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화. 설령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2)
선두에서 달려드는 청명을 향해 주교가 뿜어낸 검은 마기가 쇄도했다.
하지만 이를 막아 내는 것은 청명의 몫이 아니었다.
어느새 청명의 뒤로 따라붙은 화산의 제자들 사이에서 범과 같은 포효가 울렸다.
“오오오오오!”
이어 터져 나오는 황금빛 불광.
혜연은 자연스레 권력을 내뿜어 청명에게 날아드는 마기를 막아 내었고, 청명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진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세상을 뒤흔드는 듯한 폭음과 함께 혜연의 몸이 맥없이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으랴아아아아앗!”
비호처럼 뛰어오른 청명이 주교의 머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뻗어진 주교의 손과 청명의 검이 허공에서 그대로 충돌했다.
카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금속과 금속이 부딪친 듯한 굉음과 울렸다. 이윽고 기의 폭풍이 둘 사이에 휘몰아쳤다.
“사매!”
“예!”
유이설과 백천이 주교의 양쪽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독사처럼 영활하게 주교의 옆을 베었다. 아니, 베려 했다.
그 순간.
“하찮은!”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주교의 몸을 망령처럼 휘돌고 있던 마기가 마치 생명이라도 얻은 양 날아들어 유이설과 백천을 덮쳤다.
“큭!”
두 사람이 날아드는 마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드드득!
하지만 그토록 날카로운 한철검조차 검은 마기를 베어 내진 못했다. 두 사람의 검을 튕겨 버린 마기가 삽시간에 둘의 몸을 치받았다.
콰아아아아앙!
백천과 유이설이 피분수를 뿜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이 새끼가!”
주교의 손을 검으로 더욱 강하게 내리누른 청명이 그 반동으로 몸을 뒤로 띄워 올렸다. 먹이를 찾아 강하하는 매처럼 바닥으로 돌진한 뒤, 땅을 박차며 주교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윤종과 조걸이 조금 전의 청명처럼 위로 뛰어올랐다.
“타아아아앗!”
“죽어!”
윤종과 조걸이 동시에 검을 내리쳤고, 청명이 섬전처럼 주교의 정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파아아아앙!
동시에 세 개의 비도가 일직선으로 주교의 얼굴을 향해 쏘아졌다. 내력을 얼마나 실었는지, 비도의 끝에 검기가 반 자는 넘게 자라 있었다.
미리 호흡을 맞춘 듯한 깔끔한 연격이었다.
“하찮구나!”
칠흑처럼 검은 마기를 양손에 두른 주교가 거칠게 손을 내저었다.
카아아아앙! 카아아아아앙!
마기에 닿은 윤종과 조걸의 검은 수레에 치인 작은 짐승처럼 튕겨 버렸다. 두 사람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경악이 피어났다.
내력을 모조리 실은 참격이었다. 그런데 저 장난과도 같은 손짓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어야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마치 거대한 붓으로 새하얀 종이를 거칠게 긋는 것처럼, 마기가 허공을 북북 그었다.
카가강!
주교를 향해 쇄도하던 공격이 그 마기의 벽에 가로막혀 스러졌다.
두 눈에서 시뻘건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낸 주교는 한 손으로 청명의 머리를 내려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조걸과 윤종을 향해 장력을 내뿜었다.
손끝에만 머물던 마기가 일순 괴물의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조걸과 윤종을 그대로 뒤덮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피할 수가 없…….’
바로 그때.
파아아아앙!
자신에게 날아드는 장력을 어깨로 흘려 낸 청명이 쾌속하게 검을 내질러 주교의 턱 아래를 노렸다.
“흡!”
천하의 주교도 이번만은 당황했는지 내뻗은 손을 급히 회수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파앗!
그의 턱 끝이 살짝 갈라지며 피를 뿜었다.
“이노오오오오오옴!”
콰아아아아아앙!
주교가 내뻗은 발이 청명의 옆구리에 틀어박히며 폭음이 터졌다. 청명의 몸이 포탄처럼 어마어마한 속도로 튕겨 나갔다.
“감히!”
광포한 살기가 쏟아졌다. 괴성을 지른 주교는 조걸과 윤종을 향해 공격을 퍼부으려 했다.
하나.
파르르르르르!
조걸과 윤종의 몸 뒤에서 붉은 매화가 줄기줄기 피어났다.
어느새 다시 달려온 백천과 유이설이 피워 낸 매화였다. 붉은 꽃송이가 폭풍에 휘날리는 것처럼 빠르게 휘날리며 주교의 전신을 뒤덮어 갔다.
처음 매화검법을 두 눈으로 본 이는 누구라도 주춤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주교는 되레 우습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미욱하구나!”
콰아아아아아아!
주교의 전신에서 화염처럼 솟아오른 마기가 날아드는 매화검기를 뒤덮었다. 검은 마기에 닿은 매화검기는 호수에 떨어진 눈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앗!”
조걸이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기를 향해 검을 힘껏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러나 검이 넘실대는 마기에 닿는 순간, 다시 한번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그리고 조걸은 피를 뿜으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걸……!”
윤종의 입에서 비명이 채 다 나오기도 전에 그의 등 뒤에서 황금빛 불광이 작렬했다.
쾅! 콰앙! 콰아아앙! 콰앙!
백보신권!
신권이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권력이 연이어 주교의 몸을 노리고 들었다. 하지만 주교는 그저 한 손으로 가볍게 쳐 낸 후 입술을 뒤틀었다.
“더러운 불신자 놈들!”
이윽고 그의 발이 진각을 내밟았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주교를 공격해 대던 화산의 제자들이 태풍에 휩쓸린 가랑잎처럼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털썩!
털썩!
바닥에 그대로 처박힌 화산의 제자들이 충격에 두 눈을 부릅떴다.
“쿨럭!”
입에서 선지피가 왈칵 쏟아졌다. 앞섶을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일 정도의 출혈이었다.
하지만 몸의 상처보다 더 큰 것은 그들을 덮친 절망이었다.
‘이렇게나…….’
백천의 손끝이 덜덜 떨렸다.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강철의 벽을 앞에 두고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어떤 공격을 해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직접 실감하는 격차는 말도 안 되게 컸다.
절망.
그래, 이건 아득한 절망이었다.
“힘을 합쳐 달려들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았더냐?”
주교가 가볍게 혀를 차며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더러운 불신자들이여. 그대들이 아직 살아 있는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잃은 것이 너무도 커서지.”
피처럼 붉고 섬뜩한 혈기가 주교의 두 눈에서 갑작스레 뿜어져 나왔다.
“마의 하늘이 열리리라! 세상이 마로 가득 차리라. 너희는 그분의 강림을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분은 나처럼 자비롭지 않고, 나처럼 나약하지 않으니.”
“쿨럭!”
또다시 피를 토해 낸 백천이 검의 손잡이를 애써 움켜잡았다.
손끝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을 때, 그뿐만 아니라 화산의 제자들 모두가 넋이 나가 있었다. 심지어 유이설마저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이제야 알았느냐?”
기괴한 웃음소리가 절망으로 가득 찬 공간에 울렸다.
“하찮은 너희는 절대 교의 행사를 저지할 수 없다. 절망을 안고 죽어 가거라.”
“거…….”
그때 백천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퉤!”
뒤쪽으로 튕겨 나갔던 청명이 피가래를 내뱉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말 참 많네.”
그그그그극.
그의 검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주교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오롯이 꽂혔다.
“네놈은 제법 대가 센 놈이구나. 의미가 없다는 걸 알 텐데.”
“의미? 뭐? 네가 더 세다고?”
“…….”
“동굴에 처박혀 내력만 닦던 놈이라 그런지 싸움이 뭔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청명이 입가의 피를 훔치며 피식 웃었다.
“더 강하다는 게 반드시 이긴다는 근거는 못 되지.”
저벅. 저벅.
청명은 화산의 제자들 사이를 걸어 주교를 향해 나아갔다.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 모습에 화산의 제자들이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똑똑히 들어라, 천마의 개.”
청명의 입가가 비틀렸다.
“강하다 해서 반드시 이기는 거라면, 천마가 그렇게 목이 잘려 뒈지지는 않았겠지. 안 그래?”
“이…….”
그 말이 주교의 역린을 건드렸다. 여유가 그득하던 주교의 얼굴이 순식간에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이…… 이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온 광포한 마기가 주교의 전신을 폭풍처럼 휘감은 채 폭주하기 시작했다.
“감히 그 더러운 입으로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다니!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네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조차도 만세에 걸쳐 고통받을 것이다!”
“크흐.”
잠깐 낮게 웃은 청명의 두 눈에서 이윽고 살기가 흘러나왔다. 엇나가다 못해 위험해 보이는 광기가 번들거리고 있었다.
피가 끓어오르고, 감각이 확장된다.
사선에 선다는 것,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건 언제나 이랬다. 그 감각이 정말 오랜만에 청명을 찾아왔다.
끓어오르던 그의 눈이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노오오오오옴!”
주교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청명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마기의 폭풍을 휘감은 주교가 살의에 들끓으며 달려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당할 수 없는 공포였다.
아무리 담이 큰 자라 해도 그 모습을 보고는 질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하나 청명은 검을 높이 치켜들고 되레 그런 주교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그 순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몸을 일으켜 세운 백천이 그답지 않은, 피 끓는 괴성을 내지르며 청명의 뒤를 받치기 위해 달렸다.
두렵지 않느냐고?
두렵다.
그래, 당연히 두렵다.
그의 이성이, 그의 본능이 모두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달아나라고. 도망치라고.
주교의 힘은 그가 지녀 왔던 상식을 우습게 뛰어넘었다. 설사 저 청명이 놈과 함께 싸운다고 해도 도무지 이길 것 같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청명이 앞으로 돌진하는 순간 백천의 몸은 머리보다 먼저 움직여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쏘아지는 살기만으로도 피부가 찢어질 것만 같다.
저 검은 마기로부터 전해지는 어둠이 영혼을 얼려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백천은 그저 청명의 등을 보며 달렸다.
그런 그의 옆을 어느새 달려온 유이설이 채우고, 등 뒤로는 필사적으로 따라붙은 조걸과 윤종이 버텼다. 혜연과 당소소 역시 마찬가지.
그래.
나는 두렵다.
하지만…….
백천의 눈이 정광을 뿜어냈다.
- 뭐? 두렵지 않아?
“…….”
- 뭔 병신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두렵지 않아서 싸우는 놈은 그냥 싸움꾼일 뿐이야. 그건 용기가 아니지. 두려워도 발을 떼고 검을 휘두르는 거. 그게 용기야!
‘오냐!’
이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설령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고 해도!’
백천의 입에서 벼락 같은 기합이 터져 나왔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압!”
누구도 나보다 먼저 죽게 두지 않는다!
으스러질 것 같은 몸을 이끌고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서 뿜어진 붉은 검기가 주교를 향해 직선으로 날아들었다.
“크하아아앗!”
천마 이야기를 들은 뒤로 반쯤 이성을 잃은 듯한 주교가 그 검기를 후려쳐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짙고 거친 마기를 고스란히 실은 채 청명의 머리 쪽을 향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몸을 뒤튼 청명의 바로 옆을 스친 마기는 땅을 말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운석이라도 틀어박힌 듯 움푹 파인 땅이 거미줄처럼 쩌적쩌적 갈라지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쏟아냈다.
우드드득.
분명 완벽히 피해 냈는데 그 여파만으로 뼈가 으스러진 것 같았다.
하나.
“멍청한 놈이.”
청명은 동요하지 않고 서늘한 얼굴로 주교의 가슴에 검을 내질렀다.
파아아아앗!
일체의 변화가 없는 움직임. 하지만 그렇기에 더없이 쾌속한 검이 빛살이 되어 주교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그 순간.
카가아아앙!
청명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부릅떠졌다.
제아무리 강한 기운으로 보호한다고 해도 사람의 육체가 강철은 아닐진대, 천하의 명검이라 할 수 있는 암향매화검이 주교의 몸을 꿰뚫지 못하고 튕겨 나온 것이다.
‘뭣?’
그 순간 청명은 스치듯 보았다.
주교의 갈라진 앞섶으로 드러난 새파란 얼음을 말이다.
“죽어라아아아아아앗!”
그 틈을 타 다시 한번 움직인 주교의 손이 청명을 향해 빠르게 날아들었다.
청명은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주교의 손을 막아 내었다. 검과 손이 충돌하는 순간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내력이 청명의 육체에 쏟아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어?’
청명의 시야에 눈부시도록 새파란 하늘이 들어왔다.
‘왜 내가 이걸…….’
귓가에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사혀어어어어어어어엉!”
……소소?
하늘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이내 그의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졌다.
‘안 돼…….’
의식을 잃은 청명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