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내가 성질이 뻗쳐서, 내가! 아오! (5)
“거…… 다 알아서 잘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현영의 말에 현종이 매서운 눈빛으로 화답했다. 살짝 찔끔한 현영이 시선을 피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에잉!”
현종이 연신 혀를 차 댔다.
“제자 놈이 사고를 치는데 말리지는 못할망정 좋다고 옆에서 같이 북을 치고 있어?”
“청명이 놈이 피리를 불면 북이라도 쳐야지요!”
“시끄럽다!”
현종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현상이 허허 웃으며 달랬다.
“사제도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슬슬 섬서를 넘어 다른 곳에도 화산의 이름을 떨칠 필요가 있지 않았습니까?”
“쯧.”
현종은 못마땅한 듯 혀를 차면서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그때 현영이 슬그머니 덧붙였다.
“겸사겸사 돈도 벌고…….”
“그게 본 목적이겠지!”
“겸사겸사하는 거지요. 겸사겸사.”
“끄응.”
현종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현영을 보는 그의 심정은, 이제 겨우 가난에서 벗어나 음식을 탐하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그것과 비슷했다.
한시도 참지 못하고 일단 돈만 보면 달려드는 꼴에 진절머리가 나다가도 왜 저러는지를 생각하면 차마 싫은 소리가 입에서 나오질 않았다.
현영이 투덜거렸다.
“누가 보면 장문인은 돈 싫어하시는 줄 알겠습니다?”
“예끼, 이놈아! 돈 싫어하는 이가 어디에 있느냐! 다만 돈을 벌더라도 상황은 봐야지. 결과가 같다고 과정을 무시해선 안 되지 않겠느냐! 명색이 도인이라는 놈이.”
기왕 시작한 김에 현종이 조금 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저건 뭡니까?”
“응?”
현상의 난데없는 물음에 현종이 그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각 뒤로 먼지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게 뭐지?”
갑자기 웬 먼지구름이란 말인가? 이 화창한 날에?
“그런데 저기는…….”
“장문인 처소 쪽인 것 같습니다?”
현종의 눈가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과거였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를 먼저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처, 청명이 이놈아!”
현종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며 처소를 향해 부리나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뒤로 장로들이 기겁을 하며 따라붙었다.
전력으로 달려 처소 뒤쪽에 도착한 현종은 경악에 두 눈을 부릅떴다.
실로 기묘한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쪽으로 날라!”
“아, 흙 막 퍼 대지 말라고요! 여기로 다 쏟아지잖아!”
“밖으로 빼라고, 밖으로!”
“포대! 누가 포대 좀 가지고 와라! 이거 좀 담으라고!”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처소 뒤편 동산에 달려들어 대공사(?)를 벌이고 있었다.
일부는 미친 듯이 삽질을 하며 산을 파냈고, 또 일부는 파낸 흙을 쓸어 담아 옆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일부는 산을 파내며 드러난 바윗덩어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뭔 놈의 바위가 이렇게 커!”
“조심 좀 해!”
“잘 좀 묶어 봐!”
바윗덩어리에 일사불란하게 동아줄을 엮은 제자들은 우렁찬 기합을 토하며 끌어내기 시작했다.
“으라차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압!”
기합이 화산에 울려 퍼질수록 현종의 이마에선 진땀이 솟았다. 기가 막혀서 한동안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청명이 사고를 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겠냐마는, 요즘 들어 그 규모가 대책 없이 커지는 느낌이었다.
“대, 대체 뭣들 하는 것이냐!”
내내 입을 벙긋거리던 현종이 끝내 쩌렁쩌렁 소리를 질렀다. 동산을 파내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인사는 됐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이게!”
사실 답이야 뻔했다.
현종의 말을 들은 제자들이 모두 대답 대신 슬쩍 한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해진 답처럼 청명이 있었다.
아예 평상까지 가져다 놓고 반쯤 드러누워 있던 청명이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더니 제 옆자리를 팡팡 쳤다.
“장문인! 여기 앉으실래요?”
“…….”
몸이 허한가?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데?
“청명이 이놈아! 대체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게냐? 산은 왜 갑자기 파고 있어!”
“아, 저 밑에 있는 것 좀 뽑으려고요.”
“밑? 밑에 뭐……. 밑?”
저 밑에 뭐가 있더라?
‘서, 설마!’
현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 비고? 설마 너 지금 한철 비고를 뽑으려는 거냐?”
“크으! 역시 장문인! 이제는 척하면 착이시네요!”
“그, 그걸……. 이, 이놈아! 그건 화산의 비밀인데! 이 많은 아이들을 동원해서……!”
“에이, 비밀은 뭔 비밀이에요. 모르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어……? 그…렇지. 그건 그렇다만…….”
현종은 이미 제자들을 이끌고 직접 비고를 연 적이 있었다. 그때 청명이 한철을 자르지 않았던가?
워낙 상징적인 일이다 보니 이제는 장문인의 처소 뒤에 비고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용도가 다됐으면 좋은 데다 써야죠.”
“대체 그 많은 한철을 어디다 쓰려고? 설마 팔아먹으려는 게냐! 절대 안 된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 저건 선대 장문인들께서 내려 주신 비고란 말이다! 이놈아, 이럴 거면 차라리 나를 데려다 팔아라!”
현종이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부짖으려 하자 현상이 눈을 일그러뜨렸다.
“청명이 네 이놈!”
그리고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 네가 이제 도를 넘는구나! 어디 이런 일을 장문인과 상의도 없이 네 마음대로 정한단 말이더냐! 나도 이번만큼은 참아 줄 수가 없다! 대체 저 비고를 어디다 쓰려고…….”
“검 만들 건데요?”
“……뭐?”
현상이 잠깐 멈칫하자 청명이 불쌍한 강아지 같은 눈으로 그를 보며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번에 워낙에 위험했으니까……. 매화검도 많이 상했고. 앞으로는 더 위험한 적을 만날지도 모르는데, 사형들이 약한 검 쓰다가 검이 부러지면 목숨이 위험하니까……. 한철로 검을 만들어 주면 사형들도 훨씬 안전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청명은 한껏 풀이 죽은 얼굴로 현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뭐…… 그냥 저희가 약한 검을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제가 다시 고스란히 묻을게요.”
“……한철검을 만들려고 했다고?”
“네.”
“……네 사숙이랑 사형들에게 주려고?”
“네.”
현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엄히 말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장문인의 허락을 먼저 구했어야지!”
“이 제자가 생각이 짧았어요.”
“크흠. 그래. 그럼 됐다.”
가만 듣고 있던 현종이 고개를 획 돌렸다.
“뭐가 돼?”
“허허허허. 기특하지 않습니까. 저 청명이가 제 사형들에게 검을 만들어 주려고 하다니. 말은 틀린 게 없습니다.”
“…….”
이게 미쳤나?
현종이 고개를 반대쪽으로 획 돌렸다.
아, 아닌데. 현영은 저기에 있는데? 이놈은 진짜 현상이가 맞는데?
“한철검. 한철검이라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쯧쯧쯧! 늙으면 머리가 굳는다더니 과연.”
“현상이 이, 이놈아. 저, 저건 선조들께서 내려 주신…….”
“허허, 장문인. 화산의 선조들께서 애들이 한철검을 들고 다니겠다는데 싫어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
“애들이 안전해진다는데 전통이 문제겠습니까? 전통이고 나발이고 미래가 우선이지요!”
“아, 안 된다! 야, 이놈들아! 그건 화산……. 아니, 됐고. 차라리 한철을 내가 사다 주마!”
“하하하하하. 그게 뭐 돈 있다고 구할 수 있는 건 줄 아십니까. 농담도 참. 하하하하하!”
현상이 현종의 양쪽 어깨를 잡고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청명아! 어서 계속하거라. 장문인께서도 허락하신 것 같구나!”
“허락은 뭔 허락이야? 내가 언……! 읍! 으읍!”
현상은 웃으며 아예 장문인의 입을 한 손으로 덮었다.
“자자, 다 화산 잘되자고 하는 일이잖습니까. 하하하하.”
입을 덮은 손을 가까스로 떼어 낸 현종은 처절하게 절규했다.
“이놈들아아아아! 내가 장문인인데! 이 망할 화산 놈들 같으니라고! 천벌을 받을 것이다, 천벌을!”
“하하하하하하.”
현상이 껄껄 웃으며 장문인을 데리고 전각 뒤로 사라졌다.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그 광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뭐 하느냐?”
그때 현영이 무심한 얼굴로 동산을 향해 턱짓했다.
“날 새겠다. 빨리 뽑아라.”
“예, 장로님!”
잠깐 주저하던 화산의 제자들이 다시금 산을 파기 시작했다.
흙먼지로 얼굴이 꼬질꼬질해진 백천과 그 무리는 흐뭇하게 웃으며 코 밑을 슥 문질렀다.
‘이젠 글렀어.’
이 문파는 이제 영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영영.
“끄으으으응차!”
“으라차아아아아아아!”
마침내 커다랗게 뚫린 바닥 아래에서 동아줄에 엮인 비고가 끌어 올려졌다.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가벼운 거지! 크기가 저만한데!”
“그런가?”
여하튼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젖 먹던 힘을 다한 보람이 있었는지, 이내 비고 전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릉!
“후욱! 후우우욱!”
“해냈다!”
“이제 한철검! 한철검을 가질 수 있다!”
모두의 눈에 탐욕이 넘실거렸다. 청정해야 할 도관이 흙먼지로 가득하고, 욕심 없는 눈으로 도경을 외워야 할 도사들이 욕망에 찌들어 있었다.
“진짜 힘들었다.”
“사흘이나 걸릴 줄이야! 이게 뭐라고!”
“으아. 진짜. 산 하나를 까고 새로 만들었네!”
원래 산이 있었던 자리 옆에 생겨난 흙산을 바라보는 모두의 시선에는 질린 기색이 역력했다. 흙을 얼마나 파냈으면 흙을 쌓은 자리가 저리되는가?
“어쨌거나 해냈다!”
“청명아! 이제 된 거지?”
청명은 뽑혀 나온 비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제 산 아래로 잘 옮기기만 하면 돼.”
“…….”
잔뜩 들떠 있던 모두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이걸?
옮긴다고?
모두의 시선이 담장 너머의 절벽 쪽으로 향했다.
저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이 비고를 옮길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못해 아찔할 지경이었다.
누군가가 슬픔과 분노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조들께선 왜 이런 산에다가 도관을 만드셔서…….”
“내 말이!”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키기에는 늦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자, 불만 가지지 말고 하자! 이게 뭐 남 좋은 일도 아니고, 한철검이 우리 손에 떨어지는 건데!”
백상이 소리치자 제자들의 눈이 하나둘 빛이 돌아왔다.
지금까지 청명이 벌이는 일들에 죽을 만큼 끌려다녔던 화산의 제자들이다. 물론 그에 따른 이득이 수없이 많기는 했지만, 막상 당장 본인들 눈앞에 떨어진 것이 무어가 있었냐 묻는다면…….
‘사실상 고기밖에는 없었지!’
하지만 이건 당장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 아니던가?
만년한철검은 웬만한 문파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귀물이다. 그게 자신의 손에 떨어진다는데 못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오오!”
“옮깁시다! 산 아래로!”
모두가 다시금 열정을 불태우며 비고로 달려들려는 바로 그 찰나.
“어디 가?”
“……응?”
청명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옮기는 건 다음이고, 그 전에 복구해야지.”
“……뭘?”
“저거 저렇게 둘 거야?”
청명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파헤쳐진 산이었다. 시커멓게 구멍이 뚫린 모습이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다시 메워.”
“…….”
“빨리.”
화산 제자들의 눈에서 또다시 빛이 꺼졌다.
* * *
“당가에 다녀올게요.”
“…….”
현종은 혼이 빠진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한철검도 만들어야 하고, 가는 와중에 유령문에도 한번 들르려고요.”
“…….”
“헤헤. 그거 외에도 나름 몇 가지 할 일이 있어요.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요!”
배시시 웃는 청명을 보던 현종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생명력이 다 꺼진 듯한 목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왔다.
“……너 알아서 해.”
“헤헤. 네, 그럼…….”
벌컥!
그런데 그때 장문인 처소의 문이 거의 부서지다시피 콱 열렸다.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당가 간다면서요?!”
“응? 넌 그걸 어디서 듣고…….”
방 안으로 박차고 들어온 건 당소소였다.
“아니, 이 양반이! 당가에 가는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해! 사형이 당가 아들내미야? 내가 당가 딸내미지?”
“그럼 같이 가든가.”
청명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당소소가 빛살처럼 현종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도 같이 가도 되죠, 장문인?”
“…….”
현종은 힘없이 당소소를 바라보다 이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그때 곁에 있던 현상이 입을 뗐다.
“그런데 청명아.”
“네?”
“일이 있는 건 알지만, 네가 이렇게 가 버리면 백매관은 어쩌느냐?”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응?”
청명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관주님한테 여쭤보니 열흘이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이거저거 준비하려면 열흘 정도는 족히 걸릴 테니, 관주님이 회복하시면 바로 출발할게요.”
“……아, 그럼 뭐.”
“대신!”
청명이 입꼬리를 사악하게 말아 올렸다.
“그 열흘 동안은 정말 죽을 정도로 굴려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누굽니까? 청명이잖아요.”
“…….”
현상은 어쩐지 등골이 서늘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마음대로 해라……. 네 마음대로.”
장문인.
그러다 등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