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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36화 (534/1,567)

536화. 내 이럴 줄 알았지. (1)

개화.

청명이 뻗은 검은 마치 세상을 뒤덮은 매화 가지처럼 허공을 수놓았고, 이내 살아 있는 듯 선명한 붉은 매화가 연이어 피어나기 시작했다.

매화, 저 저주받을 꽃.

부릅뜬 주교의 두 눈에 무섭도록 핏발이 서기 시작했다.

저 증오스러운 꽃은 교의 모든 것을 앗아 갔던 걸로 모자라 지금도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다.

이제 가슴의 통증은 참기 힘들 만큼 커져 있었다. 주교는 으스러져라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화사아아아아안!”

더없이 저주받을 그 이름.

교의 하늘을 앗아 간 이들. 죽이고 또 죽이고, 그 터전마저 불살랐음에도 또다시 일어나 그의 앞을 막아서는 징그러운 것들.

쓰러지지 않는다.

화산이 상징으로 삼는 매화처럼, 저들은 지고도 다시 피어나고, 짓뭉개도 다시 피어나 끝끝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이....”

주교의 두 눈에서 혈광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마기가 온몸을 휘돌며 그의 몸을 칠흑처럼 검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모조리 갈기갈기 찢겨 나가고도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 보자!”

그의 양손에서 검은 손톱 모양의 기운이 한 자도 넘게 뻗어 나왔다.

화아아아아아아악!

광포하게 달려들며 주교가 전방을 찢듯 할퀴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 자체를 비집고 짓찢어 버리는 듯한 공격에, 피어난 매화들이 힘도 쓰지 못하고 스러졌다.

하나.

그 순간 매화의 숲을 뚫고 나타난 청명이 주교의 머리를 향해 암향매화검을 내리쳤다.

“허튼짓!”

카아아아아앙!

아무리 갑작스럽다고는 하나, 빤한 정면 공격이 그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주교는 길게 자라난 조강(爪剛)을 휘둘러 청명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 냈다.

공격을 한 쪽은 청명이고, 막아 낸 이는 주교다. 하지만 압도적인 내력의 차이는 되레 공격을 한 청명의 내부를 뒤틀고 부수었다.

울컥!

청명의 입에서 또다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승기를 잡은 주교가 그대로 손을 휘둘러 청명을 날려 버리려는 순간이었다.

파앗.

청명이 검을 내리누른 반동으로 몸을 뒤로 살짝 띄웠다. 그리고 허공에서 검을 휘둘러 매화를 그려 냈다.

화아아아악!

일순간 주교의 시야 전체가 매화로 뒤덮였다.

제아무리 주교의 경지가 높다 해도 금방이라도 공격이 쏟아질 게 분명한 상황에서 무엇이 진짜 검을 실은 매화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구분할 도리는 없었다.

결국 그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의식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이 전투에 돌입한 이후 처음으로 그가 뒤로 도망친 순간이었다.

공방의 우위를 잡은 것은 주교지만 기세에서 이긴 것은 청명이었다. 그리고 기어코 잡아 낸 기세의 우위를, 화산의 제자들은 놓치지 않았다.

파아아아앗!

청명이 그린 매화 아래에서 바닥에 닿을 듯 몸을 날린 백천과 조걸이 주교의 발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가가각!

필사의 힘을 다해 휘두른 한철검이 주교의 발목을 긁고 지나갔다. 이내 선명한 붉은 선이 생겨나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물론 검기 실린 검을 맞은 것치고는 너무도 미약한 상처였다.

하지만 조금 전이었다면, 그 작은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단순한 상처가 아니었다. 주교의 전신을 보호하던 마기가 이전보다 확연히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주교가 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양손을 아래로 내리쳤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어 직격을 피해 냈지만, 그곳에서 번진 충격파까지는 버티지 못하고 걷어차인 공처럼 튕겨 났다.

그들을 향해 다시 한번 장력을 뿜으려던 주교는 순간 얼굴 앞까지 불쑥 튀어나온 검에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서 걱!

이내 그의 뺨에 붉은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우오오오오오!”

커다란 노호성과 함께 눈부신 금광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콰아아아앙!

내뻗은 주교의 양손에 부딪힌 금광이 폭발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

일그러진 주교의 얼굴은 이제 악귀의 것 그 자체였다.

분명 하나하나는 하찮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하찮은 놈들이 마치 한 몸이라도 된 듯, 연이어 공격을 해 온다. 제 목숨도 돌보지 않은 채 말이다.

파아아아앗!

얼굴 앞으로 날아든 비도를 쳐 낸 주교가 노기 어린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그런데 그때 다시금 그의 목을 향해 시퍼렇게 날선 검이 훅 들어왔다.

주교가 독기 어린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았다.

중심은 바로 이놈이다.

이놈이 공격을 미리 읽은 듯, 순간순간 검을 찔러 대니 다른 이들이 마음 놓고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

분노를 참지 못한 주교가 자신에게 날아드는 유이설의 검을 무시하고 청명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장력을 날렸다.

콰콰콰콰콰콰!

검은 장력이 산사태처럼 청명을 향해 쏟아졌다. 빛살처럼 날아든 유이설의 검이 그의 목과 어깨 쪽을 수차례 찔렀지만, 주교는 몸을 물리기는커녕 오히려 청명을 향한 장력에 내력을 더욱 밀어 넣었다.

가가가각!

유이설의 검이 끝내 그의 목과 어깨에 손가락만 한 구멍을 뚫었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먼 주교는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죽어라아아아아아!”

그런데 그 순간 주교는 보았다.

과격하게 휘몰아치는 장력 사이로, 청명이 이를 드러내며 웃는 광경을 말이다.

파아아아아앗!

검이 장력을 빠르게 갈랐다.

단호한 일 검이 몰아치는 장력 사이에 틈을 만들어 내고, 연이어 휘둘러진 검이 그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화아아아아악!

검디검은 장력 사이에서 붉은 꽃이 피어났다.

순식간에 구름처럼 피어난 꽃들이 쏟아지는 장력을 좌우로 밀어 내며 그 몸집을 키워 나갔다.

기이이이잉!

압력을 이기지 못한 검이 휘어지며 기이한 소음을 자아냈지만, 청명은 광기 어린 눈으로 연신 검을 휘둘러 댈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매화가 번져 나갔다.

끝없는 그 광경에 이성을 잃은 주교의 눈에 공포와 환멸이 번졌다.

“흐아아아아압!”

채 다 밀어 내지 못한 장력이 청명의 온몸을 후려치고, 으스러뜨렸다.

왼쪽 어깨의 피부가 한 뭉텅이 뜯겨 날아가고, 얻어맞은 허벅지의 살이 터지며 뼈까지 깔끔하게 부러졌다.

하지만 청명의 눈은 그럴수록 되레 생기를 띠었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외쳤다.

“가라!”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뛰어오른 윤종이 앞쪽으로 검을 겨누었다.

‘허튼!’

이번에도 빤한 수작이라 여긴 주교가 윤종을 향해 한 손을 뻗었다.

‘엇?’

하지만 그때, 뛰어오른 윤종의 뒤로 흐릿한 그림자가 겹쳐졌다. 생각지 못한 상황에 주교가 두 눈을 부릅떴다.

“아미타불!”

합을 맞춰 뛰어오른 혜연이 윤종의 등을 향해 무자비하게 권력을 날렸다.

그리고 윤종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아드는 권력을 그 등으로 받아 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윤종의 몸이 눈으로 쫓을 수도 없는 속도로 주교를 향해 쇄도했다. 그 입으로 피를 뿜으며 말이다.

쭉 뻗은 검 끝이 날카롭게 빛나며 주교의 가슴을 찌르고 들어갔다.

콰드드드득!

한철검이 더없이 단단한 얼음을 파고들었다.

쩌적! 쩌저저적!

이미 금이 가 있던 얼음에 거미줄 같은 잔금이 번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주교가 황급히 윤종을 후려쳤다.

윤종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튕겨 나가 그대로 절벽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쿨럭!”

온몸에 충격을 받은 윤종의 입과 코로 피가 콸콸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피범벅이 된 얼굴로 웃어 버렸다.

“꼴좋...”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한 그가 이내 힘없이 주르륵 땅에 떨어졌다.

“끄으으으....”

극렬한 통증에 가슴께를 움켜잡은 주교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가슴을 뒤덮은 얼음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이 더러운 불신자들이.......”

이제 그의 얼굴에도 전과 같은 여유 따윈 없었다.

우드득.

청명은 부러진 다리뼈를 내공으로 강제로 고정시키고 절뚝거리며 주교를 향해 다가갔다.

“퉷!”

피를 뱉어 낸 그는 차가운 눈으로 주교를 노려보았다.

이내 그의 입술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으며 씩 벌어졌다. 피에 젖은 이가 드러나자 주교는 섬뜩함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청명이 말했다.

“반편이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주교라고 불러 주기에도 민망할 정도군.”

그 말에 주교의 눈이 일순 뒤흔들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다시 한번 들끓는 분노로 두 눈이 타올랐다.

“네까짓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대는 것이냐!”

보나마나 천마가 죽은 이후로는 제대로 싸워 본 적도 없겠지.”

“반편이 주교 놈이 대계니 어쩌니 하면서 말 잘 듣는 교도들만 이끌고 백 년을 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니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이 있었을 리가 있나.”

청명이 이죽거리며 주교 쪽으로 다가갔다.

“안 봐도 빤하지.”

담담하지만 비웃음이 섞인 청명의 목소리가 주교의 귀를 파고들었다.

"너 ....”

주교를 바라보는 청명의 눈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교에서 버림받았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주교의 두 눈에서 폭발적인 광망이 터져 나왔다.

“이노오오오오오오옴! 네가! 네까짓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냐!”

아무래도 역린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주교는 이제껏 보였던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광기를 내뿜으며, 악을 썼다. 천지가 우렁우렁 뒤흔들렸다.

“내가 버림받은 것이 아니다! 천마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 배교자들을 내가 버린 것이다! 그 저열한 배교자 놈들 역시 천마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믿지 않는 자! 믿음을 저버린 자! 그 모든 놈들을! 그 모든 마구니들을!”

피 맺힌 외침이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자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급기야 주교의 두 눈에선 피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천마께서 강림하시면 세상을 피로 씻을 것이다! 천마께서! 천마께서 돌아오기만 하시면.......”

“뭐 그럴지도 모르지.”

청명은 시큰둥하게 답하며 검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적어도 네 눈으로 그걸 볼 일은 없어. 넌 여기서 죽는다.”

쩌저저적!

주교의 가슴께에서 무언가 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얼음 부스러기들이 바닥으로 파스스 떨어진다 싶더니, 이내 갈라진 얼음 사이로 붉은 피 연기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끄으으윽....”

입에서 참지 못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모두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저자는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주교시여!”

“주교를 지켜라! 당자아아아아앙!”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마교도들이 두 눈으로 혈광을 내뿜으며 다짜고짜 돌진하기 시작했다.

“막아아아앗!”

“길을 내어 주지 마라아아아아!”

퍼뜩 정신을 차린 빙궁의 무사들 역시 황급히 그런 교도들을 막으려 돌진했다.

“쿨럭!”

주교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그럴 때마다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왈칵 쏟아져 내렸다.

‘몸이....’

그토록 조심해 왔건만, 순간의 흥분을 참지 못했다. 빙정으로 겨우 얼려 둔 상처가 벌어지자 생명의 빛이 급속하게 꺼져 가고 있었다.

“천...... 마재림 만마앙복.”

하나.

“누구도 그분의 부활을 막을 수 없다!”

설령 죽는다 해도 천마가 부활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었다.

“.......아니. 막을 수 있지.”

그때, 그의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돌아본 그의 눈에, 검을 지팡이 삼아 절뚝이며 다가오는 백천의 모습이 보였다.

준수했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풀어헤친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언제나 깔끔했던 복장은 이제 누더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 두 눈에 어린 정광만큼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저자는 다시 일어난다.

마치.......

“흐 .......”

주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화산.......... 그래. 화산인가.”

교의 제일대적, 세월이 그토록 지났음에도 저들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오라.”

주교가 마지막 힘을 끌어내었다.

“너희의 피로 천마의 부활을 축복하리라!”

더는 어떠한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주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혜연이 몸을 날려 빠르게 달려들었다.

우우우우우웅!

수천 마리 벌떼가 동시에 날갯짓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금광으로 물든 그의 주먹이 수십 개의 권영으로 화해 주교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흐아아아앗!”

하지만 아무리 상처를 입었다 해도 그리 쉽게 당할 주교가 아니었다.

마기를 두른 그의 장력이 날아드는 혜연의 권력을 단숨에 제압하고 그의 전신을 덮쳐 짓눌렀다.

콰아아아아아앙!

고막이 찢기고 두 눈의 실핏줄이 모조리 터져 나갈 만큼, 실로 어마어마한 압력이었다.

혜연은 그 자리에서 허물어졌다.

주교의 공격이 혜연의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림자처럼 스며든 유이설의 검이 주교의 옆구리를 노렸다.

콰득!

주교가 날아드는 검을 제 손으로 움켜잡았다. 단숨에 부러뜨려 버릴 듯이 우악스런 손길이었다.

하지만 그때.

검을 놓아 버린 유이설은 되레 검 날을 움켜잡은 주교의 팔을 제 양손으로 휘감고 늘어졌다. 그 한쪽 팔만은 절대 놓아 주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이 빌어먹을 것이!”

주교가 반대쪽 손을 휘둘러 유이설을 얼굴을 세게 후려쳤다. 그녀의 금방이라도 목이 부러질 듯 뒤로 꺾였지만, 팔을 잡고 있는 손만은 여전히 굳건했다.

“사고오오오오오!”

당소소가 남은 비도를 모조리 주교를 향해 발출하며, 동시에 검을 뽑아 주교를 향해 돌진했다.

샛별처럼 빛나는 두 눈에 무인의 단호한 의지가 어려 있었다.

그건 또한 협의이기도 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물러나지 않는 의기.

“차아아아아아앗!”

당소소가 휘두른 검 끝에 매화가 맺혔다. 비도가 모조리 튕겨 나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주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등 뒤에서 날아든 백천의 검 역시 그녀와 똑같은 매화를 그려 내었다.

주교가 발작적으로 고함을 내지르며 양손을 펼쳤다.

이제는 옅어질 대로 옅어진 마기들이 다시금 맹렬히 타오르고 소용돌이치며, 달려드는 화산의 제자들을 집어삼켰다.

“오오오오오오!”

백천과 당소소가 그대로 땅에 꽂히듯 처박혔다.

그 충격이 얼마나 거셌는지 바닥에 곤두박질친 순간 몸이 반 장 이상 튀어 오를 정도였다.

"이 찰거머리 같은 것이!"

주교가 전신이 찢겨 나가면서도 그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 유이설의 머리를 다시 한번 후려쳤다.

쾅!

폭음이 터지며 유이설이 코와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주교의 팔을 움켜잡은 손목이 마기에 찢기고 뜯겨 나가 허연 뼈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그녀의 손은 풀릴 줄을 몰랐다.

주교가 그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이를 갈며 한 줌 남은 내력을 끌어 올리려던 그때.

패애애애앵!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렸다. 이윽고 주교의 목을 향해 검기를 잔뜩 실은 매화검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그 바람에 주교는 기운을 실었던 손을 유이설에게 날리지 못하고 날아드는 검을 쳐 냈다.

푸욱!

끔찍한 소리와 함께 주교의 다리가 푹 꺾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무릎을 뒤에서 꿰뚫은 검이 앞으로 삐죽 나온 것이 보였다.

남은 모든 힘을 실어 조걸이 던진 검이 그의 시선을 끌었고, 땅을 기어 온 백천이 찔러 넣은 검이 그의 다리를 뚫은 것이었다.

피에 젖은 얼굴로 씩 웃는 백천의 얼굴이 보였다.

“으아아아아아악!”

주교가 광기 어린 고함을 내지르며 백천의 머리를 연신 짓밟았다.

콰앙! 콰앙!

백천의 머리가 땅을 파고들었다.

“이 개 같은 화산 놈들! 죽어! 죽어어어엇! 죽어어어어어어엇!”

그 순간.

쩌저저저저저적!

섬뜩한 소음과 함께 그의 가슴을 뒤덮고 있던 얼음이 반쯤 떨어져 나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순간 우뚝 움직임을 멈춘 주교는 제 가슴을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음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검게 죽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죽음.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멍하니 가슴께를 바라보던 주교의 눈에 희끗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덜덜 떨리는 백천의 손이 앞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내 백천은 피범벅이 된 머리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는 주교를 향해 처절할 만큼 환히 웃었다.

“....어......이.”

“......”

“지...옥에나 떨어......져라.”

주교는 황급히 백천이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의 세상이 강제로 백 년 전으로 끌려 들어갔다.

매화.

피보다 더 붉은 매화가 세상을 가득 뒤덮고 있다. 마치 봄의 정경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환상적인 매화 숲, 그리고 그곳에 피어난 매화 잎이 바람을 타고 일제히 세상을 향해 흩날린다.

‘이...... 이건?’

분명 언젠가......?

매화 속에서 누군가 솟아올랐다. 그를 지옥으로 끌고 갈 사신이었다.

주교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그의 손에 실린 장력이 날아드는 그림자의 옆구리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뼈가 모조리 으스러지고, 살이 통째로 뜯겨 나갔다. 하지만 달려드는 이의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백년 전.

그때 보았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차디찬 두 눈을 말이다.

‘매화...’

촤아아아아아아악!

검이 주교의 가슴을 길게 가르고 지나갔다.

‘......검존’

일 검으로 주교의 심맥을 베어 낸 청명이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 말했다.

“너는 이번에도 천마를 지키지 못해.”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그 말은 절망에 가까웠다. 그의 가슴팍에서 폭포수 같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결코 쓰러질 것 같지 않던 주교의 몸이, 마침내 휘청이며 허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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