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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68화 (566/1,567)

568화. 화산이 개판이 날 겁니다. (3)

“으음.”

임소병으로부터 사정을 들은 현종은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녹림의 내분이라…….’

상황이 심상치가 않았다.

원래라면 녹림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 화산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녹림왕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 어쩌실 셈이시오?”

“진압해야지요.”

임소병의 대답은 칼같이 단호했다.

“쉽지 않으실 텐데.”

“그래도 해야 합니다.”

나지막한 한숨이 이어졌다.

“장문인. 못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싸우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고, 피를 보는 것은 아예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 보이오.”

임소병을 며칠이라도 지켜본 이라면 다들 현종처럼 답할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그의 진면목이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의 성향이라는 건 그리 쉽사리 감춰지는 게 아니니까.

“또 저는 권력을 거머쥐는 걸 그리 갈망하는 이가 아닙니다. 만일 저를 대신할 적당한 이가 있었다면, 굳이 병든 몸을 이끌고 녹림왕의 자리에 꾸역꾸역 앉아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으음.”

임소병은 현종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녹채를 습격한 광우도 고홍(高鴻)은 폭급한 성격으로 유명한 자입니다. 그런 이가 녹림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수많은 녹림의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죽어 가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조곤조곤 말하던 임소병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차마 그걸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때 듣고 있던 청명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산적도 좋은 놈이 있고, 나쁜 놈이 있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자리에서 꺼내기에 적절한 말은 아니었다. 현종이 그런 그를 나무라려는데, 임소병은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말이 맞습니다, 도장.”

“그쪽은 좋은 산적이고요?”

“좋은 산적이라기보다는…….”

임소병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고정되었다.

“도장께서는 저를 만나기 전에 이미 한차례 산채에 드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랬었죠?”

청명은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면서도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윤종이 조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팬 놈은 발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못 잔다더니. 그렇게 악착같이 패 놓고 벌써 다 잊은 모양이네.”

“……거꾸로 아닙니까, 사형?”

“맞는 거 아냐?”

“그런가?”

현상이 조용히 하란 듯 눈을 부라리고 나서야 두 사람은 찔끔하여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였다.

“……여하튼 그때, 청명 도장께서 그 산채에 있는 녹림도들을 죽여 단죄하셨습니까?”

“죽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입니까?”

청명이 뒷머리를 슬쩍 긁적였다.

“뭐. 딱히 죽일 정도로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아서요.”

“예, 그렇지요. 청명 도장께서 저를 알고 녹림과 인연을 맺기 전에도 이미 그리 판단을 내리셨다는 겁니다.”

임소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청명 도장의 자비심이 실로 깊어서 그리 판단하신 건 아닐 테지요.”

“음.”

다들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청명은 평소에는 실없이 굴었다. 하지만 악인이나, 적에 대해서는 자비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되레 이쪽이 악인인 것처럼 무자비하게 검을 휘둘러 대기가 일쑤 아닌가.

임소병이 빙긋 웃었다.

“예전의 녹림이었다면, 청명 도장께서 그들을 그리 쉽게 놓아주지 않으셨을 겁니다. 선대에서부터 녹림은 될 수 있는 한 양민들을 해치지 않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 봐야 산적이지만 말입니다.”

“…….”

“하지만 광우도 고홍을 비롯하여, 이번 반란에 가담한 이들은 그런 기조에 반대하던 쪽입니다. 산을 지배하는 이들이 좀 더 험악해야 더 많은 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지요.”

“으으음.”

현종이 무겁게 침음을 흘렸다.

“그들이 녹림을 장악하게 된다면, 녹림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더 과격해질 것이고, 더 잔인해질 것입니다.”

할 말은 모두 끝났다는 듯 임소병이 현종을 가만 바라보다 말했다.

“장문인.”

“말씀하시게나.”

“도와주십시오.”

“…….”

“저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저들은 강대합니다. 선대를 따르던 이들 중 일부가 저를 지지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녹림은 강자존이 지배하는 곳이라 논리와 이치만으로는 설득이 불가합니다.”

현종은 인상을 찌푸린 채 찻숟갈을 들었다. 차를 젓는 손이 평소보다 다소 빨랐다.

“녹림왕의 말씀이 무엇인지는 이해했소이다.”

임소병이 지금 얼마나 진지하고 절박한지도 알 수 있었다.

현종이 본 임소병은 녹림왕의 신분으로 홀로 화산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 이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가만 고민하던 현종이 나지막이 탄식했다. 그리고 천천히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어찌 생각하느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먼저 답을 한 이는 현상이었다.

“강호에는 명백히 그어진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정과 사의 간극을 좁힌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으음.”

“우리에게 어떤 의도가 있든, 세상은 화산이 녹림의 일에 개입했다는 사실만을 볼 것입니다.”

“그렇겠지.”

현상은 무뚝뚝한 얼굴로 딱 잘라 말했다.

“화산은 정과 협을 숭상하는 곳입니다. 그 본질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냉정히 따져 보았을 때, 이 일은 녹림의 내분에 불과합니다. 정파가 사파의 내분에 개입한 일은 강호사 이래 없었습니다.”

현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현영의 입술이 실룩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너는 어떠냐?”

“그런 쓸데없는 것을 뭐 하러 신경 씁니까.”

“…….”

현영이 불퉁한 얼굴로 코웃음을 쳤다.

“녹림과 손잡으면 막대한 이득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청명이가 시도하고 있는 유령문과의 사업에도 녹림의 역할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 와중에 녹림왕이 실각을 하게 되면, 우리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되는 것 아닙니까? 누구 좋으라고 그걸 좌시합니까?”

여과가 없는 현영의 말에 현종이 슬쩍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놈의 명분! 명분 좇아서 화산이 좋은 꼴 본 적이 있습니까? 제 밥그릇은 제가 챙겨야지요. 안 그래도 제자 놈이 챙겨다 주는 밥 받아먹는 입장이라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잘했다 칭찬은 못 해 줄망정 밥그릇 깨 먹는 일은 없어야 할 거 아닙니까!”

청명이가 하고 있는 사업에 쓸데없는 명분을 들이밀어 초 치지 말라는 소리였다.

예전 같으면 얼굴을 구기며 한소리 했을 텐데, 이제는 현종도 저 말에 일리가 있다는 걸 잘 알았다.

“흐음.”

마지막으로 그의 시선이 닿은 것은 청명이 앉은 자리였다. 청명은 심드렁한 얼굴로 앉아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이 일요?”

“그래.”

청명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 뭔가 하기 싫어서 짜증이 나네요.”

“정해져 있다?”

“네. 그러니까 지금 명분이 부족하다는 거잖아요? 다른 데서 쓸데없이 손가락질할까 봐 신경도 쓰이고.”

“그래. 물론…… 너는 그리 신경 쓰지 않겠지만, 세인들의 눈이라는 게 생각 이상의 힘을 발휘할 때가 있지 않으냐.”

“예. 저도 알아요.”

청명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장문인. 저는 장문인께서 왜 그걸로 고민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으응?”

“협의라는 건 쉽게 말해서 옳은 일을 하고, 힘으로 양민들을 돕는 거잖아요.”

“그렇지.”

“저 양반 말대로라면, 이대로 놔두면 산적 놈들이 미쳐 날뛰게 된다는 건데, 그걸 막는 것보다 더 큰 협의가 어디에 있겠어요?”

현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은 맞다. 그건 당연히 맞는 말이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겠느냐?”

“이해 못 하면 이해하게 해 버리면 그만이죠.”

“응?”

“이해하게 해 줄 사람이 여기 있잖아요.”

“으응?”

청명이 임소병을 향해 턱짓했다. 현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에이. 오늘따라 왜 이리 눈치가 느리실까? 방금 이 양반이 했던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대부분은 이해할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그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게 하면 되죠. 그리고 녹림왕의 이름하에 정식으로 화산에 도움을 요청하게 만들면 돼요.”

“…….”

뜬금없는 말에 순간 현종의 얼굴은 멍해졌다.

“그러니까…….”

“네.”

“녹림왕이 정식으로 화산에 ‘산적질 잘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요청을 하게 해라?”

“네.”

“그리고 화산이 그걸 덥석 받으면서 ‘그럼요. 산적질을 하게 해 드려야죠.’ 하고 돕는다?”

“바로 그거죠!”

현종이 ‘이 새끼가 정말 정신이 나가 버렸나?’ 하고 묻는 듯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야, 이놈아!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말이 안 될 건 뭐가 있어요?”

“산적질이 뭐 그리 떳떳한 일이라고 그걸 돕는단 말이냐! 우리도 같은 산적으로 안 몰리면 다행이지!”

“아니, 더 나쁜 산적이 있다잖아요!”

“그래서 좋은 산적은 돈을 안 뺏는다더냐! 그래 봐야 도적놈이지!”

“아, 그건 맞는데!”

오가는 과격한 대화를 들으며 임소병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저 장문인은 그래도 듣는 사람을 좀 생각해 주는 것 같더니, 이제는 숫제 녹림왕 앞에서 도적놈 운운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차라리 소림으로 갈걸.’

왜 하필 화산으로 와서는…….

“크흐흐흠!”

그때 조금 이성을 되찾은 현종이 크게 목청을 가다듬고 대화를 정리했다.

“네 말에 의미가 있으려면, 세인들이 지금 반란을 일으킨 녹림도들을 확실한 악인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시선에는 모두 다 같은 산적일 뿐이다.”

“그러니 그걸 알게 해야죠.”

“……어떻게?”

“어휴. 장문인.”

“으음?”

“사람이 돈이 없이 살다 보면 돈이 생겨도 쓰는 법을 모르고, 힘이 없이 살다 보면 힘이 생겨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더니 그 말이 맞네요.”

“…….”

“소문을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퍼뜨리면 되죠. 녹림왕의 입장을 담은 말은 각지로 퍼뜨리는 거예요. 거지 아저씨를 불러서 개방을 이용하고, 유령문도들을 중원 각지로 보내 말을 만들고, 사천당가에 소식을 전해 사천의 민심까지 흔들어 버리는 거죠.”

현종이 눈을 크게 치뜨며 물었다.

“그, 그게 되겠느냐?”

“안 될 건 뭐 있어요.”

청명은 대수롭지 않은 양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뭐 없는 말 지어내는 것도 아니고, 있는 말을 좀 더 널리 퍼뜨리는 것뿐인데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

“거기에 녹림왕께서 하나만 양보하면 끝나는 거죠.”

청명의 시선이 임소병에게로 날아가 꽂혔다. 임소병은 움찔하며 물었다.

“……무, 무슨 말씀을 또 하시려고?”

“통행세요.”

“……예?”

“반으로 깎아요.”

“…….”

대뜸 날아든 말에 임소병의 뺨이 파들파들 떨렸다.

“토, 통행세는 녹림의 근본인…….”

“근본 끌어안고 뒈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시든가.”

“…….”

아무래도 이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조차 없을 듯했다. 임소병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청명의 말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돈만 받고 훌쩍 가 버리지 말고, 방법을 바꿔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돈을 뺏긴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생기는 거잖아요. 지금처럼 중간에 나타나서 껄떡대지 말고, 아예 산 들어가는 입구에 대기하다가 통행세를 내는 사람들을 호위하세요. 산 다 넘어갈 때까지.”

“…….”

“밤에 산을 넘어야 하는 이들이 무서워해야 할 건 산적 외에도 많잖아요. 제일 대표적인 게 호환(虎患)이고요. 산적이 없다 해서 산을 넘는 게 그리 쉽진 않아요.”

“그렇지요. 그래서 산적이 없다 알려진 산을 넘을 때도, 표국에 호위를 의뢰하거나 산 아래에서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리곤 합니다.”

“표국이 하는 그 일을 녹림이 하면 되잖아요.”

“…….”

“그러니까 그 망할 짐승가죽이랑, 대치도 같은 것 좀 죄다 내다 버리고 애들 옷 좀 깔끔하게 입히고! 영업용 미소도 가르치고! 호위로 업종 변경을 하라고요!”

청명을 바라보는 임소병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진짜 미친놈인가?’

하지만 청명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물었다.

“왜요? 뭐가 틀렸어요?”

“도장……. 제가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이들이면 산적이 됐겠습니까? 기본적으로 통제가…….”

“통제?”

청명이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것만 해결되면 다른 문제는 없는 거죠?”

“……물론 그렇긴 합니다만, 그 통제라는 게…….”

“그건 이쪽에서 알아서 할 테니, 걱정 안 해도 돼요.”

“예?”

“사숙이나 사형들도 그동안 많이 맞았으니, 이제 한을 풀 때도 됐지.”

“…….”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였지만, 청명의 뒤에 앉은 백천과 그 무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했는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결된 거죠?”

청명이 현종을 보며 말했다.

“녹림은 반란을 진압해서 좋고, 지금보다 덜 흉악하게 살 수 있을 테니 이건 양민들에게도 좋은 일이죠. 그리고 화산은 녹림을 변화시키고, 양민들을 도왔다는 평을 얻을 수 있으니 나쁠 게 없어요.”

“거기에서 벌리는 돈은 부수적으로 도움이 될 거고.”

“그렇죠.”

자신의 말에 힘을 실어 주는 현영을 보며 청명이 히죽 웃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 같네요. 물론 이건 장문인께서 결정할 일이지만.”

청명의 말을 모두 들은 현종은 얼굴을 굳힌 채 생각에 잠겼다.

‘분명 아이들에게 실전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청명의 말대로라면 이건 명분과 실리, 그리고 경험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천우맹의 개파 시기에 맞춰 중원의 이목을 화산으로 끌어오는 역할도 할 수 있을 터.

일석삼조가 아니라 일석사조, 일석오조도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청명아.”

“예.”

“그런데 처음에는 하기 싫어서 짜증이 치민다 하지 않았더냐? 그건 무슨 뜻이냐?”

“아, 그거요?”

현종의 물음에 청명이 임소병을 흘끗 보았다.

“얻는 게 없는 건 아닌데, 괜히 능구렁이 도와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

“그러니 결정 내리시고 나면, 장문인은 자리 좀 비켜 주세요. 현영 장로님이랑 같이 이 일로 얼마를 받아야 할지 고민을 좀 해 봐야겠어요.”

“…….”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인 임소병을 보고 있자니, 누가 정파이고 누가 산적인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한 현종은 방 안에 있는 모두를 둘러보았다.

“모두 어찌 생각하느냐?”

“생각할 게 뭐 있습니까. 청명이 말이 맞지요.”

“일이 청명이의 의도대로만 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그 전에 명분을 쌓는 일은 좀 더 정교하고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영과 현상의 말에 현종은 무거운 얼굴로 임소병을 바라보았다.

“녹림왕께서는 청명이가 한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실 수 있겠습니까?”

“제 이름과 목숨을 걸고,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임소병의 얼굴에 굳은 결심이 가득했다. 현종은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의견이 그러하니, 화산 장문인의 권한으로 녹림왕을 도와 녹림을 안정시키는 일을 승인하겠소.”

“감사합니다, 장문인!”

임소병이 격하게 허리를 접으며 크게 절했다. 현종은 푸근한 미소와 함께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녹림왕께서는 우리가 녹림을 돕는 의도를 잊지 말고, 양민들을 조금 더 생각해 주시오.”

“예!”

“크흠. 그럼…….”

말을 마친 현종은 비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기다렸다는 듯 슬쩍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자리에 그대로 남은 이는 청명과 현영뿐이었다.

“……그럼 말씀들 나누시오.”

“자, 장문인?”

헛기침 소리와 함께 현종이 휙 밖으로 나가자 현상과 다른 제자들도 우르르 뒤를 따랐다.

임소병은 현영, 청명과 함께 방에 덩그러니 남겨지고 말았다.

“헤헤. 그럼.”

청명이 히죽 웃으며 임소병의 곁으로 슬쩍 다가갔다.

“시작할까요?”

거기에 퇴로를 막는 듯 반대쪽에서 슬그머니 다가오는 현영까지.

임소병은 그만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마귀 같은 양반들.’

누가 도가가 탈속한다 했는가!

정말이지 산적보다 더했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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