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화산은 네가 지켜야 할 곳이 아니다. (4)
"아야야야야야!"
청명이 호들갑을 떨며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뭔 붕대를 이렇게 아프게 매!"
"……주둥이 다무는 게 좋을 거예요, 사형. 그 입까지 꿰매 버리기 전에."
"……네."
당소소가 살기를 뿜어내자 청명이 얼른 입을 꾹 닫았다.
꾸욱.
"으……."
상처에 금창약을 뿌리고 붕대를 감는 당소소의 손길이 신경질적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이 그 손길에 한껏 어려 있었다.
"사형."
"응?"
"사형이 독을 어느 정도 해독할 수 있는 건 알아요. 그런데 가슴에 당한 검상이 한 치만 더 들어갔어도 위험했다는 거, 알고 있죠?"
진지한 그녀의 목소리에 청명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걸 안 당하는 게 실력이지."
그러자 당소소가 팔에 다 둘렀던 붕대를 다시 끄르기 시작했다.
"……뭐 잘못됐어?"
"느슨한 것 같아서 다시 매려고요."
"……."
주둥아리를 잘못 놀린 대가로 다시 한번 눈물을 쏙 뺀 청명은 치료가 끝나자마자 깊게 숨을 토해 내며 의자에 늘어지듯 기댔다.
당소소가 여전히 분이 안 풀린 것처럼 쏘아 댔다.
"그러다가 사형이 죽으면 어떡할 거예요?"
"아, 진짜 잔소리."
청명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사매로서 하는 잔소리와 의원으로서 하는 잔소리가 섞여 나오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뭐라 더 말하려던 당소소는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청명이 슬쩍 시선을 내렸다. 소매 아래로 보이는 당소소의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청명은 눈을 내리깔며 말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사형이나 사숙들 중에선 크게 위험한 분들은 없어요. 부상을 입은 분들은 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예요. 천운이죠."
"아니. 실력이야."
청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운은 실력이 없으면 생기지 않아. 그동안 해 왔던 수련에 의미가 있었다는 거겠지."
"예."
살짝 고개를 끄덕인 당소소는 조금 전보다 훨씬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뗐다.
"……하지만 장로님은 조금……."
청명의 눈가가 꿈틀댔다.
"현상 장로님?"
"네. 중독이 너무 심하셨어요. 해독은 했지만 치료가 늦어져서……. 어쩌면 후유증이 남을지도 몰라요."
청명이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당소소는 입술을 깨물고 잠깐 머뭇거리다 말했다.
"관주님은 오늘 밤을 넘기실 수 있으실지……."
청명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러다 이내 눈을 뜨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이 당소소의 머리 위로 툭 내려앉았다.
"네 잘못이 아니다."
"……사형."
"이상한 자책 같은 건 할 필요 없어. 죄를 지은 놈들은 따로 있는데, 왜 네가 자책을 해."
"하지만……."
당소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울음을 참는 듯 괴로운 얼굴이었다.
'오만했어.'
정말이지 의술에는 자신이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당가에서 의술을 배웠다.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실력을 갖췄다고 스스로 확신했었다.
그러니 화산의 의약당쯤은 얼마든지 맡을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 전투를 겪으며 그녀는 깊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능숙했더라면…….'
운검이 이리 위중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자꾸만 끊어지려 하는 운검의 생명줄을 부여잡고 힘껏 버티는 것뿐이었다.
"사숙조는 괜찮으실 거다. 그 정도 상처로 어떻게 되실 분이 아니야."
"……사형."
"믿어."
당소소가 결국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어깨를 한차례 두드려 준 청명은 그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일단은 좀 쉬어 둬. 환자를 보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니까."
"……뭘 자기는 다 끝났다는 것처럼 말해요? 사형도 무리하면 안 돼요! 상처 덧나면 진짜 병상에 누워서 한 달은 골골대야 한다고요. 듣고 있어요?"
"알았어, 알았어."
잔소리가 지겹다는 듯 손을 휘휘 저은 그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당소소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놈들은?"
"모두 가두었다."
청명과 나란히 앉아 있던 백천이 영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전신을 붕대로 칭칭 감은 놈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돌아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탓이었다.
"왜? 뭐?"
"……그 꼴로 걸어 다니기 창피하지 않으냐?"
"사돈 남 말 하시네."
청명의 말대로 붕대를 칭칭 감은 건 백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야도가 그에게 남긴 상처도 그리 가볍지는 않았으니까.
청명이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얼굴에 불만이 가득해?"
"……뭐가?"
"영 기쁘지 않은 얼굴인데? 그 야도인가 뭔가 하는 만인방 대주놈을 베어 버렸다며. 이야, 우리 사숙 이제는 고수네?"
"헛소리하지 마라."
백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대로 붙었으면 열 번을 붙어 열 번을 다 졌을 거다. 그저 주변의 상황이 도와줬을 뿐이지. 그래. 그냥…… 그냥 운이 좋았다."
입에 발린 겸손이 아니었다. 백천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운도 실력이지."
"……그런 뻔한 위로는……."
"건방 떨지 마, 사숙."
그때 청명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백천의 귀를 파고들었다.
"……."
청명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항상 실력으로만 이기겠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언제나 나보다 약한 사람과 싸우겠다는 뜻밖에 안 돼."
"……그건……."
백천은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생각해 보면 청명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그때 청명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그래도, 자기보다 강한 이와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행으로 이겼단 말도 할 수 있는 거지. 그걸 부끄럽게 여기는 건 이상한 일이야. 그렇지?"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탁.
청명이 백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물론 뭐, 그러다가 모가지 잘리면 요행이라는 말도 못 하게 되는 거고."
백천의 눈썹이 꿈틀했다.
"잘나가다가 또! 아주 악담을 해라, 망할 놈아!"
청명은 그 반응에 낄낄 웃다가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백천의 어깨를 꾹 쥐었다.
"어깨 펴, 사숙."
"……."
"어쨌거나 저 만인방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화산의 힘만으로 이겨 낸 거야. 얼마 전이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잖아?"
"……."
"사숙도 그렇고, 사형들도 그렇고. 다들 잘해 줬어."
"너 뭐 잘못 먹었냐?"
"하여간, 칭찬을 해 줘도."
청명이 눈살을 확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좀 더 좋아하라고. 그럴 만한 일을 했으니까. 이번에는 칭찬해 준다니까?"
청명이 손을 휘휘 저으며 멀어져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걸이 희한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쟤가 왜 저러죠?"
윤종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저럴 놈이 아닌데, 칭찬을 다 하네."
"……하기야 생각해 보면 나름 저희도 잘 싸웠잖습니까?"
"그렇긴 한데."
윤종과 조걸의 대화를 듣던 백천의 눈이 가느스름해졌다.
'저놈이 설마…….'
본디 전쟁이란 싸우는 것보다 뒤처리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부상자를 수습하고, 파손된 곳들을 파악하여 정비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몸이 멀쩡한 제자들은 화음으로 달려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데 필요한 약재를 사 날랐고, 의약당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꼬박 하루가 지나 다시 밤이 오고서야 화산이 평소의 고요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늦은 새벽.
끼이이이익.
하루 종일 환자들을 돌보느라 녹초가 되어 버린 의약당원들마저 잠에 빠진 시각. 의약당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다른 사람들이 깨어나지 않게 천천히 문을 연 이가 소리 없이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환자들이 누운 곳을 지나쳐 가장 깊은 내실에 도달한 그는 잠깐 주저하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의 침상에 누운 사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
늘상 제자들을 지켜보며 내보였던 엄격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운검의 얼굴에 남은 거라고는 핏기 없이 새하얀 낯빛과 두 눈 주변의 컴컴한 음영뿐.
청명의 눈빛이 무겁게 침잠했다.
'사숙조.'
붕대로 온통 뒤덮인 상체.
검수의 생명과도 같은 오른쪽 팔은 어깨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절단된 어깨에 감긴 붕대가 청명의 눈에 화인처럼 틀어박혔다.
"……."
얕고 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 그리고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희미한 숨소리.
지금 운검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싸움을.
청명의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낮에 보여 주었던 부드러운 얼굴은 모두 가짜였다는 듯 더없이 차가운 표정이었다.
"사숙조."
가만히 입을 열어 운검을 불러 본 청명은 그의 모습을 눈에 새겨 넣었다.
한참을 그렇게 사숙조를 내려다보던 청명은 말없이 몸을 돌려 의약당을 빠져나왔다.
탁.
조심스레 문을 닫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읊조렸다.
'장문사형.'
나는 안 되나 봅니다.
나는.
그는 잠깐을 그렇게 서 있다 안색을 굳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체 없이 산문 쪽을 향해 걷던 그가 막 경공을 펼쳐 달리려던 그 때였다.
"좀도둑이 있나 보네."
돌연 앞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청명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그러게요. 이 야밤에 은밀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도둑이네."
"……."
"얼씨구? 칼까지 차고?"
청명의 안색이 차게 굳었다.
산문 뒤쪽에서 나온 건 백천이었다. 그의 뒤를 이어 조걸과 윤종이 담벼락 위로 뛰어올랐다.
마치 청명을 막아서는 모양새였다.
"어딜 가느냐, 청명아."
백천이 청명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낮부터 하는 짓이 이상하다 싶었지. 네가 그렇게 순순히 칭찬하고 사람을 북돋워 줄 놈이 아니거든. 뭘 해도 할 것 같았지. 왜? 혼자 만인방에라도 쳐들어가려고?"
말없이 백천을 보던 청명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켜."
"……버르장머리하고는."
백천이 제 허리에 찬 검을 툭 건드렸다.
"못 보낸다."
"……."
"고약한 놈이지만, 그래도 너는 내 사질이다. 사질 놈이 미친 짓을 하겠다는데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청명은 다시 한번 이를 악물며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비키라고 했어."
"정 가고 싶으면 날 베고 가 보든가."
"나도."
"나도 못 보내."
조걸과 윤종이 담벼락에서 뛰어내려 백천의 좌우에 섰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산문 뒤쪽에 몸을 감추고 있던 유이설이 천천히 걸어 나와 백천의 뒤에 섰다.
그 모습에 청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성장한 건 칭찬해 줄게. 감히 내 앞을 막을 줄도 알고."
"우리 머리가 좀 굵어지긴 했지."
"그런데…… 주제는 알아야지."
청명이 금방이라도 뽑아 들 것처럼 검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넷이면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에 네가 한 말인데 말이야."
하지만 백천은 외려 희게 웃었다.
"무인은 안 될 걸 알아도 물러설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거든."
"……."
"와 봐라. 버릇없는 사질 놈아. 내가 오늘 네게 버릇이 뭔지 알려 주지."
청명이 두말없이 검을 뽑으려 할 때였다.
"그만두어라."
옆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백천이 반쯤 뽑았던 검을 밀어 넣고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평소의 현종이라면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의 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선 그런 기운일랑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되레 과히 노한 얼굴로 그들을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백천."
"예. 장문인."
"너는 아이들을 이끌고 백매관으로 돌아가라."
"하나……!"
"돌아가라."
"……예."
결국 가볍게 읍을 한 백천은 몸을 돌렸다. 그들이 순순히 돌아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현종이 청명을 보며 말했다.
"청명."
"……예."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청명이 묵묵부답으로 대답하지 않자 현종의 눈가가 꿈틀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아닙니다, 장문인."
"당장 따라오너라."
현종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잠자코 뒤를 따라 걸었다.
현종이 향한 곳은 자신의 처소가 아니었다. 산문을 빠져나온 그는 낙안봉을 향해 걸었다. 꽤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내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낙안봉에 도착한 현종은 바위 절벽에 끝에 서서 어둠에 잠긴 화산을 내려다보았다.
청명이 가만히 그 뒤에 가 섰다.
"청명아."
"예."
"네게 나는 무엇이더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청명은 잠시 대답하기를 주저하며 머뭇거렸다.
무엇이라. 무엇.
생각은 많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장문인이십니다."
뻔하디뻔한 대답.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예."
현종이 청명을 돌아다보았다.
"내 너에게 묻겠다."
한기마저 서린 현종의 얼굴에 청명은 저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정말 너는 나를 화산의 장문인으로 생각하느냐?"
"……."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구름마저 차마 닿지 않는 드높은 봉우리, 화산의 낙안봉을 하늘에 뜬 달이 조용히 굽어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