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화. 많이 기다렸지? (5)
설소백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숨이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 뛰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마교도들이 내뿜는 살기와 마기를 직면하고 있자니 영혼을 흙발에 짓밟히는 느낌이었다.
몸이 한없이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왜 빙궁의 무사들이 그리도 속절없이 와해되어 무너지고 달아났는지 절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나는…….’
그때, 파래진 얼굴로 오들오들 떠는 그의 어깨에 작은 손이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곁에 서 있던 당소소가 굳은 얼굴로 그를 보고 있었다.
“걱정 말아요, 궁주.”
“…….”
“우리는 지지 않아요.”
설소백의 눈이 흔들렸다.
‘무섭지 않은 건가?’
그럴 리가.
같은 사람이다. 설사 당소소가 그와는 비할 바 없이 강하다고 해도, 같은 사람인 이상 저 짐승 같은 이들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토록 떨지 않을 수 있는가?
심지어 당소소뿐만이 아니었다.
빙궁은 열 배에 가까운 수로도 마교를 막지 못했다. 아니, 막지 못한 수준이 아니다.
있는 힘을 다해 싸우다가 불가항력으로 밀려났다면 고개라도 당당히 들 수 있겠지만, 빙궁은 감히 마교와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등을 보이며 달아났다.
맞서는 것 자체를 포기해 버렸고, 무사로서 보여서는 안 될 모습마저 보였다.
한데.
화산의 제자들은 그 마교의 십분지 일에 불과한 수임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물러나는 일 없이 저들의 앞을 막아섰다.
무엇이 다르기에?
대체 무엇이 달랐기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화산…….’
설소백은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주었다. 당장이라도 저 문을 열고 달아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봐야 해.’
이들이 대체 무엇이 다른지 말이다.
카가가각!
검게 물든 손과 백색을 띤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검과 손이 맞부딪치는데 어이없게도 쇠를 긁어 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백천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의 검은 적의 공격을 착실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하지만 충돌하는 횟수가 늘어 갈수록 이마저도 점차 버거웠다.
욱신.
마교도가 내뿜는 살기에 살갗이 따끔거렸다. 순간순간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고,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곤두섰다.
느낀 것은 두 가지.
상대의 무력은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
물론 강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저 빙궁을 일방적으로 학살해 대는 모습을 보며 가졌던 두려움만큼은 아니었다. 절대로.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생각보다 상대하는 게 버겁군.’
무학이 전부가 아니다.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이지만, 마교도를 상대하는 순간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명명백백하게 알았다.
제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광기에 휩싸인 이를 상대하는 것은, 무학의 수준과 관계없이 끔찍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움직임이나 기세에 상식 따위가 없으니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을 맞댈 때마다 체력과 정신력이 깎여 나갔다.
하나 이대로 밀리고만 있을 그가 아니었다.
쿵!
진각을 밟은 백천은 있는 힘을 다해 상대를 밀어 내었다. 그리고 거리를 확보하는 동시에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매화가 화려하게 허공을 수놓기 시작하자 밀려난 마교도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내내 끊이지 않던 진언이 잠깐 그치고,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수작질을……!”
마교도가 매화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하아아아압!”
길게 자라난 손톱(爪) 형태의 기운이 허공에 피어난 매화를 찢어발긴다. 마치 거대한 괴조(怪鳥)가 매화 밭을 매서운 발톱으로 가르고 지나가듯 말이다.
화려하게 피어나던 매화는 채 휘날리기도 전에 산산이 부셔져 스러졌다.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
혜연이 내뿜은 장력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마교도의 몸을 휩쓸어 버렸다.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범종을 때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훌쩍 밀린 그는 피를 뿌리며 튕겨 나갔다.
하나.
콰드드득!
뒤로 날아가던 마교도가 몸을 뒤집더니 손톱 형태의 조기(爪氣)를 바닥에 박아 넣었다.
가가가가각!
단단한 석재로 만든 바닥이 쩌저적 갈라졌다. 그리고 결국에는 뚫린 벽 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멈추어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든 마교도의 눈, 코, 입에선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그만한 상처를 입고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피가 꾸역꾸역 역류하는 입을 열어 진언만을 끝없이 내뱉을 뿐이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피,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광기 어린 진언이 더해지니 화산의 제자들은 잠깐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섬뜩한 모습에 모골이 송연해진 탓이었다.
“천마재림…….”
마교도가 다가올 때마다 발을 질질 끄는 소리가 가슴을 할퀴었다.
내내 결연하던 백천의 두 눈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그때, 등 뒤에서 조걸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숙, 힘드시면 교대합시다!”
“…….”
퍼뜩 정신을 차린 백천은 이를 갈아붙이며 악물었다.
“거기서 구경이나 하고 있어, 이 새끼야!”
목소리는 커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
긴장으로 뻣뻣해졌던 무릎을 다시 굽히고 자세를 안정시켰다. 들떴던 어깨를 진정시키고, 뛰는 가슴을 가라앉혔다.
수없이 듣는 말. 이제는 알다 못해 체화해 버린 것. 하지만 언제나 실전에 들어가면 잊게 되고 어긋나게 된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라.’
상대가 누구든 우선은 ‘나’를 바로 세운다.
살짝 일렁이던 백천의 검 끝이 완벽한 고요를 되찾았다.
물론 상대는 강하고 기괴하다. 하지만 그 사실이 백천이 힘을 모두 발휘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무겁군.’
등 뒤에는 사질들이 있다. 지금 그들이 그의 등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 일인지 더없이 강하게 실감되었다.
‘우는소리 하지 마.’
그럼에도 백천의 눈빛은 물 샐 틈 없이 견고해지고 단단해졌다.
겨우 사질 몇이 아니라 화산 전체를 등으로 이끄는 이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 정도 위기로 떨어서야 어디 체면이 서겠는가?
빙궁의 방어를 뚫어 낸 마교도들은 지금도 속속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벌써 여섯.
하지만…….
‘여섯이고 열이고 상관없어!’
“단 한 놈도 못 지나간다!”
백천의 검이 결연히 움직이며 선명한 매화를 그려 내기 시작하자, 이에 보조를 맞춘 유이설의 매화 역시 전방을 향해 만개했다.
흡사 봄을 맞은 화산과도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쇄애애애액!
마교도들 역시 보고만 있진 않았다. 그들이 양손을 휘두를 때마다 마귀의 발톱 같은 검은 조기가 매화를 찢어 내고, 어둠 속의 원혼 같은 검은 장력이 꽃잎을 이지러뜨렸다.
하지만 밀려난다고 해서 물러설 이유는 없다.
꽃잎이 스러진 위로 매화는 피고 또 피어나니까.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만개(梅花滿開)가 백천과 유이설의 검 끝에서 펼쳐졌다. 혼이 실린 공격이었다.
불어난 매화는 순식간에 전방을 모조리 뒤덮었다.
“뭐……?”
천하의 마교도의 입에서 당황 어린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놀랄 틈이 없었다. 불어난 매화가 일렁일렁 흔들린다 싶더니 삽시간에 그들을 덮치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교도들이 두 눈에서 광망을 줄기줄기 내뿜어졌다. 매화의 숲을 향해 오히려 돌진하는 그들의 몸에선 검은 마기가 용솟음쳤다.
날아든 매화검기가 몸을 꿰뚫었지만, 마교도들은 그럴수록 더 거친 기세로 앞을 향해 달려들었다. 흩날리는 꽃잎 같은 검기를 모조리 막아 낼 순 없으니, 머리와 몸의 중심만을 보호하며 돌진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서걱! 서걱!
매화검기가 팔다리를 베고, 허벅지를 꿰뚫었지만, 마교도들은 피를 쏟으면서도 전혀 그 기세를 줄이지 않았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마침내 매화의 숲을 몸으로 뚫어 낸 마교도가 입으로 피를 울컥 쏟으며 양손을 백천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푸욱!
하지만 백천이 날린 검이 먼저 마교도의 가슴을 꿰뚫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물러나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교도는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가슴에 검이 점점 더 깊숙이 박히고 있음에도, 입으로 피를 줄줄 흘려 가며 그저 전진만을 거듭했다.
“큭!”
백천도 이제 이런 모습엔 당황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하는 게 수월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빠르게 뒤로 한 발을 빼며 검을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꾸우우욱!
마교도가 가슴 근육을 조여 백천의 검을 콱 붙들었다. 한철검이 상처를 연신 짓이기고 파고들었지만 마교도의 눈에선 고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백천은 두 눈을 부릅떴다.
“크큭.”
“이…… 미친!”
그리고 그 틈을 타, 다른 마교도들이 백천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다.
유이설과 혜연 역시 백천의 양옆에서 각자의 싸움을 하느라 이를 즉각 막기란 어려웠다.
“아미타불!”
혜연이 다급한 불호를 외며, 뛰어오른 이를 후려 갈겼다. 하지만 큰 의미가 없는 공격이었다. 아무리 혜연이라고 해도 이 모든 이들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마교도 하나의 희생.
그 가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희생.
그것을 바탕으로, 마교도들은 화산 제자들의 진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파아아앗!
유이설이 이를 악물며 검을 날렸다.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의 빈틈만을 노려서.
그녀의 검은 더없이 효율적이었지만, 상처를 입어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을 상대로는 그 힘이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촤아아악!
어깨에 유이설의 검을 박은 채로, 마교도가 손톱을 휘둘렀다. 그녀의 목 옆쪽에 선명한 붉은 선 세 개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내 진득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상처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검을 아래로 내리그어 상대의 상처를 헤집어 버렸다.
“끄륵…….”
쾅!
마교도가 주춤하는 순간, 유이설의 발이 상대의 복부에 콱 틀어박혔다. 상대를 걷어차 아예 날려 버린 그녀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뒤로 띄워 올렸다.
그녀의 검이 천장에 닿을 듯 솟아올랐고, 이내 백천을 넘어 조걸과 윤종에게로 향하는 적들의 등을 향해 매화를 흩뿌렸다.
서걱! 서걱!
매화가 닿는 곳마다 등이 깊게 베이며 뼈가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 새끼들이 어딜!”
고지가 코앞이라 더욱 살벌한 기운을 풍기며 달려드는 마교도들을 먼저 맞이한 건 조걸이었다.
“내가 허수아비로 보이냐!”
파아아앗!
조걸의 눈부신 쾌검이 마교도들을 베고 찔렀다. 예상치 못한 그 속도에 마교도들이 일순간 흠칫했지만, 결국 달려드는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카하핫!”
마교도가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토하며 손을 휘둘렀다. 그 끝에서 뿜어져 나온 조기가 금방이라도 조걸의 전신을 찢어 버릴 듯했다.
서걱! 서걱!
하지만 이번에도 조걸의 검이 한발 빨랐다. 마교도의 가슴과 배에 가차 없이 구멍을 낸 조걸이 검을 당기며 몸을 뒤로 굴렸다.
카가가가각!
거의 동시에 그가 있던 곳의 바닥이 깊이 파였다. 다섯 줄기의 깊은 상흔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털을 쭈뼛 서게 만들기 충분했다.
“큭!”
조걸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완전히 피하는 건 무리였는지 등이 화끈거리며 고통이 밀려들었다.
길게 갈라진 그의 등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걸아!”
“신경 쓰지 마십쇼, 사형! 안 죽습니다!”
조걸이 소리를 내질렀다. 윤종은 그 상처를 바라보다 결국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시선이 동시에 청명을 향해 슬쩍 돌아갔다.
가부좌를 틀고 운기를 하는 청명은 이 상황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아오, 하여튼 얄미운 새끼.”
“쯧.”
작게 투덜거린 조걸과 윤종은 다시 달려드는 마교도를 보며 검을 틀어쥐었다.
“손가락 하나 못 댄다!”
“목숨 걸고 막아!”
이 와중에도 뚫린 벽을 통해 마교도들이 하나둘 새로이 올라오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들의 힘만으로 저들을 모두 막아 내는 건 불가능하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한순간이라도 더!’
버텨 낸다.
콰아아아앙!
마교도의 흑살장이 조걸의 검을 거세게 후려쳤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조걸이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 나갔다.
“아오!”
뒤에 청명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조걸은 순간적으로 바닥에 검을 꽂으며 몸을 뒤틀었다. 덕분에 청명과 충돌하는 것은 피했지만, 어떤 방비도 하지 못하고 벽에 처박힐 수밖에 없었다.
쿠우웅!
“쿨럭!”
입에서 피가 왈칵 터졌다. 조걸은 그 피를 훔칠 새도 없이 외쳤다.
“사형!”
“알아!”
윤종이 검법을 넓게 전개해 조걸이 상대하던 이까지 동시에 막아 세웠다.
“후욱!”
그의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져 나왔다.
가장 뒤에서 싸우고 있다 보니 앞에서 펼쳐지는 전투가 눈에 훤히 들어왔다.
혜연은 연신 장력을 날려 이곳으로 진입하는 이들을 떨쳐 내고 있었다. 그가 입구를 막고 서서 적의 수를 줄여 주지 않았다면, 절대 지금처럼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백천 역시 분전하고 있었다.
중앙에서 검을 휘두르는 그는 이미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무복 이곳저곳이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서라도 더 이상의 적을 뒤로 보내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
‘사숙!’
윤종은 이를 악물었다.
백천의 곁에선 유이설이 무심하다 못해 싸늘한 얼굴로 적을 베어 가고 있었다. 그녀의 무복 반쪽은 목에서 흘러나온 피로 젖어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빌어먹을.’
미세하게 조금씩 밀렸다.
저놈들은 기이할 정도로 노련했다.
그들이 청명을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집요할 정도로 청명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걸 막아 내려다 보니 손발이 꼬이고, 마음이 다급해질 수밖에 없다.
카아아아앙!
“큭!”
두 마교도를 동시에 상대하던 윤종의 검이 순간 쏟아져 들어오는 힘을 이기지 못해 뒤로 확 밀려 나갔다.
그리고.
촤아아아악!
비어 버린 윤종의 가슴을 마교도의 발톱이 훑고 지나갔다.
“사혀어어엉!”
조걸의 처절한 고함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지만, 윤종은 되레 내심 혀를 찼다.
살이 찢긴 정도로 뭘 저리 호들갑을 떠는가?
만인방을 상대하면서 청명이 입은 상처가 배는 심했고, 운검이 입은 상처에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와 봐!”
윤종이 답지 않게 버럭 노호성을 내지르며 검을 한차례 떨쳤다.
그 순간 그의 뒤쪽에서 날카로운 비수가 새파란 기운을 품고 마교도들에게로 날아들었다. 당소소였다.
카앙! 캉!
마교도들이 본능적으로 손을 휘둘러 비수를 튕겨 냈다. 그리고 윤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하아아압!”
윤종의 검이 만들어 낸 매화가 마교도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벼락처럼 날아든 조걸이 그 위에 맹렬한 검기를 더했다.
‘이걸로 밀어 내…….’
그 순간.
‘어?’
윤종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두 사람이 만든 매화의 숲에서 검은 무언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뚫고 나왔다.
진정 기이한 것은, 그 검은 손이 윤종의 눈에 더없이 느리게만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느린 것은 손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만들어 낸 매화검기도, 그 위를 뒤덮은 조걸의 검기도 한없이 더뎠다. 심지어 그 너머로 보이는 사숙과 사고, 그리고 마교도들마저 너무도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손은 이윽고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너무도 느리게 보이지만, 피하려고 해도 몸이 멈추기라도 한 양 움직이질 않았다.
이건 분명…….
‘죽는…….’
죽음의 기운을 품은 마교도의 손이 그의 목 바로 앞까지 치달았다.
윤종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화산…….’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갑자기 거대한 폭음이 터지며 윤종의 몸이 뒤로 확 젖혀졌다.
“뭐, 뭣…….”
쿵.
순식간에 내동댕이쳐져 엉덩방아를 찧은 그는 당황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뭐지?’
반사적으로 목을 더듬었지만, 멀쩡하게 잘 붙어 있었다. 분명 바람구멍이 뚫려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의 목을 노렸던 마교도가 저 멀리 튕겨 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말 그대로 피떡이 되어서 말이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윤종의 귓가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기다렸지?”
윤종은 멍한 얼굴로 그쪽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리를 털고 일어난 청명이 그들을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맥이 탁 풀린 윤종의 몸에서 순간 힘이 주욱 빠져나갔다.
“너희…….”
목을 한차례 우둑 꺾은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며 웃었다.
“단 한 놈도 살아 돌아갈 생각 하지 마라.”
청명의 두 눈에서 광포한 살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