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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462화 (462/1,567)

462화. 뭐 이딴 동네가 다 있어? (2)

“와, 오두막이다.”

“신기하게 생겼어요, 사고!”

화산의 제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오두막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둥근 나무의 형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쌓아 올려 만든 오두막이었다.

확실히 중원에서는 본 적 없는 양식이었다.

물론 중원에도 높은 산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 있지만, 통나무 목재의 형태가 확연히 보이는 이런 형식은 드물었다.

“생각보다 크구나.”

기이한 것은, 주변에 다른 집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여긴 마을이 아닌가요?”

“음?”

조걸이 묻자 홍이명이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마을을 찾는 건가?”

“아. 그런 건 아닙니다만.”

“마을을 찾는다면 이쪽으로 와서는 안 되는 걸세. 여기는 외진 곳이라 사람들이 잘 살지 않거든. 그걸 아예 모르고 여기까지 왔던 건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백천에게로 돌아갔다.

“왜? 뭐?”

“……어쩐지 잘 찾아왔다 싶더라.”

“그럼 그렇지.”

백천이 발끈하여 무어라 항의했지만, 그의 반박은 수레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묻혀 버렸다.

“들어가면 되나요?”

어느새 짐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청명과 작은 담비가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홍이명은 도통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담비가 왜 떨지?”

“……죄송합니다.”

사과할 일이 아니건만 백천은 그만 반사적으로 사과하고 말았다.

여하튼 사람이고 짐승이고 제대로 된 게 없어!

“누추하지만 들어오게. 몸을 녹일 수 있을 걸세.”

“넵!”

사양이라는 말을 알지 못하는 청명이 문이 열리자마자 백아를 쥐고 쾌속하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백천이 떨떠름하게 변명했다.

“지금 보면 예의가 없어 보이시겠지만, 원래 저렇게까지 예의가 없는 놈은 아닙니다. 추위에 지쳐서 더 그런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예의가 있는 편이라고는 절대 말하지 않는 백천이었다.

“예의라.”

홍이명이 재미있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북해인들은 예의를 그리 따지지 않네. 그런 번거롭고 구차한 것은 여유가 있는 이들이나 따지는 게지.”

“아…….”

“들어오게나.”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나무로 벽을 세웠을 뿐인데도 바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따뜻했다.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것만으로도 일단 사람이 살 만한 온도는 갖춰진 듯했다.

“으……. 옷이 다 얼었습니다, 사숙.”

“꺄악! 사고! 머리카락 다 얼었어요. 안 돼! 건드리지 마세요! 아이참, 부러진다고요!”

따뜻한 곳에 들어오니 그간 얼마나 끔찍한 추위를 뚫고 왔는지 새삼 실감이 났다. 설마 가죽이 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그들은 쩌적쩌적 갈라지는 가죽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짜 조금 더 갔으면 얼어 죽었겠네.”

“이게 다 동룡 사숙이 길을 잘못 들어서 그래.”

“방금 동룡이라고 한 놈 누구야? 나와.”

눈에 젖어 얼어붙은 옷을 낑낑대며 벗으면서도 그들은 녹은 입으로 왁자지껄 떠들었다.

“와. 그런데 어떻게 이리 훈훈하지?”

“사고! 저기 보세요. 저기 불이 있어요.”

“응?”

오두막의 중앙에 설치된 화로에서 작은 불꽃이 튀고 있었다. 살짝 다가가 안쪽을 보니 장작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에. 집 안에 난로가 있네?”

“이래서 따뜻했구나.”

“굴뚝이 지붕 위로 뚫려 있어요.”

“그래. 청명이도 붙어 있고.”

응? 청명이?

어느새 화로에 바짝 달라붙어 한 몸이 되다시피 한 청명을 보며 모두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명아. 그러다 탄다.”

“불! 불이다, 불! 이거 불이라고!”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백천을 바라보았다. 얼었다 녹으며 발개진 얼굴엔 그새 숯검정이 묻어 있었다.

“사숙, 사숙! 이거 수레에도 설치할 수 있지 않을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 미친놈아!”

“왜! 집에는 설치하는데 수레에는 왜 못 해!”

백천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좀 나아져야 하는데.’

어떻게 이놈은 해가 바뀌어 가도록 나아지는 것이 없는가?

그때 홍이명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허. 그건 수레에는 설치하기 어려울 걸세. 워낙 무거운 데다…….”

“괜찮아요. 저희 말들이 힘이 좋거든요!”

“누가 말이냐, 누가!”

결국 참지 못하고 발끈한 백천이 청명에게로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고 했지만 윤종과 조걸에게 잽싸게 붙들렸다.

둘은 한숨을 쉬며 백천을 말렸다.

“남에 집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숙.”

“제발 때와 장소를 좀 가리세요.”

“…….”

소란한 그들을 보며 홍이명이 가볍게 웃었다.

“그보다, 옷을 조금 바꾸는 게 나을 걸세. 좋은 가죽과 털인 것 같긴 하지만, 이 추위를 버티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이는군.”

“……이렇게까지 추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랬을 걸세. 북해에도 이만한 추위는 자주 찾아오지 않거든. 올해는 유난히 더 춥더군.”

화산의 제자들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평소에는 이렇지 않다는 거죠?”

“약간 덜 춥지.”

“…….”

“아주 약간.”

“…….”

확실히 여긴 사람이 살 동네가 아니다.

“거기 물이 있으니 우선 손발을 씻고 몸을 좀 녹이게나. 손발을 씻지 않으면 동상에 걸리기 쉽다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홍이명이 오두막의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가려진 천을 걷어 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엮어 둔 짐승의 털가죽을 한 무더기 꺼내 왔다.

“아무래도 가지고 온 것들보단 이게 나을 걸세.”

“오, 이건……?”

“추운 지방에 사는 짐승의 털은 보온력이 뛰어나지. 그리고 일단 머리를 덮어야 하네. 머리에서 체온이 빠져나가거든.”

그의 말에 모두가 혜연을 흘끗 보았다. 두피까지 얼었다 녹으며 빨개진 혜연을 보니 어쩐지 짠해졌다.

“아……. 이렇게까지.”

백천이 몸둘 바를 몰라 하자 홍이명이 빙그레 웃는다.

“그럴 것 없네. 북해인은 손님을 박대하지 않는 법일세.”

백천이 다시 감사 인사를 전하려는데, 청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요?”

“음?”

“아닌데.”

이제 몸을 좀 녹인 청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죽들이 걸린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천을 다시 걷으며 아래쪽에 있는 털가죽을 잡아 뺐다.

“응? 이건 담비 털인 것 같은데?”

동족의 털이란 말에 백아가 털을 쭈뼛 세우며 경계했다.

“키이이이이이익!”

“아! 시끄러워!”

가죽에 대고 하악거리는 백아를 집어 던져 버린 청명은 아래쪽의 더 큰 털가죽을 빼냈다.

“여기 걸린 게 훨씬 더 좋아 보이는데요?”

그러자 홍이명이 살짝 곤란한 얼굴로 콧잔등을 긁적였다.

“미안한 말이네만, 그건 그냥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네. 겨우내 사냥한 짐승의 가죽을 내다 팔지 못하면 우리 가족도 굶어 죽게 되거든.”

“에이. 제가 그리 염치없는 놈으로 보이세요?”

“응.”

“……동룡이 들어가.”

홍이명의 뒤에서 대신 대답을 한 백천이 입맛을 다시며 옆으로 물러섰다.

“이거 어쨌든 파실 거죠?”

“음? 그렇네만.”

“그럼 멀리 갈 것 없이 저희한테 파세요.”

“그건 북해의 곰 가죽이라 값이 조금 나가네만.”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청명이 씨익 웃는다.

“저희가 돈이 좀 많거든요. 두 배로 쳐드리죠.”

“…….”

“대신 여기 불 좀 더 지펴도 되죠?”

“…….”

“네?”

“얼마든지요, 손님.”

그새 말투를 바꾼 홍이명이었다.

“으으……. 이제 좀 살 것 같네.”

커다란 곰 가죽을 두르고 화로 앞에 앉은 청명이 손에 든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기껏해야 풀을 넣고 끓인 물이라 차라고 부르기에는 조악할 정도였지만, 맛이고 나발이고 뜨겁기만 하면 쇳물이라도 좋을 판이었다.

“……집이라는 게 이렇게 좋은 거였을 줄이야.”

“그러니까요. 한 달 정도 노숙했더니 허리가 부러지려고 합니다.”

“바람 안 부는 것만으로도 어디야.”

화산의 제자들도 새삼스레 집의 소중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화산의 제자들을 홍이명이 더없이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신지요?”

“……괘, 괜찮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예.”

뭔가 미묘하게 태도가 바뀐 것 같지만, 어쨌든 좋은 쪽으로 바뀌었으니까, 뭐.

홍이명은 가죽 값의 반은 금으로 받고, 남은 반은 곡식으로 받아 갔다. 가죽을 한꺼번에, 그것도 더 좋은 값에 팔게 된 그는 연신 싱글벙글 얼굴이 밝았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겨울의 북해에서는 곡식을 구하는 게 제일 큰일이거든요.”

“그럴 것 같네요.”

현영이 혹시 모른다며 곡식도 바리바리 챙겨 놓은 덕분에, 쌀 두 자루를 주고도 곡식이 한참 남았다.

“그런데 북해 사람들도 곡식을 먹나요?”

“물론이지요.”

“곡식이 잘 자라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니 북해의 물건과 곡식을 교환하는 것입니다.”

홍이명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때 중원과 교역이 원활할 때는 가죽이나 생선들을 곡식과 바꿀 수 있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그것마저 힘들어졌어요.”

“아…….”

백천이 무거운 얼굴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청명이 입을 뗐다.

“아저씨.”

“옙!”

“북해빙궁에 대해 아시는 것 있으세요?”

그런데 북해빙궁이라는 말이 나오자 홍이명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청명은 그의 얼굴에 떠오른 두려움과 껄끄러움을 놓치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북해빙궁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외인들에게 함부로 입을 열었다가는…….”

“사숙. 은자 하나 더 내어 드려.”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그래서 뭘 알고 싶으신지?”

백천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이 아저씨 처음 볼 때랑 느낌이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청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되요.”

“아, 그래도 되겠는가?”

“네. 그리고 전반적인 거면 돼요. 저희는 빙궁에 대해 잘 모르거든요. 특히나 최근 벌어진 일 같은 걸 알려 주시면 더 좋고요.”

“으음.”

홍이명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리고 입을 떼며 살짝 주위를 둘러보았다. 딱히 엿들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본능적으로 살피게 되는 모양이었다.

“자네들도 알겠지만, 빙궁은 북해의 지배자네. 이곳은 딱히 나라랄 게 없는 곳이다 보니, 빙궁이 왕처럼 북해를 다스리고, 북해인들을 보살펴 왔네.”

윤종과 조걸이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수궁 같은 형태군.”

“새외는 거의 그런 모양입니다.”

홍이명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북해인들도 그런 북해빙궁을 믿고 의지해 왔네.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랬지.”

“지금은 아니란 말씀이신가요?”

“……자네는 빙궁이 어떤 곳인지 아는가?”

“글쎄요?”

홍이명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빙궁은 말 그대로 왕국 같은 곳이네. 그리고 그 빙궁의 궁주는 대를 이어 세습되었지.”

“음……. 세가 같은 개념이로군.”

운남의 야수궁은 그래도 문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북해빙궁은 사천당가가 남궁세가처럼 피로 이어지는 집안인 모양이었다.

“사천당가가 성도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처럼?”

“말조심하세요, 사형! 당가는 왕처럼 군 적은 없다고요. 어디 큰일 날 소릴!”

“뭐 비슷하긴 하잖아.”

조걸이 어깨를 으쓱하자 당소소가 눈을 콱 부라렸다. 그러자 조걸이 찔끔하여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저런 거지.”

“응, 저런 거.”

조걸은 성도 출신이다 보니 사천당가의 딸내미인 당소소에게 가끔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홍이명은 잠깐 그들을 보다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십여 년 전, 북해빙궁의 궁주가 중간에 바뀌는 일이 벌어졌네.”

“엥? 대를 잇는다고 했잖아요?”

“그렇지.”

“그럼…….”

홍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란이 일어난 게지.”

“아…….”

홍이명의 말에 윤종이 눈을 찌푸렸다.

“전대 궁주가 덕이 없었나요?”

“그럴 리가 있는가?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그때는 북해인들도 다들 빙궁을 믿고 의지했었다고, 선대 궁주께서는 그야말로 성군이셨지. 북해인들은 물론이고 빙궁의 궁도들도 다들 그분을 믿고 따랐다네.”

그 말을 들은 백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난을 일으킨 이가 덕이 높았나요?”

“반란을 일으킨 이는 선대 궁주의 동생이던 설천상(雪川上)일세. 그는 본디 성정이 편협하여 북해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

“……그런데 어떻게 반란이?”

홍이명이 눈을 찌푸렸다.

“북해인들은 절대 선대 궁주를 배신하지 않았네. 하지만 그날, 설천상은 북해에 외부인들을 끌어들였지.”

“외부인이요?”

“……그렇다네. 전신을 검은 무복으로 두른 자들이었지. 그들은…… 그들은 정말 악마 같았어.”

홍이명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어렸다.

백천이 입매를 굳히며 청명을 돌아보았다.

“청명아.”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청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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