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화. 저 매화검존 아닌데요? (2)
“그러게, 사람이 정직하게 살아야지.”
“꾀를 쓰더니 제 꾀에 제가 빠졌네.”
“쌤통.”
들으란 듯 쑥덕거리는 목소리를 참던 청명이 결국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는 베개를 잡아 던졌다.
“카아아악! 나가!”
하지만 그가 던진 베개는 평소처럼 매섭게 날아가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문 앞에 서서 그런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깨소금이 쏟아지는 양 낄낄댔다.
“힘이 없네, 힘이 없어.”
“다 죽어 감.”
“아이고. 우리 청명이 다 늙으셨어. 아, 매화검존이라 그러시나? 끌끌. 다 늙으셨…….”
“아니, 이 새끼가 미쳐 가지고 기사멸조를!”
퍼억!
윤종이 벼락같이 조걸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다. 예상치 못하게 얻어맞고 바닥에 철푸덕 엎어진 조걸이 억울한 표정으로 벌떡 일어났다.
“아, 아니. 왜 때리십니까!”
“어디 매화검존을 입에 올리면서 늙었느니 어쩌니 망발을 지껄이느냐! 이 기름에 튀겨 죽일 놈이!”
“……아, 맞다.”
사형들의 하는 양을 지켜보던 청명이 힘없이 도로 드러누우면서 중얼거렸다.
“앓느니 죽어야지.”
내가 매화검존이다, 이 새끼들아! 내가!
아니지. 매화검존 아니라고 할걸. 그냥 말귀 안 통해도 통할 때까지 말이나 해 볼걸.
내가 왜 내 행세를 해서 이 꼴을 당하나. 이 꼴을…….
“끄으으으응.”
청명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고 오들오들 떨었다. 온몸이 쑤시고 한기가 들었다.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그러게, 왜 꼼수를 부렸냐.”
“내가 나 좋자고 한 거냐! 어? 나 하나 좋자고 한 거야?”
청명이 누운 채 눈을 희번덕거렸다. 하지만 제자들은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싱글벙글했다.
자고로 호랑이는 발톱이 빠졌을 때 놀려 둬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들의 즐거움은 금방 끝나 버렸다. 안타깝게도, 이 이빨 빠진 호랑이에게는 무서운 보호자가 있었다.
“환자 괴롭히지 말고 나오세요!”
“쩝.”
“아쉽.”
“조금만 더 하고 싶은…….”
“당장! 나와요!”
당소소가 버럭 외치며 눈을 부라렸다.
“…….”
그러자 백천을 비롯한 나머지 제자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방문에서 비켜났다. 사질인 소소는 무섭지 않지만, 의원인 소소는 무서웠다.
“똑바로 누워요, 사형.”
“끄응.”
청명이 두말없이 바로 눕자 당소소가 식힌 물수건을 그의 이마에 조심스레 올렸다.
“말해 봐요.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아니, 나는 그냥 아평이 그놈을……!”
철푸덕!
“…….”
두 번째 물수건이 청명의 얼굴에 매섭게 꽂혔다.
“어디 당어르신을.”
“……네. 당어르신을 설득하려고…….”
“쯧.”
짧게 혀를 찬 당소소가 청명의 얼굴에서 물수건을 걷어 냈다.
“근육이 놀란 거예요. 아무리 사형이라고 해도 그 많은 한철을 잘랐는데 멀쩡하면 이상한 거죠.”
그러자 문 쪽에서 또 와글와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도 다 해 먹고!”
“맞아. 검도! 나보고는 검 해 먹었다고 그렇게 뭐라고 하더니! 지는!”
“나가라니까!”
당소소가 주먹을 흔들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나머지 제자들이 찔끔하여 달아났다.
“하여튼 진짜!”
인간들이 나잇값을 못해요! 나잇값을!
그녀는 고개를 내젓고는 청명을 바라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어때요?”
“……오른팔이 안 움직여.”
“잘도 움직이겠다, 그게.”
당소소가 혀를 찼다.
만년한철을 그만큼 잘랐는데 팔이 움직이면 그게 잘못된 거지.
‘정말 사람이 아니야.’
앓아눕든 어쨌든, 그걸 해냈다는 게 대단한 거다.
당조평도 매화검존이 있다는 생각에 한철괴를 그리 길게 뽑아 낸 거지, 그냥 당가에서 주조하는 거였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녹인 한철을 나눠 붓다 보면 쇳물이 튈 확률이 높아지고, 그럼 사람이 상할 확률도 어마어마하게 높아진다.
그러니 결국은 청명이 있었기에 당가의 장인들이 조금 더 안전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히 고마워야 하는데.’
왜 이리 한심할까……. 왜 이리…….
그만한 만년한철을 수백 조각 낸 사람이 한심하게 보이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었다.
“근육도 근육인데, 내력을 너무 써서 탈진한 거니까 한동안 꼼짝 말고 정양에 들어야 해요. 아셨죠?”
“……알았어.”
청명이 순순히 대답하자 당소소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밖으로 나갈 줄 알았던 그녀는 방구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살짝 당황한 청명이 눈을 굴렸다.
“어…… 그…….”
이윽고 작은 농 뒤를 샅샅이 뒤진 당소소가 술병을 한 아름 찾아 안고는 눈을 부라렸다.
“확 얼굴에다 그냥 부어 버릴까 보다!”
“…….”
“쉬어요!”
그녀마저 밖으로 나가자 마침내 고요해졌다. 청명은 허무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아이고, 내 팔자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술은 술대로 못 먹네.
장문사형.
내가 이러고 살아야겠소? 예?
- 뭐래.
“…….”
저 양반 요즘 들어 좀 차가워진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 * *
다음 날 오후.
“끄으응. 쉬어도 몸이 몸이 아니네.”
아이구,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아니지. 나 젊구나?
청명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허리를 두드리며 공방으로 향했다.
무리를 해서인지 하루를 꼬박 쉬고 운기를 쉼 없이 했는데도 영 몸이 돌아오지를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방 안에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만년한철검을 만드는 건 앞으로의 화산에 커다란 방점이 될 만한 일이다. 그런 일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어디 대충대충 만들어 봐. 이번에야말로 당가 기둥뿌리 뽑아 버릴 테니까!”
눈에 불을 켠 그는 당조평의 공방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기가 막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봐! 이거 봐! 하루가 지났는데 시작도 안 했잖아!”
게을러 터져 가지고는, 아주 그냥!
망치 소리도 들려오지 않고, 심지어 인기척도 없다.
세상에!
심지어 사람도 없잖아!
“응?”
……왜 사람이 없지? 그럴 리는 없는데?
공방 안을 두리번거리던 청명이 마침 지나는 이를 잡아 세웠다.
“저기요.”
“오! 화산신룡 청명 도장!”
“말씀 좀 묻겠는데, 여기 사람들 다 어디 갔나요?”
“아아. 여기는 주괴를 뽑는 공방이고, 담금질은 다른 곳에서 합니다. 저쪽으로 쭉 간 다음에 큰 전각 뒤로 가 보십시오.”
“아, 네. 감사합니다.”
청명은 예의도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커다란 전각을 향해 부지런히 뒤뚱뒤뚱 걸어갔다.
전각이 가까워질수록 반가운 소리가 점점 커졌다.
따앙! 따앙! 따앙!
“그렇지! 망치 소리 좋고!”
따아아앙! 따아아아앙! 따아아아앙!
“……망치 소리가 과하게 좋고.”
뭔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운 것은 기력이 있단 뜻이니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그 내용이 영 심상치가 않다는 점이었다.
“잡아!”
“빌어먹을, 거기 좀 놓치지 말라고!”
“더 쳐! 더! 뭐 하는 거야! 기껏 달궜는데! 더 치라고!”
“똑바로 안 쳐?”
“…….”
청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전각 뒤로 향했다.
검 하나 만드는 데 뭐가 이리 요란…….
“엄마야?”
청명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공방이었다.
전에 보았던 당조평의 공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공방의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 당가의 장인들이 일제히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어리들을 망치로 내려치고 있었다.
‘저게 다 몇 명이야.’
하나, 둘. 어……. 열? 스물?
그 많은 인원이 숯을 달군 화로 앞에서 제 키만 한 망치들을 들고는 땀을 뻘뻘 흘려 대었다.
치이이이익!
달군 한철을 꺼내 집게로 잡은 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쳐!”
카아아앙! 카아아아앙!
일순 망치가 연쇄적으로 내리쳐지며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뭔 놈의 쇳덩어리가 이렇게 단단하냐고!”
“빌어먹을, 그리고 왜 이리 빨리 식어!”
“열 번을 넘게 쳤는데 왜 펴지질 않아!”
그리고 당가 장인들의 입에서는 거의 악에 받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어…….”
그 광경을 보던 청명은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어……. 그러니까 이게…….
내가 생각한 거랑은 좀 다르…….
“끄르르륵.”
“이 강단 없는 놈이! 뭘 했다고 쓰러지는 거냐! 당장 교대!”
“예!”
쉼 없이 망치질을 하던 이들 중 하나가 끝내 뒤로 넘어갔다.
문제는, 쓰러지는 이를 보고도 주변인들이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쓰러진 이를 질질 끌어내자, 대기하던 이가 그 자리를 재빨리 채웠다.
“빌어먹을! 그새 다 식었잖아! 다시 달궈!”
“……이, 이거 언제까지 쳐야 합니까? 반나절을 쳤는데도 반도 안 펴졌는데.”
“한철을 다룬다는 게 그리 쉬운 건 줄 알았어? 칠 주야는 쳐 댈 생각 해!”
“치, 칠 주야…….”
칠 일이나?
반나절 만에 혼절하는 이가 나오는데 칠일?
그때 공방 안쪽에서 한 사람이 주변을 살피며 걸어 나왔다.
당조평이었다.
그는 뒷짐을 진 채 혀를 차더니 못마땅한 듯 꼬장꼬장 소리를 내질렀다.
“에이이잉! 비싼 밥 처먹고도 이리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얼마나 두드렸다고 이렇게 퍼진단 말이냐! 예전 너희 아비들은 사흘 밤낮 망치질을 하고도 술판을 벌였었다!”
“…….”
아니, 그건 마시고 아주 기절하겠다는 거고.
그걸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되지.
“끄, 끄륵…….”
“소금! 여기 소금 가져와라! 탈수다!”
“땀을 너무 흘렸어!”
공방 안을 바라보는 청명의 눈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양 떨렸다.
‘전쟁터여?’
뭔 칼 하나 만드는 데 이리 야단법석이냐?
“왔어?”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렸다. 다른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처럼 질린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청명이 물었다.
“언제부터 저런 거야?”
“해 뜨기 전이었으니까, 꼭두새벽부터?”
지금 해가 중천이니까 반나절은 훨씬 넘었구나.
“그런데 저거 왜 저래?”
청명이 망치에 얻어맞고 있는 한철괴를 가리켰다. 반나절이 넘게 후려쳤다는데, 한철괴는 이제 겨우 끝부분이 뭉뚝해졌다.
“워낙 단단해서 안 펴진단다.”
“그럼 어떻게 한다고?”
“……펴질 때까지 친다는데?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
청명이 입을 쩌억 벌렸다.
‘뭐가 이렇게 무식해?’
어?
사천당가면 뭔가 그 뚝딱뚝딱! 사사삭! 하면 짠! 만들어지고 하는 맛이 있어야지. 그냥 생짜로 사람 갈아 가며 두들겨 패서 만들 줄이야.
‘내가 당보 놈을 봤을 때부터 당가의 본질을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여기도 만만찮게 무식한 문파다.
그때 청명을 발견한 당조평이 후다닥 달려 나왔다.
“검존 어르신! 오셨습니까?”
“그, 그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허허허. 생각보다 속도가 빠릅니다.”
“……시간 개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청명은 멍하니 당조평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거 다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려?”
“별로 안 걸립니다.”
“……진도가 안 나가는 것 같은데?”
“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자꾸 돌아오는 영혼 없는 대답에 청명은 불만을 토하려 입을 뗐다. 하지만 그 전에 당조평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아이들도 당가의 장인들입니다.”
“…….”
“한철을 직접 다뤄 볼 수 있는 상황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조금 미련스러워 보이지만 저 방법이 한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교육이 끝나면 제 나름의 방식을 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노인의 눈은 어느새 한평생 당가를 지탱해 온 장인의 그것으로 보였다.
그 눈빛을 마주하니 천하의 청명도 더는 딴죽을 걸 수 없었다.
“그보다!”
그때 당조평이 손을 뻗더니 청명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엥? 왜?”
“자자,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청명은 당조평의 손에 끌려 공방 안쪽으로 향했다.
뜨거운 열기가 쏟아지는 화로를 지나 가장 안쪽의 간이 문을 열자 작은 숯 화로와 모루가 보였다.
그리고 모루 위에는 한철괴가 놓여 있었다. 조금 전 밖에서 봤던 만년한철보다는 조금 더 그 빛이 맑아 보였다.
청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게 뭔데?”
하지만 당조평은 대답은 하지 않고 대뜸 청명에게 요구했다.
“여기 손 내미십시오.”
“손은 갑자기 왜?”
“어서요.”
청명이 얼떨떨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당조평이 갑자기 옆에 놓인 칼을 집더니 청명의 손을 베려 들었다.
“와 씨!”
반사적으로 당조평을 걷어찰 뻔한 청명이 얼른 가까스로 발을 멈추었다. 다 죽어 가는 노인을 전력으로 찰 뻔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아, 나는 누가 때리려고 하면 반사적으로 반격한다고! 이게 뭔 짓이야!”
청명이 버럭 역정을 내자 움찔한 당조평이 겸연쩍은 얼굴로 그 이유를 말했다.
“피를 내야 합니다.”
“……피?”
당조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벤 뒤 한철괴 위에 그 피를 뿌리십시오. 다른 곳도 괜찮긴 하지만, 그래도 검을 쓰는 오른손의 피가 더 나을 겁니다.”
“대체 뭘 하려고?”
청명이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하고 묻자 당조평은 슬며시 웃었다.
“검존의 검을 다른 한철검처럼 만들 수는 없지요. 제가 직접 만들 겁니다. 특별하게.”
“엥?”
갑자기 내 검을 만든다고?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당황하여 묻자 당조평은 조금 서글픈 눈으로 그를 보았다.
“어제 그깟 만년한철 조금 자르는 데도 낑낑대시는 모습을 보니, 검존 어르신께서도 많이 늙었구나 싶어서……. 아무리 반로환동을 해도 세월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그려.”
“…….”
“힘이 약해지면 검이라도 좋은 걸 써야지요. 검존께서 평범한 매화검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침 한철괴도 들어왔겠다, 제가 아주 좋은 걸로 새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직 검존만을 위한 검으로!”
“내 검?”
“예.”
당조평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누구도 아닌 검존의 검입니다. 화산제일인의 검이 되겠지요.”
“……내가 그런 걸 받아도 될까?”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매화검존이기는 한데, 매화검존이 아니기도 하고.
그게 참 애매하고 오묘하며 그러니까 좀 거시기…….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청명이지만 이건 상황이 조금 다르다.
복잡한 심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청명을 보면서도 당조평은 그저 단호하기만 했다.
“검존이 아니면 누가 이 당조평이 만든 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사양 마시고 어서 피를 부어 주십시오. 신병은 주인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으음.”
청명이 떨떠름해하면서도 일단 손바닥을 그어 주괴 위에 피를 떨어뜨렸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한철 위에 떨어진 피가 옆으로 흘러내리지 않고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좋습니다!”
당조평은 모루 앞에 앉더니 손을 숯 화로에 가져다 대었다.
화르르르륵!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순식간에 숯들이 타오르며 맹렬한 열기를 내뿜었다.
“만년한철과 검존의 검이라.”
당조평의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사람은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고 합니다.”
“…….”
“다 늙은 놈이 왜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가 했더니, 이 검이 제게 남은 운명이었던 모양이지요.”
그의 목소리는 더없이 웅혼하게, 그리고 또 청아하게 울렸다.
“지켜보십시오, 검존 어르신. 제 모든 것을 건 검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당가의 백 년을 지켜 온 장인이 뿜어내는 기세에 천하의 청명조차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청명의 피를 담은 한철괴에 장인의 혼을 실은 망치가 내려쳐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