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593화 (591/1,567)

593화. 얻는 게 있으려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한단다. (2)

우드드득!

근육이 뒤틀리고 찢겨 나갔다.

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청명의 두 눈만큼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광기에 가까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

광우도의 눈에도 핏발이 툭툭 불거졌다.

몸뚱이가 그의 반도 되지 않을 작은 놈이 힘으로 맞상대해 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애초에 신력을 타고나 광우도라 불리는 그에게 이보다 더 굴욕적인 상황은 존재할 수 없었다.

“감히!”

그의 전신 근육이 약동하며 청명을 짓누른다.

육체가 가진 본연의 힘이 내력과 섞여 들며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냈다.

“흐으으읍! 흐아아아아아앗!”

지이이익.

축이 되는 청명의 뒷발이 점점 뒤로 밀려났다. 그와 동시에 힘을 감당하지 못한 상체가 한없이 뒤로 밀리며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아무리 청명이라고 한들 힘 하나로 녹림을 평정한 광우도와 겨룰 수는 없다는 듯 말이다.

하나.

뿌드드득.

이를 갈아붙인 청명의 두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나가며 흰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이윽고 단전 안에서 잠자고 있던 그의 내력이 깊은 담 속에서 솟아오르는 신룡처럼 단전에서 솟아오르며 전신을 타고 휘돌았다.

세상의 가장 맑은 기운만을 뽑아 만든 내력이 비틀리고 비명을 지르던 육체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앗!”

뒤로 젖혀졌던 청명의 상체가 용수철처럼 앞으로 튀며 일시에 광우도를 밀어 날렸다.

쿠우우웅!

두 사람의 몸이 다시 튕겨 나가 뒤로 밀렸다.

지이이이익!

하나 이번에는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끌며 자세를 잡는 데 성공했다.

“후욱!”

굳건한 얼굴로 천천히 숨을 고르는 청명과 달리, 광우도는 황망함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

멍하니 청명을 바라보던 광우도는 자신의 언월도를 내려다보았다.

도라기보단 거의 도끼에 가까운 그의 언월도는 어느새 여기저기 날이 빠져 흉측하게 변해 있었다.

신검?

그렇겠지. 이만한 중병을 상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면 신병임에 분명하겠지.

하지만 신검도 결국은 사람이 쓰는 것이다. 그의 힘과 내력이 저놈을 압도했다면 신검이 버틴다고 해도 저놈의 손목부터 부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은 저 얇디얇은 검을 들고 그의 힘을 버텨 냈다. 아니, 버티다 못해 되레 튕겨 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살면서 힘으로 밀려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유명한 역사(力士)들도 그의 앞에서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와 다름없었다. 녹림은 물론이고, 그 어디에서도 감히 그와 힘으로 맞상대를 하겠다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저 작은 놈이 지금 그와 맞붙어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고, 직접 겪으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힘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청명이 피식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왔다.

광우도와 정면으로 맞선 부담이 생각 이상이었는지 검을 잡은 쪽 손목을 연신 다른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지만, 표정에는 분명 여유가 있었다.

“내가 성격이 좀 나빠서 그런 자부심 부리는 거 보면 속이 뒤집히거든.”

“…….”

광우도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그는 사람이 너무 화가 나면 오히려 머리가 식고 이성을 찾는다는 걸 처음으로 실감하는 중이었다.

“후욱.”

짧게 호흡을 내뱉은 그는 감정이 사라진 눈으로 청명을 응시했다.

들어 올린 언월도에서 도기가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도를 겨우 덮을 정도였던 도기가 이내 사람 키보다도 더 길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네놈의 목을 베어 장대에 꽂아 두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겠구나.”

“호오?”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으깨 주겠다! 흐아아아아압!”

광우도가 다시 청명을 향해 어마어마한 기세로 돌진했다.

도가 뿜어내는 도기는 얼핏 보아도 대단하게 느껴질 위력을 품고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만 봤을 땐 상상도 못할 속도로 달려든 그는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좁혔다. 청명의 머리 위로 도가 날아들었다.

청명은 빠르게 검을 들어 막아 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만년한철로 만든 암향매화검이 일순 뒤틀릴 만큼 커다란 충격이 전해졌다. 하지만 광우도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콰앙! 콰앙! 콰아아아아앙!

도격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르고 베어 내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힘으로 부수겠다는 작정이었다.

일격에 가공할 힘을 싣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쏟아붓는 듯한 연격에 모조리 강력한 힘을 실어 내는 것이 더더욱 어려운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건 단순히 무위가 높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타고난 신체 자체가 다른 것이었다.

내려친 힘을 회수하고 더 강한 힘으로 내려친다. 수많은 고련을 통해 익혀 내야 할 기술을 오로지 감각과 육체의 탄성만으로 해내고 있다.

‘이런!’

청명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위력이었다.

도가 한 번 머리 위로 떨어질 때마다 팔이 훅훅 꺾이고, 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쿠우우우우웅!

청명의 몸이 부서지기 전에 그가 밟고 선 땅이 먼저 부서지기 시작했다. 땅거죽이 으스러지다 못해 내리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위로 튀어 올랐다.

숨 쉴 틈도 주어지지 않고 몰아치는 연격.

왜 고홍이 광우도라 불리는지 절절히 실감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압!”

고홍이 다시 한번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지르며 도를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천붕지음(天崩之音)이 터지며 청명의 몸이 뒤로 포탄처럼 쏘아졌다.

콰가가각.

바닥을 몇 차례 구른 청명이 몸을 뒤집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입술 새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이은 연격에 내부가 진탕된 것이다.

“……허.”

고통에 찬 신음보다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뭐가 이렇게 무식해?’

물론 그는 두 번의 삶을 겪었고, 그동안 만난 고수들 중에 고홍보다 강한 자들이야 넘쳐난다.

하지만 고홍에게는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딱히 대단할 것 없는 저 단순한 초식도 저자의 손에서 펼쳐지는 순간 천하의 절초와 별 다를 바 없는 위력을 낸다는 것.

“팽가에서 태어났으면 소림 대가리 깨고도 남았겠네.”

저릿한 손목을 탈탈 흔든 청명은 몸을 똑바로 세우고 차분한 눈으로 고홍을 응시했다.

“크흐.”

고홍은 금방이라도 다시 짓쳐 달려들 듯 거친 숨을 토했다.

“노오오옴!”

콰아아앙!

이내 그의 발이 땅을 박찬 순간, 땅거죽이 뒤집히며 하늘 위로 치솟았다. 고홍은 그 어마어마한 반동에 몸을 싣고 마치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앗!”

수십 번이 넘는 도격이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펼쳐졌다. 일정한 규칙도 없고 정해진 투로도 없었다. 그저 난잡할 뿐인 휘두름, 혹은 몸부림에 불과했지만, 그 도격에 실린 힘은 그 난잡한 움직임을 천하의 절초로 둔갑시켰다.

어설픈 빈틈은 어마어마한 도기로 메우고,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틈은 살을 주고 뼈를 쳐 낸다는 이대도강(李代桃僵)의 각오로 무시했다.

그야말로 사파가 어떤 곳인지를 전신으로 보여 주는 도법이었다.

제정신이 박힌 이라면 저 말도 안 되는 도기의 폭풍을 인간의 육체로 감당할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저……!”

혈의인들과 싸우던 화산의 제자들은 광우도가 펼쳐 낸 도의 폭풍을 보며 숨을 멈췄다.

저 광경을 해석하는 데는 무학에 대한 이해도, 실전에 대한 경험도 필요하지 않다. 눈이 있고, 머리가 있다면 저게 얼마나 위험한 광경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폭풍 앞에 청명은 절벽 위에 홀로 선 매화나무처럼 검을 들고 서 있었다.

“피, 피해야……!”

당황한 백상이 급히 백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백천은 청명 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혈의인들을 공격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백천뿐만이 아니었다.

유이설도, 조걸도, 윤종도, 당소소도.

청명과 함께 싸워 온 이들은 그 누구도 청명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저놈이 저 정도에 당할 리가 없다는 듯.

“…….”

그 단단하다 못해 굳건하기까지 한 신뢰에 아연해진 백상은 다시금 청명을 바라보았다.

“후.”

광우도의 도기는 점점 더 불어나 세상을 휩쓰는 태풍이 되어 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채, 채주우우우우우!”

반경을 넓혀 간 도기가 채 물러나지 못한 산적들까지 휩쓸어 육편으로 조각 냈다. 머리에 피가 있는 대로 몰려 주변 상황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건 달리 보자면 이미 광우도를 아는 이들조차 예상하지 못한 범위까지 뻗칠 만큼 그의 도기의 위력이 대단하단 의미였다.

힘과 속도로 상대를 짓눌러 죽인다.

그야말로 사파의 도법이었다.

위협적으로 날아드는 도의 폭풍을 가만히 바라보던 청명은 말없이 발을 움직였다.

자연스레 벌린 다리.

양손으로 가볍게 잡은 검.

화산 검의 기수식이 되는 중단세였다. 청명의 눈이 차분하고 어둡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움찔.

그 순간 이제껏 청명에게 시선을 주지 않던 화산오검이 일제히 그쪽을 바라보았다.

‘뭐지?’

‘평소와 다른데?’

기질이 달랐다.

항상 청명이 보여 주던 날렵하고도 날카로운 그것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평소 혜연이 보여 주던 것과 비슷했다. 압도적인 무게감이었다.

청명의 등이 그들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듯했다.

“후우.”

다시 한번 짧게 숨을 내쉰 청명이 손에 들린 검을 바라보았다.

검수에게 검이란 결국 검술을 펼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도구를 잡음으로써 검수는 자신의 앞에 펼쳐진 가능성을 넓힌다.

검은 때로는 날렵하고, 때로는 화려하고,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바람 같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화산의 제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검은 무엇인가?

이는 이미 운검이 모두 말했다.

매화는 가지 끝에서 피어나지만, 그 매화를 피워 내는 근본은 결국 대지에 단단히 자리한 뿌리다.

그 순간 휘몰아치는 도의 폭풍이 청명을 휘감으며 덮쳐 왔다.

“청명 도자아아아아앙!”

임소병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청명의 검이 움직였다.

아주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투웅.

중심에서 불과 반 치 남짓 움직였을 뿐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날아든 도기가 검에 부딪히며 튕겨 나갔다.

투우웅!

연이어 강맹한 도기가 날아들었지만, 또다시 청명의 검격에 밀려 솟구쳐 올랐다.

단단하게 대지에 뿌리를 내린 거목은 폭풍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다.

화려하게 피어난 매화의 뒤에는 반드시 그 굳건함이 존재해야 한다.

쾅! 콰앙! 쾅!

간결한 청명의 검격이 점점 더 빨라졌다.

도기가 늘어나는 만큼 청명의 검도 점점 더 그 속도를 높여 나갔다.

그 와중에도 청명의 하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바닥에 뿌리를 내린 것만 같았다.

중요한 것은 정심(正心).

검 끝은 화려하게 피어날지라도, 휘두르는 검수는 올곧아야 한다.

지금 청명의 검 끝에서 화산 검학의 본의(本意)가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냐?’

고홍은 이를 부러져라 갈아붙였다.

그의 도는 더없이 쾌속하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거기에 실린 힘은 태산도 부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작은 검수는 무너지질 않았다.

밀리고 튕기고, 그러다 또 휘어질지언정, 내디딘 발과 곧게 세운 허리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아무리 후려치고 또 후려쳐도 단 한 치도 쉬이 밀려나지 않았다.

만년거암을 때리면 이런 느낌일까.

‘이럴 리가 없다!’

고홍의 두 눈은 이제 피라도 쏟을 듯 붉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기합을 터트린 그는 도에 내력을 더했다. 이 정도로 무너뜨릴 수 없다면 더 강하게 치고, 더 강하게 베면 될 일이었다.

마지막 한 줌의 내력까지 뽑아내고 나니 고홍의 도는 세상을 집어삼키기라도 할 기세로 청명을 향해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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