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화. 밥 잘 주면 좋은 사람이지! (2)
짙은 어둠이 진득하게 드리워진 공간.
몇 개의 작은 촛불들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빛이란 본디 어둠을 밀어 내는 것. 하지만 이 공간의 어둠은 그 법칙을 무시하고 빛마저 짓눌렀다.
힘겹게 뒤흔들리는 촛불만이 깜박이는 가운데, 숨결마저 얼려 버릴 듯 지독한 한기가 사방을 휩싸고 돌았다.
한빙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니겠는가?
음침하고 황량한 그 공간 한가운데에는, 한 사내가 엎드려 있었다.
인간이 표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경은 무엇일까?
이 사내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머리와 양쪽 팔꿈치. 그리고 양무릎을 바닥에 댄 채, 지옥처럼 불어오는 삭풍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 한기가 주는 고통마저도 감사하다는 듯 더없는 공경을 표하며 말이다.
천장에서부터 드리워진 거대한 천은 사내의 눈앞에 신상처럼 내려와 있었다. 그곳에 새겨진 형상은 섬뜩할 만큼 기괴했다.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
삼두육비(三頭六臂)의 거대한 아수라 형상이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거렸다.
아무리 철석간장을 지닌 이라고 해도, 이 형상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형상의 앞에 조아린 사내에게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더없는 경건함만이 존재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사내의 입에서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이 어구를 대체 몇 번이나 외었던가?
수천, 수만, 어쩌면 수억.
그리 외우고 또 외웠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그저 바람으로만 남았었다.
하지만 그 인고의 시간 끝에, 이제 곧…….
쿵!
사내가 돌연 바닥에 머리를 세게 찧었다. 그리고 팔꿈치와 무릎으로 바닥을 강하게 눌렀다.
끝도 없이 반복해 온 행위는 고스란히 그 흔적을 남긴다. 얼마나 같은 행위를 반복해 왔는지, 동혈의 바닥에는 그가 머물렀던 자리가 흡사 파 놓은 것처럼 새겨져 있었다.
“바치나이다.”
더없이 경건한 제례(祭禮)가 이어지던 그 순간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아주 작은 발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모든 신경을 발끝에 집중한 듯 조심스런 발걸음이 조금 먼 곳에서 끊겼다. 이어, 긴장을 차마 숨기지 못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교시여.”
“…….”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사내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교시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영혼의 한 줌까지 모두 모아 경배한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아수라의 형상이 을씨년스럽게 펄럭였다.
사내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으되, 비단 그곳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눈앞의 형상을 넘어 그 뒤의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선명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낮게 중얼거린 사내가 다시 바닥에 머리를 짓찧었다.
그리고.
질질질질.
양팔과 무릎,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붙인 자세 그대로 뒤로 기어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황제에게조차 보이지 않을 경배였다.
감시하는 이가 없고, 지키라 겁박하는 이도 없지만, 사내는 단 한 순간조차 경배를 잊지 않았다. 단 한 줌의 내력도 끌어 올리지 않은 채, 온전히 그 육체만으로 고통을 감내한 것이다.
사내는 공간의 끝에 다다라서야 천천히 그 몸을 일으켰다.
주륵.
바닥에 쓸린 이마가 찢기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는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부복하고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내내 하나의 염원에 잠겨 있던 그의 눈에 북풍한설보다 차가운 살기가 일렁였다.
“감히…….”
이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부복한 이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부복한 이의 전신이 뒤틀렸다.
“끄륵…….”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전신에서 소름 끼치게 새어 나왔다. 하지만 당하는 이는 감히 비명을 지를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입을 열어 이 공간을 더럽히는 순간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죽음이 기다릴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감히 배알의 의식을 방해하다니. 그 몸이 천참만륙 나고, 영혼이 업화(業火)에 불타올라야 그 죄를 알겠느냐.”
입과 코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하지만 부복한 이는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그저 사내의 처분을 기다릴 뿐이었다.
차가운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의 입에서 무감정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고하라. 그 목숨을 걸고 고할 것이 있다면, 들어 주고 죽이는 것이 도리겠지.”
“주, 주교시여.”
“고하라.”
부복한 이가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짜냈다.
“흑 이십칠 호가……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끝나는 순간, 전신을 짓누르던 압력이 씻은 듯 싹 사라졌다.
쿵!
갑작스러운 해방에 쓰러지며 머리를 바닥에 찧은 그는 재빨리 다시 부복했다.
“복귀를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주교라 불린 이는 생각에 잠긴 듯 잠깐 말이 없었다.
이곳은 백색의 대지.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방해할 만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흑 이십칠 호가 어떤 임무를 맡았었느냐?”
“북해의 민가들을 정탐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주교는 슬쩍 부복한 이를 내려다보았다.
딱히 어려울 것이 없는 임무다. 그럼에도 복귀를 하지 않았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단 하나뿐이었다.
주교의 고민이 깊어지는 듯하자 부복한 이가 슬쩍 입을 열었다.
“조사합니까?”
주교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기껏해야 주제를 모르는 놈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온 것이겠지만…….”
그의 눈이 차게 빛나고 있었다.
“천려일실(千慮一失)이라 하였다. 찾아내라. 찾아내어 감시하라. 만에 하나 그들의 존재 때문에 거사를 망치게 된다면 지옥 불에 억겁의 시간을 불탄다 해도 그 죄를 다 씻을 수 없을 것이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령을 마친 주교는 부복한 이를 슬쩍 노려보았다.
“이번 한 번은 네 잘못을 용서하겠다. 명심하라. 네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너의 무례 역시 천마께로 향한 충심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너를 결코 살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감읍하옵니다.”
쿵!
부복한 이가 바닥에 머리를 강하게 내리찧었다. 금세 피가 흘렀지만 그런 것쯤은 조금의 문제도 되지 않는 듯했다.
주교는 그를 가만 내려다보다 느리게 말했다.
“재림의 때가 다가왔다.”
아수라의 형상에게로 돌아간 그의 시선은 어느새 환희와 광기로 번뜩이고 있었다.
“백 년의 기다림이 마침내 그 결실을 맺을 때가 되었다. 이제 불과 며칠! 기나긴 기다림에 비한다면 찰나와도 같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자 부복한 이는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주교의 목소리가 어둡고 차가운 공간을 울렸다.
“오롯하신 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는 날, 세상은 정화의 화(火)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천마재림! 만마앙복!”
“그날이 온다면 저 간악한 불신자들은 세상을 뒤엎는 겁화에 불탈 것이고, 천마의 재림을 믿지 않던 배교자들은 신앙을 가장한 오만의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주교의 눈에 환희가 깃들었다. 마치 눈앞에 겁화가 일렁이는 것처럼.
하지만 그도 잠시, 그의 눈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 그러니 만전을 기하라.”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주교는 아수라의 형상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부복한 이는 그대로 조용히 몸을 일으켜 동혈(洞穴)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주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마시여.”
동굴에 점점 퍼져 나가는 목소리에 한(恨)이 가득했다.
“이 몸을 제물로 받으시고, 세상에 강림하시어 저 죄 많은 것들을 벌하시옵소서.”
사내는 천천히 그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동혈의 중앙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더없이 낮은 자세로.
* * *
“와…….”
“신기하네.”
새하얀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지금껏 보지 못했던 별세계가 펼쳐졌다.
화산의 제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연신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중원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문파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까운 형태였다.
“어쩐지 성벽이 무지 크더라.”
“중원의 성도(省都) 같네요.”
딱히 새로운 양식은 아니지만, 이 척박한 북해에 이만한 규모의 도시가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민가로 보이는 건물들 사이사이로 지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역시 화산의 제자들을 내내 흘끗흘끗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중원인을 오랜만에 보는 모양인데? 무척이나 신기한 모양이야.”
윤종의 말에 조걸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냥 사람이 수레를 끄는 꼴이 신기한 거 아닐까요?”
“…….”
아……. 그러네.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서 생각을 못 했네.
그때 당소소의 시선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사람들의 면면을 살핀 그녀는 길을 안내하는 빙궁의 무사에게 물었다.
“이 사람들도 모두 빙궁도들인가요?”
그러자 선두에서 인솔하던 냉막한 인상의 사내가 얼굴을 굳힌 채 그녀를 돌아보았다.
뭔가 고민하는 듯하던 그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궁주가 인정한 손님의 질문은 무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지는 않소.”
“그럼 이들은 누군가요?”
“이들은 북해의 주민들이오. 빙궁도라 함은 빙궁의 무학을 익히는 무인들을 의미하지. 이들은 그저 빙궁의 은혜를 입은 평범한 주민들일 뿐이오.”
당소소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의 핏줄들이 모여 사는 당가타와 비슷한 형태인 모양이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핀 사내가 굳이 묻지도 않은 말을 꺼냈다.
“빙궁은 믿고 따르는 이에게 은혜를 내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소.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빙궁을 더없이 신뢰하는 이들이지.”
당소소의 눈이 슬쩍 못마땅하게 가늘어졌다.
그녀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유이설이 빠르게 소매를 살짝 잡아당겨 막았다.
“…….”
결국 당소소가 마지못해 입을 꾹 닫았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지려는 찰나, 뒤쪽에서 따라오던 청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 건데요?”
“당연히 빙궁이지.”
사내가 고개를 들어 높이 솟아 있는 성을 바라보며 답했다.
“그대들은 빙궁의 손님이니까.”
“흐응.”
청명이 재미있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다. 목에 달라붙은 백아가 그런 그의 턱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마을의 중앙으로 난 길을 꽤 걸어간 끝에야, 마침내 빙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손님께서 당도하셨습니다!”
인솔하던 사내가 소리치자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드시지요.”
“예.”
백천이 대표로 대답하고는 일행을 돌아보았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나지막이 주의를 주자 청명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쯧. 얘들이 애도 아니고.”
“청명아.”
“응?”
“너 말이다, 너.”
“내가 뭘? 나만큼 신중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 것 같아?”
“……확실히 너 같은 놈이 또 있으면 안 되지.”
그건 파멸이지. 파멸.
한숨을 내쉰 백천이 수레를 내려놓고는 앞으로 나섰다. 화산의 제자들이 그를 따라 빙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그들의 입은 모두 반쯤 멍하니 벌어져 있었다.
“……화려하네요.”
“그러게.”
안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더없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재질의 천들로 벽을 치장했고, 중간중간 놓인 장식들은 문외한인 그들이 보기에도 값지고 귀해 보였다.
더욱 대단한 건, 복도의 그 어떤 곳도 빠짐없이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다는 거였다.
소탈함을 기본으로 삼고 도가에서 자라난 화산의 제자들은 그 휘황찬란함에 미묘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소림에서 자라난 혜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아미타불. 실로 지나치게 화려하외다.”
“그렇지요?”
“이곳을 꾸밀 돈이면 더 많은 이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을.”
모두가 혜연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헤헹!”
“…….”
등 뒤에서 노골적인 코웃음 소리가 들렸다. 혜연이 떨떠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청명이 같잖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주……. 또 왜 그러시오?”
“아니, 뭐. 다른 사람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좀 웃겨서 그러지.”
“……뭐가 말이오?”
“소림에 있는 금불상(金佛像) 하나가 얼만지는 알고 그러냐? 뭐? 여기가 화려해? 야, 너희 대웅전 하나 팔면 마을 하나를 먹여 살려요! 마을 하나를!”
“그, 그건…….”
“어디 네가 이런 걸로 남을 욕해? 중원에서 소림보다 돈 많은 문파가 있을 것 같냐? 차라리 여기가 낫지! 거 써먹지도 못할 금불상을 수십 개는 쌓아 놓고 있으면서, 뭐? 화려? 에라이!”
청명의 신랄한 말이 쏟아지자 잔뜩 시무룩해진 혜연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청명은 고개를 저으며 쐐기를 박았다.
“여하튼 인간들이 제 눈에 들보는 못 보는 법이라니까!”
듣다 못한 백천이 한숨을 내쉬며 슬쩍 말렸다.
“그 불상을 혜연 스님이 만든 것도 아닌데, 왜 애먼 혜연 스님을 타박하느냐.”
“그래서 소림 방장도 타박하잖아!”
……어?
그러고 보니?
멍하니 납득할 뻔한 백천이 퍼뜩 고개를 내저어 정신을 차렸다.
“크흠, 여하튼 조용히 하거라. 여기는 빙궁이다.”
“뭐, 빙궁이 별거라고.”
“……제발 그 주둥이 좀 다물라고, 제발 좀!”
백천이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듯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놈을 데리고 빙궁주를 만나도 괜찮을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백천의 그 생각은 이미 때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복도가 끝났고, 이내 거대한 대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와…….”
“우와…….”
화산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앙에 있는 커다란 옥좌가 희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저거 백금(白金)인가?”
“세상에 백금 옥좌라니.”
“……부자다.”
마지막 말은 당연히 청명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청명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눈을 빛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와는 달리, 다른 제자들은 이 화려함에 압도된 듯 조금 주눅 든 반응을 보였다.
바로 그때.
“궁주께서 드십니다!”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그들이 들어왔던 문의 반대편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백곰 가죽을 두른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저 사람이 빙궁주로구나.’
‘과연.’
탄탄한 체격과 새하얀 피부,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흉터가 인상적인 사내였다. 그는 청명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걸어왔다.
저벅. 저벅. 저벅.
그 기세가 과연 지금껏 화산의 제자들이 만난 절대자들에 비해 결코 부족함이 없었다. 북해빙궁의 궁주라는 자리는 거저먹는 것이 아니라는 듯.
그런데…….
‘왜 계속 오지?’
‘어디까지 오는 거지?’
적당한 거리에서 옥좌로 향할 줄 알았는데, 사내는 아예 일직선으로 이쪽을 향해 계속 다가왔다.
저벅.
이윽고 백천과 청명의 한 발짝 앞에 다가선 사내는 냉막한 얼굴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
“…….”
차가운 긴장이 흘렀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빙긋.
사내의 얼굴이 일순 부드럽게 풀리더니 더없이 사람 좋아 보이게 웃었다.
“누가 화산신룡인가?”
“전데요?”
청명이 대답하자 빙궁주가 손을 불쑥 뻗더니 그의 손을 꽉 움켜잡았다.
“내 야수궁주에게 이야기 들었네! 어서 오시게! 빙궁은 화산파를 진심으로 환영하네!”
빙궁주는 더없이 환히 웃으며 청명의 손을 크게 흔들었다.
엥?
이거 생각한 거랑 반응이 좀 다른데?
……혹시 이 양반 좋은 사람인가?
에이,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