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화. 저 사람이 여길 왜 와? (5)
“정보가 엄청 빠르시네요?”
청명의 말에 법정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더없이 인자해 보이는 미소였지만, 청명의 눈에는 그 웃음마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있는 자리가 그런 자리라네.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많은 것을 알게 되지.”
“거지예요?”
“아닐세.”
법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개방이 많은 것을 해 주는 건 사실이지만, 개방이 전부는 아닐세.”
청명은 진위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듯 법정의 안색을 가만 살폈다. 그러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딱히 여기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겠지.’
정보는 어떻게든 새기 마련이다. 게다가 야수궁주가 사천에 들렀고, 당가가 화산을 환영했다는 사실은 숨기려 한들 숨겨질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뭔 문제라도 되나요?”
청명의 물음에 법정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문제라고는 하지 않았네.”
“그런데요?”
“그저 조금 아쉬울 뿐이네. 화산은 구파일방의 일원으로서 천하를 오시하던 문파였지 않은가?”
“네. 그걸 그쪽이 내쫓았죠.”
“정확하게 말하면 선대의 일이지.”
“네. 그쪽 선대가 내쫓았죠.”
청명과 법정의 시선이 다시 한번 허공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아미타불…….”
살짝 곤란하다는 듯 불호를 왼 법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화산신룡. 시주는 본승의 입장을 부디 이해해 주게나. 선대께서 착오를 하셨다 하여 내가 그 판단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 말에 청명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직접적인 사과는 아니지만, ‘착오’라는 말이 법정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다. 천하에서 가장 목이 뻣뻣한 이가 간접적으로나마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뜻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대단하기는 하지.’
사실 법정의 입장에서 보면 속이 썩다 못해 새까맣게 탈 만한 일이었다. 자신은 지은 죄도 없는데 선대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그 책임을 모조리 뒤집어쓴 상황일 테니까.
만일 청명이 법정과 비슷한 입장이었다면, 당장 조사전으로 달려가 모조리 때려 부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죠? 장문사형?’
- 해 봐, 이 새끼야! 어디 한번 해 봐!
“거 흥분하시긴?”
“지금 뭐라고……?”
“아, 아니에요.”
청명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법정은 잠깐 청명을 빤히 보다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건 너무 오래전의 일일세. 이 일의 당위로 논하기에는 너무도 오래된 일이지.”
“굳이 당위가 필요한가요? 우리가 뭘 할 때마다 소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러하네. 하지만 조금 전에 말했듯이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네.”
청명이 피식 웃었다.
“세상이 아니라 방장이 그리 보시는 건 아니고요?”
법정의 눈가가 꿈틀했다.
청명의 말이 생각 이상으로 거슬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법정의 목소리는 제법 매서웠다.
“이보시게, 시주.”
“네.”
“자네는 세상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청명은 마치 뒤통수를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법정을 바라보았다.
‘이……. 내가 너보다는 더 많이 겪었다, 이 땡중아!’
차마 할 수 없는 욕설이 속에 맺혔다.
거, 요즘은 나름 이 몸에 적응해서 잘 살고 있는데 꼭 한 번씩 이렇게 다리를 걸어 대네!
‘그때 그 땡중 새끼들의 대가리를 냅다 까 버렸어야 했는데!’
이 새끼들!
후손 관리 안 하지? 어? 진짜 대웅전 무너지고 싶냐?
청명이 말이 없자 법정은 찬찬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짝 타이르듯 말했다.
“세상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라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글쎄요?”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일세.”
“…….”
살짝 삐딱하게 고개를 꺾어 대는 청명을 보면서도 법정은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말 안 듣는 꼬마를 타이르는 것처럼 목소리가 점차 더 부드러워졌다.
“아무리 내가 소림을 이끄는 소림의 방장이라고는 하나, 세상 모든 일을 내 뜻대로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일세. 더구나 지금 같은 시절에는 더더욱 그렇지.”
“지금 시국이 왜요?”
“잊었는가? 북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
법정이 침중한 얼굴로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강호는 아직 지난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네. 멸문 직전까지 갔던 문파들은 여전히 마교의 마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판이네.”
“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종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장문인.”
법정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전쟁에서 정파가 얻은 가장 큰 교훈은, 한 문파의 힘으로는 절대 마교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사파와 새외의 문파까지 가리지 않고 모여야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지요.”
“그 말은…….”
“예.”
법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를 주도하는 이들은 분열을 원하지 않습니다. 북해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없었다면 모를까, 혹시라도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는 걸 원치 않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힘을 써서라도 그걸 막으려 들겠지요.”
슬쩍 현종을 바라본 법정의 얼굴에는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미 그런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으으음.”
현종은 눈살을 찌푸리며 살짝 언성을 높였다.
“그들이 무슨 권한으로 화산의 일에 간섭한다는 말입니까? 누구에게 그럴 권한이 있습니까!”
“장문인……. 이익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합니다.”
“…….”
“환란에 대비한다는 명분과, 새로운 세력이 생김으로써 받을 실질적인 피해가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쉬이 물러나지 않을 겁니다.”
“구파일방이 말입니까?”
“오대세가는 아닐 것 같으십니까?”
“…….”
“이 일은 그리 생각처럼 단순하고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법정이 딱 거기까지 말한 순간이었다. 삐딱한 목소리가 툭 날아들었다.
“말이 좀 빙빙 도는데.”
청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멈추란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직접 행차하시지는 않았을 텐데?”
“물론 나는 그 말을 권할 자격이 없네.”
법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말한다고 듣지도 않겠지. 그렇지 않은가?”
“뭐 그렇겠죠?”
너무 태연한 그 반응에 법정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천하에 수많은 이가 있지만, 그의 앞에서 이리 태연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은 화산신룡 하나뿐일 것이다.
‘정말이지, 볼 때마다 새롭구나.’
장문인은 저리도 침착하고 진중한 사람인데, 그 밑에서 어쩌다 이런 망종이 나왔단 말인가?
하지만 법정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청명은 태연자약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뭐 빤한 이야기지.’
구파와 오대세가의 반발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에 대해서 당군악, 맹소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사람이란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 반발이 생각보다 더 빨랐을 뿐.
법정은 다시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일세.”
“방법이요?”
“그렇지, 방법. 모든 일에는 명분이 필요한 법일세. 화산이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도 명분은 필요하고, 내가 화산을 비호하기 위해서도 명분이 필요하다네.”
예상치 못했던 말에 청명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비호?’
“지금, 방장께서 화산을 돕겠다고 하신 건가요?”
법정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호오?”
청명의 눈에 재미있다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그래서, 그 명분을 위한 조건은 뭔가요?”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네?”
법정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꼿꼿한 자세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북해로 가 주게나.”
“…….”
그에 비해 청명의 얼굴은 미세하게 퉁명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게…….
‘아니, 뭐 북해에 뭔 떡이라도 숨겨 놨나?’
이것도 북해고, 저것도 북해고! 왜 모든 문제가 이렇게 북해로 통하냐고!
청명의 표정을 살핀 법정이 손에 든 염주를 천천히 굴렸다.
“이미 전에도 말했다시피, 북해의 상황이 심상치 않네. 나름대로 그 상황을 해결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지.”
“소림의 힘으로도 무리라는 건가요?”
“애초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법정이 골치가 아프다는 듯 슬쩍 앓는 소리를 흘렸다.
“물론 아주 힘으로 뚫으려 했다면 가능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결국 북해와 중원은 영원히 갈라설 수밖에 없다네. 그건 최악 중의 최악이지.”
“음.”
“내가 듣기로는 자네가 야수궁주와 무척 친하다던데. 그럼 그 친분을 이용하여 북해로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청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까지 알고 하는 이야기지?’
확실히 소림의 정보력은 무시할 수가 없었다.
“화산신룡.”
“네.”
“북해로 가 주게나.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내 주게. 그럼 자네들이 벌이고 있는 일에 방해가 끼지 않도록 내가 최대한 지원을 해 주겠네.”
법정의 말에 현종이 눈살을 찌푸렸다.
“방장.”
“예, 장문인.”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 짧은 소견으로는 다른 누구보다 구파일방의 수장인 방장께서 서부의 연합을 더 바라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만.”
“물론입니다.”
법정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서부의 연합을 바라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마교의 발호를 원하지 않습니다. 소림의 방장이라는 자리는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천하의 안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니 작은 것을 버리더라도 큰 것을 취할 수밖에요.”
“으음.”
법정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살짝 감으며 불호를 외어 댔다.
겉으로야 상대의 대답을 긴장하며 기다리는 모양새였지만, 그의 내심은 조금 달랐다.
‘이건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화산은 서부의 문파들을 엮어 새로운 세력으로 만드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렇다면 사안이 구체화되기 전에 타문파의 견제가 들어오는 것을 가장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청명에게 생각이란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건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는 제안이다.
하지만.
“거, 전부터 느꼈지만 말을 좀 교묘하게 하시는 경향이 있네요.”
“음?”
법정이 눈을 번쩍 떴다. 청명은 퉁명스런 얼굴로 비아냥거렸다.
“거 스님이라는 양반이 그렇게 슬슬 사기 치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부처님이 노하시겠네.”
“…….”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법정은 영문을 모르고 두 눈을 끔뻑였다.
사기?
지금 설마 소림의 방장에게 사기라고 한 건가?
“무, 무슨 말을…….”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죠. 앞뒤가 안 맞잖아요.”
“……뭐가 안 맞는단 말인가?”
방장이 묻자 청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는 소림의 방장이라도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다른 문파들의 의견을 묵살할 수 없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북해만 가 주면 그걸 다 해결해 주겠다고요?”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말이 궁핍하네요, 그죠?”
“…….”
법정은 당황한 기색이 묻어나는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거 자꾸 천하 만민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북해에서 마교의 흔적이 나타나 가장 곤란해진 건 소림 아니에요?”
“…….”
“안 그래도 천하비무대회에서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해서 끗발이 떨어졌는데, 마교의 흔적이 나타나도 꼼짝 못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면 권위가 바닥으로 처박히고 있겠죠.”
“……아미타불.”
법정이 나직하게 불호를 외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소 급한 느낌이 묻어났다.
청명이 입꼬리를 뒤틀며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그 북해의 일이 해결되면 제일 이득을 보는 곳은 다름 아닌 소림이라는 거죠. 게다가 화산이 나서서 그걸 해결해 주면 더 이득이죠.”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빤하죠. 봐라, 화산이 다른 문파를 엮고 있지만 어쨌든 소림의 말을 듣고 북해로 가지 않았느냐? 화산은 아직 소림의 영향하에 있다. 뭐 이렇게 말하기 딱 좋은 상황 아닌가요?”
“…….”
결국 할 말을 잃은 법정이 청명을 뚫어져라 보았다.
만약 이 자리에 다른 이들이 있었다면, 청명의 말이 과하다 비난했을 것이다. 혹은 근거도 없는 지레짐작이라 폄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명은 이미 몸으로 그 모든 것을 겪은 사람이었다.
‘강호의 안위는 얼어 뒈질.’
이 땡중 새끼들아, 그런 걸 따질 놈들이었으면 화산에 마교가 몰려왔을 때 막았어야지. 그때는 저 뒤에서 구경만 해 놓고 지금에 와서, 뭐? 안위? 안위이이?
‘지랄 났네.’
청명이 코웃음쳤다.
그는 이런 대의에 가득 찬 말을 믿지 않는다.
“결국은 소림이 강호의 주도권을 잃은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겠죠. 방장께서는 북해의 일을 해결하여 그 잃은 주도권을 다시 찾고 싶으신 거구요. 마교의 일을 해결한다는 건 그만큼 큰 업적이 될 테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헐레벌떡 달려오신 것 아닌가요?”
법정은 슬쩍 쓰게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청명을 응시하는 눈에 살짝 체념이 어려 있었다.
“시주는 과히 날카로운 부분이 있네.”
“빤한 거죠.”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쯤 되자 법정도 자신의 의도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조금 더 날카로워진 눈으로 본론을 찔렀다.
“그래서 어찌하시겠는가? 거절하겠다는 건가?”
“확실히 하자는 거죠. 확실히.”
“음?”
청명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건 화산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소림의 제안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소림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화산에 의뢰를 하는 거예요. 이걸 확실히 해야죠.”
“……그게 뭐가 다른가?”
“아니, 이분이 장사 한두 번 하시나? 그게 어떻게 같아요!”
청명이 펄쩍 뛰며 눈을 부라렸다.
“의뢰에는 의뢰비가 따르는 게 기본이지! 어디 부탁하는 사람이 날로 먹으려고?”
“…….”
“와, 정말 말 몇 마디로 때우려고 하셨나 보네? 쯧쯧쯧. 예전에는 소림이 그래도 상도의는 있었는데!”
‘네가 예전 소림을 어떻게 아는데?’
아니.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래서 내가 구파의 견제를…….”
“걔들이 견제한다고 화산이 눈이나 깜빡할 것 같아요? 어차피 지들도 보는 눈이 있는데 칼 들고 달려들지는 못해요. 그럼 뭔 상관이에요.”
청명이 손을 휘휘 저었다.
“…….”
“그러니까 그런 뜬구름 잡는 말 말고, 제대로 된 보상을 제시해 보세요. 하여튼 구파일방에 넣어 주겠다느니, 구파의 견제를 막아 주겠다느니, 뭐 다 말로 때우려 드네.”
쏟아지는 말을 듣는 법정의 뒷머리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가 이토록 무안을 당한 적이 있던가?
“그래서……. 아니, 아니지. 그럼 화산에서 원하는 보상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그 물음에 청명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거만하게 의자에 기댄 그는 살짝 깔보듯 눈을 뜨며 말했다.
“방장.”
“음?”
“방장은 세상을 얼마나 아세요?”
“…….”
법정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조금 전 그가 던졌던 물음이었다.
“세상 뭐 별거 없어요. 이런저런 보상이 있어도, 결국 제일 확실한 건 딱 하나죠.”
“……하나?”
“네.”
청명이 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를 붙이며 둥글게 말았다.
저건…….
“돈.”
“…….”
“이리저리 조건 따질 것 없이 액수만 정하면 되니 얼마나 편해요? 그렇죠?”
“…….”
“얼마 내실래요?”
법정의 눈동자는 이제 갈 길을 잃은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지금껏 소림의 방장인 그에게 돈을 내놓으라 한 사람은 없었다.
“재, 재물은 화산도 충분한 걸로 아는데?”
“하하하. 방장이 산에서 불법만 닦으셔서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
청명이 흐뭇하게 웃었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
“많으면 좋고, 더 많으면 더 좋죠.”
말문이 막힌 법정은 눈길로 현종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현종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피했다.
법정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한통속이구나.’
한통속이야.
청명이 히죽 웃었다.
“소림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면 천금도 아깝지 않죠? 방장이 생각하시는 소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들어 볼게요.”
법정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가. 무려 그 소림의 방장이었다. 이렇게 순순히 당할 위인은 아니었다.
“……돈이라고 했는가?”
“네.”
“그럼 보물도 되겠지?”
“네?”
법정이 손을 뻗어 바닥에 두었던 목궤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과거에 한차례 보았던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이게 전부가 될 수는 없겠지만, 값은 어느 정도 깎을 수 있지 않겠는가?”
자하신검.
화산의 신물이 탁자 위로 올라오는 순간 현종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아, 그거요?”
청명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안 되겠는데요?”
“……안 돼?”
“넹.”
법정은 적잖이 당황하며 청명을 연신 살폈다. 허풍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걸로 값을 다 치루겠다는 말도 아니고 좀 깎겠다는데? 화산의 신물에 그만한 가치도 없단 말인가?”
“뭐 한달 전이면 받고 깎아 드렸겠죠.”
“……한 달 전과 지금이 뭐가 다르기에?”
청명이 피식 웃고는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끌러 탁자 위에 올렸다.
턱!
스릉!
그리고 반쯤 뽑아 법정에게 보여 주었다.
“죄송하지만, 고객님. 기존 자사 제품은 더 이상 취급하지 않습니다.”
“…….”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롱한 빛을 발하는 암향매화검의 모습에, 법정이 입을 쩌억 벌렸다.
“그건 뒀다 쓰시고, 돈 가져오세요.”
“…….”
법정이 힘없이 그 자리에 늘어졌다.
여기, 스님을 벗겨먹으려는 도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