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귀신이면 죽고 사람이면 뒈진다. (3)
"귀신이면 벌써 죽은 거잖아?"
"한 번 더 죽인다는 뜻 아닐까?"
"그냥 아무 생각 없겠지."
윤종과 조걸은 마지막 백천의 말에 격한 동의를 표했다. 아무래도 저 해석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그런데 엄청 신기하지 않습니까? 정말 겉으로만 보면 그냥 유령이네요."
"심지어 지금 바로 앞에 있는데도 존재감이 안 느껴져."
"하하하. 정말 귀신 같네요."
"그러게. 희뿌옇게 뭔가 보이는데 존재감이……."
하하 웃으며 말하던 백천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 들었다.
"진짜 귀신인가?"
"……."
그러자 유령의 형체가 격하게 일렁였다.
그리고 이내 음산하기 짝이 없는 귀곡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쟤 뭐 하냐?"
"……귀신인 척하는 모양인데."
"논다, 놀아."
"……."
청명은 어이가 없어 그만 피식 웃어 버렸다.
"뭐 베어 보면 알 일이지. 귀신이 칼에 맞아 피가 났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거든. 목이 잘리면 사람이고, 아니면 귀신인 거지."
"……."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격한 확인법에 화산의 제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귀신보다 저 새끼가 더 무섭다.
"자, 그래서……."
청명이 소맷자락을 걷어 올렸다. 핏줄이 잔뜩 돋은 팔뚝이 섬뜩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순순히 잡힐래? 아니면 처맞고 잡힐래?"
그때 살짝 일렁이던 희뿌연 형체로부터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함정을 팠나?"
"오? 말을 하네?"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었다.
"보시는 대로."
"……애송이 놈들이."
유령의 형체가 격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윽고 전후좌우로 들썩였다. 마치 말이 투레질을 하며 달릴 준비를 하듯 말이다.
그 모습을 본 청명이 심술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말했다.
"너 지금 도망가면 진짜 뒈진다."
"후후후.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라."
우우우웅!
순식간에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형체는 이내 천장을 뚫고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졌다.
"엇!"
"빌어먹을!"
화산의 제자들이 당혹하며 비명을 질렀다.
움직임이 얼마나 빠른지, 희끗한 형체는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져 버렸다.
"……엄청 빠르네?"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세상에 저렇게 빠른 건 처음 봅니다."
모두가 멍한 얼굴로 구멍이 뻥 뚫린 천장을 바라보았다.
"와."
청명도 감탄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뒈지게 빠르네."
"그런데……."
"응, 그런데……."
그리고 이내 정말로 궁금한 듯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병신인가?"
"……."
"빠르긴 빠른가 보다. 뇌도 흘리고 다니는 모양이네."
청명은 사라진 유령에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조걸을 돌아보았다.
"사형."
"응?"
"가서 삽 가져와."
"오냐!"
청명의 시선이 유령이 파헤치다 만 마룻바닥으로 향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씨익 말려 올라갔다.
"유령 행세를 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무언가가 여기에 있단 말이지?"
보물일까?
보물이겠지?
이히히히힛!
* * *
사박!
"룰루룰루."
사박!
"이히히히히힛!"
흙이 한 삽씩 떠질 때마다 청명의 입에서 깨방정이 흘러나왔다.
뭐 그럴 수 있지.
사람이 기분이 좋으면 일을 할 때도 신이 나는 법이니까. 특히나 뭔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일을 한다면 신명나는 어깨춤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거기에는 불만이 없다.
다만 문제는…… 지금 삽질을 하고 있는 게 청명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라는 점이었다.
"청명아……."
"응?"
"이거 어디까지 파야 하냐?"
조걸의 물음에 청명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저번에 우리 전각 올릴 때, 한참 팠었지?"
"그랬었지."
"그때도 안 나왔던 거 보면 최소 그 밑에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일단 그냥 파. 파다 보면 무조건 나온다!"
"……."
저 새끼가 지가 파는 것 아니라고…….
모두가 독기 어린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기분 좋게 으헤헤 웃어 대기만 했다.
"경공이 엄청 빨랐어. 이히히히힛."
저 정도면 분명 강호에서도 손꼽히는 속도였다.
물론 경공이라는 게 꼭 실력과 비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만한 경공이면, 마음만 먹으면 떼돈을 벌 수 있다.
"표사만 해도 완전 특급 표사지. 중원 전 지역 열흘 내 배송 가능! 고관들 표물만 맡아 옮겨도 그게 돈이 얼마야? 세상에!"
아마 평범한 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이가 귀신 행세를 하면서까지 어떻게든 얻으려 했던 게 이 밑에 있다 이 말이렷다?
"으헤헤헤헤! 비싸겠지! 엄청 비쌀 거야!"
돈 생각에 좋아 까무러치는 그를 보며 윤종이 미간을 찌푸렸다.
"……사숙. 쟤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네가 말릴래?"
"윗분에게 말이라도 하면……."
"지금 여기 있는 윗분이 누구시냐?"
"현영 장…….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현영에게 달려가 이르는 순간, 으헤헤헤 웃어 젖히는 인간이 둘로 늘어날 뿐이다. 그럼 잔소리도 두 배가 되겠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청명이 놈만 끼고 일하는 게 낫다.
"허리를 펴지 말고 작업을 하란 말이야, 이것들아! 말을 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삽질을 하라고!"
"……."
화산의 제자들은 한숨에 그 모든 한을 담아 내쉰 뒤 말없이 다시 삽질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도 불만만 가득한 건 아니었다.
청명을 따라다니며 늘어난 눈치와 재물에 대한 감각이 그들의 기대치 역시 최대로 올리고 있었다.
'분명 뭔가 있다.'
'비싸겠지?'
'쌀밥에 고깃국! 쌀밥에 고깃국!'
화영문에 투자가 늘어나면서 최근에는 반찬이 조금 부실해진 감이 있었다. 여기서 크게 한탕을 한다면 한동안 다시 부유하게 먹고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파라. 일단은 파 놓고 생각하자."
"예!"
모두 삽을 검처럼 날카롭게 휘두르며 파닥을 파 내려갔다. 흙더미가 마치 화산이 분화하는 듯 과격하게 솟구쳐 올라왔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아! 삽기(臿氣) 쓰지 말라고요! 위험하잖습니까! 좁은데!"
"빨리 해야 할 거 아냐!"
"어느 문파에서 삽질하는 데 검기를 씁니까!"
"화산은 그래!"
조걸과 윤종이 투닥거리며 바닥을 파내던 그때였다.
"이거 대체 얼마나 더 파……."
턱!
움찔.
삽에 뭔가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모두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찾았냐?"
"있어?"
"이, 있습니다! 여기 뭔가 있어요!"
"비켜!"
말이 나오기 무섭게 청명이 구덩이 속으로 뛰어내렸다. 그러더니 윤종의 삽을 뺏어 들고는 눈을 희번덕댔다.
"이 공사는 내가 집도한다!"
"……지랄을 한다."
백천이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청명에게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히히히힛! 귀신이 나올까, 보물이 나올까? 이거 무척 흥분되는걸?"
푸욱!
청명이 섬세하게 삽을 바닥에 찔러 넣기 시작했다. 얼핏 느긋해 보이는 동작이었지만, 좌우로 세차게 날아가는 흙더미는 마치 태풍을 방불케 했다.
"살살 좀 해!"
"아, 따거! 따거!"
순식간에 바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석벽(石壁)이네?"
"와. 이 깊은 곳에다가 석벽을 파묻었네. 대단하다. 엄청 힘들었을 텐데."
"그만큼 중요한 게 있다는 뜻이겠지."
화산의 제자들의 눈이 삽시간에 탐욕으로 물들었다.
도가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재물에 미쳐 눈을 희번덕대는 이 모습을 태상노군이 보았다면, 저 썩을 놈들의 껍데기를 벗겨 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곳은 선계가 아니라 현세였다.
"근데 이거 어떻게 열어야 하지? 문이 밑에 있나?"
"그냥 부수면 되지 않나?"
"에헤이. 안에 있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안 되지. 연약한 거면 까딱하다 부서질 수도 있잖아. 문을 찾아 여는 게 낫지!"
"그럼 옆을 파 보자. 조심스레 다뤄야 해!"
청명이 나서기도 전에 저들끼리 투닥거리며 어떻게든 돈을 벌어 보겠다고 날뛰는 모습이었다.
청명은 무척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 키웠네.'
아암, 다 키웠어. 이제 모두가 훌륭한 도적……. 아니, 도사다.
뭐, 뭐! 어차피 한 글자 차인데.
백천과 조걸, 윤종은 삽으로 주변을 까 대기 시작했고, 유이설은 어디선가 커다란 붓을 가져와 석벽 주변의 흙을 섬세하게 털어 내고 있었다.
'이건 뭐…… 거의 도굴꾼들이네.'
사형.
장문사형.
……내가 좀 너무 과하게 키웠나요?
- 야 이 새끼야 그걸 이제…….
"아아. 몰라, 몰라."
청명은 귓가에 들려오는 환청을 휘휘 털어 내고는 씨익 웃었다.
모양새야 어찌됐든 돈만 벌면 되지!
"여기다!"
"문이다!"
"찾았다! 청명아!"
환호성이 들려오자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잽싸게 다가갔다.
"거기야?"
"여기!"
과연.
청명의 눈앞에 석벽 안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문이 보였다.
"오. 이거 생각보다 클 수도 있겠는데."
"이 아래에도 길게 뭐가 있는 모양이다. 이거 제대로 뭔가 잡았다!"
"꺄르륵!"
"어쩌면 저번에 혼원단을 얻었을 때처럼 뭔가 큰 게 있을지도 모른다!"
"꺄르르륵!"
청명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그러다가 돌연 확 정색을 하며 눈을 부라렸다.
"아니지, 아니지. 아직 열어 보지도 않았는데 좋아할 일이 아니야. 돈은 벌어 놓고 좋아하는 거지, 벌 수 있다고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 일단 열자!"
"그래!"
청명이 굳게 닫힌 문을 콱 움켜잡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머, 멈춰라!"
무척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화산의 제자들은 모두 뚱한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돌아왔네?"
"그러게?"
희뿌연 유령 같은 형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 병신은 저렇게 돌아올 거면 뭐 하러 그렇게 꽁지 빠지게 도망갔나 몰라."
"그러게."
청명은 그 형체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야. 귀신이면 갈 길 가고, 사람이어도 갈 길 가라. 뒈지고 싶지 않으면."
"이, 이놈들이 감히!"
유령은 크게 분노했는지 유백색의 기운을 사방으로 뿌려 대었다.
"내 피를 보지 않기 위해서 참으려 했거늘! 너희가 진정 도를 넘는구나! 나의 손속이 잔인하다고 원망하지 말거라!"
희끗한 형체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아래로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헉?"
"빠, 빠르……."
하지만 당황하는 이들과 달리 청명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내려놓았던 삽을 집어 들었다.
"죽어라아아앗!"
빠아아아아아아아악!
"……."
세상이 정적에 휩싸였다.
백천은 멍한 눈으로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내리꽂히던 유백색의 형체에 청명이 휘두른 삽의 면이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이던 세상이 일순 멈춘 것만 같았다.
흐물.
삽에 얻어맞은 형체가 두어 번 명멸하는 듯싶더니, 이내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타작은 끝나지 않았다.
"근데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청명이 눈을 까뒤집고 삽을 치켜들었다.
"내가!"
빠아아아악!
"귀신이면 죽고!"
빠아아아아악!
"사람이면 뒈진다고!"
빠아아아아악!
"말했냐, 안 했냐! 이 새끼야!"
청명의 삽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새끼가? 자꾸 겁도 없이 덤비네? 제령? 이게 제령이다, 이 새끼야! 죽어! 죽어어어어!"
그 광경을 보던 모두가 눈을 질끈 감았다.
중원사에 유례가 없던 일이 그들의 눈앞에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삽으로 하는 제령.
'귀신이 삽에 맞아 죽네.'
'이쯤 되면 원귀가 돼도 인정한다.'
'불쌍해.'
삽이 후려쳐질 때마다 형체의 주변에 일렁이던 유백색의 기운이 크게 번졌다가 쪼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이, 이놈! 죽여 버리……. 아아악! 아악!"
퍼억!
"그만두지 못하겠……. 이놈! 내 실력을! 아, 거기 사타구니! 아악! 야, 사타구니라니까!"
"죽어, 이 새끼야!"
뭔가 저항하려는 듯 번쩍대던 유령은 불과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구슬픈 비명과 애원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사, 살려 주십쇼! 유령 아닙니다! 사람입니다! 악! 아아아악! 살려 주십쇼!"
"이제는 이 귀신 새끼가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무량수불! 성불해라!"
"귀, 귀신 아니라니까요!"
"그럼 죽어!"
"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살려 주십쇼오오오오오!"
멀리서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영문의 전각에선 구슬픈 비명이 높고 또 높게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사람이건 귀신이건, 모진 놈을 만나면 그 끝이 좋지 못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