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5화. 이제부터 기억하게 해 주자고. (5)
“청명아!”
조걸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피를 뿌리며 날아가는 청명의 모습이 느리게 움직이는 듯 눈에 선명하게 박혔다. 집법사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런 청명의 뒤로 미친 듯 따라붙었다.
누가 보더라도 청명이 밀리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돌연 허공에서 몸을 빙글 뒤집은 청명이 광기 어린 웃음을 함빡 지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고오오오오오!
위로 치켜든 검에 붉은 검기가 어렸다. 붉디붉은 검기는 점점 더 선명해진다 싶더니 이내 선명하게 유형화되어 검을 뒤덮었다.
“저, 저거?”
“검강(劍剛)?”
콰아아아아아아앙!
청명이 내리친 검에 얻어맞은 집법사자가 포탄처럼 날아가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쿠우우웅! 쿠웅!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 땅이 움푹 파였다. 집법사자의 몸은 바닥과 충돌한 반동으로 다시 튕겨 올랐다가 힘없이 추락했다.
하나 정신은 잃지 않았는지 재빨리 몸을 벌떡 일으켰다.
“큭!”
입에서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내부가 완전히 진탕되고 내장이 찢겨 나가 피가 역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상처를 돌볼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청명이 피에 굶주린 늑대 같은 눈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똑똑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 더러운 불신자 놈이!”
집법사자가 피를 흩뿌리며 포효하고는 다시 태세를 갖추었다.
콰콰콰콰콰!
검은 장력이 터진 둑을 넘어 쏟아지는 탁류처럼 청명을 뒤덮었다.
파아아아앗!
그리고 청명의 검 역시 그를 맞아 붉은 매화를 뿜어내었다.
급격하게 불어난 매화는 구름처럼 피어나 장력의 급류를 밀어 냈다. 지켜보는 이들에게는 그 광경이 터진 둑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탁류가 매화 밭을 덮치는 광경처럼 보였다.
‘사람인가…….’
빙궁도들은 경악하며 부지불식간에 입을 쩍 벌렸다.
분명 사람과 사람이 맞붙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손끝과 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들의 향연은 사람이 빚은 광경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
“오오오오오오!”
“하아아아아압!”
급류와도 같은 장력이 매화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다.
하지만 뒤이어 더 거대하고 위압적인 장력들이 쏟아져 나왔다.
피어난 매화들은 급류에 휘말리며 점차 그 빛을 잃어 갔다.
하지만 매화는 다시 피는 법. 져 버린 매화보다 훨씬 많은 수의 매화가 새로이 피어났다.
붉은 꽃과 검은 급류.
두 기운이 서로 소용돌이치며 팽창했다.
퍼어어억!
검기에 밀리며 튕겨 나온 장력이 청명의 가슴을 가격했다.
목을 타고 피가 울컥 솟구쳤지만, 청명은 억지로 삼켜 내며 계속하여 검을 전개했다.
서걱! 서걱!
매화검기의 파편이 집법사자의 얼굴과 발목을 베며 갈랐다.
무학이란 본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것.
하나 집법사자는 무학이 오로지 상대를 쳐 죽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하듯, 자신의 상처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더욱더 살기 어린 공격만을 가하고 있었다.
쿵!
살이 에이고 영혼이 찢기는 듯한 공방 후에도 만족하지 못한 듯, 집법사자는 전방으로 장력을 뿜어내며 몸을 뒤로 살짝 튕겨 냈다.
그리고.
우우우우우웅!
가슴 앞에 손을 모아 기묘한 수인(手印)을 맺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쪽 어깨에서 검은 마기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솟구쳤다. 너무도 어둡고 짙어 공포감마저 느껴지는 힘이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쿠우우웅!
진각을 밟은 집법사자의 양손이 뿜어져 나온 마기를 휘감아 앞으로 날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압!”
그러자 마기는 마치 짐승과도 같은 형태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집채만 한 크기의 검은 짐승이 그 아가리를 벌리며 청명을 집어삼켜 갔다.
“처, 청명……!”
이제껏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던 백천마저도 이성을 잃고 소리칠 만큼의 위력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저 장력에 실린 힘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사혀어어어어어엉!”
당소소의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날카롭게 울렸고.
스슷.
그 비명에 호응하듯 청명의 검이 허공에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마치 걱정할 필요 없다고 대답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붉게 물든 청명의 검이 파르르 떨렸다.
더욱 맹렬한 기세로 몰려오는 집법사자의 장력을 막아 내기에, 그 검은 지나치게 약해 보였다.
하나.
“봐라!”
백천은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게 화산의 검이다!”
청명의 검 끝이 매화를 그렸다.
소담스레 한 송이, 그리고 또 한 송이.
세상을 뒤덮어 오는 검은 짐승을 맞이하면서도 꽃은 피어나기를 반복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움직임.
개화(開花).
그 어떤 거목이라 해도 그 시작은 작은 개화에 불과하다.
피어나고, 지고, 다시 피어나며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건 순환(循環)이며, 또한 이어짐이니.
일원(一元)이 태극(太極)이 되고, 삼재(三才)가 사상(四象)과 어우러져, 오행(五行)이 육합(六合)을 이루니, 칠성(七星). 팔괘(八卦), 구궁(九宮)을 거쳐 마침내 십전(十全)에 도달한다.
하나 그것 역시 순환(循環).
세상의 이치는 흐르고 또 흐르나 그 어떤 흐름도 개화(開花)하지 않고서는 시작되지 않는다.
작은 꽃은 그저 작은 의미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수없이 피어난 꽃은 매화가 만발한 화산의 전경을 북해에 고스란히 옮겨 왔다. 그리고 그 정신까지도.
집법사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느새 세상을 가득 뒤덮어 버린 매화에 넋을 놓을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검이란 말인가?’
무학이란 인간의 손에서 시작되어 결국엔 인간을 뛰어넘는 것.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것마저 뛰어넘고 있었다.
매화로 채워진 대해(大海)가 넘실거렸다.
춤을 추던 매화의 바다는 순식간에 혼을 빼앗고, 일순 그 기세를 바꿔 거대한 파도로 화해 집법사자를 덮쳤다.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매화만개(梅花滿開).
하나의 꽃잎이 어찌 강하겠는가?
바람이 불면 날리고, 비가 오면 그저 이지러진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잎이 모이고, 또 모여 나무를 이루고, 숲을 이루고, 이윽고 세상을 가득 메우면 그 향은 천 리를 넘어 만 리까지 퍼진다.
끝도 없이 중첩된 매화검기는 집법사자가 내뿜은 회심의 마라탈명장(魔羅奪命掌)의 기운마저 산산이 부숴 버렸다.
그 거친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던 짐승이 쏟아지는 매화의 파도에 짓뭉개졌다.
집법사자는 발악하며 장력에 힘을 더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힘이라 해도 바다를 밀어 낼 수는 없는 법.
끝끝내 마기의 짐승을 으스러뜨린 매화의 파도가 집법사자의 시야를 가득 메우며 밀려들었다.
“웃기지 마라아아아아아아!”
집법사자가 처절한 절규를 내뿜으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밀려오는 매화의 파도를 힘껏 헤집었다.
촤아아아아악!
하지만 이는 폭포를 거스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두둑!
손끝이 무너지기도 전에 무릎이 먼저 꺾였다.
우둑!
뼈가 비명을 지르고, 압력을 이기지 못한 살이 폭발하듯 터졌다. 피가 해무(海霧)처럼 퍼져 나왔다.
“처, 천마재림…….”
진언을 중얼거리던 집법사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비로소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검은…….
‘처, 천마를 벤 검…….’
화산의 검.
“으아아아아아아!”
광기 어린 절규를 내뿜는 집법사자의 몸을 매화의 파도가 완전히 뒤덮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북해의 새하얀 대지를 소용돌이치는 매화가 거세게 훑고 지나갔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장엄한 광경이었다.
모두가 마치 꿈이라도 꾸는 듯 풀린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흰 북해의 땅을 붉게 물들였던 매화의 향연은 어느 순간 환상처럼 씻은 듯 사라졌다.
“…….”
억눌린 듯한 정적이 한참이나 이어진 끝에, 지켜보던 이들이 간신히 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또옥.
또옥.
손을 타고 흐른 피가 바닥으로 방울져 떨어졌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집법사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처…… 천마…….”
그 와중에서도 천마를 찾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질리게 만들었지만, 완전히 꺾여 버린 그의 모습에서 공포를 느끼는 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퉤!”
청명이 입에 고인 피를 아무렇게나 뱉고 소매로 슥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다시 울컥 피를 뱉었다.
“쿨럭!”
선지피를 줄줄이 토해 낸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놈이 힘쓰게 하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그의 속은 완전히 진탕되었다. 아직 그의 내력으로 이만한 검기를 전개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저놈들은 피에 굶주린 승냥이.
기선을 완전히 잡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약점을 잡아 물고 늘어질 것이었다.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제대로 짓밟아 버릴 필요가 있었다.
덕분에 외상은 딱히 없지만, 내상은 설천상을 상대했을 때보다 배는 더 깊어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지.’
청명은 천천히 집법사자를 향해 걸었다. 이제 마무리를 할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사, 사자님을 구해라!”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 내!”
뒤쪽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교도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일부는 청명을 막아섰고 또 일부는 집법사자를 부축하러 달려갔다.
“어딜 감히…….”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검을 날리려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커다란 파공음이 먼저 터졌다.
“이 새끼들이!”
“너희 상대는 우리다!”
화산의 제자들이 마교도들을 상대하기 시작했고, 그 뒤에선 혜연이 황금빛 불광 어린 장력을 연이어 날려 대었다.
“…….”
슬쩍 그들을 돌아본 청명은 집법사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슷.
이내 그의 육신이 퍽 꺼지듯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집법사자가 무릎을 꿇은 그 앞에 환상처럼 나타났다.
“이!”
“죽어라아아!”
집법사자를 탈출시키려던 마교도들은 순간 기겁하며 움찔했지만, 그들 역시 마교의 교도였다. 이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청명을 공격했다.
퍼어어억!
하지만 검 면으로 그들을 후려쳐 날린 청명은 곧장 집법사자를 걷어찼다.
콰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집법사자의 몸이 허공으로 튕겼고 이내 끈 떨어진 연처럼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향하는 곳은 빙궁도들의 머리 위였다.
일격으로 마교도들과 집법사자를 분리해 낸 청명은 빠르게 땅을 박차며 집법사자에게 따라붙었다.
쿠르르르릉!
빙궁도들을 넘은 집법사자의 몸이 빙궁의 벽을 뚫고 들어갔다.
“뭐 하고 있어, 등신 새끼들아! 대가리 잃은 놈들도 처리 못 해?”
청명이 버럭 역정을 내자 빙궁도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악적들을 물리쳐라!”
“모조리 죽여! 죽여 버려!”
그제야 용기를 얻고 마교도들에게로 달려드는 빙궁의 무사들을, 청명은 서늘한 눈으로 일별했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날려 집법사자의 뒤를 쫓았다.
“사숙! 혜연!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
“알았다!”
“아미타불!”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에 접근한 청명은 곧장 몸을 띄워 올렸다. 그가 향한 곳은 집법사자가 뚫고 들어간 곳이 아니라, 설소백이 있는 곳이었다.
탁!
그는 벽 끝에 선 설소백의 바로 옆에 착지했다.
“도, 도장?”
설소백의 눈이 의문을 품는 그 순간.
콰아아앙!
바닥이 폭발하며 그곳에서 집법사자가 솟구쳐 올라왔다.
하지만 청명은 예상했다는 듯 솟아오른 집법사자의 턱을 그대로 걷어차 날려 버렸다.
집법사자의 몸이 다시 벽에 콱 쑤셔 박혔다.
쿠르르르릉.
금이 가고 무너지는 벽을 보며 청명이 차게 웃었다.
“너희가 할 짓이야 빤하지. 멍청한 놈들.”
턱.
설소백의 머리를 손으로 투박하게 덮은 청명은 그대로 아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집법사자를 향해 다가갔다.
“쿨럭…….”
그는 선지피를 줄줄 흘려 대며, 피어 오른 먼지 속에서 내내 기침을 터트리고 있었다.
“일어나.”
청명은 그를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로 죽을 리가 없지. 아직 안 끝났으니 일어나.”
집법사자의 눈에 절망의 빛이 어렸다.
세상에 그보다 강한 자야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가 이자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 그리 대단할 리가 없다.
하나 대체 이 짙은 살기와 섬뜩할 정도의 집요함은 어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집법사자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바라보았다.
‘내가 공포를 느낀다고?’
이 내가?
바로 그때.
“이노오오오옴!”
청명의 고개가 옆으로 획 돌아갔다.
갑자기 우측의 벽이 무너지더니 그곳에서 검을 든 이가 쏜살처럼 튀어나와 청명을 공격해 왔다.
저 복색은…….
‘빙궁?’
입술을 깨문 청명이 날아드는 검을 빠르게 막아 내었다.
“달아나십시오, 사자님!”
침입자의 절규와도 같은 고함에 집법사자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딜!”
청명의 검기가 집법사자를 향해 집요하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집법사자는 아래로 달아나지 않고 천정을 부수며 위로 솟구쳤다.
“이!”
청명의 눈에 노화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빙궁의 장로라는 놈이…… 마교를 보호해? 이 개 같은 새끼야!”
“처, 천마재림! 만마…….”
“닥쳐!”
파아아아앙!
일 검에 이 장로의 목을 날려 버린 청명이 이를 갈며 뒤를 돌아보았다.
움찔.
설소백이 몸을 움츠렸다. 당황한 아이의 눈과 노화로 물든 청명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
청명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는 집법사자의 뒤를 쫓아 솟구쳤다.
콰앙! 콰아앙!
한편 집법사자는 연신 천장을 뚫으며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살아남아야 한다.’
저 괴물 같은 놈의 존재를 반드시 교에 알려야 한다. 저 괴물이 빙정을 가지고 있음도.
‘주교님께서 직접 나서지 않는다면 빙정은 회수할 수가…….’
“거기 서, 이 새끼야!”
콰아아아아앙!
그때 저 아래에서부터 검기가 집법사자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익……!”
마기를 밀어 넣은 손으로 검기를 가까스로 막아 냈지만, 검기에 실려 있던 힘은 집법사자의 몸을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콰르르릉! 콰앙!
집법사자의 몸이 연신 천장을 뚫고 튀어 올랐다.
콰르르르릉!
이윽고 최상층까지 튕겨 오른 집법사자가 피를 울컥 토하며 바닥을 굴렀다.
“끄으으으…….”
엉망으로 부서진 바닥을 긁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피눈물을 줄줄 흘리는 그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면…….’
쿠르르릉.
생명을 유지하는 마지막 힘.
몸에 남은 마지막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낸 집법사자의 눈이 기괴하게 빛났다.
“그 팔 하나라도 가져…….”
그때였다.
집법사자의 고개가 옆으로 획 꺾였다.
“……여긴?”
성의 최상층. 설천상의 집무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 역시 그동안 몇 번이고 들른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그가 놀란 이유는 이곳이 설천상의 집무실이기 때문이 아니다.
중앙.
언제나 설천상이 앉아 있던 옥좌가 뒤집히고 부서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반쯤 튀어나온 상자가 충격을 못 이기고 살짝 갈라져 있었다.
“……저, 저건…….”
그곳에선 푸른빛이 연이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집법사자의 두 눈에 희열이 어렸다.
“설천상, 이 빌어먹을 놈이!”
광속으로 달려들어 상자를 움켜잡은 집법사자는 지체 없이 벽에 난 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아아앙!
나무로 만든 창이 맥없이 무서지며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이 새끼가 어딜!”
뒤늦게 올라온 청명이 그런 그를 향해 붉은 검기를 쏘았다.
하나 그 순간.
기이할 만큼 환한 미소를 지은 집법사자가 자신의 몸이 아닌 상자를 보호하며 몸을 웅크렸다.
“뭐?”
청명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서걱!
집법사자의 한쪽 팔이 잘리며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그가 품고 있던 상자의 한쪽 귀퉁이가 잘리며 그 내부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상자 안에 든 건 분명히 빙정이었다.
“작별이다, 중원인!”
“뭔 개소리를 하고 있……!”
창에서 몸을 날려 쫓으려던 청명이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이며 몸을 뒤집었다.
콰아앙!
뒤쪽에서 달려온 또 다른 빙궁의 장로가 필사적으로 청명을 향해 장력을 쏘고 있었다.
“천마재림! 만마…….”
파아아아앗!
무시무시한 노기를 뿜은 청명이 일격에 장로의 목을 쳐 날려 버렸다.
두 눈을 부릅뜬 머리가 벽에 처박히곤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
황급히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집법사자는 이미 저 멀리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 뒷모습을 눈으로 쫓던 청명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이 개 같은…….”
분노로 꽉 깨물린 청명의 입술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