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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06화 (604/1,567)

606화. 산은 넘어야 의미가 있는 거지. (1)

송태악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무당?’

왜 무당이 갑자기 여기로 온단 말인가?

“무. 무당이라니? 무당에서 누가 온단 말이더냐?”

“모르겠습니다. 그, 그것까지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둘이 아닙니다. 적어도 백에 가까운 수가…….”

“배, 백? 일백?”

경악으로 툭 불거진 송태악의 눈알은 튀어나오다 못해 금방이라도 땅에 쏟아질 듯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물론 무당파는 호북에 위치하고 있으니 무한에서 보기 어려운 이들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수가 한 번에 이동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타 문파와 문제가 있거나 무한에서 해결할 일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러나 이미 대별채는 토벌되었고, 대별채만 아니라면 무한은 평화로운 곳이 아닌가?

“여기로 오는 것이 정말 확실하더냐?”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빌어먹을, 당연히 그렇겠지.

이 평화로운 무한에 무당이 굳이 찾아올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으니까.

송태악의 시선이 화산의 제자들에게로 획 날아가 꽂혔다. 화산의 제자들 역시 당혹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당이 왜 오는 거지?”

“몰라. 인사라도 오는 모양이지.”

“아니, 왜…… 왜 굳이?”

하지만 무당파가 오는 것에 당황한 거라면 응당 무당파가 들어올 정문 쪽을 바라보고 있어야 정상이거늘, 그들의 시선은 줄곧 뒤에 쪼그려 앉은 한 사람에게로만 힐끔힐끔 향했다. 면면에 낭패라는 기색들이 가득했다.

‘망했다.’

‘아니, 왜 이새끼가 있을 때!’

‘여기 지금 장문인도 안 계신데…….’

‘자, 장로님들이 어떻게든 해 주시지 않을까?’

현종이 없는 자리에서 청명이 놈이 무당파를 마주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불안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기묘한 분위기를 보고 나니 송태악은 더욱더 정신이 아득해졌다.

“사, 상단주님.”

“으…….”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그는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든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이곳에 화산이 있건 없건, 저들이 일단 이곳에 도달한다면 그 명분은 ‘금선상단 방문’이 될 것이다.

그러니 상단주인 그가 당연히 저들을 맞이해야 했다.

‘왜 하필 이런 때에…….’

송태악은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정문으로 뛰쳐나갔다. 아니, 나가려 했다.

하지만 다급하게 두어 발짝을 뗀 그는 그 자리에 다시 멈춰 섰다. 그리고 떨떠름한 얼굴로 화산의 장로들과 청명을 한눈에 담듯 바라보았다.

“저…….”

마른침을 삼킨 송태악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도 자신이 왜 이런 당연한 일을 굳이 말로 설명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그의 발을 멈추게 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혹여 무당파와…….”

“걱정할 것 없네.”

현영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같은 도문으로서 굳이 무당파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으니까.”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그…….”

이번엔 송태악의 시선이 슬쩍 청명에게로 향했다.

그도 무한 최고의 상단을 골패 쳐서 딴 게 아니다. 눈치만으로도 지금 누구에게 확답을 받아야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현영이 아니라는 것도.

“왜요?”

“……아니, 그…… 도장…….”

“제가 뭐 무당 애들한테 시비라도 걸까 봐서요?”

그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송태악이 아니었다.

주변을 지키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이 정곡이 찔린 듯 움찔했다.

청명은 고개를 슬쩍 돌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쯧.”

“…….”

청명은 송태악에게로 시선을 주며 히죽 웃었다.

“에이, 상단주님도 참 너무하시네. 내가 그래도 명색이 도산데 아무한테나 시비 걸고 다니겠어요?”

그렇지.

보통 도사는 그렇지 않겠지.

근데 댁이 도사처럼 안 보이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저기…… 장로님?”

청명의 옆에 있는 장로들에게 어떻게든 해 달라는 눈빛을 필사적으로 보내 보았지만, 그들 역시 송태악의 시선을 슬쩍 외면할 뿐이었다.

“허허.”

“아니, 웃지만 마시고…….”

“허허허. 날이 참 좋군.”

“…….”

할 말을 잃은 송태악은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황망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그때 귓가에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럴 시간 있어요? 귀한 분 오시는데 나가서 마중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히죽거리는 청명의 모습에, 송태악의 위장이 한차례 뒤틀렸다.

“끄으으응!”

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긴 했다.

‘천지신명이시여!’

송태악이 화산의 제자들을 두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활짝 열린 정문 앞에 서니, 어느새 저 먼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가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분명 무당이었다.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익숙한 무당파 도인들이었다. 하지만 어째 더없이 익숙하면서도 심하게 낯선 느낌이 들었다.

‘그래, 느낌이 너무 다르다.’

송태악은 마른침을 삼키며 차가워진 손끝을 슬쩍 주물렀다.

그리고 도인을 상징하는 검은 도포를 걸친 이들이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행색이야 호북을 살아가는 이라면 눈에 익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송태악 역시 사업을 위해 무당에 들르거나 무당의 높은 이가 금선상단을 방문한 적이 왕왕 있었으니 저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무당은, 그때 그가 받았던 느낌과는 판이했다.

그렇다 하여 화산과 비슷하냐 하면 그건 또 절대 아니었다.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화산이 과히 자유롭다 못해 약간 한량처럼 느껴진다면, 저들에게서는 엄정함과 엄숙함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이 그동안 무당이 송태악에게 보여 주지 않았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위, 위압감이…….’

천하제일검문.

동시에 천하제일도문.

다른 거창한 수식어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 두 말만으로도 무당이 강호에서 가지는 입지를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 천하제일검문이 지금 굳은 얼굴로 송태악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무당의 제자들이 줄을 맞춰 걸어와 금선상단의 정문에 도열했다.

차마 입도 열지 못하고 도열을 기다리고 있던 송태악은 무당 도인들의 움직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급히 입을 뗐다.

“어, 어서 오십시오!”

그의 두 다리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계에서라면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지위를 손에 넣었지만, 그 역시 무당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제가 금선상단의 상단주인 송태악입니다. 일전에 몇 번 무당을 방문한 적이…….”

“아.”

그러자 앞쪽에 서 있던 장년인 중 하나가 천천히 나서며 송태악을 마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금선상단주님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산에서 도만 닦는 이들이라 상단주님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귀한 분께서 이리 직접 마중을 나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

“저는 무당의 장로인 허산자라고 합니다.”

허산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송태악은 몸을 살짝 떨었다.

그가 지금껏 마주했던 이들은 무당의 재정을 담당하는 이들이었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지만, 어쨌든 도문인 무당에게 재정당의 입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송태악도 제대로 된 무당의 장로를 이리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는 의미였다.

“허, 허산진인이셨군요!”

“감히 진인(眞人)이라 불릴 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허산자라 불러 주십시오.”

“예, 장로님.”

송태악이 연거푸 마른침을 삼켜 댔다.

무당의 장로는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중원에서 무당의 장로가 가지는 힘은 결코 중원십대상단의 상단주에 뒤지지 않는다.

업고 있는 문파의 힘을 감안한다면 그 이상이 분명할 테고.

하지만 그럼에도 이 허잔자라는 장로는 조금도 고압적인 모습 없이 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이게 명문 무당이로구나.’

어째서 무당이라는 이름이 천하를 종횡하고, 모두가 그들을 도문으로 공경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 그런데 무슨 일로……?”

일단 급히 말을 했던 송태악은 순간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문 앞에 서서 용무를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평소라면 절대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테지만, 은연중에 화산파가 있는 안으로 들여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터라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아아.”

하나 허산자는 그 실수를 탓하지 않겠다는 듯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지금 금선상단에 화산파의 도인들이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까?”

“…….”

송태악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혹시나 했던 것이 역시나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말을 하는 허산자의 눈이 ‘너희가 무당이 아닌 화산으로 거래처를 옮기려 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온화하기만 한 눈이지만, 알 수 없는 서늘함이 느껴졌다. 그때 허산자가 다시 한번 물었다.

“어떻습니까?”

“아……. 예! 예! 있습니다. 지금 안에…… 화산파가…….”

허산자가 낮게 도호를 외었다.

“화산파가 대별채를 토벌하고 양민들을 구휼하였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함께 도를 좇는 이로서, 당연히 찾아뵙고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혹 화산파 도인 분들을 만나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송태악에게 퇴로 따윈 없었다.

“다, 당연합니다, 장로님. 안으로 드시지요.”

“무량수불. 감사합니다.”

송태악은 힐끔 허산자의 뒤쪽을 넘겨다보았다.

‘말이랑 행동이 너무 다르잖아.’

화산파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는 허산자의 말과는 달리, 그의 뒤를 지키고 있는 무당파 제자들의 얼굴에는 묘한 노기와 투기가 어려 있었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무당과 화산이라는 거대 문파의 사이에 끼어 버렸으니 그가 할 수 있는 일 따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둘을 만나게 해 주고 아무 일도 없기를 천지신명께 비는 수밖에.

아니, 이번에는 원시천존께 빌어야겠지.

송태악과 허산자를 필두로 한 무당의 제자들이 금선상단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채 몇 발짝을 떼기도 전에 안쪽에 대충 자리하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광경에, 송태악은 극심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리 보니 더 심하군.’

조금 전 무당파 제자들의 기세를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일까?

완벽하게 정렬하여 들어오는 무당에 비하니, 대충 이리저리 모여 반쯤 주저앉아 있는 화산의 제자들은 거의 동네 불량배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같은 도문이거늘 어찌 이리도 다르단 말인가?

하지만 딱 하나 같은 걸 찾아보자면, 그건 바로 눈빛이었다.

화산 제자들의 눈빛만은 무당의 제자들의 날카로운 기세에 조금도 뒤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

그 순간이었다.

한가운데에 마치 불량배들의 두목처럼 쪼그려 앉아 있던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이야, 장로님! 이게 얼마만이에요!”

쪼르르 달려온 그는 헤벌쭉 웃더니 허산자의 양손을 움켜잡고 연신 위아래로 흔들어 댔다.

“헐…….”

“저 미친놈이…….”

송태악이 하고 싶었던 말을 화산의 제자들이 대신 해 주었다.

“허, 허허허. 허허허허.”

허산자도 황당하다는 듯 웃어젖혔다.

“실로 오랜만이네, 소도장.”

“그렇죠, 그렇죠! 검총에서 뵙고 처음 뵙는 거니까, 이게 어…… 몇 년이더라? 사람이 나이를 먹으니 세월이 영 빨리 지나가서 잘 모르겠네요.”

저 미친놈이.

속으로 경악한 송태악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아무리 봐도 새파랗게 어린 청명이 감히 허산자를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허산자는 이미 그런 청명이 익숙한 듯 노여움 대신 너털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렇지. 참 오랜만일세. 그새 헌앙해졌구먼.”

“네. 다시 보니 진짜 반갑네요. 히야, 우리가 어떤 사인데. 그래도 나름 칼 좀 나눈(?) 사이…….”

쿵!

그 순간 청명의 머리에 현영의 주먹이 떨어졌다.

“나대지 말고 저 뒤로 가거라.”

“아, 장로님! 그렇다고 때릴 것까지는…….”

“더 맞을 테냐?”

“지금 갑니다!”

청명이 머리를 감싸고 입을 삐쭉대며 뒤로 달려갔다. 허산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정말이지 녹록치 않군.’

다 생각하고 한 건지, 아니면 정말 반가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덕분에 무당이 만들려던 분위기는 완전히 깨져 버렸다.

‘아무래도 좋지.’

허산자는 앞으로 나선 현상과 현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무량수불.”

“무량수불.”

서로 도호를 외며 포권을 나눈 이들이 고개를 들어 마주 보았다.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지은 그들이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 주변의 공기가 바뀌며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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