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8화.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낼 테니까! (3)
수레가 얼음 위를 경쾌하게 내달렸다.
다른 곳도 아닌, 화산으로 돌아가는 길이니만큼 화산의 제자들은 힘겨움도 잊고 더없이 즐겁게 수레를 끌었……어야 했는데.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아이고, 뒈지겠다!”
“사, 사숙! 수레가 올 때보다 다섯 배는 더 무거운 것 같습니다.”
“……무거운 것 같은 게 아니라 무거운 거다.”
콰드드득!
얼마나 무거운지 그들이 지나오는 길마다 얼음이 쩌적쩌적 갈라졌다. 조금이라도 달리는 속도를 늦추면 순식간에 얼음이 부서지며 수레가 호수 아래로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이 와중에 수레 쪽에선 얄미운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쉬지 마! 누가 쉬래! 쉬면 가라앉는다! 얼음이 부서지기 전에 달려!”
“…….”
귀신은 뭐 하나? 저 새끼 안 잡아가고.
날이 가면 갈수록 인성이 바닥나는 청명의 고함을 들으며 화산의 제자들은 쓰디쓴 눈물을 삼켰다.
“아니, 대체 뭘…… 뭘 실은 거야!”
물론 저만한 높이로 쌓으면 옷가지뿐이라 해도 무거운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안해도 지금 느껴지는 무게는 정도를 넘었다.
그때 조걸이 꺼져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출발 전에…….”
“응?”
“설소백 궁주가 빙궁에 남은 한철을 모조리 끌어다가 실었다고…….”
“뭐?”
백천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아, 아니, 한철은 앞으로 거래하기로 한 물량이잖아! 돈을 챙겨 와서 값을 치른 것도 아닌데, 뭔 물건을 벌써 줘?”
“그…… 거래는 거래고, 선물은 선물……. 거래는 앞으로 산출되는 한철로 하면 된다고…….”
“…….”
백천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들었다. 북해의 맑은 하늘 위로 환하게 웃고 있는 설소백의 얼굴이 반쯤 투명하게 보이는 듯했다.
‘궁주.’
참 고마운데……. 마음 써 준 건 정말 고마운데…….
누군가의 선의가 받는 이에게는 때로 기쁨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절절히 실감하는 백천이었다.
“망할 수레 더럽게 튼튼하네!”
저놈이 통짜 묵철로 수레를 만들었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했어야 하는 건데. 인간이란 얼마나 한 치 앞만 보고 사는 존재란 말인가?
“아미타불. 백천 시주, 너무 화내진 마십시오.”
그때 선두에서 수레를 끌던 혜연이 빛을 받아 찬란히 반짝이는 머리를 돌리며 빙그레 웃었다.
“우리야 힘들지만, 그래도 이 선물들을 가지고 화산으로 돌아가면 화산의 재정은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리 생각하면 그리 화가 나고 힘들 것도 없지요.”
구김 없이 환하게 웃는 혜연을 보며 백천도 밝게 마주 웃었다.
‘당신 소림 문도입니다, 이 양반아.’
화산 재정이 좋아지는데 당신이 왜 기뻐해?
너무도 당연한 의문이었다. 하지만 혜연의 환한 미소를 보고 있으니 도무지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긴 하는데 본인이 행복해 보이니 뭐…….
“아, 빨리 좀 끌라고!”
“카아악! 그럼 너도 내려서 끌든가!”
“싫어. 춥잖아.”
“누군 안 춥냐? 누군 털이 곰처럼 나냐고!”
“어어? 바퀴! 바퀴 빠진다, 바퀴!”
“아아아악!”
백천이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쓰며 수레를 끌었다.
왜 미련스럽게 얼음 위로 가냐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하지만 눈밭을 달리는 것과 얼음 위를 달리는 것은 그 속도부터 달랐다.
화산의 제자들은 위험하지만 가장 빠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얘들아! 끌어라! 더 빨리 끌어!”
“끄으으응!”
“죽겠네, 진짜! 어떻게 올 때보다 더 힘드냐!”
숨이 턱까지 차고 입으로는 연신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수레는 속없이 경쾌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끄으으응.”
“……죽겠다.”
노숙을 위해 천막을 친 화산 제자들이 하나둘씩 천막 안에 엎어졌다.
전신이 노곤하다 못해 삐거걱하는 느낌이었다.
관절이 어긋나고 근육이 뒤틀렸다. 얼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 용을 쓰며 달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허, 허리가 안 펴져.”
“저는 무릎이 안 펴집니다…….”
“소, 소소야, 침 좀…….”
“……소소 죽었어요.”
“…….”
간만에 근력을 있는 대로 몰아 쓴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닥과 혼연일체가 되어 신음했다.
그리고…….
촤악!
천막을 젖히며 안으로 들어온 청명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밥 안 먹어?”
“에라, 이 새끼야!”
참다못한 백천이 손에 쥐고 있던 봇짐을 청명에게 집어 던졌다. 그러자 청명이 뭔가를 하기도 전에 어깨에 올라타 있던 백아가 폴짝 뛰어 봇짐을 잡아채더니 마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익!
그러더니 불같이 성을 냈다.
“……쟤 왜 성질인데?”
“밥이 아니라는데?”
“…….”
하여튼 사람이고 짐승이고.
진짜 다 죽었으면 좋겠다.
“육포…… 육포 꺼내 먹어. 빙궁에서 챙겨 준 거 있잖아…….”
“에이. 뭐 하루 종일 육포야. 쯧. 내가 참아야지.”
투덜대며 천막 밖으로 나가는 청명을 보며 백천이 얼굴을 감쌌다.
“윤종아.”
“예?”
“……지금만큼 내가 약하다는 게 한스러웠던 적이 없다.”
“받아들이십쇼, 사숙. 뭘 새삼……. 이제껏 지겹도록 겪은 일 아닙니까?”
“남은 평생 계속 겪을까 봐 그래…….”
“…….”
그건 좀 공포스러운데?
살짝 질린 얼굴로 한숨을 내쉰 윤종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두꺼운 가죽으로 만들어진 천막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천막이라도 있으니 정말 다행이네요.”
백천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인들의 경험과 지혜는 이길 수 없는 거지.”
빙궁에서 챙겨 준 두꺼운 천막 덕분에, 쉬는 동안만이라도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이게 없었다면 지금쯤 정말로 선계가 눈앞에 아른거렸을 텐데.
그때 누워서 꿈틀대던 조걸이 물었다.
“사숙. 굳이 이렇게 열심히 돌아갈 필요는 없잖습니까? 조금 쉬엄쉬엄…….”
“안 된다.”
“어째섭니까?”
백천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한 총관님의 말대로라면 북해도 슬슬 겨울이 끝날 시기라고 한다. 날이 풀릴수록 점차 얼음이 얇아질 거고, 그럼 저 무게를 버티지 못할 거다.”
“…….”
“일단은 죽으나 사나 있는 힘껏 끌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북해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 망연자실한 조걸은 대자로 드러누워 중얼거렸다.
“뭔 놈의 인생이 한시를 편하질 못해.”
마교와 싸우며 은근히 자신감이 붙었었는데, 현실은 고작 수레를 끌다가 탈진하는 게 고작이었다.
“독한 새끼.”
“얼음 호수에 집어 던져도 물고기 잡아먹고 나올 놈!”
이제는 다들 청명에 대해 빠삭하게 이해한 그들인지라, 저 산더미처럼 쌓인 짐들이 결코 설소백의 의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도 그들을 편히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청명이 놈의 악의가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는데…….
“다들 잘 들어라.”
어느새 몸을 일으켜 앉은 백천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쏟아졌다.
“다들 힘들겠지.”
“예, 사숙.”
“제가 웬만해서는 우는 소리를 잘 안 하는데 이번엔 정말 힘듭니다.”
“하잖아?”
“거, 사형은 좀 가만히 계십시오.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을 못 하시고…….”
“이 새끼가?”
윤종에게 옆구리를 야무지게 걷어차인 조걸이 신음하며 입을 삐쭉거렸다.
“진짜 무겁다고요.”
그러자 모두가 기다렸단 듯 일제히 공감하며 구시렁거렸다. 백천은 그 마음 충분히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힘든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도 잘 생각해야 한다.”
“……뭘요?”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목적지가 확실하지 않느냐. 하루라도 빨리 가야 하루라도 빨리 쉰다.”
“…….”
“어정쩡하게 며칠 더 고생하느니 바짝 고생해서 달리면 화산에 빨리 당도하여 쉴 수 있다! 그러니 불평불만 갖지 말고 닥치고 달려라! 알았느냐?”
그 말에 모두가 웃으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저 인간도 글렀어.’
‘청명이 둘이네.’
‘바랄 걸 바라야지.’
‘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어느새 인간으로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백천을 보며 자신들이 달라진 것은 없는지 새삼 반성하는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 * *
“끄아아아아아!”
“흙이다!”
“빌어먹을! 초원! 초원이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그들의 눈앞에 드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방방 뛰고 기뻐했다. 심지어 그 유이설마저도 잔뜩 들뜬 무표정으로 간만에 본 흙을 꾹꾹 밟아 대었다.
“눈! 눈이 없어! 하얗지 않아!”
“이 평범한 땅을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야!”
“화산으로 돌아가서 눈 온다고 좋아하는 놈 있으면 낙안봉에서 던져 버릴 거야!”
“……소소야. 그건 좀…….”
그들의 두 눈에선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처음에는 절경 같던 북해의 경치도 오래 겪다 보니 지긋지긋해졌다.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이제는 눈이 없는 세상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니, 마음이 따뜻해진 게 아니라 진짜 따뜻하네.”
“이제 이 털옷은 벗어도 되겠는데요?”
“아직 춥다, 이놈들아!”
초원의 밤은 차기로 유명하지만, 세상 모든 것은 상대적인 법이 아니던가? 북해의 눈보라를 헤치고 온 이들에게 이곳은 한여름과도 같았다.
“털옷은 아무 데다 쑤셔 넣지 말고 따로 챙겨 둬라! 밤에 체온을 뺏기면 안 된다!”
“……사숙, 부쩍 잔소리가 많아지셨네요.”
“시끄럽다!”
백천이 버럭 소리쳤다. 하지만 나름 침착을 유지하는 듯하던 그의 목소리에도 들뜬 기색이 여지없이 묻어났다.
북해를 빠져나왔다는 것은, 이제 반 이상은 왔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저 썩을 얼음길과 눈길을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가장 좋았다.
“긴장은 풀지 말거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초원의 유목민들은 중원 사람들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중원만 벗어났다 하면 반겨 주는 이들이 없네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백천이 쓰게 웃었다.
“어쨌든 괜한 충돌은 피하고 싶으니, 조용히 이동한다. 초원만 가로지르면 바로 섬서가 나오니까 떠드는 건 그때 가서 실컷 하도록.”
“거 잔소리가 갈수록…….”
“근데 이 새끼가?”
백천에게 걷어차인 조걸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저렇게 허구한 날 얻어맞고도 꿋꿋하게 할 말을 다 하는 걸 보면 천성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겨울을 맞은 초원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황무지에 가까웠다. 얼핏 삭막하기까지 한 광경이지만, 정작 그 가운데로 달리는 화산 제자들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듬뿍 번져 있었다.
“안 미끄러진다!”
“발이 땅에 붙어!”
“사고! 사고! 바람이 부는데 뼛골이 시리지 않아요!”
“이게 사람 사는 땅.”
짐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청명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너무 막 굴렸나?’
조금 있으면 하늘이 파랗다고 좋아할 판이네…….
그 기이한 기쁨 속에서 수레는 달리고 또 달렸다.
북해는 가도 가도 흰 땅만 보였고, 이곳은 가도 가도 황토빛 대지만이 펼쳐져 있었다.심지어 야트막한 산 하나도 없이 드넓은 평야는 사람을 한없이 무료하게 만들었다.
“사숙.”
“그래.”
어느덧 해가 완전히 넘어가 버렸다. 백천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밤을 나자꾸나. 괜히 무리했다가 탈이라도 날라.”
먼 길을 여행하는 이는 환경이 바뀌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바뀐 기온과 상황이 체력을 앗아 가고 몸을 축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적당한 곳이…….”
그때였다.
“어? 사숙.”
“응?”
“저 앞에 뭐가 있습니다.”
“……응?”
윤종의 말에 백천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그쪽을 살폈다.
평지가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보니 작은 것들도 확연하게 보였다.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건 작은 천막들이었다.
“유목민들인가?”
백천은 중얼거리며 살짝 고민에 잠겼다.
‘어떻게 하지?’
물론 사람이 쉬는 곳이니 안전하겠지만, 될 수 있으면 유목민들을 만나는 건 피하고 싶었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 갈까?”
“사숙.”
“응?”
그때 뒤에서 청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물은?”
“…….”
“북해에서는 눈이나 대충 퍼먹으면 됐지만, 이제부터는 한동안 물을 구하기가 힘들 거야. 저 천막 앞에 연못이 있는 것 같은데 물부터 보충해야 하지 않겠어?”
“듣고 보니 그렇구나.”
백천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저 천막 쪽으로 가 보자. 대신에 최대한 저들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예!”
“가자.”
화산의 제자들은 수레를 끌고 천막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거의 점처럼 보이던 천막이 가까워지며 그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때 천막을 살피던 백천이 미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청명아.”
“흐음.”
“아닌 것 같지?”
“그러게?”
대화를 듣던 당소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초원의 유목민들이 사용하는 천막이 아니야. 그들의 천막은 너도 오는 길에 몇 번 보지 않았느냐?”
“네, 그랬죠.”
“하지만 저건 형태도 다르고, 천에 새겨진 문양도 다르구나. 본 적이 없는 양식인데…….”
백천은 고민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윤종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쨌든 일단은 가 보자. 물을 구해야 하니까.”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도록 소리까지 조심해 가며 수레를 끌었다. 그리고 천막 근처에서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천막의 앞쪽이 갑자기 활짝 열렸다.
그리고 세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어……?”
나온 이들의 복색을 확인한 백천이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주, 중?”
“아니.”
그러자 청명이 그의 말을 조금 정정해 주었다.
“정확히는 라마승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의 등장에,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