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4)
“문 열어요!”
“…….”
“이 문 당장 열라고요! 당신들 지금 몸이 아프죠?! 나는 의원이에요! 상태를 봐야 하니 지금 당장 문 열어요! 어서!”
“…….”
아무리 불러 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백천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려는 찰나, 당소소가 눈을 치켜세웠다.
“사숙.”
“으응?”
“이거 부숴요.”
“…….”
“뭐 해요! 당장 부수지 않고!”
“아, 알았다!”
우지끈!
백천이 문을 꽉 잡고 강제로 뜯어냈다.
문이 떨어져 나가기가 무섭게 당소소가 바로 박차고 들어갔다. 문을 내팽개친 백천이 다급하게 뒤따랐다.
“오, 오지 마!”
안에 있던 두 사람이 겁에 질린 채 외쳤다. 부지깽이를 든 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여인,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아이……!’
당소소의 눈에서 불이 확 뿜어졌다.
“비켜요!”
“내, 내 애는 안 돼!”
“해치려는 게 아니니까 비키라고! 이러다 애가 죽는다잖아!”
당소소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이 앞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여인이 움찔했다. 그러더니 혼란스러운 눈으로 당소소와 백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 비키면 강제로 끌어낼 수밖에 없어요. 험한 꼴 당하고 싶지 않으면 비켜요!”
“…….”
여인은 겁에 질리는 와중에도 혼란스러운 듯 눈물을 글썽였다. 당소소는 그런 여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의원이에요.”
“…….”
“반드시 고쳐 줄 테니까, 애를 보게 해 주세요.”
당소소는 소매 안에서 침통을 천천히 꺼내 보였다. 퀭한 눈으로 침통을 확인한 여인이 덜덜 떨며 물었다.
“저, 정말 의원인가요?”
“예.”
“정…말이죠?”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애는 죽어 가요.”
그제야 여인이 부지깽이를 내리고 힘없이 옆으로 비켜났다. 당소소는 다급하게 아이의 곁에 앉아 맥을 짚었다.
“……약해.”
맥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희미하고 약했다.
당소소는 거침없는 손길로 아이의 이불을 걷어내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냐, 소소야?”
“몸을 확인해야 해요!”
“찬바람이 들어오는데…….”
“그럼 가서 막아!”
“예!”
백천이 바람같이 달려가 뜯겨 나간 문을 들고 입구를 틀어막았다. 멀찌감치 있던 조걸도 화들짝 놀라서 문을 같이 잡아주었다.
‘뭔 말을 못 하겠네.’
‘쉿. 조용히 하십시오. 얻어맞습니다.’
마을에 병이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당소소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움직였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유이설조차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의 몸을 확인한 당소소는 미간을 찌푸렸다.
“홍반(紅斑)……. 작은 홍반에 울혈(鬱血).”
이불을 다시 덮은 그녀는 이번엔 아이의 입을 열어 안쪽을 살폈다.
“……잇몸이 내려앉았어.”
조금 전 확인했던 사내의 증세와 대동소이했다.
“언제부터 이랬죠?”
“……한, 한 달 전쯤부터입니다.”
“의식은?”
“잠이 많아졌지만, 의식은 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의식이 잘 돌아오질 않아요…….”
“쓰러지기 전에는 어땠나요?”
“쓰, 쓰러지기 전이요?”
당소소가 여인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긴장하지 말고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평소와 다른 게 있었으면 뭐든 좋아요.”
“네, 네!”
한결 부드러워진 당소소의 목소리에 여인도 긴장이 조금 풀린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애가 갑자기 힘이 없어지고, 잠이 많아졌었어요. 그리고…… 코피를 자주 흘렸어요.”
“코피?”
“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당소소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술을 질끈 깨문다.
“사람을 모아…….”
쿵쿵쿵쿵쿵!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문을 과격하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백천이 당황한 눈으로 당소소를 돌아보았다. 잠깐 문을 노려보던 당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요.”
백천과 조걸이 문을 옆으로 치우자, 전신에 털가죽을 걸친 사내들이 흉흉한 기세로 창을 겨누고 있었다.
“뭐 하는 짓들이냐!”
“감히 외부인이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다니!”
눈빛에 경계심과 살기가 가득했다.
백천은 난감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눈빛이야 매섭고, 들고 있는 창은 더없이 날카롭지만, 이들은 결국 그저 양민에 불과하다.
게다가 다들 비슷한 병에 시달리는 건지,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고 창을 든 손도 맥없이 떨리고 있었다.
“비켜 보게.”
“촌장님!”
“비켜 보라니까.”
사내들이 좌우로 비켜나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나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 마을의 촌장이십니까?”
“그러하네. 그대들은 외부인이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마을에서 나가 주게나.”
“안 돼요.”
“……안 된다고?”
“네, 안 돼요.”
당소소가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보면 모르겠어요? 다들 병에 걸렸어요.”
“알고 있네.”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고요!”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예?”
당소소의 눈이 확 커졌다.
이 노인이 지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지만 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오히려 당소소 쪽이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외부인들이 머문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우리는 어차피 모두 죽네. 조금이라도 우릴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마을을 떠나 주게.”
너무 단호한 태도였다. 백천은 무어라 설득해 보고자 입을 뗐다.
“어르신, 저희는 이 병을 치료하고 돕고자……!”
“자네들이 마귀를 감당할 수 있는가?”
“…….”
“자네들이 떠나 주지 않으면 우린 큰 화를 입게 되네.”
그러자 듣고 있던 당소소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미 화는 벌어졌어요.”
“…….”
“이 병이 마귀예요. 이대로 가면 다들 얼마 못 가 죽을 거예요! 보면 모르시겠어요? 빙궁도고 뭐고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이 병이 문제라고요!”
노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세.”
“뭐라고요?”
“지금 북해에는 악귀들이 있네. 그 악귀들이 퍼뜨린 병이니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지.”
“……그게 무슨…….”
그때 백천이 자그맣게 속삭였다.
“마교를 말하는 것 아닐까?”
“……마교가 병을 퍼뜨렸다고?”
노인이 자글자글한 눈으로 당소소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내 살아생전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병이네. 그 악귀들이 부쩍 이곳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 병이 생겨났지.”
“…….”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당소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람의 손으로 어찌할 수 없는 병 같은 건 없어요!”
“…….”
“설사 그런 병이 있다고 해도, 포기하는 게 용납될 리가 없잖아요. 다른 것도 아니라 목숨이 달린 거라고요! 마귀니 어쩌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의원은 병을 두고 물러나지 않아요.”
당소소의 눈이 노인을 똑바로 응시했다.
불에 타는 듯한 그 눈빛에, 노인이 나지막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우리도 노력할 만큼 해 보았네. 하나…….”
“아직 덜 한 거죠.”
“자네가 치료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겐가?”
“치료할 수 없다고 해도 노인장처럼 손을 놓지는 않을 거예요.”
당소소와 노인의 눈빛이 허공에서 얽혀 들었다.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노인이 결국 먼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치료를 할 자신이 있는가?”
“최선을 다할 거예요.”
“최선이라…….”
노인은 문득 고개를 돌려 열린 문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눈이 그쳐 있었다.
“……그건 정말 오랜만에 듣는 말이로군. 이 북해에서는 말이야.”
조금 씁쓸한 듯 하늘을 보던 노인이 가만히 입을 열었다.
“엄효(嚴效).”
“예, 촌장님.”
“마을 사람들에게 일러 이 의원님께 진맥을 받으라 하게. 협조할 수 있는 건 모두 협조하라고 해.”
“하,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지.”
“…….”
“시키는 대로 하게. 책임은 내가 지지.”
“……알겠습니다.”
노인이 당소소를 돌아본다.
“문제가 있으면 나를 찾아오게나.”
“……고맙습니다.”
“부탁하네. 꼭 우리 마을 사람들을 살려 주게나.”
“노력하겠습니다.”
당소소의 대답을 들은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화산의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들의 눈에도 단호한 결의가 어렸다.
“소소야! 이제 나는 뭘 하면 되냐! 뭐든 시켜라 내가 어떻게든 해내마!”
“사숙!”
“응?”
“청명 사형 잡아 와요. 당장!”
“…….”
그거…….
시작부터 너무 무리한 지시 아니니?
응?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농부는 농사를 잘 지어야 하고, 검객은 검을 잘 휘둘러야 하며, 학사는 학문에 능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청명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중얼거린다.
“……이게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지?”
“네.”
“꼭 내가?”
“네.”
“굳이?”
“아, 정신 사나우니까 조용히 좀 해 봐요!”
“…….”
당소소의 외침에 입을 다문 청명이 조금 서글픈 눈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푸른 하늘이 아니라 시커멓고 거무튀튀한 솥뿐이었다.
“아니!”
청명이 머리에 이고 있던 솥을 움켜잡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불은 뒀다가 국 끓여 먹냐? 어? 내가 왜 이걸 데우고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여긴 중원이랑 달라서 큰 솥을 걸 만한 화로가 없단 말이에요!”
“저기 집 안에 화로 천지더만!”
“그건 굴뚝을 부숴야 하잖아요! 그리고 솥을 올릴 만한 곳이 아니에요!”
“그럼 화로를 만들면 되지!”
“아, 거 말 많네! 진짜 확!”
“어?”
청명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이, 이 위아래도 없는…….”
“화산에 위아래가 어디 있어, 이 양반아!”
“…….”
그녀가 쐐기를 박자 청명의 눈가에 이슬이 고였다.
‘장문사형.’
내 이리 삽니다.
내가 이리 산다고요!
- 뭐 틀린 말도 아니구먼.
“카아아악! 이 양반이! 그게 당신이 할 소리야?”
“뭐래?”
“끄으으으응.”
청명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앓느니 죽어야지.
당소소는 약재를 솥에 올리며 말했다.
“바로 만든 화로로는 불 조절이 안 돼요. 하루 동안 동일한 화력으로 약재를 달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사형밖에 없단 말이에요!”
“…….”
“사람 살리는 일이잖아요. 부탁 좀 할게요. 정말 사형밖에 없어요. 아니면 여기 사람들 다 죽어요. 사형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요!”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청명의 어깨가 미묘하게 살짝 올라갔다.
“뭐…… 내가 안 한다고 했어?”
청명이 솥을 바로 잡는다.
“하루가 아니라 이틀이라도 문제없으니까 빨리 시작해!”
“고마워요, 사형! 일단 솥을 좀 더 데워 주세요.”
“오냐!”
청명이 솥에 열양지기를 밀어 넣었다. 순식간에 솥이 달아오르며 그 안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일행들은 연이어 감탄사를 내놓았다.
“잘 다루네.”
“진짜 잘 구슬리네.”
“진즉에 저렇게 해 볼걸.”
“아미타불. 당소소 시주도 시주지만, 저리 보니 청명 시주도 참으로 사람 같지 않습니까?”
“아, 그건 아니죠.”
“…….”
당소소가 택한 저 방법은 정말이지, 쉽지 않고 대단한 방법이었다.
청명은 칭찬에 더럽게 약한 인간이지만, 그를 자세히 알게 되면 차마 칭찬을 할 수가 없다.
특히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화산의 제자들에겐 무리였다. 그런데 저렇게 자연스럽게 칭찬하며 부려먹다니…….
“그런데 약재를 달이는 걸 보면, 벌써 병이 뭔지 알아낸 겁니까?”
조걸의 물음에 유이설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몰라.”
“그럼……?”
백천이 한숨을 쉬며 말을 대신 답해 주었다.
“일단은 당장이 급하니 보약이라도 써서 기운을 북돋워야 한다고 하는구나. 근본적인 치료는 아니지.”
“…….”
“화산에서 약재를 두둑이 챙겨 온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정말 손도 쓰지 못할 뻔했어.”
새삼 현영의 준비성에 감사하는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그런데…… 보약으로는 결국 치료가 안 되잖습니까.”
“일단 급한 불만 꺼 놓고 병을 알아내야지.”
“……우리가 모르는 병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다 해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윤종이 살짝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활인(活人)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화산의 검을 들 자격이 없다. 눈앞의 사람을 구하려 하지 않는 이가 어찌 협을 논하고, 도를 논하겠느냐!”
“……아뇨,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조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증상이 있던데…… 이건 전염병 아닙니까? 혹여 저희가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이번 북해행은…….”
“됐다.”
하지만 백천은 단호하게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
“네 말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저리 최선을 다하는 화산의 막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예, 사숙.”
백천은 솥 안에 약재를 쏟아붓고 심혈을 기울이는 당소소를 보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저 아이가 상처받지는 않아야 할 텐데.’
당소소의 어깨에 얹어진 짐이 너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