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뭔 산적이 이래? (2)
“흐하하하하하하핫!”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녹림왕의 모습에, 화산의 제자들은 서로 묘한 눈빛을 교환했다.
저 거대한 덩치와 위압적인 외모.
거기에 풍기는 기세까지 감안한다면 이 웃음에 응당 몸을 떨어야겠지만…….
‘그립네.’
‘궁주님 잘 돌아가셨으려나?’
‘남만까지는 먼 길일 텐데.’
되레 묘한 향수를 느끼고 만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껄껄 웃던 녹림왕도 그들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조금쯤 어색하게 웃음을 갈무리했다.
“……음.”
그의 눈에 살짝 당황이 어렸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 또한 십분 이해했다.
‘그렇겠지.’
‘자길 보고도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처음 만나겠지.’
물론 화산의 제자들 역시 이런 사람을 처음 봤다면 분명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처음 야수궁주 맹소를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크흠.”
녹림왕이 크게 헛기침하고는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 중 누가 화산신룡인가?”
“전데요?”
“흐음, 너?”
녹림왕이 청명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 강해 보이지는 않는데.”
“네. 마침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뭐라 했느냐?”
“마음이 통했다고요. 우리 의외로 잘 맞을 것도 같네요.”
청명이 히히 웃었다. 녹림왕은 묘한 눈으로 그를 빤히 보았다.
“듣던 대로 건방진 놈이로군.”
“오? 제 소문을 들으셨어요?”
“요즘 천하에 화산신룡에 대한 이야기가 자자한데 듣지 않을 수가 없지. 어찌나 그 소문이 요란한지 산까지도 퍼져 오더군.”
“헤헤헤.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닌데.”
‘좋아하지 마!’
‘저건 전생에 칭찬 못 받아 죽은 귀신이 씌었나.’
그때 녹림왕의 눈이 조금 가라앉았다.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도 어느새 식어 버린 지 오래였다.
‘화났네.’
‘나 같아도 화나지.’
“그래. 듣자 하니, 산적질을 계속 하고 싶으면 너를 찾아오라고 했다던데?”
“제가요?”
“그렇다더군.”
청명이 백천 일행을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나?”
“…….”
“…….”
“기억이 날 것도 같고…….”
녹림왕의 수염 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이놈이 보자보자 했더니 감히 나를 능멸해?”
녹림왕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건물이 부르르 진동하며 먼지를 쏟아내었다.
“네놈들이 저 쳐 죽일 만인방 놈들을 무찔렀다기에 좋게 보아 주려 했건만! 감히!”
“아아, 진정 좀 하세요. 사람이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지.”
“……이놈이?”
“뭐 그런 말을 했고 안 했고가 중요하겠어요? 중요한 건 제가 그쪽과 할 말이 있다는 거죠.”
녹림왕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찢어 죽일 듯한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청명은 조금도 기죽지 않은 얼굴로 그런 녹림왕을 똑바로 응시했다.
잠시 후, 녹림왕은 탁 기세를 풀었다.
“……강단은 있는 놈이로군.”
그리고 다시 거대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그대들의 공을 감안해서 들어는 주겠다.”
“뭐 그리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솔깃할 만한 이야기죠.”
“음?”
“혹시 돈 좀 벌어 보고 싶은 생각 없으세요?”
“돈?”
“네, 돈. 당연히 관심이 있으시겠죠? 녹림도 결국은 돈 벌자고 이러고 있는 거잖아요.”
“흐으음.”
“자, 그러니까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잠깐!”
“엥?”
녹림왕이 심드렁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와 할 게 아니지. 육소병!”
“예이!”
응?
청명은 대답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사내가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왔다.
“부르셨……. 쿨럭! 쿨럭! 아오, 이놈의 기침이! 쿨럭!”
사내는 뛰어오다 말고 입을 틀어막은 채 연신 기침을 해 댔다.
“쿨럭! 에헤이이이. 에이취이!”
청명은 멍한 눈으로 그 사내를 보았다.
이건 또 뭐지?
누가 봐도 이런 산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입고 있는 학창의는 조금 낡았지만, 티 한 점 없이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게다가 손에 든 부채 역시 너덜너덜하지만, 그럼에도 우아하게 하늘거렸다.
머리에 쓴 관이 살짝 구겨진 건 옥에 티처럼 거슬렸지만,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에에이취이!”
아. 흘러내렸네.
여하튼 깔끔하다.
하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핏기 한 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백한 안색과 거뭇한 눈가였다.
“……어디 아프세요?”
“쿨럭쿨럭!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원래 몸이 좀 약해 놔서…….”
“…….”
실제로 닭 목도 비틀지 못할 것처럼 약해 보이긴 했다. 어쨌든 그것만 빼면 전형적인 낙방거자((落榜擧子)처럼 생긴 이였다.
“부르셨습니까!”
“이놈들이 돈이 어쩌고 하는구나. 나는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니 네가 상대하거라.”
“예이! 그런 건 제가 또 전문 아니겠습니까! 이래 봬도 제가 산술부터 시작하여 천문과 역법, 그리고…….”
“시끄럽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일이나 해라!”
“옙.”
사내가 살짝 시무룩한 얼굴로 화산의 제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웃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도장 나으리들. 저는 녹림왕을 보좌하고 있는 병서생 육소병이라 합니다!”
“보좌요?”
촥!
사내가 부채를 쫙 펴고 입을 가리더니 작게 속삭인다.
“녹림왕께서는 워낙 호방하셔서 셈 같은 사소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저와 말씀하시면 됩니다.”
“…….”
백천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물에 빠진 쥐새끼 같은데.’
아니, 사실 면밀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인물이 없진 않다. 여리 여리한 얼굴선과 창백한 피부는, 남아다운 맛은 없지만 묘한 매력을 풍겼다.
“헤헤헤헤! 이렇게 화산의 영웅들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더구나 그 만인방의 망할 새끼들을 모조리 발라 버렸다는 이야기에는 거의 지릴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매력을 저 비굴한 태도와 간사한 웃음이 모조리 박살 내 놓고 있었다. 연신 굽실대는 허리와 살짝 구부정한 다리, 절박해 보일 만큼 꼭 모은 두 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이런 데 계실 분 같지는 않은데?”
백천의 말에 육소병이 살짝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작게 난 창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뭐 세상에 사연 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사연은 얼어 죽을.”
뒤에서 지켜보던 녹림왕이 코웃음을 쳤다.
“과거에 급제를 못 해서 목매달고 죽으려던 놈을 살려 줬더니, 사연 타령 하고 있네.”
“……아니, 제가 그건 비밀로 해 달라고…….”
“시끄러우니 어서 할 일이나 해라!”
“예이! 여부가 있겠습니까!”
화산의 제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도 글렀어.’
‘개판이네.’
역시 여기도 제대로 된 문파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 저희와 사업을 하고 싶단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죠.”
“흐음. 흐음. 화산이라면 그래도 나름 고매하신 도사님들이 모여 사는 도관으로 알고 있는데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과 사업을 하고 싶다니. 거참 괴상한 일이군요.”
“무지렁이?”
녹림왕이 눈을 부라리자 육소병이 찔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헤헤.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이놈이 정말 덜 맞았나?”
“……죄송합니다.”
육소병은 시무룩한 얼굴로 청명에게 다시 물었다.
“……여튼 그래서 사업이라니요?”
청명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저희가 지금 운송업을 하나 준비하고 있거든요.”
“운송! 운송업? 화산에서 표국이라도 여시는 겁니까? 저희가 또 표국과는 항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죠. 자고로 오가는 금전 속에 우정이 싹트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아, 표국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말 그대로 운송업이에요. 작은 물건을 빠르게 배송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죠.”
순간 육소병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작은 물건……. 빠르게라. 호오?”
그러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그것 참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보아하니 먼 거리를 빨리 배송하는 게 목적인 모양이고요.”
“오! 바로 이해하시네요. 맞아요!”
“흐음. 그럼 화산 분들이 직접?”
“옮기는 건 다른 사람이 할 거예요.”
육소병은 의외라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물건은 신속이 생명일 텐데, 직접 하시지 않고?”
“경공이 빠른 사람을 준비했거든요.”
“아아. 그렇죠! 그렇죠!”
육소병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최단 거리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관도고 뭐고 다 무시하고 산 넘고 물 건너서 직선으로 주파해야 하는데, 중간 중간 저희의 영역이 있어서 문제가 생길까 걱정이다, 이 말씀?”
“척하면 착이시네!”
“저야말로 놀랐습니다. 세상에, 이런 발상을 하시다니. 보나마나 고관이나 거부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겠군요.”
청명이 정말 놀랐다는 듯이 육소병을 바라보았다.
“이야. 진짜 똑똑하시네요.”
“하하하핫. 보통입니다, 보통.”
육소병이 슬쩍 거들먹거리며 턱을 치켜들었다. 청명은 손뼉이라도 칠 기세로 눈을 빛냈다.
“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양반이네. 산적 때려치우고 화산으로 올 생각은 없어요? 녹봉은 내가 더 잘 쳐 드릴 수 있는데?”
“하하하. 말씀이야 감사하지만, 저는 제 주제를 아는 사람입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이지요. 녹림에게 받은 은혜가 있는지라.”
“달에 금자 하나씩 드릴 수도 있는데.”
육소병이 와락 달려들어 청명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다.
“어떻게 또 솔잎만 먹겠습니까. 때로는 다른 것도 먹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됩니까?”
“네 이노오오옴!”
참다못한 녹림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경을 치기 전에 제대로 일하지 못할까!”
“죄, 죄송합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육소병이 청명에게 작게 속삭였다.
“거 미안하게 됐습니다. 저분이 성격이 좀 급하셔서.”
“……지금까지 안 맞아 죽은 게 용하네요.”
“고난의 세월이었지요.”
육소병이 아련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한편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백천은 갑자기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지?’
얘들 뭔데 이리 죽이 잘 맞지?
주위를 돌아보니 다른 사형제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명이 놈과 저리 죽이 맞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거의 찰떡궁합 수준인데.’
‘이게 야수궁주님이랑은 또 다르네.’
야수궁주는 호방함이라는 측면에서 청명과 찰떡이었다면, 이놈은 뭐랄까…… 잔망스러움이라는 측면에서 서로 딱 맞아떨어지는 조각 같았다.
“그러니까…… 쿨럭! 에이, 또……. 쿨럭! 쿨럭! 에헤이! 망할 놈의 기침, 쿨럭! 같으니!”
연신 기침을 하던 육소병이 뒤쪽에 있는 호리병을 끌어다 물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카아! 냉수 좋고.”
“…….”
백천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쯤 되면 형제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 아닌가.
“여하튼!”
육소병이 히죽히죽 웃으며 청명을 향해 말했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데 녹림의 양해를 구하고 싶으시다, 이 말씀이시죠?”
“네, 정확해요.”
“좋지요, 좋지요. 사실 뭐가 다르겠습니까? 녹림의 사업이라는 것도 결국 산짐승이 우글대는 위험한 산을 무탈하게 지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일 아니겠습니까?”
“……보호?”
“그렇다고 하지요. 에이, 뭘 그리 깊이 따지십니까.”
육소병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보호세만 내신다면 얼마든지 도와드릴 수 있지요. 그래서 얼마를 내실 생각이십니까? 천하에 퍼져 있는 칠십이 채는 물론이고, 칠십이 채에 들지 못하는 작은 산채들까지 모조리 뒤탈 없이 통과할 수 있게 해 드리려면…… 어휴, 이거 싸게는 안 되겠습니다만?”
청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했다.
“보아하니 이 일로 꽤 두둑하게 챙기실 것 같으니 말이지요.”
그 말에 청명은 씨익 웃었다.
“뭐, 돈이 그렇게 중요하겠어요?”
“그렇지요, 그렇지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친우를 사귐에 있어서는 금전을 논하는 게 아니로다! 쿨럭! 그 말 그대로입니다! 간만에 통 큰 분을 만나니 이 병서생! 속이 다 시원……. 크허흑, 쿨럭! 쿨럭!”
내장이라도 토할 듯 쿨럭대던 병서생이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 내며 투덜거렸다.
“쯧쯧. 이러다 죽지. 이러다 죽어.”
손수건을 곱게 접은 병서생은 다시 눈을 빛냈다.
“자자. 그러니 제시해 보시지요. 간만에 마음이 맞는 분을 만났으니 싸게 해 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도 고용되어 녹림왕을 모시는 입장이라 제 마음대로 깎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흐음.”
그러자 청명은 묘하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병서생을 보았다.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네?”
“적당히 돈 푼 쥐여 주고 건드리지 말라고 할 셈이었는데, 돌아가는 판을 보아하니 조금 크게 벌려도 되겠다 싶어서요.”
“호오.”
병서생이 마음에 든다는 듯 웃더니 부채를 살랑거렸다.
“큰 판이 벌어지는 건 언제든 환영이지요. 그래, 어떤 판 말씀이십니까?”
청명의 입꼬리가 더욱 말려 올라갔다.
“그런데 이건 한낱 군사와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녹림왕과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 아이고, 저희 녹림왕께서는 이런 쪽에 영 약하셔서…….”
“제 말을 이해를 못 하신 모양인데요.”
“예?”
흔들던 부채를 접으며 병서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녹림왕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요. 녹림왕.”
청명의 단호한 말에 병서생이 웃음기를 거두며 그를 빤히 보았다.
“녹림왕요?”
“네.”
“알고 하는 말이죠?”
“네.”
“언제부터?”
“조금 전?”
한숨을 푹 쉰 병서생이 부채를 관 안으로 밀어 넣더니 머리를 벅벅 긁어 대었다.
“하, 요상하네. 보통은 잘 모르는데.”
화산의 제자들은 영문을 몰라 돌아가는 상황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갑자기 이해가 하나도 안 된다.
그때, 병서생 육소병이 몸을 획 돌리더니 녹림왕이 앉은 곳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러자 녹림왕이 눈을 부라렸다.
“이놈이! 내가 분명 일을 마무리하라고…….”
“야. 걸렸어, 인마! 헛짓거리 하지 말고 나와!”
“지금 그게 무슨…….”
“걸렸다니까, 이 새끼야! 나와!”
병서생이 녹림왕을 냅다 뻥 걷어찼다.
“아이고오!”
그러자 거구의 녹림왕이 의자에서 튕겨 나가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다.
“에이, 진짜.”
육소병은 투덜거리며 머리에 쓰고 있던 관을 내동댕이쳤다. 그의 머리가 촤르륵 흘러내리며 거칠게 엉켜들었다.
턱.
이윽고 호피로 장식된 의자에 앉은 그의 작은 몸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시 소개하지.”
화산의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저자가?’
딱히 변한 것은 없다.
하지만 옥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육소병은 지금까지 그들이 보던 자가 아닌 것 같았다. 표정 하나, 자세 하나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사람이 이렇게나 바뀔 수 있다니.
육소병은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로 일갈했다.
“내가 바로 녹림칠십이채의 주인인 녹림왕 임소병(林素炳)이다. 화산의 어린 제……. 쿨럭! 쿨럭! 에에에에이취! 아오, 진짜 죽겠네! 이놈의 기침! 쿨럭! 에헤에에에! 물! 물 가져와! 물!”
“…….”
백천이 흐린 눈으로 임소병을 바라보았다.
‘뭐 제대로 된다 싶더라.’
그럼 그렇지.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