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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79화 (577/1,567)

579화. 좀 과히 건강해서 그렇지. (3)

“거, 걸이가…….”

현상이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저 동웅이라는 산적 놈은 분명 과거 그가 상대했던 독혈수라는 자에 비해 그리 뒤떨어지는 이가 아니었다.

물론 승부를 겨룬다면 독혈수가 이기기야 하겠지만, 일방적으로 몰릴 정도는 절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조걸이 그런 이를 농락하듯 상대하다 깔끔하게 승리했다.

“세상에…….”

현상이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본디 자식의 성장을 가장 알지 못하는 이는 오히려 부모라 하지 않던가?

조걸이 강해졌다는 사실이야 모를 이가 있겠냐마는,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은 또 달랐다.

“……걸이가…….”

운검 역시 적잖이 충격받은 듯 조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쯧. 뭐 당연한 걸 두고.”

하지만 현영은 코웃음을 쳤다.

“청명이 놈이 애들을 얼마나 굴렸는데, 저 정도는 당연히 해 줘야지요.”

“이 사람아.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현상이 답답했는지 버럭 소리를 쳤다.

현영은 무학에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라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인지 잘 알지 못했다.

만인방이 쳐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는가? 채 1년도 되지 않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사람의 무위가 두 배는 높아진다는 게 어디 가능한 일이던가?

하지만 현영은 여전히 그의 말을 흘려들으며 말했다.

“거, 조걸이가 강해진 건 알겠는데 너무 거기만 보지 마십시오. 지금 다른 아이들도 저 대별채 놈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지 않습니까.”

“아…….”

그 말에 현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다른 화산의 제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감회가 새로웠다.

‘언제 이렇게…….’

결정은 현종과 청명이 했다.

물론 현상 역시 지금 화산의 힘이라면 녹림의 산채 두엇을 상대하는 데 큰 문제는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으니 반대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 정도일 줄은…….’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저 대별채의 녹림도들이 작은 산의 어중이떠중이 산적들처럼 보일 정도니 더 말을 해 무엇 하겠는가?

“화산이…….”

현상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산이 정말로 강해졌구나.”

“뭘 새삼스레.”

현영은 퉁명스레 면박을 주었지만, 정작 그런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데, 사형.”

“응?”

“조걸이 놈이 엄청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현상은 답지 않게 아이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너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저 아이들의 성장세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이다. 심지어 먹은 영약들을 완전히 흡수하면 지금보다 더 강해질 거다!”

“그래서 말입니다.”

“응?”

“걸이랑 사형 중에 누가 더 강합니까?”

“…….”

“왜 대답이 없습니까? 누가 더 세냐고요.”

“…….”

현상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고정되었다.

“몰아붙여!”

조걸이 동웅을 꺾은 것은 다른 제자들의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누가 보아도 우두머리였던 자가 쓰러졌으니, 안 그래도 기세가 하늘 끝에 닿아 있던 화산의 제자들은 용기백배했다.

반면에 수장이 꺾인 산적들의 사기는 끝 모르고 떨어졌고, 화산 제자들의 칼끝에 빠르게 제압당하기 시작했다.

백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든 화산의 가르침을 잊지 마라! 머리를 차갑게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예!”

그 혼란한 전투 와중에도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백천은 가늘게 뜬 눈으로 상황을 살피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문제는 없겠군.’

상황이 조금 힘들어지면 언제든 합류할 생각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화산의 제자들은 더할 나위 없이 잘 싸워 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되레 참여하는 게 오히려 저들의 경험을 제한하게 될 것이었다.

“……저는 오늘 한 게 없는데요, 사숙?”

“저도.”

윤종과 유이설이 볼멘소리를 내었지만, 백천은 조용히 웃으며 그들의 불만을 받아 주었다.

“이제 시작 아니더냐.”

“그렇긴 하죠.”

그때, 이쪽으로 다가오는 조걸의 모습이 보였다. 어깨가 거의 머리 위까지 솟을 기세였다.

의기양양. 위풍당당.

아니, 그런 말을 다 동원해도 표현하기엔 좀 모자랐다. 다가온 조걸은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후훗. 다들 잘 보셨습니까? 제가 저 덩치를 깔끔하게 요리하는 걸?”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가느스름해졌다.

“조걸아.”

“예?”

“나날이 터져 나가는 네 인성을 보고 있으니 내가 다 뿌듯하구나.”

“하핫! 뭐 그런 공치사를 다…….”

“욕이다, 인마.”

“…….”

백천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왜 다들 날이 갈수록 상태가 안 좋아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뿌듯할 만도 하지.’

평소 같으면 잔소리도 좀 했겠지만, 굳이 조걸의 기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만큼 자랑할 만한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걸이 강자들을 상대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의 옆엔 윤종이 함께 싸우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모두가 다 같이 달려들거나.

결국 세간에서 인정받는 강자를 혼자 꺾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의미였다.

무인에게 있어 그 일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아는 백천은, 굳이 조걸의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이건 백천만의 생각이었다.

“목에 힘을 줘?”

“…….”

그들의 등 뒤에서 술을 홀짝이던 놈은 생각이 좀 다른 모양이었다.

“칼질을 그따위로 해 놓고 배를 내밀어? 확 그어 버릴라!”

“…….”

내내 우쭐대던 조걸이 대꾸도 못하고 움찔하며 쪼그라들었다.

“나, 나름 잘한 것 같은데.”

“잘해?”

그리고 희번덕거리는 청명의 눈을 피해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잘해? 잘? 그게?”

“청명아.”

“응?”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잘못했다.”

“쯧.”

청명이 혀를 찼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조걸의 난을 제압한 그는 고개를 돌려 다른 제자들을 보았다.

“흐음. 운검 사숙조께서 우리가 북해에 간 사이에 고생을 많이 하셨네.”

청명 이상으로 기본을 강조하는 운검이다. 그래서인지 저 높은 기세를 유지하면서도 확실히 다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좋아.’

청명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겠지만, 적어도 이곳까지는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도착했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

콰득!

“아아아아아악!”

저항하던 산적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산적들은 더 이상 달려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이미 반수가 넘는 이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고 온 동웅도 의식을 잃고 기절한 지 오래였다.

이런 마당에 더 싸울 의지가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백천이 목소리를 높였다.

“무기를 버려라. 투항하는 이는 죽이지 않는다.”

그러자 산적들이 의심의 눈길로 백천을 돌아보았다. 백천은 다시 한번 외쳤다.

“나는 대 화산파의 백천이다. 화산은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조걸은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윤종의 귀에 속삭였다.

“저것도 구라 아닙니까?”

“그러려니 해라. 이 상황에 거짓말을 좀 해 대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거짓이 아니다 할 수도 없잖느냐?”

“조용.”

“넵.”

유이설이 날카롭게 노려보자 조걸과 윤종이 불에 덴 듯 화들짝 놀라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철컹. 철컹.

마침내 산적들이 들고 있던 도가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남아 있던 산적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투항한 이들을 포박하고 쓰러진 이들을 수습해라!”

“예!”

도시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커다란 대답이 울려 퍼졌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사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다친 사람도 하나 없이!”

평범한 산채를 정리하는 데도 부상자는 나오기 마련이다. 칼 밥을 먹고 산 거친 산적들은 으레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하지만 화산파는 저 대별채의 산적들을 상대하면서도 제대로 된 상처를 입은 이조차 없었다. 곳곳에 옅은 핏자국이 비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인에게 저 정도의 상처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화산파가 정말 강하구나!”

“이 정도일 줄이야…….”

강호의 정세에 대해 아는 이도, 모르는 이도 모두가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화산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는 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러자 청명이 백천의 등을 쿡쿡 찔렀다.

“사숙.”

“……응?”

“뭐 해?”

“…….”

백천은 심경이 복잡한 얼굴로 청명을 돌아봤다. 하지만 차라리 돌아보지 않는 편이 나을 뻔했다. 청명이 더없이 사악한 얼굴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건 해야지.”

“……꼭 해야 하냐?”

“이 양반이 장난하나? 밥상 다 차려 놨으면 먹어야지!”

“…….”

안다. 물론 안다.

하지만 백천이 가지는 불만은 그걸 왜 꼭 자신이 해야 하냐는 점이었다.

‘말해 뭐 해.’

말을 들어 먹는 놈도 아니고.

결국 한숨을 푹 내쉰 백천은 느리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자연히 그에게로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는 나지막이 심호흡을 하고는 넓은 어깨를 쫙 폈다.

세상에는 매번 나서다가도 자리를 깔아 주면 움츠러드는 사람도 있지만, 백천은 안 나서려다가도 일단 자리를 깔아 주면 공중제비를 도는 사람이었다.

“장사를 습격한 산적들은 저희 화산파에서 모두 정리했으니,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고 다시 주무셔도 됩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커다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호를 지르라고 만들어 주는 자리이니 소리를 지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화산파 만세!”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산적 나부랭이들! 별것도 아니구만! 하하하하하!”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소리가 조금 잠잠해지길 기다린 백천이 다시 입을 뗐다.

“또 다른 습격이 있을지 모르니, 저희가 장사의 주변을 경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형산에 올라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산적들을 모두 토벌하도록 할 터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환호성이 두 배는 더 커졌다.

마지막으로 백천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주민들을 향해 빙긋 웃어 주었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결 좋은 머리칼이 살짝 날렸다. 그러자 이번엔 마음에서 우러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어쩜 저리 헌앙한지…….”

“화산은 정말로 멋진 문파구나!”

백천에게로 쏟아지는 환호는 끊일 줄을 몰랐다. 이에 고무되었는지, 조걸도 앞으로 나서서 무어라 한마디를 하려 했다.

하지만.

덥석.

“……응?”

붙잡아 오는 손길에 조걸은 뒤를 돌아보았다.

유이설, 윤종, 청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뻗어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넌 안 돼.”

“가만히 있어라.”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된다, 사형.”

“…….”

조걸의 얼굴이 땡감이라도 씹은 듯 떨떠름해졌다.

“……산적 두목은 내가 쓰러뜨렸는데.”

“알아.”

“그래, 고생했다.”

“알았으니 빠지라고.”

“…….”

조걸이 영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결국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세상에는 일 더하기 일이 이가 아닌 경우도 있어. 괜히 그림 망치지 말고 여기에 있어.”

‘개새끼.’

조걸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윤종은 그런 그의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어쩌겠느냐. 세상이 그런 것을.”

“위로하지 마십쇼. 더 울고 싶어지니까.”

“……힘내라.”

어깨를 축 늘어뜨린 조걸이 쓸쓸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흠.”

열광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던 청명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이쯤 되면 소문이 확 퍼지겠지.’

이름 있는 문파야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명성이 퍼져 나가기 마련이지만, 화산처럼 명성이 낮은 문파는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될 뿐이다.

사람들의 눈에 인상적인 광경을 제대로 때려 박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이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이제 화산의 활약에 대해 논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들이 피워 낸 불씨는 미리 준비해 둔 장작에 옮겨붙어 들불처럼 번져 나갈 것이다.

‘좋아.’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한 청명은 슬쩍 객잔 위를 올려다보았다. 창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현자 배들이 청명과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처럼 손을 흔들어 댔다. 표정들이 모두 환하고 맑았다.

‘쯧쯧쯧.’

저리도 좋을까. 뭐 대단한 일 했다고.

이제 시작인데.

“얼른 정리해.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니까.”

청명이 획 돌아서며 말했다.

그렇게 대별채의 장사 습격건은 주민들의 환호의 속에서 끝을 맺었다.

더 큰 싸움을 남겨 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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