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화. 나는 배분 같은 건 모르고! (2)
“저 빌어먹을 놈이…….”
결국 참고 또 참던 무당 제자들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흘러나왔다. 화산과는 달리 도가의 엄중한 법도를 철저히 지켜 온 그들에게 있어서, 이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결코 무당의 제자들을 탓할 수 없을 것이었다.
무진이 누구인가?
무당삼검의 일 인으로 훗날 무당제일검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이였다.
“조걸?”
이름은 들어 본 적 있다.
비무대회부터 명성을 날린 화산오검의 일 인.
그러나 무당삼검과 화산오검이 듣기에야 비슷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무게감은 천지차이였다.
심지어 겨우 삼대제자에 불과한 조걸이 어딜 감히 무당의 이대제자도 아닌 일대제자에게, 그 일대제자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무진에게 저런 망발을 해 댄단 말인가?
모든 무당의 제자들은 분노를 숨기지 못하고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얼굴을 굳힌 건 다름 아닌 진현이었다.
“조걸이라 했소?”
“음?”
“구면이로군.”
조걸을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는 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분명 화영문에서 결전을 벌일 때,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그때의 조걸이 무당의 이대제자를 상대로 선전했던 것은 사실이나, 감히 진현의 상대가 될 급은 아니었다.
적어도 진현의 생각에는 말이다.
그런데 그 조걸이 지금 진현을 완벽하게 무시하고 있다. 아무리 지난 세월 동안 조걸의 명성이 과거와는 비할 수 없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진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심심하다라……. 물론 나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그쪽에게 그리 평가절하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 생각하오만?”
진현의 말에 조걸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딱히 그쪽을 무시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화산오검이라 불리는 사람인데, 그 부…… 부……. 어?”
시원스레 말하던 조걸이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한데 그쪽 명호가 뭐였었죠? 제가 분명 들은 적이 있는데 좀 가물가물해서.”
뒤쪽에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백천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옆에서 윤종은 과연 조걸이라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도발을 하라고 했더니 목검으로 대가리를 박살 내 버리네.”
당소소도 답이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사천 출신으로서 창피해요.”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자.”
백천의 침중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비무대 쪽으로 향했다.
“부절검(不節劍)이오.”
“아, 맞다. 부절검. 그리고 검룡이라고 했었지.”
읊조리던 조걸이 히죽 웃었다.
과거의 검룡은 그에게 있어 감히 올려다볼 엄두도 나지 않는 드높은 별호였다.
하나 지금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강호의 후기지수를 상징하는 별호들은 청명과 혜연의 이름 앞에 모두 빛이 바랬다.
“예전이었으면 검룡을 잡는 걸로도 나름 어깨에 힘줄 수 있었겠지만, 이제 와서 그러기엔 저도 좀 잘나가거든요.”
어깨를 으쓱하는 그의 모습에 진현이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오만방자함을 내가 꺾어 주어도 되겠소?”
“……아니, 그럼 내가 곤란하다니까 자꾸 그러시네. 이게 연승전이면 댁을 꺾고도 더 명성 있는 사람을 상대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기회가 한 번밖에 없잖아요.”
“…….”
진현은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잡힌 검을 콱 움켜잡았다.
과거 화산의 제자에게 패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무당의 촉망받는 후기지수였다. 화산의 삼대제자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이는 결코 아니었다.
“대체 어디까지 할 셈…….”
“아, 이러면 되겠다!”
그때 조걸이 손뼉을 짝 치며 눈을 빛냈다.
“그쪽 장로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되는 일인데, 차라리 이렇게 하죠. 내가 그쪽이랑 붙을게요. 대신에.”
“대신에?”
진현이 슬쩍 미심쩍은 얼굴로 되묻자 조걸이 씩 웃었다.
“내가 이기면 한 사람과 더 싸우게 해 주세요. 그쪽과의 승부는 승리로 안 쳐도 좋으니까.”
“이!”
“이 개자식이 감히……!”
무당의 제자들은 금방이라도 조걸에게 짓쳐 달려들 것처럼 들썩거렸다. 하지만 앞에 서 있는 허산자를 지나쳐 비무대로 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득.
꽉 깨물린 진현의 입술이 터지며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렀다. 그의 주먹은 이제 핏기가 가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며 분노를 참는 그 모습에, 백천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누가…… 누가 저 새끼 선으로 내보내자고 했냐?”
“저는 아닙니다.”
“저도 아니에요.”
“…….”
그를 내보내자고 주장했던 청명이 어색하게 웃으며 슬쩍 손을 들었다.
“……시킨 대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잘해?”
“뭐……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잖아? 도발은 잘 먹힌 것 같은데?”
손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번쩍 든 백천이 눈을 까뒤집었다.
“찬물 좀 붓고 오라 했더니, 끓는 물을 얼굴에 냅다 부어 버렸는데, 이게 잘된 거라고? 이게?”
“……어쨌건 뭐…….”
우물쭈물하는 청명의 이마에도 땀 한 방울이 맺혀 흘렀다.
아니, 설마 저렇게까지 할 줄 알았나.
청출어람 청어람이라더니, 청명도 이젠 저기에 나가서 저만큼 속을 긁어 놓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윤종이 살짝 초조함이 깃든 목소리로 물었다.
“사숙. 지, 지금이라도 끌어내립니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물론 그것도 망신이지만, 저놈을 계속 두는 것보다야…….”
물론 윤종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당과의 비무였다. 내보낸 이를 싸우기도 전에 다시 끌고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고민이 더 깊어지기 전에 무당이 먼저 반응했다.
“허허허허.”
허산자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
“젊은 검수의 패기를 보는 것은 언제나 기꺼운 일이지.”
허산자의 시선이 조걸을 똑바로 응시했다. 부드러운 말과는 다르게 눈빛은 호의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소도장. 용기가 과하면 만용이 되는 법이고, 지나친 자신은 화를 부르는 법이네. 소도장은 자신의 말을 감당할 수 있는가? 자칫하다가는 사문에 큰 폐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위협적인 그 말에 조걸은 검집에 꽂힌 검을 들어 제 목을 툭툭 치며 말했다.
“화산의 제자는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장로님.”
“허.”
허산자가 빤히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리하지.”
“오?”
“단, 자네 말대로 이 승부는 이기든 지든 비무의 결과에 포함시키지 않겠네. 대신 이긴 자는 다음 사람과 겨뤄 승부를 가리는 걸로 하세.”
조걸이 씩 웃으며 포권을 해 보였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하지만 허산자는 포권 하는 조걸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진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진현.”
“예, 장로님.”
“네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가거라.”
“예!”
진현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느릿하게 비무대에 오른 검룡은 주변을 쭉 돌아보았다. 그러자 비무를 보기 위해 이제껏 기다렸던 이들의 환성이 터져 나왔다.
“검룡이다!”
“무당 이대제자 중 제일기재라 불리는 검룡이야!”
무당의 앞마당과 같은 무한이라 그런지, 얼굴만 보고도 진현의 존재를 알아채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처음에는 화산 쪽으로 쏠렸던 환호가 진현의 등장과 함께 무당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 환성을 받으며 진현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설욕할 이가 있어 굳이 따라온 길이거늘, 설마 이리 무시를 받을 줄은 몰랐소.”
“설욕? 아, 사숙이요?”
조걸이 피식 웃었다.
과거 진현은 종도관과 화영문의 대립 때문에 화산과 치른 전투에서 백천에게 패한 바가 있었다.
“설욕이라……. 그거야 그간 시간을 알차게 보낸 이나 할 수 있는 말이죠.”
“내가 그 시간을 낭비했다는 건가?”
“물론 낭비는 아니겠지만…….”
조걸이 의미심장하게 말끝을 흐리다 비뚜름하게 웃었다.
“말로는 의미가 없죠. 오세요. 검으로 알려 드릴 테니까.”
이제 말은 충분하다는 듯, 조걸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도우의 주제에 어울리지 않…….”
뭔가 말을 이어 가려던 진현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뭐지?’
다르다.
검을 뽑기 전의 조걸은 입만 산 껍데기 같은 이였다. 진중함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한없이 가볍기만 했다.
하지만 검을 뽑아 든 조걸에게서는 더없는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그 기세에 살짝 놀란 진현은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설 뻔했다가 필사적으로 몸을 다잡았다.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어쩌면 저자의 태도가 오만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자신감일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때에 비해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저자가 다시없는 천재라 해도 겨우 그 정도 시간으로 그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후!”
짧게 숨을 토해 내며 진현은 천천히 검을 뽑았다. 무당을 상징하는 송문고검이 그의 손에 들리자 흔들리던 마음도 어느새 차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흔들리지 마라.’
제대로 겪어 본 적 없는 상대와 이런 공개적인 무대에서 승부를 겨룬다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이 될 법한 일이다. 그럴 때는 상대의 언행에 시선과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자신, 그리고 자신의 검이다.
진현의 기운이 무겁게 내리깔렸다.
화산의 자유로움과는 달리 무겁고 진중한 기운이었다. 그득 퍼져 흐르는 모양에 막힘이 없고 기운찬 것이, 도도하다는 말이 무엇보다 맞아 떨어졌다.
‘나는 노력해 왔다.’
그 끔찍했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굴욕감을 이겨 내기 위해.
‘화정검. 그리고 화산신룡!’
저들 중 그의 적수는 오직 그 둘뿐이다. 이런 조무래기 하나 이기지 못해서야 그가 어찌 검룡이며, 무당제일기재를 자처하겠는가!
결심이 완전하게 선 순간 검이 움직였다.
“타아아아앗!”
푸르디푸른 검기가 흐르는 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무당 특유의 면면부절(綿綿不絕)한 검기. 과거의 진현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하나 그때의 검기가 시냇물이라면, 지금 진현이 뿜어내는 검기는 커다란 강과도 같았다.
묵직하고 도도하게 흐르는 검기가 무게감을 싣고 넘실거렸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수련을 해 왔는지 실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본디 무당의 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지만, 이를 감안한다 해도 놀라운 성장세였다.
‘언제 저 아이가?’
지켜보던 허산자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대개 말없이 수련에만 전념하는 모습만을 보이기에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는데, 언제 저토록 강해졌단 말인가.
패배로 강해진 것은 무진만이 아니었다. 진현 역시 참담한 패배를 거름 삼아 뼈를 깎는 고련을 참아 낸 것이다.
‘되었다!’
승패를 안중에 두고 우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저 안정되고 묵직한 기운은 일대제자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겨우 화산의 삼대제자 따위가 받아 낼 수 있는 검이 아니다.
허산자가 그렇게 확신한 바로 그때였다.
“핫!”
뻗어 오는 강과 같은 검기를 본 조걸이 짧은 탄성을 내뱉고는 제비처럼 앞으로 날아들었다.
‘앞으로?’
뒤도 옆도 아닌 앞이었다. 마치 호우로 불어난 급류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으로 보였다.
“저 멍청…….”
허산자는 혹여나 시작부터 큰 피를 볼까 싶어 화들짝 놀랐다. 그런데 뒤이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악!
정면으로 달려들며 강하게 끊어 친, 간결한 조걸의 검이 물과 같은 검기와 조우했다. 그러자 기세 좋게 밀려들던 진현의 검기가 좌우로 갈라지며 조걸의 옆으로 비껴 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이들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만큼 부릅떠졌다.
“가, 가른다고?”
저걸?
“아, 아니다! 이제 시작이야!”
무당의 검은 면면부절.
끊길 듯 끊길 듯 끊이지 않는다. 한 번 검기를 가를 수는 있다. 두 번 검기를 날려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강물과도 같은 검기를 끝까지 막아 낼 수는 없는 법이다.
진현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진 검기는 이전보다 더욱 짙고 웅대한 기세로 조걸을 향해 밀려들었다.
“흐음.”
그 순간 조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몄다.
물론 저자의 검은 강하다. 그리고 묵직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동안 지겹도록 봤어!’
경험이 다르고, 헤쳐 온 난관이 다르다. 실내에서 애지중지 커 온 화초 따위는 아무리 힘을 내 봐야 그 안을 벗어날 수 없다.
북해의 칼바람과 운남의 삭풍을 이겨 낸 그에게 이 검기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파아아앗!
조걸의 발이 땅을 힘껏 박찼다.
“저!”
“저, 미친!”
그리고 날아드는 검기를 발로 가볍게 밟으며 몸을 띄워 올렸다.
조금만 어긋나도 발목이 날아갔을, 말도 안 되는 모험이었다.
하나 가볍기 짝이 없는 몸과 신기에 가까운 균형 감각은 날아드는 검기를 발판으로 삼기에 충분했다.
파앗! 파아아앗!
조걸은 연신 검기를 밟고 앞으로 돌진했다. 흡사 쏟아지는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와도 같았다.
진현은 검기를 타넘어 오는 조걸을 보며 충격에 눈을 부릅떴다.
‘뭣?’
너무 놀라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역시 고련을 이겨 낸 무당의 제자.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 날아드는 조걸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아아아앙!
하나 그 검이 채 다 뻗어지기도 전에 그가 목표한 위치를 조걸의 매화검이 선점했다.
“느리네.”
“…….”
검과 검이 서로의 날을 긁어 대는 동안, 조걸과 진현의 눈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잘 봐 두라고, 도련님.”
파앗!
조걸의 검이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곧장 진현의 목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어마어마한 쾌검.
뭔가 희끗한다 싶더니 이미 검날이 목에 거의 닿아 있었다. 진현이 기겁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서걱.
피부가 살짝 갈라지며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곳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파아아앗! 파앗! 파아아앗!
쾌속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찌르기가 연이어 날아든 탓이었다. 순식간에 뻗어진 검이 진현의 몸 곳곳에 상처를 만들며 무복을 붉게 물들였다.
‘어, 어떻…….’
그는 일단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검이 보이질 않았다.
이건 무공의 고하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였다. 그의 안력으로는 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는 검의 투로를 알아채는 게 불가능했다.
이걸 대체 어떻게 상대하란 말인가?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진현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내가 패한다고?’
그럴 리가 없다.
정말 쉬지 않고 수련해 왔다. 언젠가는 저 화정검과 화산신룡을 꺾고 땅에 처박힌 그와 사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 다짐했다. 오로지 그 목표를 되새기며 수련하느라 침식조차 잊은 세월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백천도 청명도 아닌 이딴 조무래기에게 패한단 말인가?
“으아아아아아아아!”
진현은 순간 날아드는 검을 피하지 않고, 송문고검을 맞찔러 갔다.
“저!”
“진현아!”
이기지 못할 거라면 서로 찔러 함께 죽기라도 하겠다는 동귀어진(同歸於盡). 비무에서 나올 만한 수는 절대 아니었다.
“죽어어어어엇!”
명치를 향해 곧장 찔러 들어오는 송문고검을 보며 조걸이 입가를 기이하게 뒤틀었다.
파아아아앗!
앞으로 내뻗어졌던 조걸의 검이 더 빠른 속도로 회수되더니 날아드는 송문고검의 옆면을 강하게 쳐 날렸다.
채애애앵!
상대를 찌르기 위해 모든 힘을 불어넣었던 진현의 검은 옆에서 날아드는 충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검수의 생명과도 같은 검이 손아귀를 찢어 내며 튕겨 날아갔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허공으로 솟구친 송문고검.
이제 남은 결말은 너무 빤해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으…….”
진현의 눈에서 일순간 초점이 사라졌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 순간 조걸의 발이 그의 가슴을 콱 걷어차 버렸다. 검을 잃은 그의 몸이 비무대 밖으로 휙 날려 갔다.
“진현아!”
“사질!”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드는 진현을 그의 사숙들이 잽싸게 받아 냈다.
“괜찮으냐?”
“…….”
진현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제 비어 버린 손과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가슴을 번갈아 보았다.
마음만 먹었다면 가슴뼈를 부러뜨리고 함몰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테지만, 그의 몸은 멀쩡하기만 했다.
그렇기에 더욱 완벽한 패배였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비무대 위에서 익살맞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조걸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니까 댁으로는 영 심심하다니까 그러네.”
조걸은 이제 볼일 다 봤다는 듯 진현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깔끔하게 돌렸다. 그리고 검 끝으로 무진을 가리켰다.
“올라오십쇼. 한판 뜹시다.”
무당 제자들의 얼굴이 더없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