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친구 좋다는 게 뭔가! (5)
사천당가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당가의 상징은 독과 암기.
그중 암기의 정점에 올라 있는 당가의 최고 장인이 수 년 만에 다시 망치를 잡았다는 사실은 당가인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체 뭘 만드신대?”
“뭐든 대단한 거겠지!”
“그런데 지금 어르신께서 망치를 잡으실 수 있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가주께서 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당가인들의 시선이 당조평의 공방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한편 공방 안의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며 묵은 먼지를 털어 냈다. 수십 명의 장정들이 달려드니 금세 공방이 새것처럼 반짝거렸다.
가장 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화로 앞에 앉은 당조평은 심유한 눈으로 손에 든 숯을 점검했다.
“질 좋은 장백탄(匠白炭)이로군. 내가 손을 놓은 동안에도 관리가 잘됐어.”
당군악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종조부님. 그건 그냥 백탄이고 장백탄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
“…….”
공방의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명이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괜찮을까? 이거 진짜 괜찮은 걸까?”
이러다가 한철이고 뭐고 모조리 다 날려 먹는 것 아닐까?
어지간해서는 초조해하지 않는 청명이건만, 상황이 그만큼 생각 같지 않았다.
하나 그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당조평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사람의 키보다 배는 큰 화로에 오른 당조평은 화로 안으로 훌쩍 뛰어들었다.
“내려!”
“예!”
당잔이 장백탄을 들어 나르자 그것을 화로 안에 꼼꼼히 채운 당조평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소리쳤다.
“가주!”
“예, 종조부님!”
당군악이 기다렸다는 듯 소매 안에서 작은 함 하나를 꺼냈다. 얼굴이 살짝 긴장한 듯 굳어 있었다.
이윽고 화려하게 금박이 씌워진 함이 열렸다. 붉은색의 작은 보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당군악은 그것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화로 안의 당조평에게 건넸다.
백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저게 뭡니까?”
그러자 당패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백염옥(白炎鈺)이라는 물건입니다. 내력을 받으면 받는 대로 열기를 내뿜는 물건이지요. 저 물건이 없으면 백로를 데울 수 없습니다.”
“그런 물건이 있단 말입니까?”
“당가의 기보 중 하나입니다. 정말 귀한 물건이죠.”
“오! 저게 당가의 기보.”
그 말만으로도 얼마나 진귀한 물건인지 알 수 있…….
“비싸요?”
“…….”
불쑥 끼어든 청명의 질문에 당패가 입을 벙긋거렸다.
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노골적인 탐욕을 두 눈 가득 뿜어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욕심 많은 도사를 앞에 두고…….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 당조평이 화로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털더니 버럭 소리쳤다.
“백로(白爐)에 불을 지펴라!”
“예!”
마침내 화로에 불씨가 지펴지기 시작했다.
“가주!”
“예!”
“내력을 불어넣으시오! 화력을 높여야 하오!”
“예! 알겠습니다.”
당군악을 비롯한 당가의 장로들이 화로의 삼 면을 점하고 섰다. 애초에 그런 용도로 만든 화로인지, 사람이 설 자리가 미리 마련되어 있었다.
내력을 밀어 넣기 시작하자 불이 순식간에 맹렬하게 타올랐다. 화로 아래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불꽃이 하강했다. 그건 불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조평의 눈에는 그 화력도 만족스럽지 않은 듯했다.
“더!”
공방 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명이 슬쩍 당패에게 물었다.
“저 화로가 특별한 거예요?”
당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당가에는 여러 화로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화로는 홍로(紅爐)라 불리고 당가의 누구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높은 화력을 낼 수 있는 화로는 청로(靑爐)라고 하여, 공방의 인정을 받은 장인들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저게 청로?”
“아니요.”
당패가 고개를 저었다.
“저것은 백로(白爐)라 불립니다. 공방의 수장만이 사용할 수 있는 화로로, 당가에서 가장 강한 화력을 냅니다. 오직 저 화로만이 만년한철을 녹일 수 있습니다.”
“오…….”
청명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아아아아아!
얼마나 화력이 높은지 화로 아래로 보이는 불꽃이 거의 희게 보일 지경이었다.
“우와. 뜨거워!”
여기저기서 경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공방 밖에 있는 화산의 제자들마저 녹여 버릴 것처럼 어마어마했다.
이미 충분히 달아오른 것 같았지만, 당조평은 그러고도 무려 반 시진 가까이 화로를 더 달궜다.
“한철을 가져와라!”
“예!”
바짝 긴장한 채 대기하고 있던 당가의 젊은 대장장이들이 한철을 날라 공방 안으로 들어섰다.
“넣어라!”
당조평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체 없이 만년한철을 화로의 윗부분으로 쏟아부었다.
“장백탄!”
달궈진 숯이 다시금 화로 위로 쏟아졌다. 그러자 더욱 커진 백색의 화염이 화로 위의 구멍으로 비어져 나와 춤을 췄다.
가공할 열기.
보고 있는 것만으로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당조평은 뼈를 녹일 것 같은 열기를 내뿜는 화로의 바로 앞에 앉아 눈 한 번을 깜짝하지 않았다. 그의 심유한 눈에 역류하는 불꽃이 비쳤다.
‘뜨겁지도 않나?’
백천이 혀를 내둘렀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백천의 눈앞에 있는 이는 평생을 불꽃과 쇠에 바친 장인 중의 장인일 뿐이었다.
“……굉장하네요.”
윤종의 감탄에 백천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분야에서건 일정 경지에 오른 것은 사람의 눈길을 잡아끈다. 화산 제자들은 공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도무지 눈을 떼지 못했다.
바로 그때 굳게 다물렸던 당조평의 입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더! 더 불어넣어라! 화력을 더 높여! 어정쩡하게 녹아서는 쇠의 질이 떨어진다. 이 정도로는 안 돼!”
장로들과 당군악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솟구쳤다.
“교대해!”
당조평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대기하고 있던 장로들이 먼저 서 있던 이들의 자리로 밀고 들어가 내력을 불어넣었다.
숨을 몰아쉬며 화로에서 떨어진 장로 중 하나가 쏟아지는 땀을 닦더니 당조평을 바라보았다.
“숙부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열기가…….”
“시끄럽다! 말시키지 말거라!”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천둥처럼 공방을 울렸다. 조금 전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그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열기에 수염 끝이 말려 올라가고 얼굴이 벌겋게 익었지만, 당조평의 눈은 오로지 불꽃의 움직임에만 쏠려 있었다.
“부족하다니까! 네놈들은 대체 수련을 어떻게 했기에 내력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 더 짜내서 밀어 넣어라, 당장!”
장로들이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더욱더 내력을 밀어 넣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력이 동이 났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교대!”
“예!”
세 번째로 기다리던 장로들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력을 불어넣는 순간 당조평이 고함을 내질렀다.
“안 돼!”
흡사 도자기가 깨어지는 것처럼 다급하고 까랑까랑한 목소리였다.
당조평의 시선이 처음으로 화로에서 떨어졌다.
“이걸로는 안 돼! 당장 바꿔라, 당장! 네놈들로는 안 된다. 내력이 더 정순한 이들로 데리고 와!”
그러자 상황을 조율하던 당패가 화들짝 놀라 급히 말했다.
“하, 하지만 아직 첫 번째 조가 운기를 끝내지 못했습니다.”
“뭐?”
당조평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장로들이 이것밖에 없느냐?”
당패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일전에 원로원과 가주간의 알력 다툼을 청명이 해결해 버리면서 많은 장로들이 은거에 들었다.
원로원주였던 당외 일파만 있었어도 내력이 높은 사람이 부족할리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이런 멍청한 놈들! 이러고서 무슨 한철을 녹이겠다고! 온도가 낮아지면 한철의 한기가 고로(高爐)를 식히고, 결국엔 모조리 폐품이 되어 버린다! 어서 사람을 불러와라! 내력이 높은 이들로, 당장!”
“하, 하지만 장로들 중에 고르고 고른 이들입니다. 이들보다 내력이 높은 이들은 지금 당가에 없습니다…….”
“이 멍청한 놈아!”
당조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검존 어르신을 모셔 오거라! 그분의 내력은 천하제일이 아니더냐!”
“……네?”
모두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
청명은 멍한 얼굴로 그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물었다.
“……나?”
“…….”
백천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제 꾀에 제가 넘어졌네.”
윤종 역시 동의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도지.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어…….”
청명이 우물쭈물하자 당조평이 청명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입을 뗐다.
“검존 어르신! 지금 도와주셔야 합……. 응? 넌 누구……?”
“…….”
거 쓸데없는 순간에 정신이 돌아오네.
청명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긴 누구야! 빌어먹을!”
그리고 휙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와!”
“……우리도?”
청명은 대답 대신 당조평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력의 종류는 상관없는 건가요? 내력만 높으면 되는 거예요?”
당조평의 이글거리는 눈이 청명을 똑바로 응시했다.
“종류는 상관없다. 음한 계열의 내력만 아니면 돼. 대신 정순해야 한다!”
“도가 계열은요?”
“괜찮다!”
그 순간 당조평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지금 바로여야 한다! 검존 어르신은 어디에 있느냐! 당장 모셔 오거라!”
“거 참 미묘하게 반만 돌아왔네.”
“뭐?”
“아, 아니에요. 내력만 높으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음?”
청명이 씨익 웃었다.
“여기 있거든요. 가진 건 내력밖에 없는 놈들이.”
“……거 말이 좀 심하네.”
“내력밖에 없다니.”
뒤에서 화산의 제자들이 투덜거렸지만 청명은 단호했다.
“시끄러워! 영약 먹은 값은 해야지. 빨리 달라붙어. 기껏 가져온 한철 다 날려 먹기 전에!”
“알았다!”
청명과 백천, 그리고 유이설이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장로들은 모두 당혹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청명은 가차 없이 장로들을 밀치며 비집고 들어갔다.
“좀 나와요, 나와! 얼른!”
장로들이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
“도, 도장! 웬만한 내력으로는 이 화로를 달굴 수 없소이다! 허튼 짓 하지 마시오!”
“웬만한 내력은 무슨.”
이것들이 좋은 것만 주워 먹어서 내력은 진짜 깡패라니까?
“붙어!”
“비켜 주세요.”
“잠시.”
청명과 백천, 그리고 유이설이 끝내 장로들을 밀어 내고 화로에 달라붙었다.
짧게 심호흡을 한 청명은 화로에 돌출되어 있는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재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화로에 온도에 비해 손잡이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불어넣어!”
세 사람의 내력이 일제히 화로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
그와 동시에, 불안함에 살짝 일그러졌던 당조평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푸르스름하게 변했던 불꽃이 다시 백색으로 변한 것이다. 그뿐이랴. 화로를 달구는 백염(白炎)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거칠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높아지는 온도를 확인한 당조평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녀석들이 내력이 어마어마하구나! 좋다! 이대로 계속하면…….”
“그런데요.”
“헉!”
일순 헛바람을 삼킨 당조평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명과 시선을 마주했다.
‘이만한 내력을 밀어 넣으면서도 말을 할 수 있다고?’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쩌억 벌렸다.
“이거 얼마나 해야 하는 건가요? 네? ……영감님?”
“…….”
퍼뜩 정신을 차린 당조평이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사, 사흘은 이렇게 지펴야 한다.”
“사흘이요?”
청명이 눈살을 찌푸렸다.
“흐음, 너무 긴데. 혹시 화력을 더 높이면 기간이 좀 줄어드나요?”
“……화력을 더 높인다면 가능하지. 한데 그게 될 리가…….”
“네, 알았어요. 그럼…….”
청명이 입꼬리를 쭉 말아 올렸다.
“조심하세요. 노릇노릇 익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그 순간 청명의 의복이 태풍이라도 만난 듯 맹렬하게 휘날렸다. 그리고 화로의 불꽃이 과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경악한 당조평은 주름진 눈가가 팽팽해질 정도로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희열로 바뀌었다.
“좋아, 어디 해 보자꾸나! 뭐 하느냐! 풀무질을 시작해라!”
“예!”
뻥 뚫린 공방의 굴뚝으로 백색의 화염이 승천하는 용처럼 솟구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