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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16화 (614/1,567)

616화. 화산을 대표하는 검이 될 테니까. (1)

“……화산이 이긴 건가?”

“눈으로 봐 놓고 뭘 물어!”

“……두 번이나 연달아 이기다니.”

관객들도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비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 봐도 쓰러진 이는 분명 무당의 제자였다.

“사, 삼대제자가 일대제자를…….”

“아, 아니. 원래 이렇게 삼대제자가 일대제자를 흔히들 이기고 그러는 건가?”

“그럴 리가 있나! 손자가 할아버지를 이긴 것이나 다름없는데!”

“나이가 들면…….”

“저 사람이 늙어 보이나? 그리고 강호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건 그만큼 강하단 의미일세! 약해졌다는 의미가 아니야!”

사실 이 사실쯤이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승부를 보기 위해 생업을 던져 놓고 달려온 이들 중, 그만한 상식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꾸 빤한 질문이 나오는 이유는 도무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당이 어떤 곳인가?

저 소림과 함께 천하의 정파의 북두라 불리는 문파가 아니던가? 그런 무당의 일대제자가 이제 갓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화산의 삼대제자에게 패한다?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 일이었다.

그들 역시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웠을 테니까.

화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응원’이다. 정말 화산이 무당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믿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눈앞에 펼쳐진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빗나갔다.

“화산이 정말…….”

강해졌다.

아니, 강해졌다는 말도 이상하다.

애초에 화산이라는 문파는 강함과 약함을 논할 만큼,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는 화산이란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한 이들도 태반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화산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저 무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만큼 강해진 것이다.

설사 지금부터 화산이 남은 승부에서 모조리 패한다 해도 이 승부 한 번만으로도 화산의 명성은 말도 안 되게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관객들이 묘한 기대를 품고 비무대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토끼가 범을 잡는,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일이 말이다.

“무, 무호…….”

허산자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 뭣들 하느냐! 빨리 무호를 수습해 오너라!”

“예!”

넋을 잃고 있던 무당의 제자들이 그제야 화들짝 놀라 비무대 위로 뛰어 올라갔다.

“사제!”

“사제! 괜찮은가?”

가볍게 어깨를 흔들어 보았지만, 무호는 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입술을 꽉 깨문 무당의 일대제자들은 쓰러진 무호를 들쳐 안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어떠냐?”

허산자의 물음에 제자가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큰 부상은 아닙니다. 문제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의식을 쉬이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허산자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쪽으로 날라진 무호의 상태를 몇몇 제자가 달라붙어 점검하고 조치를 취했다.

그 광경을 보는 허산자의 시선이 망연했다. 그는 천천히 화산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이곳과는 달리, 저쪽은 왁자지껄 들떠 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화산의 삼대제자가 무당의 일대제자를 이겼는데.

‘이런 망신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허산자의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다. 조금 전의 승부를 모두 지켜본 이들이 당장 내일부터 어떤 말을 퍼뜨릴지 생각하면 아침에 먹은 것들을 모조리 당장 게워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패한 무호를 탓할 순 없었다. 저 조걸이라는 경박한 아이가 보여 준 검이 허산자가 보기에도 놀라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겼을 싸움에서 방심하여 진 게 아니다.

‘실력에서 밀렸다.’

이 사실이 허산자를 더없는 충격에 빠뜨렸다.

화산오검이니 하는 이름이야 그동안 몇 번이고 들었지만, 그래 봐야 이제 겨우 명성을 되찾은 화산에게 주어지는 상과 같은 별호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화산은 그 별호에 진정으로 가치가 있었음을 검을 통해 스스로 증명해 버린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저 화산오검의 이름이 얼마나 드높아지겠는가? 최소한 화산오검의 이름을 얻은 삼대제자가 무당의 일대제자와 급이 동등하단 말이 퍼지지 않겠는가?

이는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굴욕이었다.

그때 무진이 그를 넌지시 불러왔다.

“장로님.”

“…….”

“진정하셔야 합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아?”

허산자가 고개를 돌려 무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뭐가 끝나지 않았단 말이냐?”

“……장로님.”

허산자가 일순 화를 터뜨리듯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무당의 일대제자가 화산의 삼대제자에게 패했다. 이어지는 승부에서 무얼 하든, 이 사실이 지워질 것 같으냐? 세인이란 떠오르는 영웅에 환호하는 것을 즐기고, 강자가 추락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족속들이다. 남은 승부에서 모두 이긴다 해서 무당을 논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호의가 더해질 것 같더냐?”

“……장로님. 사제들이 듣고 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돌아온 허산자가 빠르게 입을 다물었다.

‘이런 실수를…….’

아무리 감정이 격해졌다고는 하나, 앞으로 비무에 나서야 할 제자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떨어진 기세를 북돋우지는 못할망정 그들이 싸워야 할 이유를 폄훼해서 어쩌겠다는 건가?

“후욱.”

허산자는 깊은 숨을 토해 내며 마음을 정돈했다.

‘그래. 이미 지난 것은 어쩔 수 없다.’

따지자면 모든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그가 방심했기에 벌어진 일이고, 그가 방심했기에 패했다.

‘화산에는 화산오검밖에 없다. 그들이 다섯 번을 내리 이긴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패할 일은 없다.’

그렇기에 연승도 피하고, 십 전도 피했다. 십 선승이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이 모든 것을 계산에 넣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래 놓고는 막상 승부에 들자마자 화산오검이라는 이름을 무시해 버렸다. 그의 미욱함이 이 승부를 패배로 이끈 것이다.

“무진.”

“예.”

허산자는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다 눈을 질끈 감았다.

“무연(無然)를 내보내거라.”

“……무연입니까?”

“그래.”

일이 이렇게 되었지만 아직 무진을 내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이 승부에서 무당 최후의 보루가 되어 주어야 하니까.

무당삼검 중 하나인 무연이라면, 잃은 기세를 되돌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었다.

가만히 허산자를 바라보던 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가 뒤쪽으로 가 무연을 불러 대동하고 허산자에게로 돌아왔다. 허산자는 앞에 선 무연을 보며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네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

“사문의 명예를 되찾는 일입니다.”

“그렇다. 보았겠지만 화산의 검은 더없이 화려하다. 그 화려함이 눈을 현혹시키고, 상대로 하여금 검을 마음대로 펼치지 못하게 만든다.”

“예.”

“안정된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네가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결코 무당의 가르침을 놓지 말거라.”

“예, 장로님.”

커다랗고 패기 넘치는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산자는 그 낮은 목소리를 듣자 되레 마음이 살짝 놓였다.

‘그래. 겨우 한 번 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언제고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지금이 하필 그때일 뿐이다.

“가거라. 네 검에 무당의 이름이 걸려 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묵묵히 비무대로 향하는 무연의 뒷모습을 보며 허산자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실로 좋은 말이다.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지금의 허산자에게는 그 말조차 곱게 들리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무당의 제자들이, 그것도 일대제자들이 화산과의 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지경에 몰렸다는 말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증오를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허산자는 핏발 선 눈으로 화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당의 무연이오.”

비무대 위에 선 무연은 차분한 눈길로 화산을 보다 입을 뗐다. 그러자 떠들썩하게 말을 주고받던 화산의 제자들도 입을 다물고 그를 응시했다.

“승리를 축하드리오. 하나 우리에게도 만회의 기회는 주어져야겠지. 누가 제 상대가 되시겠소?”

가만 듣던 현영이 얼굴을 굳히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형, 무연이라면……?”

“그래. 무당삼검 중 하나다. 나도 이름을 들어 보았구나.”

“아…….”

무당삼검.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감은 화산오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천하제일검문으로 불리는 무당 내에서도 훗날의 무당제일검을 다투는 이에게만 무당삼검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주어졌다.

이 비무가 끝난 뒤라면 모를까, 아직은 화산오검이라는 이름을 감히 견줄 상대가 아니었다.

“무당삼검이라…….”

현상이 고민에 가득 찬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윤종아?”

현상이 움찔하여 돌아보자 윤종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라면 조걸이 놈이 자랑해 대는 꼴을 두 달은 더 들어야 합니다. 적어도 사형인 제가 무당삼검 정도는 상대해야 저놈이 조용해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무당삼검이다. 괜찮겠느냐?”

윤종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평온하게 대답했다.

“물론 두렵습니다.”

“…….”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두렵다 해서 뒤로 물러나기만 한다면 영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기겠습니다.”

현상은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사실 그는 이 승부에 백천이나 유이설이 나서 주기를 내심 바랐다. 상대가 무당삼검이라면 이쪽에서도 가장 강한 이들이 나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윤종의 눈을 보고 있자니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백천이 진중한 목소리로 입술을 열었다.

“윤종. 사문의 명예가 네 어깨에 달려 있…….”

“에헤에에에취!”

하지만 청명의 커다란 재채기 소리가 자연스레 그의 말을 끊어 버렸다. 일순 질끈 감긴 백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또!’

그가 사나운 눈으로 돌아보니 청명은 코를 쓱 훔치며 너스레를 떨었다.

“끄응. 감기에 걸렸나.”

“……네가 퍽이나 감기에 걸리겠다.”

감기도 너 보면 도망갈 게 빤한데.

뻔뻔스레 코 훔치는 시늉을 하던 청명이 가볍게 지나가는 투로 툭 말했다.

“사형.”

“응?”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와.”

“…….”

“생각보다 재미있을 거야.”

그런 청명을 바라보던 윤종이 피식 웃었다.

“내가 뭐 너나 조걸 같은 인간인 줄 아느냐.”

“별다를 것도 없어.”

“뭐, 인마?”

윤종이 발끈하자 청명은 씨익 웃었다.

“사문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가서 한바탕 놀고 와. 지면 열과 성을 다해 놀려 줄게.”

“…….”

얼굴이 살짝 풀어진 윤종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비무대로 향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백천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실수를 할 뻔했구나.’

그가 건네려 했던 조언은 조걸에게는 적절할지 모르지만, 윤종에게는 걸맞지 않았다. 그는 백천이 굳이 주지시켜 주지 않아도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한다. 저런 조언을 건넸다간 괜히 어깨만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백천은 청명의 곁에 서서 조용히 물었다.

“괜찮겠느냐?”

“뭐가?”

“윤종이 말이다. 무당삼검을 상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비무대 위에 오른 무연의 기세는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았다.

청명이야 워낙에 보는 눈이 정확하니 어느 정도 그럴싸한 대답을 돌려주리라 여겼는데, 흘러나온 대답은 백천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괜찮지 않아도 버텨야지.”

“……응?”

“이길 수 없어도 이겨야 하고.”

“그게 무슨 말이냐?”

백천이 되묻자 청명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사뭇 진중해졌다.

“언젠가는 사형의 검이 화산을 대표하는 검이 될 테니까. 적통을 짊어진 이의 사명이란 그런 거야.”

비무대로 오르는 윤종의 등을 보며 백천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적통이라…….’

알 것도 같았다.

훗날, 저놈은 화산의 장문인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백천도 유이설도, 아마도 저 청명이 놈마저 일선에서는 물러나 있을 터.

그렇다면 윤종의 검이 화산의 기준이 된다. 화산오검의 검은 제각각의 특색을 지니고 있지만, 그중 훗날의 화산을 대표할 만한 검은 바로 윤종의 검이라는 의미다.

‘윤종이 녀석은 알고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졌는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 등이 저토록 굳건한 거겠지.

‘보여 봐라.’

화산의 검이 무엇인지.

그걸 보여 주기에 부족하지 않은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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