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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438화 (438/1,567)

438화.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죠! (3)

“대체 뭐 하는 거래?”

“그러게요?”

화산의 제자들이 의아한 눈으로 당가의 가주실을 바라보았다.

술을 진탕 마시고 뻗었다가 눈을 뜬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가주실에서 들려오는 커다란 고성은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들려?”

“……들릴 만한 거리가 아니잖습니까.”

조걸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물론이고 당가의 식솔들도 차마 가주실 근처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윗사람이 소리를 질러 대더라도 최대한 안 들리는 척을 하는 것이 아랫사람의 도리이니까.

화산의 제자들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더 다가가려 할 때마다 당가의 식솔들은 칼날 같은 눈빛을 쏘아 대며 노려보았다. 그 발 조금만 더 뻗으면 독침이라도 날리겠다는 듯이 말이다.

“쩝.”

그러니 내내 이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그저 우엉우엉대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무슨 대화를 이리 격하게 하는 거지?”

소리만 들으면 거의 싸움판이었다. 하지만 당군악이나 야수궁주까지야 그렇다 치고, 저 청명이 싸움을 벌이는데 가주실이 멀쩡할 리는 없을 텐데…….

갖은 걱정이 스치던 그 순간이었다.

벌컥!

드디어 가주실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아아아아.”

청명이었다. 그는 흡사 귀신 같은 얼굴로 입에서 하얀 연기를 뿜어내더니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이겼다.”

“…….”

이겨? 뭘?

고개를 슬쩍 옆으로 빼 가주실 안을 바라보니 거의 넋이 나가 버린 당군악과 맹소가 의자에 널브러져 있었다.

“…….”

화산의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청명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대체 저 안에서 뭘 한 거야?”

“뭐…….”

슬쩍 뒤를 돌아본 청명은 세상에서 가장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있으면 불편하기만 하지만, 그래도 양보는 절대 할 수 없는 권한을 손에 넣었다고나 할까?”

“…….”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청명의 얼굴을 보니 대충 각이 나왔다.

‘또 후려쳤구만.’

“끄으으으.”

“망할.”

가주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당군악과 맹소의 신음이 백천을 서글프게 했다.

‘이제는 당가의 가주와 야수궁의 궁주까지 이 망할 놈의 마수에 시달리는구나.’

대체 강호가 어찌 되려고.

대체.

하지만 이 경천동지할 일을 벌인 청명은 그저 밥 잘 먹은 강아지처럼 뿌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짐은 다 실었어?”

“아니. 수레를 오늘까지 고쳐 준다고 해서.”

“응? 수레? 우리가 가지고 왔던 거?”

“응.”

“그거 팔라고 했잖아. 왜 수리를 해? 그 무거운 걸 또 끌고 가려고?”

“내가 안 그래도 팔려고 했는데…….”

“응?”

“……생각을 해 보니 이걸 우리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더라고.”

“……으응?”

그때 뒤에 있던 조걸이 두 눈으로 시퍼런 빛을 뿜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해 보니 아주 좋더라고, 이거. 하체를 단련하는 데는 이만한 수련법이 없어. 이 좋은 걸 우리만 할 수는 없지! 화산까지 끌고 가서 사형제들에게도 이 좋은 수련법을 친절히 소개해 주려고.”

“……그, 그럼 이거 끌고 다시 화산까지 가야 하는데?”

“감수해야지.”

“사형제들을 위해서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

청명의 얼굴이 순간 핼쑥해졌다.

……괜찮을까?

얘들 진짜 이래도 괜찮은 건가?

정신을 차려 보니 백천과 그 일행이 모두 과거의 화산에도 없었던 인성을 소유하고 있다. 그걸 이제야 새삼스럽게 실감하는 청명이었다.

“여하튼 수레는 오늘 저녁에야 수리가 끝난다고 하니까 출발은 빨라도 내일 아침은 되어야 할 거다.”

“그래?”

청명은 흠, 소리를 내며 의미심장하게 그들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 속내를 짐작한 조걸이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안 건드리기로 했다?! 분명 네 입으로 그랬다고! 나도 집에 좀 가자, 이 망할 놈아!”

“아, 누가 뭐래?”

청명은 시큰둥하게 대꾸하면서도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이럴 때 굴려야 하는데.’

그래도 여하튼 약속은 약속이니까.

“알겠어. 그럼 오늘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고.”

조걸이 그제야 한시름 놓은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집에 가네……. 세상에, 사천까지 왔는데 이제 겨우 집에 들른다니…….”

불효자라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었다.

조걸은 고개를 획 돌리며 윤종에게 말했다.

“사형. 할 일도 없으실 텐데, 저랑 같이 저희 집에 갑시다.”

“음, 그럴까?”

“아무래도 당가보다는 저희 집이 편하시겠죠.”

윤종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걸의 시선이 백천에게로 옮아 갔다.

“사숙께서는?”

백천은 그런 그를 잠깐 보고는 청명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나도 백상이 놈과 같이 사해상단에 들러 봐야 할 것 같다. 백상이가 상단주님과 할 말이 있다는구나.”

“흐음.”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에 온 화산의 제자들 중 가장 정신없이 바쁜 이가 바로 백상이었다. 그는 직접 오지 못한 현영을 대신하여 운남과의 차 무역에 관한 사항을 조율해야 했다.

“생각보다 재경각 쪽 일이 잘 맞는 모양이네.”

“장로님도 기꺼워하시더라. 실제로 예전부터 백상이가 그런 쪽으로는 빨랐다.”

“상가의 자식인데도 무식한 조걸 사형과는 다르게?”

“야! 나는 또 왜 끌고 들어가냐?!”

발끈한 조걸이 붉어진 얼굴로 화를 내며 삿대질을 해 댔다. 하지만 청명은 콧방귀를 뀌며 되레 혀만 찼다.

“원래 이런 일은 조걸 사형이 해야 하는 건데.”

“내가 그게 됐으면 가문을 이었지!”

“하기야.”

꽤 주제 파악이 잘되어 있는 조걸이었다.

사실 그가 상재가 없는 편은 아니다. 이건 재능의 문제라기보단 관심사의 문제였다. 백상은 재경각의 일에 관심이 지대하지만, 조걸은 셈하는 일엔 진저리를 치는 편이니까.

“아무튼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까지 다들 모이라고 해.”

그리하여 마침내 화산의 제자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이 주어졌다.

그 대화를 끝으로 화산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백천과 조걸, 백상, 윤종은 사해상단으로 향했고, 유이설은 당소소의 손에 질질 이끌려 시전을 둘러보러 나갔다.

그런 쪽으로는 취미가 전혀 없는 유이설은 아주 드물게도 그 무표정한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간만에 의욕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당소소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혜연은 마귀에게 침식당한 몸과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영문 모를 말과 함께 당가에서 가장 가까운 사찰을 찾아 나섰다.

덕분에 홀로 당가에 남겨진 청명은 간만에 편안하고 즐거운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하아아아암.”

집채만 한 호랑이가 뒤로 발랑 누운 채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청명은 그 위에 드러누워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한 손에는 재롱을 부리는 백아를 쓰다듬고 있었다.

“좋구나.”

이게 얼마 만의 휴식인가.

따지고 보면 마지막으로 제대로 쉬어 본 게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사람은 휴식 없이 달리기만 하면 결국에는 다리가 부러진다. 때로는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필요도 있는 법이다.

“다 좋아. 다 좋은데…….”

호랑이 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고, 배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잠이 절로 솔솔 밀려올 정도였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아저씨.”

“응?”

“아저씨는 거진데 할 일도 없어요?”

“거지가 할 일이 어디 있어?”

“…….”

휴식의 걸림돌인 홍대광이 청명을 보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래 봬도 나는 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단 말씀이지.”

“……잘도 그렇겠네요.”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사천까지 왔으면 발로 뛰어서 여기저기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래도 명색이 개방인데, 정보라도 좀 얻어야지.”

“쯧쯧. 멋모르는 소리를 하는구나.”

홍대광은 혀를 차며 반박했다.

“세상에 거지가 없는 곳이 어디 있느냐? 사천에도 거지가 쫙 깔려 있다. 내가 나서서 얻을 만한 정보는 이미 여기의 거지들이 다 파악해 놓은 것들이지.”

“…….”

“하지만! 아무리 사천의 거지들이라고 한들, 사천당가 안에는 들어올 수 없단 말씀. 괜히 밖을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사천당가 안을 조금이라도 더 살피는 게 이득이다.”

듣고 보니 제법 그럴싸한 변명이라 청명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소득은 좀 있어요?”

“당연히 있지. 네가 들어서 솔깃할 만한 정보도 좀 있고.”

“엥? 제가요?”

“그래.”

“뭔데요?”

그러자 홍대광이 대답 대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청명을 보았다.

“공짜로?”

“…….”

“인생의 선배로서 말해 주자면 말이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기 마련이다. 화산신룡. 정보를 얻고 싶으면 합당한 대가를 지불…….”

“아저씨가 여기까지 오면서 먹고 마신 게 다 공짜인 줄 아시는 모양이네. 모든 일에는 뭐가 따른다고요? 돌아가는 길에는 땅에 자란 풀 뜯어 먹으면서 가고 싶은 모양이죠?”

“……내가 잘못했다.”

혜연 스님이 하는 거 봤는데 그거 사람 할 짓 아니더라. 내가 염소도 아니고…….

“크흐흠.”

크게 헛기침을 한 홍대광이 짐짓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꽤 여러 가지 주워 듣기는 했는데, 대부분은 너와는 별 관계가 없는 이야기고, 너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야.”

그는 좌우를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한 뒤에야 속삭이듯 말했다.

“일전에 내가 말한 것 있잖느냐?”

“네? 일전에 뭐요?”

“그 당가주께서 만인방에 홀로 쳐들어갔다는 거.”

“아……. 그게 왜요?”

홍대광이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생각보다 꽤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벌어졌던 일인 모양이다.”

“…….”

“가문 내에서 가주의 입지가 굉장히 상승한 건 사실인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 한데 이건 다른 곳도 아닌 그 만인방과 척을 질 수도 있는 일 아니더냐?”

“그렇죠.”

“그러다 보니 가문 내에서 반발이 심했다고 하더군. 어째서 당가가 화산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 하느냐고 말이다. 그런데도 당가주께서 다른 반론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느라 꽤 싫은 소리를 들었던 모양이야.”

“흐응.”

청명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쥐고 있던 병을 들어 술을 꼴꼴 마셨다. 그리고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거 시키지도 않은 짓을.”

그의 시선이 먼 하늘로 향했다.

늦은 밤.

스슷.

세필이 백지 위를 빼곡히 채워 나갔다.

등잔불에 의지하여 서류를 작성해 나가던 당군악은 세필을 조심스레 내려놓고는 천천히 눈가를 주물렀다.

‘피곤하군.’

화산이 방문한 이후로 조금 무리하게 일을 하는 중이었다. 한철검을 만드는 일에 신경을 쏟는 건 물론이거니와 운남과의 차 무역도 다시 조율해야 하고, 천우맹의 기틀도 결국은 그가 잡아야 한다.

일이 쏟아지고 있으니 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이 당가가 다시 한번 천하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중 하나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후.”

찻잔을 잡은 그는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그새 차가 식은 걸 보니, 집중했던 사이에 시간이 어느새 훌쩍 지난 모양이었다.

‘차를 다시…….’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문까지 접근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집중했다고는 해도, 그의 감각에서 벗어나 이곳까지 접근할 수 있는 이는 당가 내에 몇 없다.

그는 천천히 입을 뗐다.

“무슨 일인가?”

“그럴 때는 누구인지부터 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누군지 빤한데 굳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끼이익.

문이 열리자 쏟아지는 달빛 아래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청명.

그는 양손에 술병을 가득 들고 씨익 웃었다.

“한잔 어때요?”

당군악은 작성하던 서류들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가만히 미소 지었다.

“좋지. 마침 한가하던 차였네.”

쪼르르르.

빈 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커다란 당가의 터 한쪽에 자리한 작은 연못. 그 연못 가운데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정자 위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새하얀 잔에 술이 차오르자 그 위로 보름달이 비쳤다. 연못 위에 떠오른 달처럼.

“내일이면 가는군.”

“네. 할 게 많으니까요.”

청명의 담담한 말에 당군악은 작게 웃었다.

“나도 나름 바쁘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이건만, 자네를 보니 내가 너무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닌가 싶군.”

“에이. 뭐 그런 말씀을.”

“그냥 하는 말은 아닐세.”

청명의 너스레에도 당군악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화산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 그들은 자네와 늘 함께 움직이니까. 하지만 밖에서 지켜보면 화산은 정말 그 짧은 시간 안에 너무도 많은 것을 이루었지.”

“…….”

“부러울 정도야. 나는 자네 같은 열정과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니까.”

“엄살이 너무 심하신데요?”

“엄살이라…….”

당군악이 빙그레 웃는다.

“그런 거라면 좋겠군.”

그리고 가만히 술잔을 기울인 그는 이내 청명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청명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이러세요?”

“소소를 화산으로 데리고 가 주어 고맙네.”

“…….”

생각지도 못한 말에 청명은 입을 다물었다.

“물론 가주로서 입 밖에 낼 말이 아닌 것은 아네. 하지만 아버지로서는 해야 할 말이야. 내게는 조금 어색한 모습이지만, 소소는 화산으로 가고 나서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군. 예전에는 향기가 없는 꽃 같았지. 한데 지금의 모습을 보니 소소가 당가에서 그리 행복하지 않았었다는 걸 알겠네.”

“그건 오해예요.”

“오해?”

“네.”

청명이 단호하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훨씬 더 활기차게 살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못 봤던 모습이니 더욱 그렇게 느끼시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소소는 여기서도 불행하진 않았을 거예요. 늘 씩씩하고 긍정적이니까요. 지금은 그저 자신에게 더 맞는, 다른 삶을 찾았을 뿐이죠.”

“…….”

“그리고 소소가 그렇게 자라도록 해 준 건 가주님일 테고요.”

당군악이 가만히 청명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에이. 오히려 고마운 건 저죠. 만인방을 막아 주셨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좀 곤란해지셨다고.”

“곤란할 건 없네.”

당군악이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건 반대에 부딪히는 건 당연한 거지. 그게 그들의 역할이니까.”

“그건 그렇지만.”

“공치사를 받고자 한 일은 아닐세. 그저 당연히 해야 했던 일이지.”

청명이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당군악은 부러 술잔을 들었다.

“한잔하겠는가?”

“…….”

청명은 결국 그 말을 접어 둔 채 웃으며 잔을 들었다.

“좋죠.”

둘의 술잔이 가볍게 부딪혔다.

잔에 담긴 달이 가볍게 흔들리다 천천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잔을 비운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못 위의 정자에서 마시는 술은 또 색다른 흥을 불러일으켰다.

“맹이 만들어지면 많은 게 변하겠죠.”

“그럴 것이네. 아무래도 체계가 있어야 하니까.”

“어쩌면 화산과 당가의 관계도 조금은 바뀔지 모르겠네요.”

“감수해야지.”

청명은 빙글빙글 웃으며 당군악의 빈 잔을 채웠다. 술에 인 작은 물결을 바라보며 당군악이 나직이 말했다.

“많은 것이 바뀔지 모르지. 그래, 바뀔 수 있겠지. 하지만 하나는 변치 않을 것이네.”

“네?”

그의 입가에 조용히 미소가 드리워졌다.

“자네와 내가 친구라는 사실 말일세.”

“…….”

청명은 대답 대신 달이 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컴컴한 밤하늘을 보름달이 희게 밝히고 있었다.

“좋은 밤이네요.”

“그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좋은 밤이지.”

달이 기울고 하늘 끝이 어슴푸레 밝아 올 때까지 두 사람의 술자리는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과거 한때, 청명과 당보가 술을 나누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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