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뭐 이딴 동네가 다 있어? (1)
“……사람인가?”
“사람이지?”
“사람 같은데요?”
모두가 눈을 끔뻑이며 얼음 위에 앉아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아니, 곰인가?”
“말을 하잖습니까! 말을!”
“왜 성질을 내고 그래?”
백천이 눈을 부라리자 윤종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말소리를 들었음에도 사람인지를 의심한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들의 앞에 보이는 이가 커다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원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복장이다 보니, 영 사람처럼 보이질 않았다.
“대답해도 되는 거겠지?”
“……글쎄요.”
모두가 머뭇머뭇하는 가운데, 곰 가죽을 뒤집어쓴 이가 그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외지인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머리까지 뒤집어쓴 짙은 갈색 털가죽 아래로 새하얀 얼굴이 보였다.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 때문에 용모를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확연히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윤종과 조걸이 백천의 양쪽 팔을 움켜잡고는 뒤쪽으로 쭉 끌어당긴다. 그리고 다급하게 속삭였다.
“사, 사숙. 사숙, 사숙! 저 사람 눈이 파랗습니다!”
“도깨비 아닙니까?”
“다, 당황하지 마라. 서역인들은 눈이 파랗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서역인이요? 여기는 북쪽인데?”
“어?”
백천이 일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움찔했다.
세 사람이 사내를 힐끔힐끔 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결국 유이설이 고개를 내젓고는 앞으로 한 발 나섰다.
“말해도 되나요?”
“으음? 그게 무슨 소린가?”
“……북해는 중원 배척.”
“아아.”
사내가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높으신 분들의 이야기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세.”
그러더니 빙그레 웃어 보였다.
유이설과 사내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화산의 제자들이 슬금슬금 근처로 다시 다가갔다.
옆구리를 찔리고 앞으로 살짝 떠밀린 백천이 헛기침하고는 점잖게 사내에게 포권 했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화산파의 이대제자인 백천이라고 합니다.”
“화산파?”
사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화산이라……. 들어 본 것도 같고.”
지금 전 중원에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화산이지만, 이 먼 북해까지는 소식이 전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설령 그 명성이 전해졌다 해도 이 사내가 강호인이 아니라면 화산파를 모르는 게 이상할 건 없다.
백천이 그를 가만히 보다 짧게 덧붙였다.
“중원에 있는 도관입니다.”
“아아, 도사 분들이셨군. 복색이 그래서 몰라봤소이다.”
그의 말에 백천의 얼굴에 쓴웃음이 어렸다.
짐승 털과 가죽을 둘둘 말고 있으니 도사인지, 스님인지 뭔지 알아보기 힘들 수밖에.
“이상하다. 대머리는 알아볼 수 있을 건데.”
“…….”
걸아.
너 요즘 혜연 스님한테 왜 그러니?
무슨 불만이라도 있니?
살짝 뒤로 발을 뻗어 발가락을 콱 밟는 걸로 눈치를 준 백천이 헛기침하고 물었다.
“……혹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예의가 바른 분들이시군. 물어보시게나.”
“저희가 초행이라 그런데, 혹시 여기가 북해 맞습니까?”
“그렇다네. 이 호수가 바로 북해지.”
“아…….”
백천의 얼굴에 새삼 감동이 스쳤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게 펼쳐진 얼음 호수를 보고 있으니 이곳이 왜 바다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네.”
“예, 다행이죠. 길을 잘못 든 거였으면 얼음 깨고 그냥 콱 뛰어들고 싶었을 텐데.”
“…….”
요즘 들어 윤종이 부쩍 과격해졌다.
그때 조걸이 끼어들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여기서 뭘 하고 계신 건가요? 얼음 위에서 딱히 할 게 없어 보이는데.”
사내가 빙그레 웃는다.
“자네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군. 낚시를 하는 중이었다네.”
“네? 낚시요?”
그러고 보니…….
작은 의자에 앉은 사내의 앞으로 긴 나무막대기가 놓여 있고, 그 끝에 매달린 줄이 얼음에 뚫린 구멍 아래로 들어가 있었다.
“으음, 그새…….”
사내는 무덤덤하게 옆에 놓인 장대를 들고 벌써 표면이 얼어붙기 시작한 구멍을 툭툭 쳐 깨뜨렸다.
조걸이 의아한 듯 물었다.
“……여기서 낚시가 되나요? 물이 다 얼었는데?”
“위는 얼었지만 아래는 멀쩡하다네. 아래까지 얼어붙는다면 물고기가 다 죽을 테니 겨울이 지나면 죽은 호수가 되지 않겠는가?”
“아…….”
윤종이 눈을 찌푸리며 조걸에게 속삭인다.
“걸아.”
“예?”
“무식한 거 뽐내지 말고 좀 닥치거라.”
“……예.”
조걸을 깔끔하게 때려잡는 윤종을 보며 백천이 흐뭇하게 웃었다.
아름다운 사제관계로다.
“오! 저거 움직여요!”
그때 낚싯대를 보고 있던 당소소가 호들갑을 떨었다. 과연 낚싯대가 휘청이며 구멍 쪽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읏차.”
사내는 낚시대를 콱 움켜잡더니 단숨에 끌어 올렸다.
촤아아앗!
사람 머리보다 크게 뚫린 구멍에서 물이 솟구쳐 오른다 싶더니 이내 팔뚝만 한 커다란 물고기가 물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우와.”
“엄청 크다!”
“하하하하하.”
사내가 기분이 좋은 듯, 껄껄대며 웃는다.
“요즘은 이만한 물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데, 운이 좋았군. 외지인을 만난 덕분인가?”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선선한 말투로 말했다.
“내 보답으로 신선한 생선을 대접하지.”
“네?”
“하하하. 사양하지 말게나. 북해인은 외인을 박대하는 법이 없으니까.”
“아니요. 그 부분이 아니라. 방금 뭐라고 하셨죠?”
“신선한 생선이라고 했네만?”
“……그게요?”
“응?”
사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물에서 건져 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벌써 새하얗게 성에가 껴 있었다. 그새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조금 전까지는 신선했었네만.”
“…….”
“…….”
생선을 보는 모두의 얼굴은 살짝 넋이 나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때 짐수레의 짐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으음?”
사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불쑥!
“엥?”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짐들을 헤치고 솟아오른 것이 또 다른 짐이니 놀랄 수밖에.
꾸물꾸물 움직이던 자루의 입구가 활짝 열리더니 그 안에서 시커먼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저, 저건 대체 뭔가?”
백천은 입을 꾹 다물고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래도 어지간해선 청명의 존재 자체까지 부정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 순간만은 정말 모르는 척하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추위를 많이 타서.”
아니나 다를까, 머리를 내민 청명이 불어오는 칼바람에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아아악! 머리 찢어진다! 악!”
“…….”
“이런 미친! 그새 더 추워졌잖아! 여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동네야!”
“…….”
청명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이 살짝 당황한 듯 뒤흔들렸다.
“자네들 도사라고 하지 않았나?”
“쟤는 아닙니다. 아마도요.”
“…….”
하지만 본인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청명은 할 말을 쏟아 놓기에 바빴다.
“아저씨! 아저씨!”
“으응? 나 말인가?”
“여기가 북해 맞죠?”
“……그렇긴 한데.”
“북해빙궁에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해요? 이 근처인가요?”
“빙궁?”
생각지 못한 물음에 사내의 얼굴이 슬쩍 굳어졌다.
“자네들 설마 빙궁을 찾아갈 셈인가? 빙궁은 지금 외지인을 받지 않고 있네. 같은 북해인들조차도 허락을 받아야 근처에 접근할 수 있어.”
“아, 괜찮아요. 허락은 받았거든요.”
“자네들이?”
사내는 살짝 미심쩍은 듯 화산의 제자들을 바라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허가를 받지 않았다면 북해인도 바깥출입을 삼가는 이 겨울에 이곳을 방문할 리가 없겠군. 그만큼 다급한 일이라는 의미겠지.”
“…….”
아닌데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왔는데요?
“그래서, 북해빙궁은 어디에 있어요?”
“북해빙궁까지 가는 길이야 그리 어렵지 않네. 이 호수를 따라 쭉 가기만 하면 되네. 그 끝자락에 산맥과 호수가 만나는 지대가 나오네. 북해빙궁은 바로 그곳에 있지.”
“아. 그럼 이 호수만 쭉 따라가면 되는 거네요?”
“바로 그렇지.”
청명이 안심했다는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가야 하는 줄 알고 엄청 쫄았네요! 그럼 거의 도착한 거죠?”
“응? 자네 내 말을 듣지 못했나?”
“예? 이 호수 끝까지만 가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자네, 북해가 뭔지 아예 모르는군. 이 호수, 그러니까 북해의 끝은 여기로부터 대충 천오백 리는 가야 나오네.”
“네? 얼마나요?”
“천오백 리.”
“네?”
“거, 귀가 먹었는가? 천오백 리라니까.”
“네?”
“…….”
청명의 눈이 지진을 일으켰다.
“며, 몇 리요?”
“……천오백 리.”
“아저씨, 지금 저랑 농담하시는 거 아니죠?”
“…….”
“몇 리라고요? 화산부터 사천당가까지도 천오백리가 안 되는데, 천오백 리?”
“그러니까 북해(北海) 아닌가.”
“……진짜 미친 동네인가?”
청명이 넋을 놓고 중얼거렸다.
호수가 너무 커 북해라고 불린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이, 이 추위에 수레를 끌고 천오백 리를 더 가야 한다고?”
청명이 애써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마침내 끊어졌다.
“제기랄, 내가 법정인지 밥통인지 소림 방장 머리에 불 싸질러 버리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 인간이 승포 입고 사기를 쳐? 이게 사람이 올 곳이야? 이게?”
소림이 보낸 정보원들이 마교 놈들한테 맞아 죽은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얼어 뒈졌네! 얼어 뒈졌어!
하지만 청명의 폭언을 말릴 사람은 없었다. 백천과 나머지 제자들 역시 아연실색한 탓이었다.
“천오백 리요?”
지금도 곧 얼어 뒈질 것 같은데 북쪽으로 천오백 리를 더 가야 한다니. 얼굴이 새파래질 정도였다.
사내가 딱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네들 북해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구만. 이곳은 북해의 초입에 불과하네. 저 위의 산맥 지대로 가면 이곳은 비교도 안 될 만큼 춥다네.”
“…….”
“그런 차림으로는 얼어 죽기 딱 좋지.”
말하던 사내가 피식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이것도 인연인데, 따라오게나.”
“예?”
“북해인은 객을 박대하지 않네. 일단 우리 집으로 가서 몸을 좀 녹이는 게 좋겠군.”
“아……. 말씀은 감사하지만…….”
“예! 갈게요!”
대뜸 청명에게 말이 끊긴 백천이 뚱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야. 다짜고짜 남의 집에…….”
“지금 얼어 뒈지겠는데 남의 집이고 내 집이고가 문제야? 그러다가 길바닥에서 얼어 죽으면 누가 예의 바르다고 고사라도 지내 준대?”
추운 지방에 사는 이들의 성격이 급하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지금 청명이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북해를 얕보지 않는 게 좋아.”
“……그럼 염치 불고하고 신세를 좀 지겠습니다.”
“하하하. 염치는 무슨. 따라오게나.”
사내가 주섬주섬 앉았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군. 겨울이라 먹을 게 딱히 없는데 오늘은 고기라도 잡았으니 말이야.”
“네? 그거요?”
청명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나눠 먹는다고요?”
“……겨울의 북해에서는 이만한 것 잡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세.”
그렇다고 해도 저 물고기 한 마리를?
“끄으응. 앓느니 죽어야지.”
얼어 뒈지겠는데 배까지 곯을 수는 없다. 거지로 다시 태어났다고, 사는 것도 거지꼴로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후다닥 자루에서 튀어나온 청명이 얼음에 뚫린 구멍 쪽으로 전력 질주했다.
“어으으으! 춥다! 추워! 아악! 진짜 얼어 뒈지겠네!”
그러더니 지체 없이 구멍 안으로 손을 쑥 밀어 넣었다.
“자, 자네 지금 뭐 하는……!”
“으라차아!”
청명이 손을 확 뽑아 올리자 구멍 주변의 얼음들이 와장창 깨어졌다. 그리고 사람 팔뚝만 한 물고기 여러 마리가 한데 뭉쳐 솟구쳤다.
“허억?”
텅! 텅텅!
빙판 위에 떨어진 물고기들은 펄떡거리다 이내 허옇게 얼어붙었다.
“오! 청명아 잘했…….”
백천이 눈을 반짝이며 청명을 칭찬하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입구가 조여진 자루가 꾸물거리며 짐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나는 한 번씩 저 새끼를 욕해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 구분이 안 간다.”
“다 그럴 겁니다, 사숙.”
윤종이 백천을 위로하듯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사내는 얼음 위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물고기들과 짐 사이로 파고든 자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살짝 가라앉았다.
“이거 빨리 실어.”
“예!”
화산의 제자들이 얼어붙은 물고기들을 수레에 모두 싣자 사내도 주섬주섬 낚싯대를 정리했다.
“아무래도…… 평범한 손님들은 아닌 것 같군.”
그리고 몸을 똑바로 펴고 일어서선 백천을 바라보았다.
“다시 소개하지. 나는 홍이명(洪理溟)이라 하네.”
“저희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중원 화산파의 문하들입니다. 저는 화산의 삼대…….”
“아 알았으니까! 가자고! 얼어 뒈지겠다고!”
“…….”
조금 서글픈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백천을 보며 홍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세나.”
“……네.”
저놈의 인성은 추운 곳이나 더운 곳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실감하는 백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