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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80화 (578/1,567)

580화. 좀 과히 건강해서 그렇지. (4)

동웅은 핏발 선 눈으로 임소병을 잡아 죽일 듯 노려보았다.

하지만 임소병은 내내 히죽히죽 웃어 댈 뿐이었다.

“이 얌생이 같은 놈이 녹림 내부의 일에 정파 놈들을 끌어들여?”

“나도 먹고살려다 보니 별수가 없었다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놈이!”

“에이. 그냥 친구를 잘 사귄 거지.”

동웅의 두 눈이 살기를 내뿜었다.

“채주께서 네놈의 살을 씹어 드실 것이다! 녹림의 법도를 어기고 외부인을 끌어들인 대가를 그 몸으로…….”

퍼어어어어어억!

그 순간 동웅의 고개가 부러질 듯 앞으로 꺾였다.

눈이 불룩 튀어나오고, 미처 입 안에 넣지 못하고 콱 깨문 혀에서 피가 볼록 솟아올랐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근데 이 새끼가?!”

뒤통수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러 대는 동웅을 보며 청명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포로로 잡힌 새끼가 뭔 혓바닥이 이리 길어! 확 혀를 뽑아 버릴라!”

“으으…….”

“그리고 뭐? 법도? 법도오오오?”

빠아아아악!

청명의 손이 다시 한번 동웅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이 새끼가 그래도 사람 가죽 뒤집어썼는데 양심 비슷한 거라도 있어야지! 어디 산적질 해서 먹고사는 새끼가 법도를 입에 올려? 아니지! 그래, 하긴 양심이 있는 새끼가 산적질을 할 리가 없지! 아주 직업대로 잘 사네, 이 새끼야!”

“그, 그게 아니라…….”

“그리고 이 새끼가 어디 어른들 계신 데서 살기를 내뿜어, 버르장머리 없이? 오냐. 잘됐다. 내가 오늘 버릇이 뭔지를 네 뼈에다 새겨 주마!”

콰득.

그리고 다짜고짜 주먹을 날려 동웅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린 청명은 아예 그의 위로 올라타 양 주먹을 벼락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컥! 커억! 도, 도장 살려 주십…….”

“안 죽어! 안 죽어! 그 몸에 고작 요거 맞는다고 죽겠냐!”

“주, 죽을 것 같……. 억! 커억!”

“안 죽는다니까, 이 새끼야! 속고만 살았나!”

동웅의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 대는 청명의 주먹은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그 바지런한 모습에 현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어여쁜 내 새끼. 어쩜 저리 차지게 잘도 때릴까?”

“…….”

화산 문도들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도사가 할 짓이고, 저게 도사가 할 말이던가?

“후욱!”

얼마나 착실히 팼는지 청명은 숨까지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하여튼, 죄다 빠져 가지고는.”

“…….”

어디가 눈이었는지도 헷갈릴 만큼 곤죽이 된 채 널브러진 동웅은 찔끔 솟아오른 눈물을 억지로 눌렀다.

‘이 산적보다 더한 새끼들.’

아무리 악독한 산적이라 해도 이렇게 온몸에 칼 맞은 이들을 패지는 않는다. 부상자를 부상자로 취급도 안 해 주는 놈들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포를 입고 다닌단 말인가?

원시천존인지 태상노군인지 하는 양반들은 양심도 없나!

“야.”

“예!”

하지만 생각과는 별개로 그의 몸은 폭력 앞에 더없이 솔직했다.

‘야.’라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그의 몸이 아픔을 무시하고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는 전문가다.’

작신작신 패는 손길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한 번 더 맞았다가는 정말 병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의 말투를 더없이 공손하게 만들었다.

청명은 툭 던지듯 말했다.

“읊어 봐.”

“예? 뭘……?”

빠아아아아악!

청명의 손이 다시 동웅의 뒤통수를 세차게 깠다.

“정보! 정보, 이 새끼야! 그럼 내가 네 신상명세나 알겠다고 이러고 있겠냐?”

“저, 정보라면, 녹채의 정보 말씀이십니까?”

“그럼?”

동웅은 슬쩍 임소병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 전 녹림의 법도를 어겼다고 큰소리를 쳐 놨다.

물론 아주 없는 말은 아니었다. 외인을 끌어들이는 건 분명히 죄니까. 하지만 내부정보를 누설하는 건 더 큰 죄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게 지금 눈을 굴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동웅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대체 이놈은 뭐 하는 놈인가?’

정체가 무엇이기에, 나이 지긋한 장로들과 윗사람들이 넘쳐나는 자리에서 이렇게나 과격하게 굴어 댄단 말인가?

더 기절초풍할 노릇은 이 광경을 보면서도 누구 하나 말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동웅은 눈으로 임소병을 가리키며 더듬더듬 말했다.

“그…… 사실 노, 녹채의 정보는 저보다는 저 양반이 잘 알 텐…….”

“하.”

청명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이, 이해해 주셔서…….”

“너 사파였지. 내가 요즘 순한 애들이랑만 어울리다 보니까 잠시 착각했네. 사파는 패는 게 아닌데.”

스르르릉.

섬뜩한 소리와 함께 청명의 검이 뽑혀 나오자 동웅의 눈알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지금 칼을 왜 뽑아?’

“일단 팔다리 하나 잘라 놓고 시작했어야 하는 건데…….”

“아아아아아악! 녹채! 녹채는 지금 대별채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별채의 대부분이 녹채에 들어와 있고, 녹채가 있는 형산 내에는 대별채뿐만 아니라 오대산의 적웅채와 옥산의 혈랑채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을 들은 청명이 임소병에게 물었다.

“얘들은 왜 호랑이 안 넣어? 뭔 황호채니 적호채니 다 이름에 호랑이 붙어 있더만.”

“……그건 신생 산채의 특징이라……. 원래 없는 것들이 세 보이고 싶어 하잖습니까.”

“그럼 적웅이랑 혈랑은 약해 보이고?”

“……개성이라고 해 두죠.”

청명이 혀를 차고는 다시 동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왜 녹채에는 대별채만 있고, 다른 놈들은 없어?”

“그, 그게…….”

그건 임소병이 대신 설명을 해 주었다.

“힘을 합쳤다고는 하지만, 세 산채의 사이가 그리 돈독한 건 아닙니다. 셋 모두 녹림 내에서는 수좌를 다투는 산채들이기에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청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힘을 합쳐서 반역을 도모하는 와중에서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숙소를 따로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거지?”

“정확합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네. 이게 뭔 짓이래?”

“산적한테 뭘 바라십니까. 그러니 산적이지요. 오합지졸의 대명사가 산적 아닙니까. 하하하하핫.”

저기요? 당신이 그 산적들의 대장인데?

댁 녹림왕 아니세요?

낄낄대며 웃던 임소병은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에 웃음을 거두고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저도 나름 바꿔 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천성이 천성인지라.”

“네. 다음 산적 두목.”

“말코…….”

“뭐?”

“저, 저기 말 코에 뭐가 묻었습니다! 가서 닦아 줘야 할 것 같은데.”

임소병이 허둥지둥 말을 돌리자 청명이 뚱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어색하게 웃던 임소병이 말했다.

“대별채와 적웅채, 그리고 혈랑채는 각각 녹림 내에서 가장 막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셋이 힘을 합쳤다면 녹림 전체 전력의 이 할은 넘어갈 게 분명합니다.”

청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동웅을 노려보았다.

“야.”

“예!”

“거기 있는 산채는 그게 전부야?”

“제, 제가 아는 바로는 그렇습니다.”

“확실하게 하자, 확실하게. 나는 거짓말 좋아하는데, 남이 나한테 거짓말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

우득 소리와 함께 꽉 쥐어지는 주먹을 보며 동웅은 식은땀을 뻘뻘 흘려 대었다.

“저, 정말입니다. 제 눈으로 본 건 그게 전부였습니다. 채주께서는 저희에게도 상황을 모두 알려 주지 않는 분이십니다. 녹채를 습격하는 것도 당일에 알았습니다.”

“흐음. 쓸모가 없네. 쓸모가 없어.”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찬 청명은 임소병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실제로 형산에 들어와 있는 산채는 그 셋이 전부일 겁니다.”

“그 셋 말고 다른 산채들은 이 일을 거들고 나서지 않았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형산의 크기를 감안했을 때, 산채가 넷이나 들어왔다면 분명 벌써 싸움이 났을 겁니다.”

“…….”

임소병이 히죽 웃었다.

“원래 산적 놈들이 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없죠.”

“…….”

가만 보면 이 인간은 산적이 아니라 산적을 혐오하는 사람 같다.

“……그래, 뭐 그건 됐고.”

청명은 더 이상 따져 묻기를 포기하고 턱을 긁적였다.

“한 산채의 산적이 몇이나 되지?”

“대, 대별채는 모두 오백입니다.”

“오백?”

청명이 눈을 살짝 치떴다.

“예! 저희 야차당을 뺀다면 사백이 좀 안 되는 수가 남았을 겁니다!”

“다른 산채들도 오백씩 되고?”

“수, 수는 거의 비슷합니다. 본채에 남아 있는 수를 감안한다면 다들 그 정도일 겁니다.”

“그럼 저 산에만 산적이 천오백 명이 있다는 거야?”

동웅이 빠르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미친……. 여기가 무슨 산적의 왕국도 아니고, 뭔 산적들이 천오백씩이나 돼? 관아는 뭐 하고?”

세상에.

뭔 산적 나부랭이들이 신주오패니 뭐니 소리를 듣는다기에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더니.

임소병이 그런 청명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하핫. 요즘 산적질 해 먹기가 참 좋은 세상이라서…….”

“……관아에 넘겨 버리기 전에 닥치시죠.”

“옙.”

임소병이 재빨리 눈치껏 입을 닫고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천오백이라.”

“그래 봐야 오합지졸…….”

“주둥아리.”

“넵!”

잠깐 생각하던 청명은 현상과 현영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데요.”

“으음.”

현상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운자 배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느냐? 천오백이라면 아무래도 부담이 되는 숫자인데.”

하지만 운검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협의를 행함에 있어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길은 없습니다.”

“음.”

“목적이 있었다고는 하나 산을 내려와 양민들이 사는 성에 쳐들어온 이들입니다.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저들을 상대하러 온 게 아니라, 그냥 지나던 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일을 보고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장로님.”

“그렇구나.”

정론 그 자체였고, 실로 의지가 서린 대답이었다. 하지만 조금 현실적인 대답도 듣고 싶었던 현상은 이번엔 운암을 보았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그건 제가 아니라 저 아이에게 물어야 할 일 같습니다.”

“으음?”

운암이 미소 지으며 가리킨 건 백천이었다.

현상의 시선이 닿자, 백천은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단호하게 말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음?”

“적이 강할수록 제자들은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위험하겠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 현상의 입가에 결국 미소가 번졌다.

물론 아이들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하나, 스스로 위험도 불사하겠다 말하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럼…….”

“뭘 고민하세요.”

“…….”

그때 말을 툭 자르며 들어온 청명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봐야 산적 새끼들이지. 그냥 올라가서 모조리 쓸어 버리면 그만이에요.”

그 말을 들은 현상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청명아.

내가 네놈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아서 너한테는 안 물은 거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초지일관하니?

“크흐흠.”

헛기침을 한 현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에 있는 이들과 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쪽에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쳐야 할 것이다.”

“예, 장로님.”

“운암.”

“예!”

“녹림왕께 산의 지형을 듣고, 진격로를 잡거라.”

“예!”

“운검.”

“예!”

“아이들의 상태를 살피고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하거라.”

“예!”

“백천이는 운자 배들과 함께 전체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모든 상황을 머리에 넣어 두거라! 네 역할이 더없이 중요하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청명이.”

“예!”

“사고 치지 말고.”

“……눼.”

현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선언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바로 출발할 것이다!”

의지가 충천하는 목소리였다. 살짝 상기된 모두를, 현상은 하나씩 훑어보며 말했다.

“협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고, 목적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문이 너희에게 정말 바라는 것은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임을 잊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장로님!”

“저들에게 화산이 어떤 곳인지 똑똑히 보여 주자꾸나.”

현상의 패기 넘치는 선언과 함께 형산의 토벌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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