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화. 나는 배분 같은 건 모르고! (5)
“저……!”
허산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저 얼마나 사특한 검인가.
환상처럼 피어난 꽃들이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고, 그 어지러움 속에 날카로움을 감쪽같이 숨긴다.
저건 단순히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었다.
되레 위험하기 짝이 없다. 화려한 색채 속에 지독한 독을 감춘 독초 같은 광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화산은 명문이다. 도가의 역사를 따져 보자면 무당보다 훨씬 적통에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펼쳐 내는 검이 저토록 사특하다는 것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화아아아악!
일제히 한차례 솟구쳤던 꽃잎들이 비처럼 내렸다.
허산자는 저 아름다운 광경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그마저도 순간 춤추는 꽃잎들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아앗!
화우를 뚫고 나타난 조걸이 섬전과도 같이 무호에게 날아들었다.
쏘아진 화살처럼 움직인 조걸은 비어 있는 무호의 머리를 향해 강력한 일격을 날렸다.
쇄애애애애액!
마치 무호를 두 쪽으로 쪼개 버리겠다는 듯한 강한 일격! 평소의 조걸이 펼치던 검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강검(强劍)이었다.
“무, 무호!”
그 광경에 허산자가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하나.
카아아앙!
조걸의 검이 무호의 머리를 쪼개려는 순간, 벼락같이 호를 그린 무호의 검이 날아드는 조걸의 검을 막아섰다.
카가가가가각!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사방으로 불똥이 튀어 올랐다. 무게를 싣고 내리누르는 검과 이를 흘려 내려는 검의 치열한 공방이 짧은 시간 동안 이어졌다.
우드득.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무호가 눈을 빛냈다.
‘막아 냈다.’
섬뜩하기 짝이 없는 일 수였다.
집중력이 조금만 부족했더라면, 저 화려한 검기에 조금만 더 정신을 빼앗겼더라면 지금쯤 그는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막아 냈다.
무호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조걸이라는 자의 경지가 예상하던 것보다 배는 뛰어난 것이 분명하지만, 그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기괴망측한 변칙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승리는 그의 것이 될 것이 자명했다.
‘내가 이겼…….’
하지만 그 순간.
‘음?’
무호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었다.
머리 위에서 그를 내리누르던 조걸의 입가가 말려 올라가 있었다.
‘웃는다고?’
득의에 찬 미소였다.
회심의 공격이 막힌 이가 지을 만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건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흘러가고 있을 때에만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무호가 검을 회수하여 방어 자세를 취하려 했다.
거걱!
“음?”
하지만 검이 떨어지질 않았다.
마치 아교로 붙여 놓기라도 듯 조걸의 검이 그의 검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흡자결((吸子訣)?’
조걸의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그의 검을 옭아매고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내력이……!’
정제되지 않은 거친 내력이지만, 그 양만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아무리 힘을 써도 검을 빼낼 수가 없었다.
화아아아아아악!
그때, 조걸이 미리 날려 둔 매화검기들이 일제히 이쪽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끄, 끊겼어……?’
무당의 검은 면면부절.
하지만 그 물 흐르는 듯 이어지던 검기도 결국 검이 멈춘다면 끊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늘로 비상한 조걸의 검기들은 여전히 그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눈을 현혹하는 것은 꽃잎이 아니었다.
바로 조걸이 그의 눈을 현혹하는 미끼였던 것이다.
“이!”
무호는 있는 내력을 모두 끌어 올리며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조걸의 검을 떼어 내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소용이 없었다.
조걸의 까무잡잡하고 단단한 팔뚝에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하아아압!”
마음이 다급해진 무호는 순간적으로 내력을 발출하며 조걸을 강하게 쳐 냈다. 아니, 쳐 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덥석.
조걸이 남은 한 손으로 무호의 검 날을 움켜잡았다.
‘미, 미친!’
아무리 수공(手功)을 운용했다고는 하지만, 무호의 검 역시 검기를 뿜어내는 상황. 조금만 어설펐다면 손가락이 모두 잘려 나가도 놀랍지 않을 행위였다.
고작 비무에서 저런 과감한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위험천만한 행위였지만, 그 효과는 너무도 확실했다.
검과 손이 동시에 붙잡고 늘어지니 무호의 검은 마치 태산이라도 얹어진 듯 꼼짝도 하지 못하고 구슬픈 쇳소리만 내었다.
‘아, 안…….’
무호는 본능적으로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그를 덮쳐 오는 붉은 폭풍을 말이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꽃잎이 무호의 전신을 휩쓸었다.
서걱! 서걱!
육체 곳곳이 베이며 피를 뿜어냈고, 여린 살 사이로 날카로운 꽃잎이 박혀 들었다.
“끅.”
상처 입은 무호의 전신이 경련을 일으켰다.
태청강기로 전신을 둘렀지만, 날아든 매화 검기는 그의 내력을 너무도 가볍게 찢어 내고 몸에 틀어박혔다.
고통에 신음하던 무호는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친 생각에 급히 시선을 들었다.
이렇게 검기가 광역으로 휩쓸어 온다면, 조걸 저자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조걸을 확인한 무호는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들부들 떨렸다.
차라리 그가 멀쩡했더라면 크게 놀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조걸은 제가 날린 매화 검기가 제 몸을 파고드는데도 이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무호는 깨달았다.
‘각오가 부족했다.’
그는 비무를 치렀지만, 조걸은 승부에 임했다.
그게…… 바로 그 작은 차이가 결과를 갈랐다.
푸욱.
등 쪽을 파고드는 매화 검기를 느끼며 무호는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챙!
송문고검이 비무대 바닥에 떨어지며 울린 날카로운 소리가 비무대 바깥까지 퍼져 나갔다.
탁.
가볍게 바닥에 내려선 조걸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매화가 이리저리 스치고 지나간 탓에 다리 곳곳이 피투성이였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무호의 모습을 잠시간 보던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이겼다아아아아아아아!”
환희에 찬 그의 목소리가 얼어붙은 관객들 사이로 우렁우렁 퍼져 나갔다.
“……저 미친놈.”
“제정신이 아니지, 제정신이.”
“맞아야 돼!”
백천, 윤종, 유이설이 동시에 살기를 내뿜었다.
미친 것도 정도껏이지. 세상에 누가 비무에서 제 몸뚱이를 미끼로 삼는다는 말인가? 그것도 저렇게까지 다쳐 가면서.
“저 인간이…….”
특히나 그 상처를 치료해야 할 당소소는 거의 두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으득으득 들려오는 그녀의 이 가는 소리에 앞서 화를 냈던 세 사람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지막한 으르렁거림이 귓가에 음산하게 퍼졌다.
“몸뚱이가 무슨 헝겊 조각인 줄 아나? 상처 나면 대충 꿰매고 끝나게?”
“……지, 진정해라, 소소야.”
“어쨌든 이겼잖느냐. 응?”
결국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이긴다고 끝이 아니잖아요! 저러다 크게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요! 저 얼간이 같은 놈이!”
“그래도 사, 사형이다, 소소야.”
“그래서 뭐? 나는 배분 같은 건 모르고! 저거 그냥 오늘 아주 확!”
눈에 불을 켠 당소소의 기세에 눌린 백천과 윤종은 저도 모르게 사과를 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여간!”
주먹을 꽉 틀어쥔 당소소가 다시 이를 벅벅 갈아붙이자 찔끔한 셋은 얼른 시선을 피하며 비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조걸은 여전히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채 환희에 젖어 있었다.
“하여간 못 말린다니까.”
솔직히 승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백천이 보기에는 조걸 쪽에 승기가 조금 더 있었지만, 승부란 결국 그때그때의 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확신할 수가 없었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자신만의 승부였다면 조걸이 저런 모험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 아닐 것이었다.
이건 화산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승부였다.
전체적인 전력에서 밀리는 화산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조걸도 그걸 알기에 어떻게든 승리를 따내려 무리한 것이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저 들썩이는 어깨엔 화산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삼대제자에 불과하지만, 조걸 역시 어느새 화산이라는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나아가는 동량이 된 것이다.
‘녀석.’
가슴을 꽉 메우는 뿌듯함에 백천은 절로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런데…….
“저 새끼 왜 안 내려오냐?”
“……무당파 사람들이 모두 눈에 새기고 속이 뒤집어지기 전까진 안 내려올 심산 같은데요?”
“……누가 가서 당장 끌어내려라.”
“예.”
윤종이 부리나케 비무대 위로 달려가 조걸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귀를 잡아 끌고 나왔다.
그 광경을 보며 백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믿음직한 건지, 아닌지…….”
그런 건 청명이 놈 하나만으로 충분한데 말이다.
“아야야야! 아픕니다! 사형! 아! 아프다고요!”
“아파야지! 아프라고 하는 건데 당연히 아파야지!”
“아, 이기고 돌아온 사람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겁니까!”
“시끄럽다.”
윤종이 귀를 놓아 주자 조걸은 언제 엄살을 부렸냐는 듯 어깨를 쫙 폈다.
“뭐 무당 일대제자라고 해서 대단할 줄 알았는데.”
“별것 아니더냐?”
“아뇨. 대단하던데요?”
“…….”
뭐지, 이 새끼는?
모두의 뚱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조걸이 단호하게 말했다.
“중압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겪어 본 적 없는 검이에요. 딱히 뭔가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점점 늪 속으로 잠기는 것처럼 힘들어졌어요.”
“음.”
“쉽게 봐서는 안 됩니다. 그대로 평범하게 싸웠으면 제가 졌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무당인 거겠지.”
살짝 풀렸던 마음이 금세 다잡아졌다.
백천은 조금 전의 대화에서 새삼 조걸의 성장을 실감했다. 과거의 조걸이었다면 무당의 일대제자에게 이겼다는 사실을 자랑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이제는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다음에 싸워야 할 사형제들을 먼저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분발해야겠군.’
백천이 막 그렇게 훈훈한 마음을 품으려는 찰나였다.
“근데 뭐, 내가 이긴 건 이긴 거니까! 이히힛!”
“…….”
일단 훈훈한 마음은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어쨌든 못 싸울 상대는 아니에요! 조금만 주의하면 충분……. 으아아아아아아악!”
돌연 조걸이 그 자리에 엎어져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 댔다.
어느새 다가온 당소소가 나찰 같은 얼굴로 조걸의 다리에 난 상처를 움켜잡고 있었다.
“아, 이겨서 즐거우시다?”
“아악! 소소야! 거기! 악! 거기 베인…….”
“아, 여기?”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상처로 파고드는 소소의 손가락을 본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하하. 우리 사형께서 많이도 다치셨네. 내가 또 치료해 드려야지.”
“아, 아니다! 얼마 안 다쳤어! 내버려 두면 나아! 침 바르면 돼!”
“에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깔끔하게 치료해 드릴게요.”
당소소의 소매에서 커다란 대침이 뽑혀 나왔다.
대침이라는 말도 우스울 만큼 너무 크고, 두껍고 날카로웠다. 굳이 따지자면 송곳에 가까웠다. 조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치, 침은 왜? 나 내상은 안 입었는데.”
“꿰매야지.”
“응?”
“이거 바늘이야.”
“……그게?”
“응.”
“……그게 바늘이면 지렁이도 용이겠……. 아아아아악!”
당소소가 문답무용으로 조걸을 한구석으로 질질 끌고 갔다. 화산의 제자들은 온몸에 돋은 소름을 털어 내려 몸을 떨었다.
‘절대 안 다쳐야지.’
‘다칠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 비무에 조건이 하나 더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백천은 쓰게 웃으며 무당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비무대 위에 쓰러진 무호를 수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심한 충격에 휩싸인 듯 얼어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