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4화. 나는 배분 같은 건 모르고! (4)
파아아앗!
내뻗는 검이 실로 날카로웠다.
같은 무학을 배웠다 해도 사람에 따라서 그 검이 가지는 기질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조걸의 검은 화산의 검 중에서도 유별나게 경쾌하고 날카로웠다.
이는 화려함과는 다른 영역이었다.
빠르다고 해서, 그 변화가 더없이 급격하다고 해서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 검은 그저 상대를 완벽하게 무너뜨리기 위한 최선의 효율만을 추구하며 발전한 검이었다.
반면 무호의 검은 단단하고 웅혼했다.
조걸의 검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돌풍과도 같다면, 무호의 검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만년거암과도 같았다.
그런 둘이 만났으니 전투의 양식이야 빤했다.
파아아앗!
빠르고 간결하게 휘몰아치는 조걸의 검을 무호의 검이 묵묵하게 막아 냈다.
카아앙!
검과 검이 마주치는 순간 불똥이 튀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막는다고?’
‘빨라!’
서로가 서로의 검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검수는 어떤 상황에서든 온전히 서로의 검을 바라보기 마련이었다.
‘다르다.’
조걸은 빠르게 검을 내찌르면서 얼굴을 굳혔다. 이건 그가 이제껏 경험했던 그 어떤 무학과도 달랐다.
심지어는 진현이 펼쳤던 검과도 크게 달랐다.
무당의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드러낸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걸은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무겁다. 철벽을 마주하는 것 같다.
아니, 그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철벽은 두드리면 튕겨 나오는 반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검은 날아드는 모든 것을 부드럽게 흡수한다.
굳이 말하자면 차라리 호수 같은 검이었다.
아무리 돌을 던지고 나무를 뽑아 쑤셔 넣는다고 해도 호수는 그저 호수로써 존재한다. 조금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다시금 잠잠한 그 원형을 찾아간다.
날카롭게 적을 노리는 조걸의 검이 제아무리 휘저어도, 무호의 검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처음 그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게 무당의 검…….’
왜 천하가 그렇게나 무당을 입 모아 칭송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치열한 전투 중에도 스스로를 완벽히 유지하는 부동심.
오히려 공격하는 이가 더 절망하게끔 만드는 견고함과 상대의 힘을 밀어 내지 않고 온전히 받아 내는 부드러움까지.
‘검이란 이렇게도 쓸 수 있는 거구나.’
개안(開眼)을 하는 느낌마저 들어 조걸은 소름이 돋았다.
지금껏 그는 제대로 된 정파의 검을 견식한 적이 없었다.
그가 제대로 상대했던 이들은 모두가 사파거나 마도를 걷는 자들, 혹은 새외의 무인들이었다.
종남과 싸우고, 비무대회에서 여러 검을 눈으로 본 적은 있지만 그건 기껏해야 후기지수였다. 천년을 이어 온 명문의 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이들뿐이었다.
껍데기를 흉내 낸 수준에 불과한 검을 두고 진정한 정파의 검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 진짜 정파의 검이 있다.
웅혼하고, 묵직하며 부드러우면서도 강건하다. 물처럼 순응하면서도 그 안에 굳은 심지를 간직한 정파의 검이 묵직하게 그를 짓눌러 왔다.
‘그래, 알겠다.’
왜 화산의 검이 명문의 검이면서도 정(正)보다는 사(邪)에 가깝다고 했는지. 왜 화산의 검이 더없이 실전적인 검인지, 지금에서야 제대로 이해가 갔다.
하나 그렇기에…….
“더 이기고 싶어지잖아!”
조걸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어 무호를 향해 일제히 쏘아 냈다.
“흠!”
무호는 헛바람을 삼키며 검을 내리눌렀다.
‘이게 삼대제자의 검이라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진현과의 비무를 눈으로 지켜보았고, 그 결과도 확인했다. 패배는 감히 변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진현이 진짜 제 실력을 발휘하여 싸웠다면 그렇게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나 직접 조걸의 검을 겪어 보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진현으로는 무리였다.’
백 번 싸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조차도 이 검에 완벽한 승리를 장담할 수 없거늘, 진현이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빠르다.
날카롭다.
‘게다가 기괴망측하다.’
이 조걸이라는 자가 검을 그렇게 쓰는 것인지, 아니면 화산의 검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검은 순간순간 사람을 속이고 허를 찔러 댄다.
정당하게 상대를 짓누르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승리’라는 결과를 손에 넣겠다는 맹렬한 포부가 검수 아닌 검 자체에 스며들어 있다.
‘이게 화산의 검!’
무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사문의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숙명도, 상대가 자신보다 훨씬 어리단 사실도 그의 머릿속에서 깨끗하게 사라졌다.
그 역시 자신의 검을 갈고닦으며 살아온 이.
제 검과 궤를 달리하는 검을 마주한 순간, 검수로서의 혼이 불타올랐다.
“흡!”
무호의 검이 날아드는 조걸의 검영들을 하나하나 밀어 냈다.
최소한의 움직임과 최소한의 힘.
낭비를 최소화한 검은 오히려 느리게만 보이는 법이었다.
검이 부드럽게 흐르는 듯 허공을 유영하고, 그 끝에서 만들어진 커다란 원이 날아드는 검영을 모조리 쳐 냈다.
“으…….”
당소소가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지, 지는 거 아니에요?”
“흐음.”
백천은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낮게 탄식했다.
“……저게 무당의 검이구나.”
지금은 백천 역시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청명에게 수없이 같은 말을 들었다. 너는 아직 조무래기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겉으로야 인정했다. 머리로도 그리 생각했다.
하나 그의 안에는 어느새 오만함이 자리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도 그럴 게, 만인방의 대주와 싸워 이겼고, 빙궁의 장로를 격파했으며, 심지어는 그 악랄한 주교의 손에서도 살아남았다.
적어도 그와 비슷한 나이, 아니 한 배분 위까지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하고 사선을 넘어 본 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지금 저 무당의 검은 백천에게 세상이 넓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무당이라는 이름을 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진정으로 무당을 넘기 위해서는 바로 저 검을 넘어야 한다. 물처럼 부드럽고, 바위처럼 굳건하며, 들판에 자라난 소나무처럼 심지 굳은 저 검을!
“사, 사숙!”
당소소가 다시 한번 재촉하자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구나.”
“…….”
“저놈 말에 틀린 게 없어. 무당의 일대제자는 이대제자와 차원이 달라.”
기괴할 정도로 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마졸과 집법사자만큼의 차이가 존재했다. 어떻게 불과 한 배분 만에 저렇게나 달라질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 조걸 사형은…….”
“하지만.”
백천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걸이 놈이 만만한 놈은 아니지. 너도 알지 않느냐. 저놈은 단 한 번도 수련을 쉬어 본 적이 없는 놈이다.”
“…….”
“저렇게 건들거리고, 까불거리고, 예의도 슬슬 잃어 가고, 분위기 파악 못 해서 헛소리나 늘어놓고, 도련님인 주제에 험하게 살아온 척하는 위선자 같은 놈이지만…….”
“……그렇게까지 욕하기 있어요?”
“와, 사숙 이제 비난도 진짜 잘하네. 수준급이야.”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한 청명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백천은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검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놈이 조걸이다. 무당의 검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화산의 검이 그에 뒤질 이유는 없다.”
비무대를 응시하는 백천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그 시간의 문제는 놈의 경험이 해결해 줄 것이다.”
당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조걸을 바라보았다.
강물처럼 밀려드는 푸르디푸른 검기 사이에서 갈 길을 잃은 배인 양 흔들리는 조걸을 말이다.
‘강하네.’
조걸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언제 입 안이 터졌는지 벌어진 입술 새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뿐만이 아니었다. 딱히 격중 된 적도 없는데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아파 왔고, 검을 잡은 손끝에선 감각이 사라지고 있었다.
기운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게 이런 거겠지.
맹렬히 찌르고 들어오지도, 휘두르며 누르려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조걸은 스스로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저건 활검(活劍)이었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제압하는 데 중점을 둔 검.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검이자, 정파의 근본과도 같은 검.
‘무겁다.’
또한, 검에 실린 내력이 더없이 맑고 정순하다.
그저 급격히 양을 늘려 놓은 것과는 달랐다. 청명이 놈이 왜 제대로 쓰지도 못하는 내공만 쓸데없이 많아졌다고 구박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저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자신의 검에 걸맞게 사용할 수 있고, 완전히 지배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신의 내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도 검면에 실려 흘러드는 힘에 매화검이 부러질 듯 휘어지고 있었다.
사파의 무학이 상대에게 폭포를 퍼붓는 것에 가깝다면, 정파의 무학은 서서히 발목부터 차오르는 물과 같았다.
그리고 그 물은 맑고 또 맑다.
그래서 태청(太淸)이겠지.
무학이 수련을 통해 겹겹이 쌓아올린 것을 바탕으로 더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라 하면, 무호의 검에 쌓여 있는 것은 감히 조걸과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래. 강하다. 더없이 강하고 이제껏 겪은 적이 없을 정도로 맑다.
하나!
조걸의 시선이 반사적으로 슬쩍 옆쪽으로 돌아갔다. 백천의 옆에 쪼그려 앉아 있는 청명의 얼굴이 보였다.
도움을 받고 싶어서 본 게 아니다.
그저 제 생각이 맞는지 확신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청명의 얼굴을 확인한 조걸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그런 얼굴일 줄 알았다, 이 새끼야!’
청명이 얼굴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래. 그래서다.
그래 봤자 검이고, 그래 봤자 무학이다.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뛰어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처럼 흐른다고?’
조걸의 얼굴에 자신감이 어렸다. 끝없이 밀려오는 검기에 손끝이 부어오르고, 내장이 짓이겨지는 듯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웃을 수 있었다.
“그럼 어디…….”
이내 그의 검이 부드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검기가 주는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질 듯 휘었던 검이 순식간에 제 모습을 되찾고, 아무런 압력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부드럽게 흔들렸다.
“물속에서도 꽃이 피어나는지 볼까?”
화아아악!
조걸의 검 끝이 세상으로 흩어졌다.
저 멀리 운남에서도, 저 추운 북해에서도 꽃은 피었다. 그러니 물속이라 해도 매화가 피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이윽고 흔들리는 검 끝에서 소담스레 매화가 자라났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피워 낸 매화.
화산의 매화이자, 조걸의 매화였다.
누군가가 말했다.
겨울이 추우면 추울수록, 매화나무를 괴롭히는 바람이 거세면 거셀수록 매화는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워 낸다고.
그렇다면 그가 버틴 겨울과 그가 버틴 바람은 어떨까?
아름다운 매화를 피워 내기에 충분할까?
한 송이, 그리고 또 한 송이씩 매화가 기지개하듯 잎을 펼치며 피어올랐다.
조걸의 검 끝에서 피었다 믿기 힘들만큼 소담스러운 자태의 꽃들은 이윽고 숲을 이루었다.
흐르는 강의 한가운데가 갈라지며, 매화 숲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그러고도 숲은 점점 더 커져서 흘러드는 물을 완전히 밀어 내기 시작했다.
‘이건?’
무호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매화검법.’
그 이름이야 수도 없이 들어 보았다.
하지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매화검법은 그가 들었던 것과는 또 사뭇 달랐다.
저 검은 너무도 아름답고 화려하며, 또…….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매화가 세상으로 휘날리기 시작했다.
결국 땅을 떠날 수 없는 물과는 달리, 매화는 대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부드럽게 날아오른 매화의 꽃잎들이 환상처럼 휘날리고, 흔들리며 무호의 몸을 감싸 왔다.
그 자유로움에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긴 무호가 흠칫하며 검을 휘두르려던 순간.
파아아아아앗!
부드럽게 흔들리고 휘날리던 꽃잎들 사이로 조걸이 섬전처럼 튀어나와 무호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