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여하튼 늦으면 뒈지는 거야. (1)
쏴아아아아아!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유령문의 장로인 오장송(吳長松)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슬슬 돌아오실 때도 되지 않았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리 오래 걸릴 일이 아닌데.’
유령문의 소문주인 도운찬은 그 신법으로 따지자면 천하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이다. 그리고 그를 따라 섬서로 간 계형도 신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런 둘이 겨우 섬서까지 다녀오는 데 이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입조심하거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죄, 죄송합니다.”
오장송은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안 될 일이지.’
그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유령문은 오랜 내전 끝에 이제야 간신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소문주가 화를 당해 버린다면 이 문파는 정말 나락까지 처박힐 것이 분명했다.
“화를 당하실 분이 아니다. 누가 감히 그분의 속도를 따라잡겠느냐?”
“예! 제자가 어리석었습니다.”
살짝 역정을 낸 오장송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제자 하나가 달려오며 외쳤다.
“장로님!”
“음?”
“오, 옵니다! 소문주님이 돌아오시는 것 같습니다!”
“오오!”
오장송이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려 나갔다.
“드디어!”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소문주가 돌아왔다는 말인즉, 장문령부를 회수했다는 의미. 그렇다면 이제 소문주가 정식으로 문주의 자리에 올라 유령문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선령들이시여!’
오장송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문파의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소문주님! 어서 오…….”
하지만 환하게 미소 걸린 그의 입은 그대로 다물렸다.
‘응?’
눈을 의심하여 두어 번 비빈 그는 그러고도 모자랐는지 몇 번이고 눈을 끔뻑였다.
‘뭐지?’
좁은 산길을 거의 부수듯 올라오는 수레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대체 저게 무어란 말인가.
“……왜 사람이 수레를 끌고 있지?”
“……그러게요.”
어느새 쫓아 나온 제자가 멍하니 맞장구쳤다.
선두에 선, 머리 반들반들한 승려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승려라 그런 건지 힘들어 보이는 와중에도 연신 불호를 외…….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처먹…….”
아, 아니네.
염불인 줄 알았더니…….
선두에 선 승려 뒤로는 도포를 입은 이들이 연신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스님에 도사……. 아니, 심지어 저건 거지인가?’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조합이란 말인가?
더 황당한 것은…….
“날 새겠다, 날 새겠어! 다 피죽만 퍼먹었나! 비싼 고기를 먹여 놨으면 값을 해야 할 것 아냐! 빨리빨리 못 끌어?”
그중 가장 어려 보이는 이가 홀로 수레 위에 올라서 다른 이들을 닦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무지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 소문주님?”
그 모든 것에 경악하고 나서야 도운찬에게로 시선이 가 닿았다. 수레 옆에서 터덜터덜 걷는 그를 본 오장송은 화들짝 놀라 달려갔다.
“그…… 소문주님…….”
“끄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악!”
“빌어처먹을!”
옆에서 터져 나오는 악쓰는 소리에 오장송이 움찔하여 옆을 바라보았다.
비에 젖은 그들은 전신으로 증기를 내뿜으며 전진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입김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를 보고 있자니 흡사 불에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옥에서 왔나……?’
아닌데. 이 사람들 스님이랑 도사들인데…….
“소문주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오 장로.”
“예……. 예!”
끼이이이익! 끼이이이이이익!
비에 젖은 수레가 귀신 같은 음산한 소음을 내며 유령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콰당!
유령문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수레를 끌던 이들이 일제히 쇠 봉을 놓으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빌어……먹을…….”
“……저 악귀 같은 새끼! 저…….”
“뭔 놈의 문파가 이렇게 심산유곡에 있어!”
백천이 눈을 부라리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도운찬이 움찔하여 목을 움츠렸다.
“……미안하외다. 유령문은 외부에 딱히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곳이라.”
“끄으으응.”
백천이 답도 없다는 듯 바닥에 엎어져 할딱대었다.
비에 쫄딱 젖어 끙끙대는 꼴들을 보고 있으니 패잔병이 따로 없었다.
“쯧쯧쯧. 다들 약해 빠져 가지고.”
“저 새끼가……?”
“죽인다. 진짜 죽인다, 저거!”
원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청명은 수레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손에 들고 있던 호리병을 입에 가져갔다. 그러더니 꼴꼴대며 한참 술을 들이켠 뒤에야 크으, 하며 입가를 소매로 훔쳤다.
“뭐 얼마나 왔다고. 별로 멀지도 않구만, 엄살들은.”
백천은 대거리할 기력도 없다는 듯 대자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쳤지. 미쳤어.’
섬서에서 이곳까지 오천 리 길을 왔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맨몸으로 걸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할 거리다.
그런 길을 쇠로 된 수레에 만년한철까지 싣고 왔으니 아무리 무인이라고 해도 몸이 남아날 수가 없다.
더구나…….
‘왜 사람들이 쇠로 수레를 만들지 않는 줄 알겠다.’
수레라는 건 기본적으로 기름을 쳐 가며 관리해야 하는 물건이다. 하지만 이 길에 동행한 모두가 주먹질이나 할 줄 알았지 일상생활에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는 무능력자들뿐이었다.
그러니 가면 갈수록 뻑뻑해지고 둔탁해지는 수레를 힘으로 억지로 끌고 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형. 죽을 것 같습니다.”
“난 벌써 죽었어.”
“난 죽이고 싶음.”
훈련광인 유이설마저 이를 뿌득뿌득 갈아붙이며 청명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청명은 그런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술을 꼴꼴댈 뿐이었다.
“쯧쯧쯧. 이렇게 뼈대가 약해서 어디다 써먹나 그래!”
“뼈? 뼈? 네 뼈는 어지간히 통뼈인 모양이지. 어디 얼마나 버티나 확인해 보……!”
뻐어엉!
“아아아아아아아악!”
벌떡 일어나 청명에게 달려들던 백천이 엉덩이를 걷어차이고는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저 사람도 참 끈기가 대단해.’
‘아니면 미련하든가.’
허구한 날 달려들다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면서 어떻게 저리 꾸준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소문주님.”
“예, 도장.”
“그래도 나름 고생한 것 같으니까, 우리 애들……. 아니, 우리 사형들 좀 씻게 해 주세요.”
“당장 뜨거운 물을 준비하겠습니다.”
“헤헤. 감사해요.”
도운찬이 오장송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
“따뜻한 물과 식사를 준비하십시오.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소문주님.”
아무래도 소문주가 이상한 것들을 끌고 온 것 같다 생각하는 오장송이었다.
“하아아아아아…….”
“흐으으으으으으…….”
뜨거운 욕탕에 몸을 담근 윤종과 조걸의 입에서 천상의 신음이 새어 나왔다.
“여,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욕탕 밖으로 발을 뺀 조걸이 눈살을 찌푸렸다. 발이 퉁퉁 붓다 못해 껍데기가 모조리 벗겨질 판이었다.
“진짜…… 이번엔 진짜 뒈지는 줄 알았습니다.”
“끄응. 겨우 수레를 끄는 정도로 지옥을 볼 줄이야.”
결국 중요한 건 수련의 종류가 아니라, 그 강도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청명이 저놈이 미친놈인 거지.’
단순히 수레를 끄는 것만으로 무인들을 골로 보내 버릴 줄이야.
“푸화아아아앗!”
그때 한참을 물 안에서 뽀글거리던 백천이 솟구쳐 올랐다.
촤아아악.
고개를 젖히자 흠뻑 젖은 머리가 뒤로 쫘악 넘어갔다.
그 광경에 조걸은 잠깐 말을 잇지 못하겠다는 듯 망설였다.
“……거 뭐랄까.”
길고 숱 많은 머리칼을 늘어뜨린 백천과, 그 무엇도 없이 반들반들한 혜연의 머리가 나란히 물 위로 동동 보이니 어쩐지 이상한 위화감이 든 것이다.
백천이 웃으며 혜연을 바라보았다.
“하하. 혜연……. 스, 스님! 여기서 잠드시면 안 됩니다! 그러다 죽어요!”
그는 황급히 손을 뻗어 물속으로 잠기는 혜연의 머리를 잡아끌어 올렸다.
“아니, 스님 머리를!”
“예의 없게!”
문어처럼 물 밖에 끌려나온 혜연은 어질어질한 듯 고개를 몇 번 흔들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화산 분들은 지금까지 항상 이런 수련을 해 왔던 겁니까?”
“어…….”
“이게 보통이긴 하죠.”
“솔직히 이번이 좀 급하게 오느라 그렇지. 저번 운남 갈 때가 더 힘들지 않았냐?”
“에이. 사숙, 우리가 그때보다 세진 것도 감안해야죠.”
“아, 그런가?”
혜연이 그 말을 듣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화산이 어떻게 이리 강해졌나 했더니.’
서안에서 이미 이들이 수련하는 것을 몇 차례 보았지만, 그건 정말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사람을 이리 굴려 댄다면 강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강해지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혜연이 슬쩍 윤종을 바라보았다.
물 위로 드러난 그의 가슴 근육이 철판처럼 단단해 보였다.
‘부끄럽구나.’
이들은 검수. 그리고 그는 권을 쓰는 권사다.
누가 더 육체를 단단하게 단련해야 하는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겉보기엔 화산의 제자들 중에서 가장 말라 보이는 윤종조차도 혜연보다 더 탄탄한 몸을 갖추고 있었다.
몸의 단련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런데, 청명 시주는 어디 가셨습니까?”
“아까 씻고 나갔잖아요.”
“왜 그리 급하게……?”
조걸이 어깨를 으쓱한다.
“우리야 이제 쉬면 되지만, 청명이 놈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아…….”
윤종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 망할 놈은 진짜 사람 할 말 없게 만든다니까.”
“……동감이다.”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쇠로 만든 수레를 끌고 오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위에 탄 놈이 천근추(千斤錘)를 시전 하여 무게를 늘린 수레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해도, 섬서에서 이곳까지 오는 내내 천근추를 시전 하는 것보다 힘들 수는 없었다.
백천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고도 바로 일을 하러 갔단 말이지.”
“……진짜 미친 놈 아닐까요?”
모두의 시선이 욕실 문 쪽으로 향했다.
“……아직 한참 멀었구나.”
백천의 중얼거림이 그들 모두의 심정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 *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운송이라니요?”
오장송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소문주를 바라보았다.
“지금 문도들을 표사로 쓰시겠다는 겁니까?”
“그러하네.”
“소문주님!”
오장송의 목소리가 격앙되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청명이 호리병을 살짝 흔들었다.
“자자. 너무 열 내지 마시고.”
그 너스레에 오장송이 청명에게로 날카로운 시선을 돌렸다.
“자네는 무언데 이곳에 앉아 있는가? 보아하니 화산의 어린 제자 같은데!”
“아, 저는…….”
“오 장로.”
그 순간 도운찬이 쾌속으로 손을 뻗어 오장송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예?”
“……입조심하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말이야.
물론 뒷말은 소리 없이 뻐끔거리기만 했지만, 그걸 알아보지 못할 오장송이 아니었다.
‘……뭐지?’
협박?
아니, 협박은 아닌데. 이거 경고인가?
오장송의 시선이 다시 청명에게로 향했다.
‘이 어린 제자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었다.
그때 청명이 싱글싱글 웃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장문인께 이 일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하는 말 하나하나는 모두 화산의 뜻이 될 테니까요.”
“그걸 내가 어찌 믿…….”
“아, 거참. 소문주님이랑 같이 왔잖아요. 설마 소문주님도 못 믿으세요?”
오장송이 도운찬과 청명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죠, 뭐.”
청명이 어깨를 으쓱하자 오장송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닫았다.
“소문주님.”
“음. 알겠소, 도장.”
도운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장송을 향해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모두 끝나고도 잠시간 침묵하던 오장송은 침중한 눈으로 도운찬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습니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 같습니다. 소문주님께서 왜 이들을 이끌고 왔는지도 이해했습니다.”
‘오?’
청명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오장송을 바라보았다.
꼬장꼬장한 것이, 어쨌거나 안 된다고 뻗대며 드러누울 줄 알았더니 나름 말이 통하지 않는가?
“하지만 소문주님. 저는 아무래도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문파의 재정이 중요하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재정에만 눈이 팔린 문파는 결국은 먼 곳으로 뻗어 나가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음. 그도 맞는 말이오.”
“제자들이 물건을 나르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수련할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 낭비한 시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돈을 충분히 모은 뒤에는 이미 수련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놓친 후일 것입니다.”
“으음.”
그 말을 듣던 도운찬은 일리가 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귀가 뭐 저렇게 얇아?’
아주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구나.
‘문주라면 결단력이 있어야지!’
저 양반이 이대로 문주 자리에 올라 유령문을 이끌었다면 그 끝이 어찌 되었을지 빤히 보였다.
하기야.
실력과 결단력을 동시에 갖춘 인재였다면 문파 내의 내분을 이토록 오랫동안 정리 못 했을 리는 없다.
“쯧.”
혀를 찬 청명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쯤에서 정리를 해야 할 듯싶었다.
“그러니까 장로님의 말씀은…….”
“음?”
“수련이 제대로 안 될까 봐 걱정이란 말씀이시죠?”
“그렇다네.”
“그것만 해결되면 다른 건 문제가 없고요?”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수련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일 아니오?”
“에이. 양립이 왜 안 돼요?”
“……응?”
청명이 히죽 웃었다.
“양립할 수 있다는 걸 증명만 해 보이면 되는 거죠?”
“……으응?”
오장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명은 으쓱하며 웃었다.
“헤헤. 걱정 마세요. 제가 확실하게 보여 드릴게요.”
어쩐지 사악해 보이는 그 웃음에 도운찬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았다.
그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속으로 못 다한 말을 중얼거렸다.
‘오 장로. 실수한 거요.’
청명이 어떤 인물인지 이젠 어느 정도 알게 된 그의 눈앞엔 유령문의 서글픈 앞날이 미리 다 펼쳐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