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3화. 뭐 이딴 동네가 다 있어? (3)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북해에서 마교의 종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은 이미 들었으니까. 게다가 청명은 이미 마화로 뒤덮인 시신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북해 현지인의 입에서 마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건너 건너 전해 듣는 것과는 그 무게감이 달랐다.
“……북해빙궁에서 마교를 끌어들인 건가?”
“아미타불. 아미타불. 어찌…….”
혜연이 연신 불호를 외어 대었다.
그의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북해인들은 마교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것입니까? 어찌 그런 사특한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말을 들은 홍이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북해라고 해서 어찌 마교를 모르겠소.”
“한데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혜연의 질문에 청명이 피식 웃었다.
“요 땡중이 또 순진한 소리 하고 있네.”
“…….”
“사람이니까 못 할 게 없는 거야. 세상에 절대 할 수 없는 일 같은 건 없거든.”
그게 설사 마교를 끌어들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특히나 권력이 걸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반목하던 외세를 끌어들이는 일 같은 건 대단히 특별한 일도 못 된다.
수많은 역사에서 많은 군주들이 그 길을 택했고…….
‘그리고 대부분은 그 대가를 치렀지.’
아마 지금의 빙궁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요?”
청명이 묻자 홍이명이 나직하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내가 뭘 자세히 알겠는가? 내가 아는 것은 그날 북해에 외지인들이 등장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빙궁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것뿐일세.”
“으음.”
백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는데?’
북해에서 마교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니 북해빙궁과 마교가 어떻게든 얽혀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아무리 마교가 강대하다 해도 북해 땅에서 북해빙궁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홍이명의 말대로라면, 북해빙궁과 마교가 아예 결탁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말이다.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모두 굳어졌다. 백천은 슬쩍 청명의 안색을 살폈다.
하지만 청명은 의외로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지금 빙궁의 내부 사정은 아무도 모르는 거네요.”
“아무도……라는 말은 조금 이상하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는 알 방도가 없지.”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황궁에서 큰 변이 일어난다고 해도 평범한 민초는 몇 년이 지나도록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북해에서도 외진 곳에 집을 짓고 사는 홍이명이 빙궁 내부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홍이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일 이후로 북해의 분위기가 많이 흉흉해졌네. 사람들이 자꾸 실종된다는 말도 들리고, 간간이 이어지던 중원과의 교역이 완전히 금지되었지. 그러다 보니 대부분 곡식을 구하지 못해 굶주리고 있다네.”
“흐음.”
“그리고 빙궁의 지시를 어기고 중원과 거래를 하려던 몇 사람이 본보기로 처형된 이후로는 그 누구도 중원인들과 감히 마주하려 하질 않아.”
“응? 저희도 중원인이잖아요?”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홍이명이 쓰게 웃었다.
“말했다시피 여기는 북해에서도 꽤나 외진 곳일세. 설마 빙궁이 외곽 구석에 처박혀 사는 나 같은 이까지 신경을 쓰겠는가?”
“하긴.”
청명이 볼을 긁적이더니 다시 물었다.
“그래서 전대 궁주는 어떻게 됐나요?”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음…….”
“다만 이미 혈사가 벌어진 지 몇 년이 되었음에도 말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렇겠네요.”
홍이명이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청명은 익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잠깐 생각에 잠긴 청명의 눈빛은 차게 식어 있었다.
‘마교, 반란. 그리고 궁주가 바뀌었다.’
듣기에는 그럴싸해 보이는 이야기다.
마교가 중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새외를 돌던 중, 그 설천상인지 뭔지 하는 놈과 결탁하여 빙궁을 장악하고 북해에 새로운 터전을 잡는다.
하지만…….
“좀 이상한데.”
“응? 뭐가?”
백천의 물음에 청명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냐, 아무것도.”
이건 청명이 알던 마교의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청명은 천마가 존재하지 않는 마교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는 알지 못하니 이상하다는 말이 의미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안 좋아.’
사실 이렇게 모여 앉아 걱정만 하는 것은 소용없고, 아무래도 좋았다.
눈으로 확인해 보면 결론이 날 테니까.
청명이 입을 다물자 백천이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럼 빙궁에서 중원인들을 배척한다는 건 사실인 모양이군요.”
“그렇다네. 자네들도 내지로 더 들어가면 환영을 받기 힘들 걸세. 어쩌면 그 이상의 일을 겪을지도 모르네. 무슨 용무로 빙궁에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 급한 일이 아니면 돌아가는 게 나을 걸세.”
“일단 명심하겠습니다.”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나 보군.”
홍이명이 쓰게 말하자 백천이 살짝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쪽도 놀러 온 건 아니라서요.”
“그럼 단단히 준비를 하고 떠나도록 하게나. 오늘은 여기서 묵어 가는 것이 좋겠군.”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백천이 정중히 사양하자 홍이명의 눈에 살짝 이채가 서렸다.
“모르는 소리. 북해의 밤은 낮보다 몇 배는 더 혹독하네. 평생을 북해에서 살아온 이들도 밤에는 함부로 집을 나서지 않는다네. 북해의 밤은 하루라도 덜 겪는 것이 좋아.”
“그, 그렇습니까?”
홍이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체력에 자신이 있는 자라고 해도 새벽의 칼바람을 맞으면 체온을 빼앗기고 순식간에 동사하지. 내 따로 쓰던 천막을 내어 줄 터이니 그걸 가지고 가게. 조금 손을 봐야 할 테니 내일까지는 여기서 묵고.”
“……그럼 염치 불고하고 조금 더 신세를 지겠습니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백천의 귓가에 조걸이 작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사형?”
“아무래도 현지 분의 말씀을 따르는 게 낫겠지. 위험 요소는 최대한 제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그 말에 모두가 결국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백천이 그리 결정했으면 따르는 게 옳다.
하지만 청명은 영 불만스러운 모양으로 입을 삐쭉거렸다.
그때 홍이명이 퍼뜩 무언가 생각난 듯 부랴부랴 몸을 일으켰다.
“내 정신 좀 보게. 조금만 기다리게. 식사를 내어 올 테니.”
백천이 황송한 얼굴로 말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괜찮네. 공짜도 아닌데 뭘 그러는가?”
네?
돈 받으시는 건가요?
이 아저씨 무서운 분이시네.
웃던 백천의 입매가 어색하게 굳어 갔다.
그런데 그때 닫혀 있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동시에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쳤다.
“우왁!”
“악! 추워!”
모두 추위에 몸을 확 움츠리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건 의외로 자그마한 아이였다.
“다녀왔느냐?”
“네, 아버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못 구했어요.”
털옷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고 얼굴만 간신히 내놓은 아이가 안으로 뒤뚱뒤뚱 들어오더니 어깨에 지고 있던 자루를 옆에 털썩 내려놓았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일세.”
털모자 아래로 보이는 피부가 새하얗기 그지없었다.
“……아들이요?”
“그렇다네.”
“아들이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저기…….
생긴 게 정말 하나도 안 닮았는데, 어디서 납치라도 해 오신 건 아니죠?
두 사람이 비슷한 건 피부가 하얗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커다란 코와 황갈색의 머리카락, 그리고 각진 얼굴을 가진 홍이명에 비해 그의 아들은 동글동글한 것이 중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처럼 생겼다.
물론 좀 귀여운 편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분들께서는?”
“중원에서 오신 분들이다.”
“중원이요?”
아이의 눈에 호기심이 어린다.
“중원이라면 저 따뜻한 남쪽 나라를 말하는 거잖아요!”
“…….”
화산은 중원에서는 나름 북쪽인 섬서에 위치해 있지만, 북해의 기준으로는 거기도 따뜻한 남쪽 나라가 될 터였다. 백천을 비롯한 화산의 제자들은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중원은 어떤 곳인가요?”
“이 녀석이. 인사부터 해야지.”
“아!”
홍이명의 꾸지람에 아이가 퍼뜩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홍진보(洪眞寶)라 합니다.”
“반갑구나.”
백천이 대표로 홍진보의 인사를 받았다.
“지금부터 손님들의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 너도 얼른 준비하거라.”
“예, 아버지!”
홍진보의 씩씩한 대답에, 화산의 제자들이 저마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구나.’
‘참 사이 좋아 보이는 부자지간이네. 전혀 안 닮았지만.’
하지만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는 이들과 달리, 홍진보를 바라보는 청명의 눈에는 묘한 빛이 스쳤다.
‘진보(眞寶)라…….’
* * *
“이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걱정이 되어 그런 것이니 괘념치 말게나.”
백천이 수레를 멍하니 바라보다 머리를 긁적였다.
밤새 홍이명의 집에서 따듯하게 잠을 잤다. 추위에 떨지 않고 잠든 건 오랜만이라 피로가 확 풀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홍이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수레에 커다란 천막까지 덮어씌워 주었다.
“생각해 보니 어설프게 천막을 치는 것보다는 짐칸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리했다네. 바람만 피해도 한결 나을 테니.”
“어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천이 살짝 난처한 얼굴로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지금껏 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대가 없이 베풀어 주는 이를 만난 건 처음이었다.
황송해하는 백천을 보며 홍이명이 빙그레 웃었다.
“북해는 척박한 곳이라네.”
“…….”
“때문에 서로 돕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지. 내가 오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면, 언젠가는 내가 도움을 받을 때도 오지 않겠는가. 사람이 산다는 건 다 그런 게지.”
“아…….”
윤종이 그 말을 듣고 연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깊이 배웠습니다.”
“별말을 다 하는군. 하하하.”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는 그들의 복장 역시 많이 달라졌다.
처음 북해로 올 때 걸쳤던 양털 옷과 가죽 대신 홍이명에게서 구입한 짐승 털가죽을 야무지게 걸쳐 입었다. 머리까지 덮는 가죽 옷이 영 어색했지만 귀와 머리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으니 확실히 이전보다는 훨씬 견딜 만했다.
“조심하게나. 북해는 그대들의 생각보다 훨씬 무서운 곳이네.”
“명심하겠습니다.”
백천이 깊이 포권 하여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청명이는 또 어디 갔느냐?”
“응? 아까까지만 해도…….”
그 순간이었다.
“아으으, 춥다…….”
집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안에서 웬 커다랗고 동그란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
그 몰골을 본 화산의 제자들은 할 말을 잃고 입을 쩍 벌렸다.
옷을 얼마나 껴입었는지 거의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버린 청명이 뒤뚱거리며 문을 나섰다.
꽈악!
“응?”
아니, 나서려고 했다. 옷 때문에 빵빵하게 부푼 몸이 작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꽉 끼고 말아 좌절되었지만.
“이, 이거 왜 이래!”
짜리몽땅해 보이는 다리를 앞으로 훅훅 뻗으며 버둥거렸지만 한번 끼인 몸은 쉽사리 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끄응! 사숙! 나 좀 빼 줘 봐!”
“…….”
“아, 뭐 해!”
그 모습을 가만 보던 백천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다.’
‘제발 좀, 청명아.’
그때 유이설이 한숨을 푹 쉬고는 저벅저벅 문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청명의 머리통을 잡고 쭉 당겼다.
마침내 퉁 소리와 함께 문을 빠져 나온 청명이 짜리몽땅해진 팔다리를 가눠 천막이 쳐진 수레에 올라탔다.
“끄응. 이래도 춥네.”
“…….”
“뭐 해? 출발 안 하고?”
백천은 힘없이 홍이명을 바라보며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참 특이한 사람이로군. 고생이 많겠어.”
“……예.”
고생만 많으면 말도 안 하죠.
어쨌든, 청명을 실은 그들은 홍이명이 챙겨 준 여러 물건들을 수레에 마저 실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수레 앞에 섰다.
“그럼 이제 그만 가 보겠습니다.”
“호수를 쭉 따라가면 된다네. 먼 길이니 너무 힘을 빼지 말게나. 북해의 추위는 지친 이를 더욱 괴롭히기 마련이니까.”
“예, 새겨듣겠습니다.”
그때, 수레 안쪽에서 불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가자고!”
“저 망할 놈이 진짜!”
“수레 확 불 싸질러 버린다!”
수레 뒤편으로 몰려가 투닥대는 화산의 제자들의 모습에, 홍진보가 아버지를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네요. 중원인들은 다 저런가요?”
“……그렇지는 않지.”
먼 곳에서 열심히 살고 있을 중원인들의 명예를 위해 변명을 해 주는 홍이명이었다.
“감사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한번 들르겠…….”
이제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백천 시주.”
잠자코 수레 앞에 서 있던 혜연이 말허리를 뚝 끊으며 백천을 불렀다. 그 얼굴이 전에 없이 다급해 보여, 백천은 살짝 긴장하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스님?”
“앞쪽에서 누군가가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소이다.”
“음?”
백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과연.
눈보라 사이로 흐릿한 인영들이 보였다. 작은 점처럼 보이던 인영들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훅 키우더니 그들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무서운 속도였다.
“누구지?”
“속도를 봐서 양민은 절대 아닙니다.”
“……혹시 모르니 대비해라!”
“예!”
백천의 명이 떨어지자 모두 빠르게 대답하며 기운을 끌어 올렸다. 순간적으로 침묵이 찾아오자 매서운 바람 소리가 울렸다.
삽시간에 긴장감이 번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