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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427화 (427/1,567)

427화. 친구 좋다는 게 뭔가! (2)

사천당가의 접객청.

“…….”

당군악이 복잡 미묘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당소소는 눈을 반짝이며 그런 아버지를 마주 보았다.

당군악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잘못된 건 아닌데.’

정말 잘못된 건 아니다.

당소소도 이제 당당한 화산의 제자이자, 어엿한 무인이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 한 떨기 꽃 같던 딸을 여전히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당군악으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조금 낯설어 보이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심지어 딸이 화산에 들어간 뒤로 처음 본 게 아님에도 그랬다.

양 갈래로 대충 질끈 묶어 올린 머리.

당가에서 입던 옷과는 달리, 지독히 편해 보이는 무복.

그리고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괜찮은데?’

그래. 괜찮지!

사실 아무려면 어떤가. 내 딸이 이리 건강한데!

당군악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함빡 어렸다.

“오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아닙니다, 아버님!”

당소소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좀 작게 말해도 된다.”

“예!”

“…….”

당군악의 뚱한 시선이 청명에게로 돌아갔다.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

이 새끼가 남의 딸내미를 산적을 만들…….

‘아니지. 산적이고 나발이고 건강하면 좋…….’

생각이 부딪치기 시작하자 당군악의 입가가 미미하게 떨렸다. 도무지 입장이 정리가 되질 않는다, 도무지!

“그, 그래. 네가 간만에 집에 오니 좋구나.”

“예! 저도 좋습니다.”

“…….”

소소야.

제발 이 아비에게만이라도 예전처럼 편하게 말을 해 다오.

제발.

당군악은 어쩔 수 없는 서글픔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지만 당군악이 받은 충격은 당패가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소야.”

“응?”

“그……. 어…… 마, 많이 변했구나.”

“네? 똑같은데요?”

“…….”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허허허.

당패가 어색한 얼굴로 당소소를 바라보다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훨씬 더 어색한 목소리로 청명을 향해 말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청명 도장.”

“네!”

“…….”

그 발랄한 대답에 당패의 얼굴엔 겸연쩍은 기색이 가득했다.

예전 그는 당군악과 비무를 하는 청명의 등에 비수를 던진 적이 있다. 그 일로 소가주의 자리에서 밀려나 이제 당잔과 경쟁을 하는 입장이 되어 버렸다.

물론 그 일로 인해 청명에게 악감정을 품은 일 따윈 전혀 없었다. 무인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는 청명에게 죄송스러운 마음뿐이었으니까.

그리고 당패는 지금 청명에게 새삼 감탄했다.

‘저리도 담대하구나.’

청명은 이미 그런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이게 그릇의 차이겠지.’

처음 만났을 때의 청명은 그저 화산의 도사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천하제일 후기지수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물 중 거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당패는 새삼 청명이라는 사람의 그릇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당패의 목소리는 겸허하기 그지없었다.

“감사합니다.”

“네? 뭐가요?”

“제 잘못을 잊어 주신 것에…….”

살짝 말끝을 흐렸던 그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입을 뗐다.

“그때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못했던 점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하지만 청명은 이번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당패가 살짝 의문을 품은 순간, 백천이 청명의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저분이 예전에 너한테 칼 박았던 그분이다.”

“뭐? 그게 이 새끼야?”

“…….”

언제 해맑았냐는 듯 청명은 눈을 새하얗게 뜨며 당패를 보았다.

백천은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면 청명은 당패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당군악을 따라온 당패를 슬쩍 본 이후로는 칼을 맞고 쓰러졌던 게 전부다. 그 뒤로는 당패가 뇌옥에 갇혔으니 더더욱 볼 일이 없었고.

“아니! 이게 진짜 뒈지려고! 어디서 얼굴을 내밀어? 네 등에도 칼 한번 박아 줄…….”

“소가주시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헤헤. 예전 일은 잊고 앞으로 잘 지내 봐요.”

“…….”

순식간에 일어난 태도의 변화에, 당패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다른 의미로 그릇이 크네.’

정말 다른 의미로.

그 과정을 가만 보던 당군악은 더없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놈들이랑 동맹을 맺은 게 정말 잘한 일일까?’

어…….

약간, 아주 약간 후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크흠.”

당군악은 이내 후회를 날려 버리겠다는 듯이 크게 헛기침했다.

“어쨌든 오느라 정말 고생들이 많았네. 정말……. 그래, 정말 고생이 많아 보이더군.”

사람이 수레를 끌고 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걸 시키는 청명도 청명이지만, 시킨다고 하는 제자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온다는 소식은 들었다만, 대체 무슨 일인가?”

“응? 못 보셨어요?”

“뭘 말인가?”

“수레에 실린 것들이요.”

“뭘 꽁꽁 싸매 놓은 건 봤는데.”

“아. 비 맞는다고 싸 놔서 아직 확인 못 하셨구나.”

“받았던 서찰에도 자네에게서 설명을 들으라 적혀 있더군.”

“아. 별거 아니에요. 검 좀 만들려는데, 저희가 재료를 가지고 온 거예요.”

“재료?”

“네. 만년한철이요.”

“아. 난 또 뭐라고. 한철이로구……. 뭐? 만년한철?!”

당군악이 기겁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정말 만년한철이냐? 그게 다?”

“네. 맞아요.”

“마, 만년한철이 땅 파면 나오는 물건도 아닐진대, 그 많은 만년한철이 대체 어디에서 났단 말이냐?”

“화산에 파묻혀 있었는데요?”

“…….”

당군악의 몸에서 생기가 삽시간에 빠져나갔다.

그가 정신을 되찾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당가 조상 놈들은 뭐 하는 것들이기에 한철도 안 나는 땅에다가 자리를 잡았느냐’는 천인공노할 소리가 들려왔지만, 당가의 식솔들은 조용히 그 말을 뇌리에서 지워 버렸다.

“여, 여기 냉수입니다. 아버님.”

“끄으으.”

당잔이 내민 냉수를 단숨에 들이켠 당군악은 평소답지 않게 다급히 움직였다.

“일단은 내가 확인을 해 봐야겠다. 그게 진짜 한철인지.”

“네. 가시죠.”

당군악이 빠르게 발을 옮겨 접객청을 나서자 그의 식솔들과 화산의 제자들이 뒤를 따랐다.

거의 달리다시피 가는 도중, 윤종이 백천을 향해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사숙.”

“응?”

“만년한철이 그렇게 귀한 물건입니까? 아니, 귀한 줄 알고는 있었는데 가주님 반응이 너무…….”

“……내가 뭘 알겠느냐?”

“…….”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때 당군악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휘휘 젓더니 총관을 찾았다.

“총관! 총과아안!”

“예, 가주님!”

당상수가 기겁을 하며 뛰쳐나왔다. 당군악이 어지간한 일로는 이리 소리를 질러 찾는 일이 없다는 걸 알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화산에서 끌고 온 수레는 어디에 있느냐!”

“아, 그 수레요?”

당상수가 뭐 그리 호들갑이냐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바퀴가 부러져 수리도 할 겸 뒷공방 앞에다 놔두었습니다.”

“거기 실린 것들은?”

“같이 가져다 놓았…….”

“비켜라!”

“아아아아아악!”

앞을 가로막은 당상수를 거의 밀쳐 버린 당군악은 가공할 속도로 공방 쪽을 향해 달려갔다.

과연 그 앞에는 고철이 되어 버린 수레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 실린 것들 역시 똑똑히 보였다.

“거, 거적……. 끄윽.”

당군악이 가슴을 움켜잡았다. 더러운 천으로 칭칭 감긴 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이…… 이 극악무도한 녀석들 같으니! 이게 뭔지는 알고 저리 관리한단 말이냐! 이 천벌을 받을 것들!”

급기야 그는 소매에서 비침을 뽑아 화산의 제자들에게 마구 던져 대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러셔?!”

흡사 다른 사람처럼 구는 당군악의 태도에 살짝 당황한 청명은 얼른 검을 뽑아 들고 날아드는 비침을 마구 쳐 내었다.

그 와중에도 당소소에게로 날아드는 비침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분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던 당군악은 이내 떨리는 손으로 수레에 씌워진 천을 벗겨 내었다.

그러자 묵은 때가 가득한 금속이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잘 제련한 듯했지만, 지금은 겉모습만으로는 이 금속의 재질을 파악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당군악은 이 금속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후욱! 후욱!”

몇 번이고 심호흡한 그는 금속의 표면에 손을 대었다. 손끝으로 차가운 한기가 훅 밀려들었다.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마, 맞구나. 진짜 한철이야!”

그것도 이 정도면 상품 중에서도 최상품이었다.

당군악은 황급히 모든 천을 벗겨 내었다. 그러더니 경악과 흥분이 뒤섞인 눈으로 한철을 보며 가쁜 숨을 토했다.

“마, 만년한철을 이만큼이나……!”

“헤헤. 맞죠?”

청명이 슬그머니 다가와 고개를 쏙 내밀었다. 그러자 당군악의 고개가 부러질 듯 돌아 청명을 향해 고정되었다.

살짝 움찔한 청명이 물었다.

“……아니에요? 아닌데? 맞을 텐데?”

“……야, 이……!”

당군악이 청명을 덥석 잡아 그대로 집어 던졌다.

“이게 어떤 물건인지나 아느냐! 같은 무게로 치면 황금보다 백배는 더 비싼 물건이다. 아니, 백배가 다 무어냐. 이제는 구할 수도 없어서 부르는 게 값인 무가지보란 말이다!”

날아갔던 청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제자리로 돌아와 고개를 갸웃했다.

“네? 그렇게나요? 예전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냐? 만년한철 값이 폭등한 지가 벌써 백 년이다. 마교와의 전쟁 이후로는 한철이 씨가 말랐단 말이다!”

“아, 어쩐지.”

그럼 이해가 좀 되는…….

“이 정도 양이면 화산을 모조리 팔아도 못 구한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천에다 둘둘 말아서 수레에 얹어서 와? 너희들은 간이 쇠로 만들어졌느냐!”

“아니, 그래 봐야 쇳덩어리지 뭐.”

입을 삐쭉대는 청명의 모습에 당군악은 순간 눈앞이 핑 돌아 휘청이다 수레를 짚었다.

쇳덩어리?

쇳덩어리이이?

만일 당가 식솔 중 한 놈이 저런 말을 지껄였다면 입 안에 숯을 쑤셔 넣고 입을 꿰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한철이 얼마나 귀한지도 모르는 칼잡이였다.

‘바라지 말자.

그래. 화를 내어 무엇 하겠나. 이 녀석은 원래 그런 놈인 것을.

“후우, 그래……. 그래서 대체 이 한철은 왜 여기까지 짊어지고 왔나?”

“검 만들려고요.”

“……검?”

“네, 매화검.”

“…….”

당군악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이걸로 검을 만든다고?”

“네.”

잠깐 차분해졌던 얼굴이 다시금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당가의 가주다운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니, 아니지. 일단은 흥분하지 말고.’

심호흡을 한 그는 청명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

“혹시 문파의 신물을 만들 셈이냐?”

“아뇨. 그냥 매화검 만들 건데요. 사형들 주게요.”

“……미쳤어?”

“예?”

끝내 참지 못하고 험한 말을 토해 낸 당군악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왜? 차라리 황금으로 검을 만들고 다니지. 아니, 차라리 황금이 낫지! 이걸로 검을 만들면 검 하나로 장원을 사고도 남을 텐데, 도대체 언제부터 화산이 그렇게 부유한 문파가 됐느냐?!”

“헤헤.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응?”

청명이 배를 쭉 내밀었다.

“제가 돈이 좀 많거든요.”

“…….”

당군악이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살면서 지른 고함을 모두 합쳐도 오늘 지른 것만 못할 것 같았다.

“……역시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물론 아닌 줄은 진작 알았지만 그래도 반쯤은 제정신일 거라 믿었건만.

“만들 수 있죠?”

“…….”

“당가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안 된다고 하면 다른 데 알아보고요.”

당군악의 머리가 빠르게 팽팽 돌아갔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한 그는 흥분을 싹 제거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만들 수 있네. 사천당가의 제련술이라면, 만년한철검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오! 그럼…….”

“대신 조건이 있네.”

“네?”

당군악이 두 눈에서 빛을 내뿜었다.

“저 한철 좀 떼어 주면 안 되겠는가?”

“…….”

“많이 안 바랄 테니까, 조금만 주게. 친구 좋다는 게 뭔가! 하하하!”

뒤쪽에서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던 당소소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항상 자랑스럽기만 했던 아버지가…… 이상하게 오늘은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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