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화. 좀 과히 건강해서 그렇지. (2)
콰아아아아앙!
커다란 굉음이 울리고, 산적 하나가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아아아아아악!”
쿠우우웅!
애처로울 만큼 나풀나풀 날아올랐다가 바닥에 추락하는 그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일방적으로 패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장사의 주민들은 멀쩡한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산적이 쳐들어왔다. 그 산적을 발견한 화산파의 제자들이 막아섰다.
여기까지는 딱히 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깔끔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에 벌어진 이 사태였다.
“……뭔 소 모는 것 같은데?”
“저쪽이 더 소 같은데.”
“그쪽은 미친 소고.”
“…….”
화산이라면 도가의 제자들이 아닌가? 그런 이들이 산적을 맞아 싸운다면 보통 구경하는 입장에선 기대하는 광경이 있다.
하지만 정작 펼쳐진 것은 흑도패 놈들의 구역 싸움을 방불케 하는 난전이었다.
그리고 그 흑도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난전의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게 도가문인 화산파의 제자들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니…… 저게 그…….”
황당하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광경이었다.
“저들이 방금 대별채라고 하지 않았는가? 대별채라면 대별산에 있는 그 흉악한 산채를 말하는 게 아닌가? 어지간한 정파들도 발을 들이길 꺼려 한다는…….”
“그, 그런 것 같은데?”
“……그럼 왜 저들이 저리 일방적으로 처맞고 있는가?”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이들이 화산에 기대를 걸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웬만큼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곳이니 어떻게든 저 산적들을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처리한다는 말이 보통 저토록 일방적으로 두들겨 팬다는 의미는 아니잖은가?
“화산이 이리 강한 곳이었단 말인가.”
“허어……. 명성이라는 게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강호의 정세를 잘 모르는 이들은 벌어지는 상황에 놀랐고, 나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더 크게 놀라는 중이었다.
화산이 이름을 날린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에 비해 명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었다. 화산을 진지하게 구파일방이나 신주오패같은, 강호를 지배하고 있는 문파들과 비견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화산의 제자들은 녹림칠십이채의 산적들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콰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커다란 폭음과 함께, 또 한명의 산적이 털썩 쓰러졌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몸과, 머리에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피를 본 이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산적이 안쓰러워서 될 일이냐고.’
‘그런데 솔직히 저쪽이 더 산적 같지 않은가?’
“그…….”
그때 누군가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들이 그리 대단치 않은 산적일 수도 있잖은가?”
“대별채라는 말을 내가 들었다니까.”
“거 산적 말을 어떻게 믿는가? 그리고 대별채라는 곳이 우리 생각보다 그리 대단치 않을 수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치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거대한 굉음이 일며, 시퍼런 도광(刀光)이 충천했다.
콰지지직! 콰직!
날아든 도광이 전각에 박히자 전각은 마치 거대한 도끼로 내리찍은 것처럼 크게 갈라져 버렸다.
“…….”
일 도에 커다란 전각을 거의 동강 내 버리는 위력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저 어마어마한 힘을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 어찌 감당…….
“이야, 이 사람 힘은 좀 쓰네.”
……하네.
어, 감당하네.
강렬한 도기를 날린 동웅의 앞에서 조걸이 여유롭게 검을 뱅그르르 돌렸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도격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음에도 그의 얼굴에서는 여전히 긴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쯤 되면 사실 그냥 천성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 여유 넘치는 얼굴이 지금 동웅의 속을 슬쩍슬쩍 긁어 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 말코 놈이……!”
“우와.”
동웅이 짓씹듯 뱉은 말에 조걸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확실히 산적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그동안 어린놈, 애송이는 많이 들어 봤어도 이렇게 대놓고 말코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는데.”
그는 재미있다는 듯 히죽 웃었다.
그 태연한 반응에 동웅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주둥아리를 잡아 찢어 주마!”
동웅은 도기를 세 자는 족히 넘게 뿜어내며 조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시퍼런 도기가 금방이라도 몸을 양단할 듯 내리꽂혔지만, 조걸은 물러서기는커녕 되레 앞으로 돌진하며 검을 뻗었다.
파아아아앗!
이내 빛살로 화한 그의 검이 동웅의 목으로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이대로 가면 저놈을 쪼개 버리기도 전에 자신의 목이 꿰뚫린다는 걸 알아챈 동웅이 기겁을 하며 도를 옆으로 뒤틀었다.
하지만 그의 도가 채 밀쳐 내기도 전에 조걸의 검은 더 빠른 속도로 회수되었다. 그리고 이내 다른 방향으로 동웅을 노리며 쇄도했다.
파아아앗!
동웅의 뺨이 길게 갈라지며 핏물이 쭉 솟구쳤다.
‘뭐, 뭐가 이렇게…….’
생각을 이어 갈 틈도 없었다.
파아아앗! 파아아앗!
순식간에 수십 개의 검영이 그의 전신을 노렸다. 이 어린 도사 놈의 검은 그가 지금껏 본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쾌속했다.
“으라차아!”
그것만으로도 상대하기가 어렵거늘, 어린놈은 이내 제자리에서 뛰어 오르더니 아예 머리 위에서 검기를 뿌려 대기 시작했다.
꽃잎처럼 하늘하늘한 검기가 어지러이 쏟아지자 동웅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 이 원숭이 같은 놈이!”
“……정확한 평가네.”
“공감.”
“왜 지금까지 저 말을 못 떠올렸을까.”
한편 백천과 그 일행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조걸과 몇 년간을 함께한 그들이 찾지 못했던 표현을 오늘 처음 본 이가 찾아냈다는 것은, 조걸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부족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도 예전에는 저 정도는 아니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 말 또한 일리가 있어.”
“확실히. 청명이 놈 만나고 더 심해졌으니.”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혀를 차며 동웅을 몰아붙이는 조걸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언뜻 백천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검의 날카로움으로만 보자면 화산에서 조걸을 따를 이가 없었다. 저건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난 재능, 검에 대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기예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저놈에게.”
“아니죠. 하늘이 자비로운 것 아닙니까? 검까지 못 쓰면 진짜 사람 아닐 텐데.”
“누구? 청명이?”
“아……. 물론 거기도 그렇죠.”
윤종이 쓰게 웃으며 조걸의 날카로운 검격과 이를 받아내는 동웅을 눈에 담았다.
‘묘하군.’
도를 쓰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저 동웅이라는 자의 실력은 과거 그들이 상대했던 만인방의 대주들에 비해 그리 크게 뒤지지 않았다.
그때는 조걸과 윤종이 합을 맞춰야 대주급을 겨우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걸 혼자 동웅을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다.
단순히 승기를 잡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조걸의 실력은 동웅을 확실히 압도하고 있었다.
‘실전을 겪어야 한다…….’
청명이 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완전히 알 것 같았다. 자소단과 공청석유를 추가적으로 복용하며 내력이 일신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조걸의 검이 동웅의 도를 압도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정교함과 과감함. 그리고 그 와중에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는 침착함.
저건 수련으로 기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해에서 겪은 수많은 격전, 그리고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경험이 조걸의 검을 더없이 날카롭게 벼려 내었다.
“하하핫! 느려 터졌어!”
어…….
인성도 엄청 날카롭네.
베이겠다, 조걸아.
조걸은 한층 더 기세를 끌어 올리며 동웅을 몰아붙였다.
거대한 동웅의 전신에 붉은 상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이, 이익!”
분노로 얼굴을 붉힌 동웅이 이를 갈았지만, 정작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이 검은 그저 빠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검에 실린 위력은 동웅조차 기겁할 정도였고, 그 정교함에는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웬만한 위력이라면 어깨 정도를 내어 주고, 상대를 쪼갤 시도라도 해 보겠지만, 이 검의 위력 앞에서는 모험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 솜털이 보송한 애송이에 불과하건만, 그 검은 평생을 전장에서 살아온, 노회한 노고수의 그것 같았다.
‘하, 한 번만!’
딱 한 번이면 된다.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면 그의 신력과 내력을 바탕으로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다.
하지만.
동웅에게는 그 한 번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차르르르륵!
마치 긴 사슬들이 서로 마찰하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의 전면에 더없이 화려한 매화의 꽃잎들이 비산하기 시작했다.
동웅은 찢어져라 두 눈을 부릅떴다.
대체 이게 무슨 검술이란 말인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동웅은 그만 넋을 놓았다. 전투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홀릴 수밖에 없다.
그는 몰랐다.
이 화려함에 눈을 빼앗기는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아아아앗!
화려하게 흩날리던 꽃잎들 사이에서 시퍼런 검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풀숲에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먹잇감을 향해 쇄도하는 독사처럼.
푸욱!
“끅…….”
동웅의 시선이 자신의 우측 가슴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가슴을 깔끔하게 꿰뚫어 버린 흰빛의 검을 바라보았다. 검에서 뿜어진 한기가 점차 온몸에 퍼져 나갔다.
“허억!”
정신을 차린 동웅은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울컥!
상처에서 검이 뽑혀 나오며 붉은 피가 왈칵 쏟아졌다. 허겁지겁 지혈하며, 동웅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건너편의 조걸을 바라보았다.
“싱겁기는.”
조걸이 검 끝에 묻은 피를 툭 털어 내며 동웅을 향해 다가왔다.
“마교 놈들에 비하면 싸우는 것 같지도 않네.”
그 굴욕적인 말에도 동웅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실력 차이는 명백하다. 멀쩡한 몸으로도 상대하지 못한 이를 상처 입은 몸으로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 해서 자신의 반도 살지 않은 애송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은가?
“이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
마지막 자존심을 모조리 끌어다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저기, 아저씨.”
조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 말에 겁먹기엔 내가 너무 많은 걸 겪어서요.”
조걸이 바닥을 박차며 동웅을 향해 날아들었다.
쇄애애애액!
쾌속무비한 검이 허공에 수십 개의 검영을 만들며 동웅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서걱! 서걱! 서걱!
어깨. 허리. 복부. 허벅지.
빛살처럼 동웅의 전신을 가르고 지나갔다.
“끄으으으…….”
동웅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이미 자신을 스쳐 지나간 조걸을 돌아보려 했다.
하나.
쿠우웅!
고개가 채 다 돌아가기도 전에 그의 몸이 고꾸라졌다.
“…….”
완전히 의식을 잃은 동웅의 모습이, 아직 싸움을 이어 가던 산적들의 눈에 똑똑히 박혔다.
스르르릉.
검을 갈무리해 검집에 밀어 넣은 조걸은 동웅을 슬쩍 돌아보았다.
“억울하면 너도 북해 한번 다녀오든가.”
쓰러진 동웅이 들었다면 피를 토했을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