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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88화 (388/1,567)

388화. 죽어야 한다면 내가 가장 먼저 죽겠다. (3)

"아니, 미안하다고."

"……."

"거, 이 새끼 진짜 소심하네?"

"……."

"입만 열면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어쩌고 하는 중놈이 뭐 별것도 아닌 걸로 삐쳐서 입이 툭 튀어나와 있어. 이것도 중이라고, 어휴."

"삐친 게 아니라……!"

"쁘츤 그 으느르."

"아, 하지 마시오!"

혜연이 반들반들한 머리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사, 사람을 그렇게 두고 가는 게 어디에 있소!"

"몰랐다니까. 아니,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새끼야! 애초에 중이라는 놈이 귀신 무섭다고 제일 구석에 있는 방에 처박혀 문 잠그고 있었던 게 문제지! 네가 그렇게 있으면 귀신은 누가 잡냐, 귀신은!"

"소, 소림에서 귀신 잡는 방법 같은 건 가르쳐 준 적 없단 말이외다!"

"금강경은 토끼 구워 먹을 때 땔감으로 쓰려고 들고 다니냐?"

"주, 중이 무슨 육식을 한단 말이외까!"

"앞으로 고기에 손만 대 봐라!"

"전에도 손댄 적 없습니다……."

아웅다웅하는 혜연과 청명을 슬쩍 돌아보며 백천과 조걸이 고개를 내저었다.

"청명이 놈은 그렇다 치고. 혜연 스님은 언제부터 저렇게 저놈이랑 티격태격하는 사이가 된 거냐?"

"뭐 누구는 안 그렇습니까? 태풍이 옆을 지나가면 뭐든 다 휩쓸리는 거지."

"저 둘이 천하비무대회의 결승에서 그렇게 싸웠었다는 게 참……."

그때는 멋있었지.

그래, 대단했지.

그런데…….

백천이 다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스님,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물론 세상에는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 사람이라는 건 반드시 이성적이지는 않아서,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대고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청명이 놈에게서 뭔가를 얻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다?

왜? 아예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지.

안타깝게도 혜연은 지금 자신이 저지른 선택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사숙."

"응?"

"그럼 저 스님은 화산까지 따라오는 겁니까?"

"그런 모양이네."

"소림에는 안 돌아간답니까?"

"……난들 알겠느냐?"

"거 진짜 볼수록 희한한 양반이네."

혜연은 알고 있을까?

그가 세상 다시없을 인간들이라 생각하는 화산의 제자들이 그를 원숭이 보듯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혜연은 청명에게 정신이 팔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 그리고, 사숙."

"아, 자꾸 왜?"

"……왜 사숙하고 제가 이 수레를 끌고 가는 겁니까?"

"……."

거참 좋은 질문이로구나.

백천은 대답 대신 허망한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털털털털.

청명과 혜연, 그리고 현영이 탄 수레를 백천과 조걸이 우마 대신 끌고 있었다.

"왜냐고?"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청명이 대신 대답을 해 주었다.

"하나는 잘난 체하다가 검 날려 먹고 애들 수련용 검이나 대신 차고 있는 인간."

움찔.

백천이 슬그머니 제 허리춤을 내려다보았다.

적사도 엽평과 싸우면서 완전 박살이 나 버린 검 대신, 화영문의 신입 수련생들이 쓰는 목검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아니, 그……."

"그리고 하나는 사파한테 칼 맞은 인간."

움찔.

조걸이 부르르 떨며 청명이 없는 앞쪽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결코 눈을 마주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호오?"

청명이 이를 빠득빠득 갈아 댔다.

"반응 보니까, 그냥 넘어갈 줄 알았나 보지?"

'하여간 거머리 같은 놈.'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사람이 저리 쪼잔해지는 거지?'

"와, 그 난리를 쳐 놓고는 어깨에 힘을 줘? 누가 보면 대단한 일 한 줄 알겠네?"

"……."

"아, 아니지. 대단한 일 하긴 하셨지. 사이좋게 '단둘만' 사망자가 될 뻔했으니까. 아주 역사에 남으셨겠는데? 어? 어디 말 좀 해 봐. 어?"

"……."

"……."

백천과 조걸이 나란히 목을 움츠렸다.

"하여튼 제정신이 아니야. 이제 겨우 병아리 티 벗은 것들이 지들이 봉황인 줄 알아요, 봉황인 줄 알아. 화산에 도착할 때까지 다른 놈들 속도에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엉덩이에 바람구멍 날 줄 알아."

"……."

"달려."

"넵!"

백천과 조걸이 수레를 끌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백천과 조걸을 보는 화산의 제자들의 얼굴에 더없이 안쓰럽단 기색이 스쳤다.

'적사도 엽평을 잡았는데 되레 욕을 먹네.'

'불쌍해.'

하지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그 생각을 뱉지 못했다. 그런데 혜연은 아무래도 이 상황이 생소하고 불편한지 입을 열고 말았다.

"그, 그런데 시주."

"응?"

"아무래도 사람이 끄는 수레에 올라 있는 게 좀……."

"네가 끌래?"

"……편안합니다."

"그래."

모두가 멍한 눈으로 혜연을 바라보았다.

'저 스님 적응력 진짜 어마어마하구만.'

'얼굴은 시뻘게져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네.'

'벌써 검게 물들기 시작했네.'

'소림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

간단하게 혜연을 정리한 청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달려라! 이 느려터진 말들아! 내일까지 무슨 수를 써도 화산에 도착한다!"

"오, 올 때 사흘 걸렸다고!"

"근성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달려!"

"끄으으응!"

백천과 조걸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에 보조를 맞춰 다른 제자들도 군말 없이 달려 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화산의 봉우리가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 *

"흐음."

하늘을 보던 현종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먹구름이…….'

화산에 비가 내리는 날이 하루 이틀이겠냐마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모양새가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불길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불안한 눈으로 먹구름을 보던 현종은 결국 걱정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이들에게 별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무의식적으로 제자들이 떠나 있는 서안 쪽을 응시하던 그는 이내 삿된 생각을 떨치려 고개를 저었다.

현영과 청명까지 있는데 큰일이 있을 리야 있겠는가?

"장문인."

"그래."

어느새 지척에 다가온 운암이 현종을 향해 깊게 읍했다.

"표정이 어두우십니다. 혹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게 아니란다."

현종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날씨가 하 수상하여, 불길한 징조는 아닐까 걱정했을 뿐이다."

"아……."

현종은 먹구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잠깐 생각에 잠겨 있다 말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지."

운암은 그런 그를 가만 바라보았다. 장문인의 심유한 눈빛을 보노라니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과거 늪에 빠진 듯 살아갈 때는, 화산이 다시 비상할 수만 있다면 바랄 것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비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상황이 오니……."

현종이 빙그레 웃었다.

"또 다른 걱정이 생기는구나."

"사람이란 본디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또한 삶이란 그런 것이겠지. 높이 오르는 이는 또한 더 많은 것을 짊어져야 하는 법 아니겠느냐."

현종이 살짝 눈을 감았다.

화산이 더 많은 것을 얻고 높이 올라갈수록, 시기하는 이들은 늘어날 것이고 적도 더 많이 생겨날 것이다.

일전에 소림의 방장인 법정과 나누었던 대화가 새삼스레 생각나는 현종이었다.

"내가 더 많은 것을 짊어져야 아이들이 조금 가벼이 세상을 뛰놀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운암은 맑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장문인."

"음?"

"화산의 제자 중 누구도 장문인의 어깨를 밟고 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건 장문인이건 함께 가는 것. 그것이 화산이 가야 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언변이 많이 늘었구나, 이 녀석."

"하하. 워낙 입만 열면 청산유수인 놈을 보고 지내다 보니 그리되었나 봅니다."

현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야지."

이 고얀 것들은 현종이 거름이 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아직은 더 뛸 수 있으니, 함께 뛰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해야지."

현종이 고개를 끄덕이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장문인!"

"응?"

저 멀리서 운검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그 모습에서 심상찮음을 느낀 현종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더냐?"

"개, 개방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지금 당장 장문인을 뵈어야 한다고요!"

개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현종은 이 일이 정말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개방은 정보 단체.

그들이 시급을 논한다는 건 반드시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당장 이리로……. 아니! 내가 직접 가겠다! 앞장서거라!"

"예!"

현종이 앞서 달리는 운검을 따라 경공을 전개했다.

산문에 도달하니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개방도가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무슨 일이오!"

"자, 장문인을……."

"예는 됐소! 상황부터!"

"예!"

개방도가 크게 심호흡하더니 단숨에 말을 쏟아 내었다.

"저는 개방 화음 분타의 부분타주인 소취걸(小取乞), 양표(梁漂)입니다! 오늘 아침 다른 개방 분타에서 연통이 도착했습니다. 만인방! 만인방이 섬서에 들어섰습니다!"

"만인방!"

현종이 올 것이 왔다는 듯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섬서라면?"

"그들의 이동 방향을 감안했을 때, 목적은 화산인 것으로 보입니다."

"으……."

"마, 만인방이!"

개방도를 둘러싸고 있던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상대는 만인방. 천하를 호령하는 다섯 사파 중 하나다.

이제 겨우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화산과는 그 명성과 힘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다.

모두가 당혹한 가운데 오로지 현종만이 침착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적의 수는?"

"예?"

"만인방 전체가 몰려오지는 않을 것 아닌가? 섬서로 들어선 적의 숫자에 대한 정보는 없는가?"

"아, 예! 있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적의 수는 삼 개 대! 그 외에 추가적인 인원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삼 개 대라."

현종이 미간을 좁혔다.

만인방의 체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해서인지, 삼 개 대라는 게 어느 정도의 전력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듣자 하니 그 만인방에는 무력대만 해도 열이 넘는다고 하던데, 내 말이 맞는가?"

"그렇습니다. 만인방은 십이 개의 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외에 몇 개의 무력단이 추가로 존재합니다."

"그중 셋이라."

모두 몰려오지 않은 건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그들도 무작정 사람을 보낼 만큼 바보는 아닐 터.

'화산을 상대하는 데 셋이면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는 뜻이겠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일 테고.'

반면 화산은 지금 온전한 전력조차 아니다.

"혹 서안에는 연통을 보냈는가?"

"예! 가장 빠른 수단으로 소식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종이 살짝 심호흡을 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지만, 듣기 두려운 일.

"그들이 서안에 들어온 시점을 고려한다면, 지금 그들의 위치가 어디쯤 되겠는가?"

"그, 그것이……."

양표가 식은땀을 바짝바짝 흘리며 답했다.

"아마 지금쯤은 화음에 거의 도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화산의 밑일지도……."

현종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다급한 상황.

하지만 그 누구도 눈을 감고 침묵하는 현종을 재촉하지 못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현종의 눈이 뜨였다.

"운암."

"예, 장문인!"

"제자들을 모아라."

"예!"

그의 두 눈에는 단 한 점의 흔들림조차 깃들지 않았다.

"장문인."

그때 현상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에 있는 제자들만으로는……. 차라리 본산을 버리고 서안의 제자들과 합류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적들이 이미 화산을 포위했다면 달아나는 와중에 많은 제자들이 상하게 될 것이다."

"……."

"네 말이 옳을지 모른다. 그게 더 현명한 길일지도 모른다. 하나! 나는 단 한 명의 제자도 놓을 수 없다. 그들은 내 시체를 밟기 전까진 화산의 제자 중 누구도 해하지 못할 것이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현상이 고개를 숙였다. 현종의 눈이 새파란 광망을 내뿜었다.

"보여 주겠다. 화산은 다시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말을 들은 모두의 얼굴에 더없이 결연한 빛이 스며들었다.

그 시각.

"여기가 화산인가?"

탈명단창 손월이 피식 웃으며 드높이 솟은 화산을 바라보았다.

"더럽게 높군."

"그리고 가파르다. 도인들이 기거하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로군."

"큭큭큭. 상관없잖느냐? 오늘 이후로는 화산에 도사라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될 테니까."

탈명단창의 시선이 화산으로 오르는 길에서 조금 떨어진 화음현으로 향했다.

"……저기도 여흥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저놈들 목을 죄다 베어 들고 화산에 오르면 도사 놈들이 기겁하지 않을까?"

그 말을 들은 야도가 고개를 내젓는다.

"우린 지금 정파 놈들의 배 속에 들어와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화산파쯤이야 별것 아니지만, 다른 놈들이 지원을 오면 골치 아파진다."

"쯧. 겁쟁이 놈 같으니."

하지만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탈명단창도 더는 딴죽을 걸지 않았다.

"흑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모르지, 그놈들이야."

"……하여간 재수 없는 놈들."

구름에 반쯤 가려진 화산의 봉우리를 보던 탈명단창은 씨익 웃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붉게 물들면 장관이겠군."

"지체할 것 없다."

"좋아."

그리고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모조리 쳐 죽여 주지!"

만인방의 무력대가 가파른 화산을 가공할 속도로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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