이 이런 식이 될 거라고 말이다.

우득. 우드득.

검을 움켜잡은 두 손에서 섬뜩한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짙은 분노가 실린 허공의 눈이 청명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눈빛을 받는 청명의 눈 역시 기이한 열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렇지…….”

청명은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이죽거렸다.

“고고한 척 굴어 봐야 사람은 결국 다 똑같거든.”

“이놈!”

콰앙!

청명의 검이 순간적으로 힘을 실어 허공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이는 숨을 돌리겠단 의도는 아니었다. 청명은 비무대 바닥을 박차며 밀려나는 허공에게 곧장 따라붙었다.

“그게 결국 너희의 본성이지!”

“닥쳐라, 이놈!”

콰아아앙!

검이 다시 맞붙으며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이들의 이마에선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그들이 예상한 광경은 이런 게 아니었다.

무장의 장로와 화산제일검.

그 명성과 직위에 걸맞은 격조 높은 비무가 벌어질 거라 생각했다. 도가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높은 검식과, 그 검식을 펼쳐 내는 인간의 강함이 충돌하는 것.

그게 무당과 화산 양쪽이 그렸던 이 비무의 양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했다.

애초에 검을 든 이들이 품격과 격조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다 외치기라도 하는 듯, 두 사람은 야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서로를 갈라 죽일 듯 검을 휘둘렀다.

카앙! 카앙! 카아아앙! 카앙!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에 수십 번의 검격이 오고 갔다.

일 검, 일 검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의 사혈을 노렸다. 맹렬한 검격이 만들어 낸 충격파가 바닥을 가르고 찢어발겼다.

쾅!

충돌한 검에서 튕겨 나온 검기의 파편이 두 사람의 몸을 스쳤다. 허공의 어깨와 청명의 옆구리가 금세 시뻘겋게 물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상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상대의 몸에 검을 박아 넣기 위해 악을 써 댔다.

카가가가각!

맞부딪쳤던 검이 일순 떨어졌다가 다시 다른 틈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콰앙!

내리쳐지는 검을 밀쳐 올린 허공은 청명의 품 안으로 파고들어 그의 가슴을 거세게 들이받아 왔다. 그 짧은 순간에도 와류를 실은 일격이 청명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득!

하지만 호락호락하게 당할 청명이 아니다.

청명은 파고들어 오는 허공의 어깨를 검 손잡이로 콱 내리찍었다. 그리하여 가까스로 가슴에 일격을 허용하는 것은 막아 냈지만,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한 청명의 몸은 뒤틀리며 뒤쪽으로 튕겨 나갔다.

“읍!”

“큭!”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짧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허공은 호목(虎目)을 부릅뜨며 밀려나는 청명에게로 따라붙었다.

촤아아악!

그의 검에서 폭포와 같은 검기를 뿜어져 나왔다. 실로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하지만 그 검기는 청명에게로 직접 날아드는 대신 사방을 포위해 갔다.

패애앵!

일순 휘둘러진 채찍 끝에서 나는 듯한 소음이 울렸다. 허공의 좌수에서 뿜어진 눈부신 장력이 청명에게로 작렬했다.

‘십단금(十段錦)!’

면장과 함께 무당을 상징하는 장법이었다.

면장이 태청검법처럼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면면부절의 장법이라면, 십단금은 파사(破邪)의 칼이다.

천하를 혼란시키는 악적을 상대할 때가 아니라면, 결코 꺼내 들지 않는다는 살기 가득한 장법이다.

그 무당의 ‘칼’이 지금 청명에게로 날아들고 있는 것이었다. 무당의 장법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가공할 속도와 폭발력이었다. 유(柔)와 정(靜)을 중심으로 하는 무당의 무학과는 다소 결이 다른, 쾌(快)와 패(覇)를 녹여 낸 무학이었다.

쾅! 쾅! 쾅!

십단금의 장력이 연이어 날아들며 청명의 매화산수(梅花散手)와 충돌했다.

검과 장을 양립하기 힘든 청명과는 달리, 허공은 십단금으로 청명을 잡아 놓는 동시에 태청검법을 펼쳐 내 휩쓸 듯 공격을 가했다.

‘하여튼 저거 진짜 사기라니까.’

청명은 이를 악물며 연신 뒤로 물러났다.

“흐아아아앗!”

이 모습에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허공은 더욱 가열하게 검을 전개했다.

하나 빠르게 십단금의 범위에서 벗어난 청명은 지체 없이 검을 휘둘렀다.

화아아아악!

암매검 끝에서 수십 송이의 매화가 피어올라 좌우로 갈라졌다. 밀려오는 물결 같던 검기가 매화잎의 벽에 가로막혔다.

견고히 쌓은 둑에 부딪힌 거친 파도처럼, 푸른 검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하앗!”

부드럽게 잠깐 흔들리던 청명의 검이 단호하게 아래로 세 번 내리그어졌다. 붉디붉은 검기가 허공을 향해 섬전처럼 날았다.

“허튼 짓!”

방향을 틀어 낸 허공의 태청검기가 날아드는 청명의 검기를 막았다.

그러나 청명은 이미 검기를 날림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허공과의 거리를 좁힌 뒤였다.

촤아아아아악!

위에서 아래로!

거침없이 단번에 내리그인 검이 물결을 좌우로 갈랐다. 검예(劍藝)라기보다는 이적(異蹟)에 가까워 보이는 광경이었다.

하나 허공이 순순히 밀릴 리 없었다.

검기가 갈라지는 순간, 그 사이를 뚫고 십단금의 장력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콰앙!

다급하게 휘둘러진 청명의 검이 장력을 막아 냈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발출된 장력의 힘을 모두 흐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매화검이 크게 흔들리고, 이내 청명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졌다.

“흐!”

입가가 피로 범벅이 된 청명이 기괴한 미소를 머금었다.

보는 이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들기에 모자람 없는 광경이었다.

피를 흘리면서 되레 즐거운 듯 웃어 대니 허공의 검이 아주 찰나간 흐름을 잊었다.

그리고 청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쾅!

부숴 버릴 듯 비무대를 박찬 청명이 허공에게로 날아들며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머리를 중심으로 흡사 팽이처럼 도는 그의 모습에 허공이 눈을 부릅떴다.

‘멍청한!’

이건 변칙도 뭣도 아니다. 상대에게 머리를 내어 주고 회전하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그의 검이 반사적으로 앞으로 들이밀어진 청명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공격이 먹힌다면 청명의 머리가 대번에 갈라질 터였다. 일반적인 비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공격이었지만, 이미 허공의 머릿속에서 비무와 생사결의 경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금방이라도 청명의 머리를 쩍 갈라 버릴 듯 매서운 기세로 검이 내리쳐진 순간.

파아아앗!

청명의 검이 사방으로 내뻗어졌다.

안 그래도 화려하고 변화가 넘치는 검에 회전까지 더해지니 눈앞이 모두 검으로 가득 찬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졌다.

‘이……!’

허공의 검 끝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이대로 검을 내리긋는다면 청명의 머리를 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전신이 난도질당할 걸 각오해야 한다. 저 살기 어린 검기에 꿰뚫린다면 그의 목숨 역시 보장하기 힘들 것이었다.

“큭!”

결국 기세에서 밀린 허공이 검을 방어로 전환시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아주 명백한 실수였다.

쾅!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바닥을 내리친 청명이 그 반동으로 포탄처럼 허공에게로 쏘아졌다.

바닥에 금방이라도 스칠 듯 나는 제비처럼 청명은 낮은 자세로 허공의 하체를 향해 돌진했다.

이윽고 아래에서 청명이 내찌른 검이 솟구쳤다.

허공은 살면서 수많은 비무를 해 보았고, 수도 없이 검을 겨루어 보았다. 하지만 이리 낮은 곳에서 올려 찌르는 검을 상대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상체를 뒤로 빼며 청명의 검을 피했다.

그게 바로 청명이 노리던 바였다.

콰아아앙!

청명은 주먹으로 허공의 발을 가차 없이 내리찍었다.

중심을 뒤로 빼 놓은 터라 허공의 반응이 평소보다 반 박자 늦을 거란 사실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허공의 발이 청석에 박혀 들었다. 단단한 청석이 쩌적쩌적 갈라지며 거미줄과도 같은 금이 사방으로 번졌다.

“…….”

끔찍한 고통 속에 차마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허공은 청명을 노려보았다. 눈에 핏발이 잔뜩 서 있었다.

“흐아아압!”

그는 이윽고 멀쩡한 발로 청명의 턱을 향해 발길질했다.

하나.

콰드드득!

그의 발에 닿은 건 청명의 턱이 아닌 그의 검 손잡이였다. 내뻗어진 발등에 한철로 만들어진 검파(劍把-검손잡이)가 박혀 들었다.

“으아아아앗!”

양발에 모두 부상을 입은 허공이 짐승 같은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하나 청명은 이미 바닥을 빠르게 쳐서 몸을 뒤로 물리며 빠져나간 후였다.

콰각!

섬뜩할 만큼 바닥을 깊게 갈라 버린 허공은 이내 독 오른 독사처럼 청명을 뒤쫓았다.

화아아악!

달려드는 뱀에 맞서서, 청명의 검 끝에선 다시 한번 매화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뱀은 눈앞에 드러난 가시 돋힌 매화밭을 보고도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용암처럼 들끓는 검기가 매화검기를 터뜨리듯 날려 버리며 청명의 가슴을 향해 쇄도했다.

청명이 검을 세로로 세워 날아드는 검을 막아 냈지만, 발을 땅에 제대로 딛지 못한 채 쓰는 검에 온전한 힘이 실릴 리는 없는 법!

타앙!

검과 검이 충돌하는 금속음과 함께 청명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쿵! 쿠웅! 쿵!

바닥을 몇 번이고 구르며 튕겨 나간 그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후욱! 후욱! 후욱!”

허공은 숨을 몰아쉬며 검을 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어 퉁퉁 부어 오른 두 발의 감각도 확인한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양발의 뼈가 모두 으스러졌다. 한 발짝씩 뗄 때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폐부를 찌르고 머릿속을 짓뭉개 놓았다.

하나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걸 곱씹을 때가 아니었다.

반쯤 질린 그의 시선이 나가떨어진 청명을 쫓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명은 다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뚜욱.

입에서 흘러내린 진득한 피가 턱을 타고 바닥으로 툭툭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드리워진 악귀 같은 미소는 여전했다.

두 사람의 표정만 봐도 이번 교환에서 누가 승기를 잡았는지는 너무도 자명했다.

“……너는…….”

허공의 전신을 지배하던 분노가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그 대신 경외감과 위화감이 넝쿨처럼 자라나 그의 전신을 휘감고 옥죄었다.

“퉷.”

입 안에 흥건하게 찬 피를 대충 뱉은 청명은 소매로 입가를 슥 훔쳤다. 그리고 붉게 젖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아무래도…… 이젠 영 고고하지 못하신 것 같은데?”

“…….”

“계속하자고. 이제 시작이니까.”

얼굴이 반쯤 피로 젖은 청명이 검을 늘어뜨린 채 허공을 압박하듯 다가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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