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5화. 뭐 이딴 동네가 다 있어? (5)
카앙!
북해빙궁의 궁도들이 날려 대는 도격은 북풍한설(北風寒雪)이라는 말에 딱 어울릴 만큼 강하고 날카로웠다.
예전에 보았던 팽가의 도(刀)에 비해도 큰 손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들이 비무대회에서 본 것은 미숙한 후기지수들이 사용한 것이니 진정한 팽가의 도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고려한다 해도 그 역시 팽가의 도. 그와 비견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빙궁 무사들의 무위가 무척 뛰어나다는 건 충분히 증명되었다.
과연 새외오궁 중 하나인 북해빙궁의 무사들이었다.
하나 안타까운 것은, 화산오검의 무위는 이제 그 수준을 가뿐히 뛰어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그그극!
검이 무서운 기세로 날아든 도를 밀어 냈다.
‘이, 이런…….’
빙궁도들을 이끄는 초겸(礎謙)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기본적으로 도는 검보다 무거운 무기. 같은 힘을 가진 자가 다룬다면 절대 검에 밀려날 리 없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낭창하게 휜 저 검이 지금 그의 도를 밀어 내고 있었다.
‘어, 어떻게?’
도 너머로 전해지는 힘이 어마어마했다.
심지어 상대는 그리 힘을 쓰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의 도는 속절없이 밀려나기만 했다.
“이, 이놈!”
순간적으로 힘을 준 초겸이 검을 떨쳐 내고 거리를 벌리려 시도했다. 하지만 도에 달라붙기라도 한 양, 상대의 검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짓눌러 왔다.
‘무, 무슨 내력이…….’
힘도 내력도 모두 상대가 앞선다.
지금 상대하는 이의 얼굴이 젊디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아아아아앗!”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린 초겸은 가까스로 검을 콱 밀치고는 뒤로 구르듯 빠져나왔다.
“후욱!”
입에서 거친 숨이 토해졌다. 단 일 합의 교환만으로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릴 만큼의 심력을 소모해 버렸다.
“……너희는 누구냐?”
처음과는 달리 확실히 긴장감 어린 목소리로 그가 묻자, 검을 겨누고 있던 백천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건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보단 그쪽이 계속 싸울 생각인지가 중요하겠죠.”
“건방진 놈이!”
초겸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저건 그를 완전히 아래에 두고 있는 발언이다.
“힘이 좀 세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 것 같더냐? 그 오만함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지.”
그 순간 초겸이 들고 있던 도의 끝에 새하얀 서리가 어리기 시작했다. 북해빙궁 특유의 음한기공(陰寒氣功)을 극성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도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기를 느낀 백천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일단 첫 번째로…….”
그리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입을 뗐다.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데, 저는 그쪽을 얕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될 수 있으면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이죠.”
초겸의 눈가가 살짝 꿈틀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백천의 말은 그의 속을 완전히 뒤집다 못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저희 문파에서 저는 그리 힘이 센 편도 아닙니다. 몸을 좀 단련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
“이 자라 새끼가!”
눈이 뒤집힐 만큼 노기를 터트린 초겸이 백천을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었다.
“왜 화를 내고 그러시는지.”
백천이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한숨을 쉬며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콰앙!
검과 도가 맞부딪치는 순간 커다란 폭음이 터져 나왔다.
예전이었다면 이만한 힘이 실린 도격을 정면에서 맞받았을 때 검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최소 날이 상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금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만년한철로 새로 제작된 매화검은 이 강력한 도격조차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하게 받아 내었다.
‘좋아.’
더없이 가볍고 더없이 강하다.
왜 저 청명이 놈이 좋은 검을 써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 댔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의 이점은 방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파아앗!
도격을 막아 낸 검이 더없이 쾌속하게 초겸을 노리고 움직였다. 그 어마어마한 속도에 초겸은 반사적으로 몸을 획 뒤틀었다. 하지만 검이 어깨를 스치는 것까지 피할 순 없었다.
솜을 덧댄 두꺼운 옷이 순식간에 갈라지며 핏물이 쭉 솟구쳤다.
재빠르게 검을 회수한 백천은 허공으로 튄 피가 눈밭에 채 떨어지기도 전에 연이어 초겸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큭!”
초겸은 빠르게 도를 휘둘러 그의 찌르기를 막았다. 하지만 중병(重兵)인 도로, 검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앗!”
이대로라면 손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당한다고 판단한 그는 도에 내력을 있는 대로 밀어 넣고 크게 휘둘렀다. 한두 군데가 꿰뚫리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의 몸에 기어이 상처를 내겠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백천은 그의 도가 움직이는 순간 아무런 미련 없이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휘이이이잉!
덕분에 도는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
욱신.
동시에 어깨에서 느껴지는 둔통에, 초겸은 멍한 얼굴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낮게 가라앉은 상대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등골이 오싹하며 전신에 소름이 내달렸다.
‘아직 이립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찌 저리 침착하단 말인가?’
날카롭다 못해 요사스럽기까지 한 검인데, 정작 그 검을 쓰는 백천에게서는 부드러움과 여유가 한껏 묻어난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그때 백천이 검을 아래로 가볍게 내리그었다.
“계속하실 겁니까?”
“…….”
“싸우지 않겠다면 이쯤에서 돌아가십시오.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미 생겼다.”
“흠.”
백천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제 검이 무정하다 욕하지 마십시오.”
백천이 바닥을 박차며 초겸과의 거리를 단번에 좁혔다.
카캉!
머리를 노리는 도를 튕겨 낸 윤종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확실히…….’
한철검은 그들의 검법에 한층 위력을 더해 주었지만, 지금 그의 검이 좀 더 여유를 가지게 된 이유는 단순히 한철검 하나에 국한되지 않았다.
‘하체에 힘이 붙었어.’
단단하게 바닥을 지탱하는 다리는 검을 더더욱 폭넓게 쓸 수 있도록 해 준다.
이제는 완연히 녹아든 자소단의 내력과 꾸준히 단련해 온 근력, 거기에 좋은 검과 태산도 떠받칠 수 있을 것 같은 하체가 합쳐지니 단기간에 실력이 배는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어라아아아앗!”
캉!
‘실전이라는 건 사람을 이렇게까지 단련시키는 건가?’
만인방과의 전투를 겪은 경험이 그의 안에서 고스란히 배어나고 있었다.
예전의 그라면 지금처럼 살기등등하게 날아드는 도를 맞이할 때 일단 움츠러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검을 보면서도 완전한 침착을 유지할 수 있었다.
탁!
막아 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발을 내뻗은 윤종이 상대의 도가 뻗어질 곳을 향해 미리 검을 찔렀다.
카앙!
“큭!”
휘둘러지지 못한 도는 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얇디얇은 검 끝이 무거운 도를 완전하게 제압했다.
세상이 확 트인 느낌.
눈앞에 있는 적과 싸우고 있음에도, 등 뒤와 좌우를 모두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황홀하기까지 한 감각에, 윤종은 낮게 심호흡하며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나는 강해졌구나.’
주변에 워낙 괴물 같은 이들만 있어서 실감하지 못했다.
청명은 말할 것도 없고, 백천이나 유이설만 해도 그가 따라가기에 요원한 이들이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굳이 그들을 논할 것도 없이 조걸만 해도 이제는 실력으로는 윤종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때문에 그는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들을 받쳐 주는 역할로 만족하려 했다. 하지만 이렇게 그의 검은 꾸준히,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었다. 아직 더 많은 길이 남아 있다는 듯 말이다.
윤종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상대를 밀쳐 냈다.
“나는 좀 더 강해질…….”
그때였다.
“우와아아아악!”
밀려 나간 상대를 쫓으려던 윤종이 그 자리에 우뚝 멈추고 획 뒤를 돌아보았다. 뒤쪽에서 적을 상대하던 조걸이 바닥을 굴러 상대의 도를 피하고 있었다.
“……너 뭐 하냐?”
윤종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묻자 조걸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벌떡 몸을 일으키며 하소연했다.
“사, 사형. 이게 잘 안 됩니다!”
“……무슨 개소리야.”
“그…….”
조걸은 적잖이 당혹한 얼굴로 제 검과 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 뭘 하려고 하면 자꾸 그게 튀어나온단 말입니다! 그게!”
“……그거?”
“아! 그거요, 그거!”
아, 그거.
윤종이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저건 언제 사람 되나.’
아무래도 검을 휘두를 때마다 자연스레 매화검법이 펼쳐지는 모양이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검결이 검에 녹아나는 경지에 들었다는 이야기니 칭찬해 주어야 마땅할 일이지만, 문제는 지금 그들은 정체를 숨길 필요가 있다는 것.
“에이! 뭔 놈의 검법을 이런 걸 만들어서는!”
“……넌 일단 주둥아리 한 대 예약이다.”
선조님들이 들으셨다면 매화 가지로 후려칠 말을 하고 있네!
사실 다른 문파의 검법이라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검법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대동소이한 편이니까.
하지만 꽃과 같은 검기를 쓰는 문파가 어디 또 있겠는가?
“기본 검술로 상대하라고, 기본 검술로! 이 답답한 놈아!”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니까요! 우와아아악!”
연신 날아드는 도격에 조걸이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윤종은 눈을 질끈 감았다.
걸아.
대체 잘되는 건 뭐가 있니?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안 되겠어.’
저 새끼를 밀어주느니 그가 강해지는 게 빠를 듯했다.
결심을 굳힌 윤종이 단호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괜찮으세요, 아버지?”
“……나, 나는 괜찮다.”
홍이명은 떨리는 눈으로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아이를 피하게 하고 다시 뛰어들 생각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의 예상과 사뭇 달랐다.
‘범상한 이들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건 숫제 그의 상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홍이명이 우둔했던 탓은 아니다. 저들이 풍기는 기운이 날카로운 건 알았으나, 나이를 감안했을 때 이 정도로 강할 거라 생각하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나 저 검수는…….’
가볍게 초겸을 상대하는 백천을 보고 있자니, 놀람을 넘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초겸이 누구인가. 북해빙궁에서도 나름 조장 급의 무력을 지닌 이다. 나이만 해도 백천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저 백천이라는 어린 검수에게 힘조차 써 보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백천뿐만이 아니었다.
쇄애액!
나비가 춤을 추는 것처럼 경쾌한 검이 도를 타고 올라가 손목을 연신 얕게 베었다.
“으윽!”
헛바람이 빠지는 것과 같은 신음이 들리기가 무섭게 검이 어깨를 가볍게 찌르고, 빙글 회전한 검병이 상대의 뒷머리를 가격한다.
그 일련의 과정이 놀랍도록 가볍고 쾌속했다.
“끄륵…….”
털썩.
기절하여 바닥에 쓰러진 이를 무감히 한번 응시한 유이설이 다음 상대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 유려한 움직임은 보는 이를 절로 감탄하게 할 만큼 대단했다.
‘하나하나가 절정의 검수라니.’
백천과 유이설뿐 아니라 저 윤종이라는 조걸이라는 이도 무척 강한 검수였다.
그리고.
“아미타불!”
번쩍!
“아아아아아아아악!”
눈부신 금광(金光)이 번쩍이더니 한 사람이 허공으로 튕겨 날아갔다.
이보다 비현실적인 광경은 세상에 없을 듯했다. 홍이명의 입이 절로 멍하니 벌어졌다.
‘대체 저 중은 또 뭐란 말인가?’
빙궁의 무사 하나를 홀로 맡아 분전하는 저 양 갈래 머리 여인의 실력도 분명 눈이 부시거늘, 주변을 지키는 이들이 워낙 비상식적으로 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약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곳에 모인 젊은 무인들이 하나같이 빙궁의 궁도들을 압도할 만큼의 실력자다.
“어떻게 이런 이들이…….”
하지만 그때였다.
“아, 진짜!”
수레의 짐칸에서 또다시 머리가 빼꼼 튀어나왔다.
“…….”
곰 가죽을 야무지게도 뒤집어쓴 청명이 머리만 내민 채로 온갖 짜증을 실어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빨리 끝내고 가자고, 이 굼벵이 같은 것들아! 뭐 하냐고!”
“…….”
저건…….
저건 대체 뭐 하는 놈이지?
홍이명은 생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류의 인간을 보며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