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8화. 솔직히 이젠 저도 감당이 안 됩니다. (3)
수레를 타고 가는 건 나름 편안한 일이다.
물론 커다란 마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못하지만, 맨다리로 걸어가는 것에 비하면 호강에 가깝다.
그러니 편안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수레에 올라 있는 도운찬의 마음엔 불편함이 가득하여 티끌만 한 편안함도 깃들지 못했다.
“끄으으으으으…….”
“아오! 빌어먹을, 진짜!”
“죽인다. 내가 저 인간 언젠가는 죽이고 말 거야.”
“……나는 왜…….”
앞에서 들려오는 악에 받친 소리를 들으며 도운찬은 식은땀을 흘려 대었다. 마차를 끄는 이들의 뒤통수를 보는 마음이 지독히 불편했다.
“…….”
그의 시선이 슬쩍 아래로 향했다.
퉁! 퉁! 퉁!
두꺼운 쇠로 만든 수레가 움직일 때마다 묵직하게 울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편히 가려고 만든 수레가 아닌데?’
기본적으로 수레라는 건 튼튼함과 가벼움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튼튼함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한없이 무거워져 수레를 끄는 우마에게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면서 가볍게 만드는 게 기술이다.
하지만 이 수레는 오로지 튼튼함이라는 목적만 완벽하게 달성하고 있었다. 말이야 끌다 뒈져도 상관없다는 듯 말이다.
……그걸 사람이 끌고 있으니.
“저기…… 청명 도장.”
“네?”
“……설마 이대로 귀주(貴州)까지 가는 겁니까?”
“네. 왜요?”
“……하. 하하하.”
도운찬이 식은땀을 연신 훔치며 머릿속으로 열심히 말을 골랐다.
“따, 딱히 문제는 없는데, 이렇게 가면 조금 느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하지만 그가 미처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청명이 벌떡 일어났다.
“느리다잖아! 빨리 빨리 못 달려? 이런 쓸모없는 것들이!”
“으아아아아아!”
“진짜 죽인다! 진짜!”
청명이 등짝을 후려갈기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뒤섞여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본의 아니게 이 사태를 초래한 도운찬의 전신은 이제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핍박을 받는 사이사이 마차를 끌던 이들이 칼날 같은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고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도운찬은 청명을 원망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이 미친놈아!’
어느 미친놈이 사람이 끄는 수레를 타고 성을 넘는단 말인가?
물론 세상에는 사람이 끄는 인력거도 있고, 사람이 드는 가마도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걸 타고 천릿길을 가려 하지 않는다.
당연히 미친 짓이니까!
도운찬은 옆에 마찬가지로 불편하게 앉은 계형을 슬쩍 바라보며 바짝 마른 입술을 뗐다.
“계형.”
“예, 소문주님.”
“……미안하다. 네 말을 믿었어야 하는 건데.”
“……아닙니다. 백번 이해합니다. 저라도 안 믿었을 겁니다.”
저 청명이라는 도장은 도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였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그 세상 다시없을 인간은 이제 수레 머리 쪽에 서서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내가 이거 만든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을 했는데 다들 고맙게 생각해야지!”
“뭐래, 이 미친놈이……!”
“얼마나 고마운지 물어뜯어 버리고 싶네!”
“귀신은 도대체 뭐 하냐고!”
“어쭈, 말할 힘이 남아 있네?”
청명이 슬쩍 천근추를 운용해 무게를 늘렸다.
“아아아아악!”
“그것 좀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허, 허리! 내 허리!”
한편 묵묵히 선두에서 수레를 끄는 혜연의 머리에선 맑은 땀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방장.’
그의 반들반들한 머리에 햇살이 반사되며 환하게 빛났다.
‘저를 좀 더 말리셨어야지요.’
왜 화산으로 간다고 할 때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지 않으셨습니까?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미쳤었구나……!
“스님. 괜찮으십니까?”
“백천 시주…….”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대던 혜연은 이내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백천은 안쓰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십시오. 저놈도 양심은 있는 놈이라 해가 지고 나면 쉬지 않습니까?”
“쉬다니요. 그때부터는 수련하잖습니까?”
“에이, 그거야 당연한 거고.”
“…….”
이놈들이 죄다 미친 것 같구나……!
하지만 혜연이나 다른 화산 제자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지금 가장 지옥을 보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홍대광이었으니까.
“끄으으으으으…….”
팔다리에 주렁주렁 쇠공을 단 채 수레를 끄는 홍대광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내, 내가 왜……. 왜 내가?”
다른 이들이야 나름 청명에게 훈련을 받는 입장이니, 웬만한 불합리는 참아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홍대광은 그런 입장이 아니잖은가?
“화, 화산신룡! 화산신룡!”
결국 참다 못한 홍대광이 발작처럼 소리쳤다.
“나는 왜! 나는 왜 이걸 하는 거냐! 나는 그냥 정보원인데.”
“뭐래.”
청명이 헐떡이는 그를 보며 혀를 찼다.
“적이 정보원은 안 죽인대요? 앞으로 화산에 붙어 다니려면 제 몸은 제가 지킬 줄 알아야지! 화산에 약한 친구는 없어요!”
“야, 이놈아! 그래도 그렇지.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다고 세지겠느냐?”
“새파란 양반이 나이 타령이네.”
어?
내가 그 나이쯤에는, 어?
하,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내 입만 아프다, 아주. 이래서 요즘 것들은!
“잔소리할 힘으로 끌어요. 이 속도로 언제 귀주까지 가!”
청명이 투덜거리자 백천이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처, 청명아?”
“왜?”
“귀주? 귀주로 간다고? 사천이 아니라?”
“당연하지. 유령문이 귀주에 있잖아. 유령문부터 가야지.”
어쩐지 길이 저번이랑 다르더라니. 잠깐 생각한 백천은 인상을 찌푸리며 황급히 물었다.
“자, 잠시만. 그런데 귀주는 사천 밑에 있잖느냐?”
사천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운남이 있고, 남동쪽으로 가면 귀주가 있다.
“그렇지.”
“그, 그럼 사천 먼저 들르면 되지, 왜 꼭 귀주를 먼저 가는 거냐? 그럼 빙 돌아가는 게 되잖느냐!”
“내 맘인데?”
“…….”
백천이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찬 검을 꽉 움켜잡았다. 화산에서 가지고 온 진검이었다.
하지만 청명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왜? 또 하나 해 먹게?”
“끄으으으…….”
좌절한 백천은 신경질적으로 마차를 끄는 쇠 봉을 움켜잡았다.
‘매번 본전도 못 챙기면서 왜 저러시는지.’
‘냅 둬.’
윤종과 작게 속닥거리던 조걸이 문득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형.”
“응?”
“이 악무십쇼.”
“왜?”
“산길입니다. 올라갑니다.”
“…….”
윤종이 천천히 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쭉 뻗어있는 가파른 산길이 보였다.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도망칠까.
* * *
“대형, 대형!”
“왜?”
“손님입니다!”
“뭐? 손님?”
한없이 귀찮은 얼굴로 드러누워 있던 이가 반색하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손님이냐? 확실하겠지?”
“예, 확실합니다!”
“설마 또 손님으로 가장한 날강도들 아니냐?”
“확실하다니까요!”
대형이라 불린 이가 오만상을 찌푸렸다.
“빌어먹을. 세상이 이리 각박해서야! 어떻게 산을 넘는 놈들 중에 칼 차지 않은 놈이 없느냐!”
“그 차 무역인가 뭔가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곧 괜찮아질 겁니다.”
“어쨌든 간에! 손님이라고? 칼은 찼더냐?”
“칼은 찼습니다. 그런데 수가 열을 넘지 않고, 타고 있는 수레가 굉장히 크답니다.”
“그 정도면 손님이지!”
대형이라 불린 이가 아예 벌떡 일어서선 도끼를 챙겼다.
“오랜만에 목 좀 축이겠구나. 애들 불러라! 가자!”
“예!”
산양현 서산(西山)에 자리 잡은 적호채(赤虎砦)의 산적들이 희희낙락하며 무기를 챙겼다.
“……안 오냐?”
“슬슬 도착할 겁니다.”
“제대로 본 것 맞겠지?”
“아, 그렇다니까요!”
“아니, 그런데 이게 어디서 언성을 높여!”
철썩.
뒤통수를 얻어맞은 이가 신음을 흘리며 뒷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이내 억울한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진짜 방호가 똑똑히 봤다고 했습니다! 그 수레를 끌고 다른 길로 갈 수는 없으니 분명 여기로 올 겁니다!”
“그 새끼 요즘 눈이 안 좋아진 것 같던데.”
대형이라 불린 이는 영 못 미덥단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눈 좋은 놈으로 다시 구하든 해야지. 망루에 세워 놔도 뭘 제대로 보지를 못해!”
“……이번에는 괜찮을……. 어! 저기! 저기 옵니다!”
“오?”
산적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흐헤헤. 이 멍청한 놈들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잘도……. 잘도…….”
음흉하게 웃던 이의 고개가 살짝 기울어졌다.
“야.”
“예, 대형.”
“저거 지금…… 수레를 사람이 끌고 오는 거냐?”
“……그런 것 같은데요?”
두어 번 눈을 깜빡여 봤지만, 아무리 봐도 소나 말이 아닌 사람이 수레를 끌고 있었다.
“미친놈들인가……? 여기가 어디라고 사람이 수레를 끌어?”
“소도 숨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저저……. 와, 아주 갈지자로 휘청이는뎁쇼?”
“저런, 저런. 쯧쯧쯧쯧.”
세상이야 넓으니 당연히 미친놈들도 종류별로 다양하다지만, 이건 또 색다른 미친 짓이었다.
“뭐, 어찌됐든 좋다. 미친놈이어도 돈만 있으면 손님이지! 가자, 얘들아!”
“예!”
수레가 근처까지 도달하기를 기다린 그들은 커다란 광소를 터뜨리며 수풀에서 뛰쳐 나갔다. 그리고 재빨리 수레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우뚝.
멈출 듯 멈출 듯, 힘겹게 전진하던 수레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수레를 끌던 이들이 짜기라도 한 양 그 자리에 무너져 주저앉았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무, 물. 물 좀……! 아오, 뒈…지겠다.”
“…….”
앉은 걸로도 모자라 반쯤 드러누워 버린 이들을 보며 산적이 살짝 머뭇거렸다.
‘어, 이럼 안 되는데…….’
튀어나온 산적을 보고 놀라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떠 줘야 다음 말로 치고 들어갈 구석이 나오는데?
이러면…….
그런데 그때 그의 옆에 선 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 하십니까?’
‘아, 나도 알아!’
목청을 가다듬은 산적이 커다란 목소리로 우렁우렁 외쳤다.
“크하하하하하하! 이놈들!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돌아가거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호방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였다.
전신에 두른 짐승 가죽과, 장비를 연상하게 하는 우악스러운 수염. 그리고 한 손에 든 대부(大斧)를 본다면 누구도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쟤들 뭐냐?”
“산적이라는 것 같은데요?”
“산적? 허, 저번에는 마적이더니 이제는 산적이야?”
“원래 길 가다 보면 산적도 만나고 마적도 만나고 하는 거죠.”
“……냄새나.”
돌아온 반응은 그가 예상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것들이 진짜 다 미쳤나?’
그가 막 소리를 지르려는 찰나 그의 옆에 있던 임생(林生)이 먼저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 머저리 같은 것들이 이분이 뉘신 줄 알고! 이분이 바로 적호채의 채주이신 거산대부(巨山大斧) 곽경(郭瓊) 님이시다!”
그러자 땅에 반쯤 늘어져 있던 잘생긴 사내가 힘겹게 상체를 세우더니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냐?”
“적호채라는데요?”
“뭔 산채는 개나 소나 용이고 범이야.”
“있어 보이잖습니까.”
“……취향 참.”
임생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적호채라는 이름을 말했음에도 반응들이 이렇게 미지근할 수가.
“이놈들이! 감히 녹림의 영웅들을 보고도 그따위로 반응을 해! 목숨만은 살려 주려고 했더니, 안 되겠구나! 얘들아!”
“예!”
“저놈들에게 녹림이 어떤 곳인지 똑똑히 보여 주어라!”
“예!”
저마다 병장기를 틀어쥔 산적들이 슬금슬금 수레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아오, 씨!”
수레 위로 머리 하나가 빼꼼 튀어나왔다.
“뭔데?”
“산적이래.”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어디 그 틈을 타 쉬고 있어? 빨리 정리하고 출발 안 해?”
“끄으으응.”
수레 위로 목을 내민 어린놈의 말에, 주저앉아 있던 이들이 꾸물대며 미적미적 몸을 일으켰다.
“하, 진짜 별꼴을 다 보네.”
“사숙. 죽일깝쇼?”
“너는 도사라는 놈이! 반만 죽이거라.”
“예!”
거산대부 곽경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적호채라는 이름이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이 산을 올라야 할 만큼 먼 길을 가는 놈들이 녹림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을 리는 없을 텐데. 저게 말이나 되는 반응들인가?
적어도 한 놈은 그 이름에 화들짝 놀라 벌벌 떨어야 정상이 아닌가.
‘진짜 미친놈들인가?’
하기야 꼬락서니를 보니 제정신이 아닌 것도 같다.
선두에 선 놈은 중이다, 중.
세상에, 스님이 수레를 끌고 있다. 심지어 어디서 들은 건 있는지 누렇고 붉은 황포를 입고 있지 않은가?
‘누가 보면 소림에서 온 줄 알겠네. 허허.’
그뿐만이 아니다.
그 뒤에 있는 놈은 거지새끼인지 누더기 차림이었다.
살다 살다 거지가 수레를 끄는 모습을 또 어디서 보겠는가?
그리고 남은 놈들은…….
‘여자가 둘이야?’
워낙 흙투성이라 제대로 못 알아봤는데 지금 보니 여자들마저 수레를 끌고 있다.
“뭔 도포를 입은 놈들이 수레를 끌어? 내 참 별꼴을 다 보겠네. 얼씨구? 꼴에 자수까지 새겼어? 뭔 도사라는 놈들이 옷에다 꽃 자수를…….”
응?
꽃?
저거……. 어?
그러니까…….
‘매화?’
곽경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한계까지 커진 눈이 한계를 돌파해 보겠다는 듯 거기서 좀 더 커졌다.
‘매, 매화?’
매화를 새긴 도포를 입고 다니는 도사?
‘어디? 허리춤에…….’
검? 매화가 새겨진 검?
곽경의 턱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들어 본 적이…….’
그렇지. 그게 분명 들어 봤지. 그러니까…….
매화를 상징으로 삼는 도관이면, 그러니까 얼마 전에 그 무시무시한 만인방을 개처럼 때려잡은…….
‘……어어? 어!’
곽경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옆에 선 임생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오만하게 턱짓하며 꽥꽥 소리를 쳐 댔다.
“이 애송이 놈들! 내가 오늘 네놈들의 살가죽을 벗겨 짐승 먹이로 주겠다! 감히 적호채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후회…….”
“으아아아아아아! 닥쳐! 이 미친놈아!”
콰아아아앙!
곽경이 날린 주먹이 임생의 턱을 돌려 버렸다. 부러진 이가 새총으로 날린 돌처럼 튕겨 나가고 임생은 바닥에 개구리처럼 뻗었다.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은 부하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키는데도 곽경은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후욱! 후욱! 후욱!”
얼굴에서 땀이 뻘뻘 흘러내렸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산적들의 시선 속에서, 곽경은 그 자리에 쓰러지는 것처럼 엎드리며 소리쳤다.
“과, 곽모가 대 화산파의 도장님들을 뵙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겠다는 필사적인 의지가 꾹꾹 눌러 담긴 외침이었다.
“당장 안 엎드리냐! 이놈들아!”
곽경이 필사적으로 소리치자 주변의 산적들도 재빨리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산적질을 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첫째도 눈치, 둘째도 눈치 아니던가?
“…….”
검을 뽑아 들었던 백천은 멍한 눈으로 그런 산적들을 바라보았다.
“……얘들 왜 이러냐?”
“글쎄요?”
그때 수레 안으로 들어갔던 얼굴이 다시 빼꼼 튀어나왔다.
“아, 안 가냐고!”
“…….”
그 순간 이 무리의 대장이 누구인지 눈치껏 파악한 곽경이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도장!”
“응?”
청명의 시선이 곽경에게로 향했다.
“살려 주십시오!”
쿵!
곽경은 아예 바닥에 머리를 찍어 대었다.
“…….”
예상치 못한 광경에 청명이 슬쩍 백천에게 물었다.
“산적이라며.”
“……그러게.”
“근데 왜 저래?”
“……그러니까.”
청명은 고개를 갸웃하다 문득 먼지투성이가 된 화산의 제자들을 보았다. 그리고 어쩐지 납득되는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하기야.
니들이 좀 더 산적 같기는 하지.
객관적으로 말이야. 객관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