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2화. 귀신이면 죽고 사람이면 뒈진다. (2)
"……죽을 것 같다."
"저두요."
눈 밑이 어둑하다 못해 음영이 턱 끝까지 내려온 화산의 제자들이 서로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잠을 어떻게 자? 귀신이 나오는데!'
'바람만 불어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네.'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어디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리 뜻대로 되겠는가?
벌써 귀신을 목격한 이가 다섯을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불안하지 않을 수가없었다.
"거 진짜 귀신 같네."
청명은 내도록 일그러진 얼굴을 펴질 못했다.
벌써 며칠 동안 귀신의 종적을 찾기 위해 기감을 펼쳐 대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귀신은 청명에게만은 나타나지 않았다.
청봉이 거품을 물고 쓰러진 뒤로 벌써 셋이나 더 귀신을 목격했는데도 말이다.
"진짜 귀신이 아니고서야."
제자들이 눈으로 보는데 청명이 찾아내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으음. 이런 일이."
평상에 걸터앉은 현영도 곤란하기 짝이 없다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문도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화영문이더냐?"
"예. 이번에 새로 받은 아이들이……."
"끄응."
위립산의 말에 현영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귀신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
그건 당연히 아이들이다.
어른들도 귀신이라고 하면 께름칙해하는 판에, 어린아이들이 그런 소문을 듣고도 평온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소문을 막아 보려 하고는 있습니다만, 이게 참……."
"그게 어디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더냐. 사람이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두 가지가 말과 귀신이다."
그런데 그게 지금 둘 다 동시에 화영문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니 현영의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어떻게 이리도 바람 잘 날이 없단 말인가.
그때였다.
벌컥!
"장로님!"
문을 박차고 들어온 조걸이 화색이 도는 얼굴로 달려왔다.
"장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으응?"
생각지 못한 말에 현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결책이라니? 뭘 한 것이냐!"
"크으! 제가 조걸 아닙니까, 조걸! 일을 해결하는 데는 저만 한 놈이 없지요! 제가 서안을 샅샅이 뒤져 제일 용하다는 무당을 모셔 왔습니다! 이제 그 귀신 놈은 끝……."
"야, 이 미친놈아!"
현영이 들고 있던 찻잔으로 조걸의 머리를 냅다 내리쳤다.
"켁!"
그 바람에 조걸은 비명도 길게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개구리처럼 엎어졌다.
경련하는 그를 보며 현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느 도관에서 귀신이 나왔다고 무당을 부르느냐! 공자가 지나가는 유생 붙들고 논어 좀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소문날까 겁나니 당장 돌려보내거라!"
어느 순간 자신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현영이었다.
"끄으으응."
조걸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 우리가 해결을 못 하잖습니까."
말문이 막힌 현영이 잠깐 벙긋거리다 한숨을 내쉬었다.
화산도 과거에는 제령술이나 부적술이 전해지긴 했다.
물론 화산은 속가 성향이 강한 곳이다 보니, 다른 도문에 비하여 술법을 다루는 좌도방(左道房)의 세가 미미할 정도로 약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전해져 내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마교가 발호하고 당장 먹고사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이제는 화산에서 경면주사(鏡面朱砂)는 물론이고 괴황지(槐黃紙)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끄응. 되찾은 비급에는 주술과 관련된 건 없었는데……."
현영이 바쁘게 머리를 굴리는데, 대뜸 누군가가 발랄한 목소리로 그의 고민을 끊어 버렸다.
"에이! 그게 왜 필요해요!"
"응?"
청명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고 있었다.
"시대가 어느 시댄데 그런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청명아…….
우리가 괴력난신이다 이놈아.
칼 차고 하늘 날아다니는 놈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냐?
"아니, 눈 까뒤집고 달려드는 마교도 상대해야 할 사람들이 귀신을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 귀신이 무서워? 나는 사람이 백배는 더 무서워!"
"……너야 그럴 수 있지만, 화영문의 제자들이 무서워하니 문제 아니더냐? 이러다가 새로 들어온……."
"그런 살 떨리는 말씀일랑 하지도 마세요. 여기가 무슨 시전도 아니고! 지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그런 게 어딨어요!"
벌써 몇 번이나 제자들이 입문했다가 나가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본 청명이다 보니 그런 꼴을 다시 보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다.
"그러니 얼른 해결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끄응."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난제는 튼튼한 주먹과 단단한 겁집으로 해결해 왔다. 그런데 이 일은 말 그대로 주먹이 먹히질 않는다.
상황을 지켜보던 조걸이 당당히 소리쳤다.
"이리된 이상 차라리!"
"응?"
"전각을 옮겨 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
모두가 멍한 눈으로 조걸을 바라보았다.
"……이거 새로 지은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냉정하게 생각해야죠. 애초에 귀신이 나와서 폐가가 된 곳 아닙니까? 먼저 여기 살던 사람들이라고 손 놓고 있었겠습니까? 온갖 수는 다 동원해 봤겠죠. 그래도 해결 못 한 걸 우리가 무슨 수로 해결합니까?"
"흐음……."
"그러니까 차라리 빠르게 전각을 버리고, 새 전각을 구입하는 게……."
그때 윤종이 빙그레 웃으며 조걸의 어깨를 잡았다.
"걸아."
"예?"
"부잣집 아들내미 티 내지 말고 입 다물거라. 주둥아리 돌려 버리기 전에."
윤종의 목소리에 은은한 빡침이 섞여 나왔다.
"하여튼 있는 집 자식 놈은!"
"돈 아까운 줄을 몰라요! 돈 아까운 줄을!"
"확 마!"
쏟아지는 맹비난에 조걸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 원래 상도라는 건 버릴 건 빨리 버려야……."
"걸아."
"예!"
"닥치거라."
"넵!"
백천마저 눈살을 찌푸리자 조걸이 잽싸게 부동자세를 취했다. 확실히 버릴 의견을 빨리 버리는 모습이었다.
청명은 그 꼴을 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애초에 이게 다 혼자 다니다가 벌어진 일 아냐? 짝지어 다니라는데 왜 자꾸 혼자 돌아다녀?"
"……새벽에 소변보러 가는데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게 어디 할 짓이냐?"
"깨운다고 일어나지도 않아."
"우리야 그렇다 쳐도 유 사고는 어쩌고?"
"끄응."
청명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 확실히 이대로는 안 돼.'
잠깐 고민하던 그가 눈을 부라렸다. 시간을 끌수록 기껏 다 모아 놓은 제자들이 이탈하거나, 전각을 되파는 길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귀신 나와 새로 지은 전각에 또 귀신이 나오는데, 누가 이 전각을 돈 주고 사겠는가?
화산파 도사들도 못 버티고 도망간, 귀신 들린 전각을!
청명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별수 없지."
"응?"
"정말 귀신이라면 방법이 없으니까 전각을 알아보기는 해야 할 것 같아."
"여길 버린다고?"
"그럼? 방법 있어?"
"아니, 그야……."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턱을 쓸어내렸다.
"조걸 사형의 말이 그리 틀린 건 아냐. 잘라 낼 건 빨리 잘라 내야지. 어설프게 여기에 버티고 있다가 우리가 귀신 하나 해결 못 한다는 소문이 돌면 기껏 얻은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어. 차라리 적당한 핑계를 대서 빠지는 게 나아."
"핑계거리가 있냐?"
"뭐……. 둘러댈 거야 많지. 제자들을 더 받아야 해서 더 큰 장원으로 옮긴다거나."
"흐음. 확실히 큰 의심 없이 달아날 수는 있겠다만."
"제자들의 입단속이 중요하겠네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소문이야 좀 퍼지더라도 아직은 서안 사람들이 화영문을 믿고 있기도 하고."
말이 이쯤 나오자 조걸이 뚱하게 입을 삐쭉거렸다.
"내가 말했을 때는 다들 욕하더니."
"닫아라."
"주둥아리! 확!"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표정을 지은 조걸이 구석으로 가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누구도 그런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여튼."
청명이 눈을 찌푸리며 말한다.
"일단은 오늘 당장 잘 곳부터 알아봐."
"당장 오늘부터?"
"……사형, 사숙들 몰골을 보니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러자 귀신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음영이 턱 끝까지 내려온 모두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현영은 여전히 무언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이만한 이들이 머물 장원을 하루아침에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에이. 아니죠, 장로님. 지금 남는 장원이 넘쳐나잖아요."
"응?"
청명이 시원하게 씨익 웃었다.
"짐을 싸서 나간 종남 속가들 장원이 있잖아요. 지금 거기 주인 없이 텅텅 비어 있는데."
"주인이 없는 게 아니라 자리를 비운……."
"그게 그거죠."
현영은 일단 살짝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심 언젠가는 청명에게 세상의 상식을 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비어 있는 장원 좀 쓴다고 별문제 있겠어요? 불만이면 와서 따지라고 하죠."
"그래.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오겠구나."
지들도 살아야지.
지들도.
일단 잘 곳을 시원하게 해결한 청명이 조금 쓰게 입맛을 다셨다.
"내 살면서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난 적이 없거늘……. 귀신 때문에 도망갈 줄이야."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전진을 안 하잖아!"
청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이내 곧 한숨을 내쉰다.
"뭐, 어쩔 수 없지."
눈앞에 적이 있고 칼이 박히면 어떻게든 해보겠다만, 지금은 적도 보이지 않고 그 적에게 칼이 박힌다는 확신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귀신과 싸울 수는 없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것 빨리 움직여. 사람이 잠은 자야지!"
"……진짜?"
"왜?"
"아, 아니."
백천이 의아하다는 듯 청명을 바라보았다.
"너라면 귀신 때문에 잠을 못 자는 놈이 어디 도사냐고 발악을 할 줄 알았거든."
"……나는 대가리 후려쳐서 재워 준다고 할 줄."
"나는 힘이 남으니 잠을 못 자는 거라고 하루 종일 굴릴 줄 알았는데."
"……."
청명이 얼굴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원하는 대로 해 줘?"
"아, 아니다!"
"지금 당장 알아보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쏜살같이 후다닥 달아났다. 청명은 그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한숨을 다시 한번 내쉬었다.
"끄으응. 되는 일이 없네."
"어쩌겠느냐. 이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인 것을."
"네. 일단은…… 일단은 새로 입문한 제자들부터 진정시켜야 하니까요. 화산이면 몰라도 화영문은 조심히 다뤄야죠."
청명이 입맛을 다시며 안타깝다는 듯 전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중천에 떠오른 해로 인해 만들어진 전각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속.
그리 멀지 않은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시선이 청명의 처진 어깨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화영문의 전각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차갑게 불어온 바람에 문들이 삐걱삐걱 음산한 소리를 내며 덜컹거렸다.
화산의 제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전각에는 작은 짐승들조차 얼씬하지 않았다.
그저 달빛만이 어슴푸레 주위를 밝혀 주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스스슥.
컴컴한 그림자 속에서 무언가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그 움직임이 조금 커진다 싶더니 이내 희뿌연 무언가가 바람을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삭.
장원 한중간에 내려선 뿌연 형체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장원에서 가장 커다란 전각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형체는 전각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이동을 멈추었다.
가각.
커다란 걸쇠가 깔끔하게 잘려 나가고 문이 활짝 열렸다. 희뿌연 형체가 열린 부유하듯 전각 안으로 움직였다.
"……."
스르르륵.
전각 안으로 들어선 유령은 뭔가를 고민하는 듯 두어 차례 일렁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형체가 살짝 쪼그라든다 싶더니 이내 바닥의 마루가 뜯겨 나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음산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살짝 새어 나왔다.
나무로 만들어 둔 바닥이 뜯겨 나가고 흙이 드러나자 우윳빛의 일렁임은 점점 더 격해졌다. 동시에 바닥이 과격하게 파이기 시작했다.
촤아아악! 촤악!
흙과 자갈들이 순식간에 파여 마루 한중간에 작은 산을 만들었다. 바닥을 파내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렇게 유령이 한참을 바닥을 파 내려가던 바로 그 때였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돌연 들려온 목소리에 유령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그리고 분명한 당혹감을 보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살다 살다 귀신이 땅 파는 걸 다 보네. 왜? 무덤 파서 도로 들어가게?"
닫아 놓았던 전각 문이 활짝 열리더니 청명이 히죽 웃으며 걸어 들어왔다.
"……."
"진짜 유령인가?"
"그럴 리가 있나."
"그럼 저건 대체 뭐지?"
뒤이어 커다란 창으로 들어온 조걸과 윤종이 씨익 웃으며 창을 틀어막고, 다른 문은 백천이 틀어막았다.
탈출로는 순식간에 봉쇄되었…….
"저기 누구야?"
청명이 가장 끝에 있는 쪽문을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유이설이 쪽문 뒤에 몸을 숨긴 채 눈만 빼꼼 내밀었다.
"……귀, 귀신."
"똑바로 안 막아? 확 마!"
아주 잠깐의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밖으로 나갈 길을 완전히 틀어막은 청명은 유유히 유령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격하게 일렁거리는 유령을 보며 그가 히죽 웃었다.
"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다는 듯 휘어진 눈이 점점 희번덕거렸다.
"귀신이면 죽고, 사람이면 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