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화. 많이 기다렸지? (2)
가장 앞쪽에 있던 이들은 달아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물러날 곳은 없었다. 호기롭게 일제히 달려드느라 좁아진 진영은 그들에게 달아날 틈 따윈 만들어 주지 않았다.
“아아아악! 비켜! 비켜, 이 새끼들아아아아!”
“비키라고!”
공포에 질린 이들은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동료의 어깨를 잡아 마교도들을 향해 밀치고, 당황한 이들을 짓밟으며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달려들려던 자.
당황하여 멈춰선 자.
공포에 질려 되돌아 달아나는 자.
하나의 목적으로 완벽하게 움직이던 군세가 일순 뒤틀리며 엉망진창으로 엉켜 들기 시작했다.
“치, 침착해라! 정신 차리라고! 대체 이게 뭣 하는 짓이냐!”
“뒤돌지 마라! 빌어먹을, 돌지 말라고!”
군데군데 섞여 있던 부대주들이 어떻게든 상황을 통제하려 소리를 질러 대었지만,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공포와 직면한 이들에게 통할 리 없었다.
“비키라고, 이 개자식들아!”
“으아아아아악!”
악다구니를 쓰고 쥐어뜯으며 밀쳐 내었다. 심지어는 적에게로 향해야 할 검 끝을 아군에게 돌렸다.
실로 아비규환이었다.
그 말이 아니고서는 이 상황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광경’을 눈으로 본 이들이 발하는 공포는 순식간에 전염되어 갔다. 후미에 있느라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한 이들도, 동료들이 뿜어내는 공포에 덜컥 겁을 먹고 새하얗게 질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저들끼리 악을 쓰며 뒤엉킨 그 가운데로 마교도의 손톱 끝이 매섭게 파고들었다.
카가가가각!
손에서 차마 놓지 못한 검째로 사람의 몸이 갈라지고 찢겼다.
정면에서 마주해도 상대할 수 없었거늘, 그런 이들을 상대로 등을 돌렸으니 그 결과는 너무도 빤했다.
마교도들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자신들에게서 등을 돌린 이들의 척추에 조기(爪氣)를 박아 넣고 검게 물든 손으로 심장을 꿰뚫는 움직임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이 와중에 그들이 끊임없이 나직하게 외어 대는 진언은 빙궁도들의 공포를 더욱 자극하고 부풀렸다.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중얼대는 그 진언이 온 사방에 있는 것 같았다.
“히, 히이익!”
빙궁의 무사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동료의 가슴에서 삐져나온 검은 손에는 막 뽑혀 나온 심장이 펄떡거리며 쥐여 있었다.
“…….”
새하얀 김이 솟는 심장에서 뿜어진 피가 그의 얼굴을 적셨다.
“아……. 아아…….”
검을 든 이는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다.
그 역시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서 맞닥뜨린 생생한 죽음은 그 생각이 얼마나 느슨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놈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이럴 수 없다. 수라도(修羅道)에서 기어 올라온 수라들이 아니고서야 사람을 이토록 잔혹하게 죽여 댈 수는 없는 것이다.
“흐……. 흐으으…….”
퍼억!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오래도록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머리가 통째로 으깨진 이는 공포를 느낄 수 없으니까.
빙궁도의 머리를 날려 버린 마교도는 감히 숨도 쉬지 못하고 있는 다른 빙궁도들을 향해 입을 벌리며 웃었다. 피에 젖은 치아를 보는 순간 공포에 질린 이들의 심장은 순간 멈추기라도 한 양 덜컥 내려앉았다.
“천마재림…….”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도 않을 작은 진언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만마앙복.”
마교도가 손으로 얼굴을 훔쳤다.
얼굴에 묻은 피를 걷어 내는 것인지, 손에 묻은 피를 얼굴에 바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행위였다.
빙궁도들은 마교도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해석할 수도 없었다.
미지(未知)의 영역인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불신자들이 살아 숨 쉴 땅은 없다. 위대하신 분께서 강림하실 땅을 정화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
마교도가 눈을 번뜩이더니 커다란 광소를 터뜨리며 빙궁의 무사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여사혼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뜬 채 떨었다.
전열의 가장 뒤쪽에 있다 보니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살을 제대로 보진 못하였다.
하지만 알 수 있다. 알 수밖에 없었다.
빙궁의 상징인 순백의 군세가 돌격하는 모습은 흡사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거대한 파도와도 같았다.
하지만 마교라는 백사장과 부딪친 순간 검붉은 포말이 튀기 시작했다. 피보라가 날렸고, 백색의 파도는 형편없이 부서지며 붉게 물들었다.
“이…… 이게…….”
그의 수염이 푸들푸들 떨렸다.
피가 싸늘하게 식어 가는 느낌이었다.
열 배가 넘는 병력?
그런 건 허상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양(羊)이 아무리 많다 한들, 그 사이로 파고든 한 마리 늑대를 어쩌지 못한다.
지금 이 순간 빙궁의 무사들은 한 마리 양에 불과했고, 저 마교도들은 늑대, 아니 혹은 그 이상의 미지의 짐승과도 같았다.
‘이게 마교…….’
조금도 알지 못했다.
몇 번이고 마주쳤으면서도 마교가 어떤 곳인지, 마교도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 놈들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여사혼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 음울하고 조용하던 이들이 이렇게까지 이를 드러내며 변할 것이라고 대체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마교.
두렵고 두려운 존재. 공포를 부르는 존재.
여사혼은 뒤늦게 이해했다. 저들에 대한 이야기가 왜 불명확하고 피상적인 언어로만 전해져 왔는지.
이건 말로 옮길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그 어떤 달변가도, 그 어떤 역사가(歷史家)도 저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과 글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걸 알지 못한 것이 여사혼의 실수였고, 빙궁의 실수였다.
여사혼은 이제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질리고 눈앞이 아찔했다.
“아…….”
그의 눈이 공포와 혼란으로 뒤섞여 제멋대로 흔들렸다.
“자, 장로님!”
“…….”
“장로님! 지시를!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장로님!”
상황이 최악에 치닫자 주변에서 여사혼을 불러 대는 이들이 늘어만 갔다. 하지만 그는 석상처럼 굳은 채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새하얗게 질린 입술이 벙긋거렸다.
“장로님! 정신 차리셔야 합니다! 장로님!”
진정한 용기란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드러나는 법이다.
얼음과도 같던 이성을 이제는 거의 잃어버린 빙궁이지만, 그 안에서도 무인의 혼을 간직한 이들이 분명 존재했다.
“비켜! 비키라고! 이 개 같은 새끼들아!”
“흐아아아악! 아아아악!”
그들은 미친 파도처럼 역으로 밀려드는 동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체분시 되어 튕겨 나가는 동료들의 처참한 시신이 보였다.
으드드득.
짓깨문 입술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 마귀 같은 놈들.’
말로는 소용이 없다.
한번 용기를 잃은 이들은 어떤 말로도 진정되지 않는다. 이들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은 맞설 수 있단 사실을 보여 주는 것뿐이다.
퍼억!
어깨가 연신 맞부딪혔다.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선 빙궁의 무사는 검에 있는 대로 내력을 밀어 넣었다.
“흐아아아아압!”
그리고 동료가 쓰러지는 틈을 타 혼신의 일격을 찔러 넣었다.
푸욱!
무사가 눈을 부릅떴다.
그가 찔러 넣은 검이 마교도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이리 간단하게 공격에 성공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그는 되레 더 당황했다.
하나 그 순간.
검게 물든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린 마교도가 제 배에 틀어박힌 검 날을 그대로 움켜잡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빙궁의 무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웃어?’
악귀처럼 일그러진 얼굴은 섬뜩하고 괴이했지만, 그 위에 떠오른 건 분명…… 웃음이었다.
챙!
마교도의 손에 잡힌 검 날은 그대로 부러져 나갔다.
그 바람에 있는 힘을 다해 검을 밀어 넣고 있던 빙궁도는 반동으로 휘청거렸다.
덥석.
마교도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콱 움켜잡았다.
“컥!”
금방이라도 목을 부러뜨릴 듯 힘껏 조여 오는 손에, 몸부림치던 빙궁도의 몸은 점차 뻣뻣하게 굳어 갔다.
자신의 손에 잡힌 빙궁의 무사를 가만히 노려보던 마교도는 남은 한 손으로 배에 박힌 검 날을 쑥 뽑았다.
“……벌레 같은 놈이.”
푸욱!
그리고 그대로 빙궁도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푸욱! 푸욱! 푸욱!
순식간에 이어진 십여 번의 칼질이 빙궁도의 상체를 난자하고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금방 숨이 끊긴 몸뚱이를 휙 바닥에 내친 마교도는 그대로 두개골을 짓밟았다.
콰드드득!
그 참상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빙궁도의 용기는 분명 훌륭했다. 하지만 그 용기는 결과적으론 동료들을 더욱 공포에 질리게 만들고 말았다.
마교도가 배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손으로 훑었다. 손끝에 진득한 피가 묻어났다.
붉은 피를 모두에게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천천히 보던 마교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다시 앞을 응시했다. 그리고 상처 입기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기세로 빙궁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 분명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임에도.
그 사실이 빙궁에 가져다준 것은, 절망 그 자체였다.
무너진다.
마교도들이 몰고 온 암운이 순백의 성을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작게 난 두 개의 창을 통해 아래를 내려다보던 화산의 제자들은 충격으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고, 간간이 긴장 섞인 숨소리만이 울렸다.
뚜욱.
백천의 턱 끝에서 떨어진 땀이 바닥에 스몄다.
땀을 흘리는 건 백천뿐만이 아니었다.
나름 여러 지옥을 헤쳐 나왔다고 자신했건만, 이런 지옥은 본 일이 없었으니까. 화산 제자들의 얼굴은 숫제 백짓장처럼 새하얬다.
“……사, 사숙.”
“…….”
당소소가 먼저 어렵사리 입을 열자 백천은 말없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게 마교란 말인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청명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확실히 이건 눈으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광경을 몸으로 느끼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이건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교도들의 무위가 백천이 일 검으로 베어 낼 수 있을 만큼 낮았다 하더라도 지금 가슴에 진득이 스민 섬뜩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청명은 마교 놈들이 하나같이 미친놈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조금도 틀린 게 없다. 아니, 겨우 그런 말로는 저놈들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혜연이 연신 불호를 외어 댔다. 껄끄러움과 당혹으로 시작된 불호의 끝엔 분노가 묻어났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눈을 질끈 감은 그의 모습은 차마 바라보기 힘들 만큼 애처로웠다.
“어찌…… 어찌 사람이……!”
윤종 역시 치를 떨며 이를 갈아붙였다.
“사형. 진정하십시오.”
조걸이 그런 윤종의 어깨를 꽉 움켜잡으며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윤종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람이 저럴 수는 없어. 사람이 저래서는 안 되는 거다!”
그도 그럴 게, 곤죽이 되어 버린 빙궁 무사들의 시신은 지금도 늘어 가고 있었다.
겨우 오십여 명이었다.
형편없는 수의 마교도가, 수백 년 역사를 이어 온 빙궁을 말 그대로 유린하며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일개 종교에 불과한 마교를 정과 사는 물론이고 새외까지 힘을 합쳐 막아 내야 했던 이유를 이제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왜 청명이 마교라는 이름만 나오면 그리 치를 떨었는지도 말이다.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이들이 질러 대는 비명 소리.
몸이 찢기며 내지르는 마지막 단말마.
이게 어찌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할 수 있는가.
“아미타불.”
혜연이 반장을 하며 불호를 외었다.
“인세에 이런 지옥이 펼쳐져서는 안 되는 것이외다. 이런 일은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이런…….”
무언가 더 말을 이으려던 그는 입을 꾹 닫았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든 모양새였다.
“사형.”
그때 침묵만 지키던 유이설이 입을 열었다.
“무너져요.”
“…….”
그랬다. 백천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전의를 상실한 빙궁의 무사들이 공포에 질려 달아나고 있었다.
“어떻게 하죠?”
당소소의 물음에 백천이 고개를 획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아직인가?’
그렇겠지. 운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까.
“……일단은 조금 더. 조금만 더 기다리자.”
백천이 입술을 질끈 깨문 그 순간이었다.
성벽 위에서 한 사람이 고고하게 뛰어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피와 죽음밖에 남는 것이 없는 전장.
찢긴 시체와 흘러내린 피로 검붉게 물들어 버린 땅 위를, 검은 피풍의로 몸을 감싼 한 사내가 산보하듯 가볍게 걸었다.
마귀의 대지를 걷는 수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