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379화 (379/1,567)

379화.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했다고. (4)

"아이고! 도사니이이임!"

"여기, 이거 오늘 딴 과일인데 한번 드셔 보십시오!"

"바쁘실 텐데, 매번 이렇게!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청명은 환대해 주는 서안의 상인들에게 더없이 자애로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별일 없죠?"

"물론입죠! 물론입죠, 도사님! 이틀 전에 도사님께서 행패 부리는 왈패 놈들을 모조리 성문에 매달아 버린 이후로 사특한 놈들이라고는 단 한 놈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항상 이렇기만 하면 원이 없겠습니다."

"에이. 당연히 계속 이래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화영문이 꾸준히 관리를 할 테니까요."

"아이고오! 도사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헤헤헤. 별말씀을요."

"이것! 이것도 좀 드셔 보십시오! 방금 부친 전인데……."

"여기, 여기 우리 집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교자입니다!"

"어허! 내 것부터!"

청명이 온 것을 본 이들이 너도나도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청명은 히죽히죽 웃으며 여기저기서 주는 선물들을 받아 챙겼다.

"아이고. 매번 이런 거 주지 마시라니까요. 헤헤……. 어, 그 월병……. 나 월병 좋아하는데."

"아이고! 도사님이 좋아하시면 당연히 드려야지요! 제가 아예 화영문에 한 상자 따로 보내 놓겠습니다."

"헤헤. 그러실 필요까진……. 이름 꼭 써 주세요. 밥만 축내는 것들이 먹을지도 모르니까."

"……."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화산 제자들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졌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뭔가 수금하는 느낌 아닙니까?"

"이게 참……. 아니, 분명 사람들이 선의로 해 주는 일이니 나쁜 게 아니긴 한데."

"이거 아무리 봐도 흑도 놈들이 구역 관리하는 모습 같은데."

"잘 어울려."

"……그러게요."

겸사겸사 저자에서 행패를 부리는 왈패 놈들을 후려 까 대다 보니 청명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아이고, 도사님. 저희 애가 이번에 네 살이 됐는데, 혹시……."

"에이. 뼈라도 좀 영글어야 어떻게 가르쳐 보죠.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일단은 밥 잘 먹여서 튼튼하게 만들어 두세요. 제자는 또 받을 테니까요."

청명의 대답에 주변 사람들이 먼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허! 그런 일은 화영문에 가서 문의하면 될 일이지! 어디 도사님께서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 쓰셔야겠나! 훗날 천하제일검이 되실 분인데!"

"그럼! 그럼! 큰일을 하셔야지!"

"맞아!"

화산 제자들은 이 뜨거운 반응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쟤는 도대체 왜 저렇게 인기가 좋은 거야?'

'사람들이 저 새끼가 평소에 어떤 놈인지를 몰라서 그래. 화산에 올라서 딱 하루만 겪어 보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날 텐데.'

화산의 제자들에게는 속이 터지는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서안의 사람들은 청명의 본성을 몰랐다.

때문에 청명과 화산에 쏟아지는 관심은 우호적이기 짝이 없었다.

이유?

물론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무쪼록 잘 봐 주십시오! 열심히 한번 해 보겠습니다!"

"아이고, 도사님도 참! 저희가 잘 부탁드려야지요."

"세상에, 어찌 이리 겸손하신지."

"……."

백천은 그 이유의 9할은 청명의 저 태도에 있다고 확신했다.

지금도 그랬다. 음식을 받아 챙기고 환담을 나누면서도 청명의 허리는 눈 한 번 깜빡일 순간에도 세네 번씩 접혔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저 낭창한 허리와 유연한 무릎은 웬만한 무림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나 종남 놈들에게선 보기 어려웠겠지.'

서안이 종남의 안방 같은 곳이라 그 문하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 그들이 평범한 서안의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여 겸손함을 보였겠는가?

그 종남의 문하들인데?

'그럴 리가 없지.'

그 진금룡만 생각해 봐도 뻔히 결론이 나오는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백천 역시 청명을 만나 대가리가 깨지기 전에는 명문파의 제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무학을 익히는 이상 자신은 평범한 양민들과는 비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몰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화산의 제자임에도 말이다.

한창 기세가 좋았던 종남의 제자들이 얼마나 고압적이었을지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이 평범한 양민들의 눈에 청명의 유연한 허리와 쉴 새 없이 숙여지는 고개가 얼마나 좋게 보이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런 청명을 칭찬하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과연 도문은 다르구만. 화산신룡이면 지금 천하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별호 중 하나일 텐데, 저리 낮은 자세라니."

"그렇지! 그게 바로 도인 아니겠는가? 화산은 단순히 검을 닦는 검문이 아니라 도를 숭상하는 도문이라더니 내 이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네."

"참 도인이시구나! 정말 참 도인이셔! 역시나 종남과는 다르구먼그래."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지금 도문이 생겨난 이래 가장 지옥 같은 도사 놈을 두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태상노군께서 지상에 강림하시면 가장 먼저 이곳으로 뛰어와 저놈의 주둥아리에 돌려차기를 갈겨 버릴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니 제발 현실을 바로 보시고…….

"다들 속고 있……!"

"조용히 하십시오, 사숙."

"쉿."

"……."

하지만 진실을 털어놓기도 전에 조걸과 유이설이 눈치를 주었다. 백천은 세상 답답하단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어쨌든…… 거짓 아닌 거짓말(?) 덕분에 청명은 물론이고 화산과 화영문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제는 화영문의 도복을 입은 이들만 봐도 서안의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 올 지경이었다.

'하여튼 진짜 대단한 놈이야.'

백천은 청명의 추진력에 새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웅성웅성.

"응?"

사람들이 몰려든 곳 뒤쪽에서 뭔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뭐지?'

백천의 기름한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단순히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생긴 소란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쪽을 주시했다.

"아?"

이윽고 그의 눈에 낯이 익다면 낯이 익고, 낯설다면 낯선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유해상이라고 했던가?'

선두에 선 이는 분명 종남 속가 복연문의 문주인 유해상이었다. 가장 앞서 걸어오는 그의 뒤로는 복연문의 문도들이 겸연쩍은 얼굴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허어!"

"허허. 거참, 낯짝도 두껍지."

"도망갈 때는 야반도주를 하더니, 돌아올 때는 당당히 대낮에 돌아오는구먼. 말세야, 말세."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들을 바라보는 서안 사람들의 반응은 예전 같지 않았다.

"저저, 칼 찬 꼬락서니 좀 보소. 뽑지도 않을 칼을 뭣 하러 저리 들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네."

"안 뽑긴 뭘 안 뽑는가? 우릴 향해서는 뽑지 않았는가?"

"아, 그렇지! 허허. 정파니, 협의니 어쩌니 하는 것들이 멀쩡한 백성들에게는 칼을 들고 협박을 해 대더니, 막상 도적들이 몰려오니 꽁무니를 빼? 퉤엣! 개 같은 놈들!"

비난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사람들을 모인 곳을 향해 걸어오던 유해상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물론 여기까지 오면서 이런 시선을 받은 게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용기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 혀를 차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돌렸을 뿐, 감히 면전에 대고 직접 비난을 쏟아낸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눈치를 주는 것도 아니고, 아주 대놓고 욕을 해 대고 있지 않은가?

"……저 무지렁이 놈들이?"

"차, 참으셔야 합니다, 문주님."

"끄으응."

옆에서 만류하는 목소리에 유해상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화를 꾹 눌러 참았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이들에게 이리 대놓고 욕을 먹으니 끓어오르는 노화를 참기가 쉽지 않았다.

"당장 꺼져라! 이 사기꾼 놈들아!"

"본산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들이 그동안 잘도 거들먹거렸군! 에라, 호가호위가 이럴 때 쓰는 말이지!"

"대체 뭔 낯짝으로 이 벌건 대낮에 얼굴을 들이미는지 모르겠네! 나 같으면 서안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았을 것을!"

하지만 비난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으니 결국 참지 못한 그가 눈을 까뒤집었다.

"이 건방진 놈들이……!"

결국 소리를 지르는 그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붉었다.

그렇잖아도 내심 부끄러웠다.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서안에 다시 발을 들인 것은, 급하게 달아나느라 처리하지 못했던 전각을 매도하기 위해서였다.

적사대 놈들이 불을 지르고 부숴 버렸을 줄 알았던 전각이 멀쩡히 남아 있다는데, 그걸 그냥 두고 서안을 떠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를 위해서라면 차가운 눈빛 정도야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설마 저 힘도 없는 양민들이 이리 욕을 쏟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는 허리에 찬 검을 반쯤 뽑았다. 그러자 앞다퉈 야유를 쏟아 내던 서안인들이 움찔하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무, 문주님!"

"문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유해상의 격한 반응에 되레 복연문의 문도들이 기겁하여 만류하고 들었다.

"놔라!"

하지만 유해상은 흥분을 가라앉히기는커녕 더욱더 목청을 높였다.

"내가 실수를 했다고는 하나, 저것들이 감히 내게 욕을 하지 않느냐! 그동안 내가 서안에 한 게 얼만데 이 배은망덕한 것들이! 오냐! 너희가 이리 나를 사기꾼에 파렴치한으로 몬다면, 기왕에 이리된 것 도적인들 되지 못할까!"

숫제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에 상인들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말거라! 나는……."

"네가 누군데?"

"……뭐?"

그때, 사람들 사이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사람들이 금세 좌우로 비켜섰다. 인파가 갈라진 틈으로 터덜터덜 나온 건 청명이었다.

"……어……."

유해상이 입을 다물었다.

왜 사람들이 이리 몰려 있었나 했더니, 화산 놈들이 와 있었던 모양이다.

'어, 어쩐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평소라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들이 떼를 지어 욕을 했으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순간 머리에 피가 몰려 그걸 놓치고 말았다.

"……아, 그쪽이 누구시냐고."

"아……."

청명은 심드렁하게 유해상을 바라보다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아저씨. 탑을 아무리 높이 쌓아 봐야 일단 무너지면 끝인 거예요."

"……."

유해상이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물론 아저씨는 딱 한 번 잘못한 거라고 하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한 번을 위해서 칼 찬 무뢰배 놈들이 백주대낮에 관도를 오가도 이해해 주는 거라고요. 그걸 저버린 순간 아저씨는 말 그대로 도적이나 다름없죠."

"나, 나는……."

"그리고."

유해상은 말을 잃고 말았다. 청명이 피식 웃으며 턱짓했다.

"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여기는 아저씨가 알던 그 서안이 아니에요.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그냥 가시는 게 나을 거예요."

청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좌우에서 환호와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

"어딜 감히 서안에 발을 들여!"

"왜? 다음에는 더 빨리 도망가려고?"

유해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는 길에도 예상은 했지만 실상은 더욱 참담했다.

서안의 민심은 완전히 종남을 떠났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패배감과 비참함이 밀려들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청명의 눈이 살짝 스산해졌다.

"한 번만 더 서안에서 칼 뽑아 사람 위협하면 그 손모가지 잘라 버릴 거예요."

"……."

"여기에 우리 돈……. 아니, 소중한 제자들의 부모님이 많거든요. 이들을 위협하는 건 화영문을 위협하는 걸로 받아들이죠."

수업료를 내주시는 분들이지.

아암.

"아시겠어요?"

서슬 퍼런 청명의 일갈에 유해상이 고개를 푹 숙였다.

명분이 사라진 뒤에는 실력만이 남을 뿐이다. 그가 실력으로 어떻게 감히 화산신룡을 감당하겠는가?

유해상은 머뭇거리다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복연문의 제자들은 얼굴도 들지 못한 채 참담한 얼굴로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제야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유해상을 필두로 한 복연문의 제자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그 사이를 패잔병처럼 지나갔다.

그 참담한 모양새를 보며 백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민심이라는 게 정말 무섭구나.'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저들이 저런 초라한 몰골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청명이 불쑥 다가오더니 백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사숙."

"응?"

"쟤들 잘 감시해."

"……왜? 사고 칠 것 같으냐?"

"아니. 적당한 건수 있으면 그거 빌미로 가서 엎어 버리게."

"……."

백천은 살짝 넋이 나간 얼굴로 청명을 보았다.

청명은 진심으로…… 아쉬워 보였다.

"조금만 건드리면 거품 물고 발작할 것 같은데……. 욕을 좀 더 쳐 볼걸 그랬나?"

"……청명아."

"응?"

"사람답게 좀 살자."

"에이. 나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

백천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여튼 이 새끼는 진짜로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밤이 깊도록 서안 내 시찰을 돈 화산의 제자들이 의기양양하게 화영문으로 들어섰다.

"이제 대충 서안은 정리가 끝난 것 같네."

"너무 과하게 정리가 됐지."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정말 화영문에는 아무도 안 남을 거냐?"

"간간이 파견을 오는 식으로 들를 수야 있겠지만, 상주할 생각은 없어. 이제부터는 화영문의 일이지."

위립산과 위소행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곳과 화산은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아서, 일이 생긴다면 빠르게 지원을 올 수도 있고.

"종남이 봉문을 풀기 전까지는 별문제 없을 거야."

"그래?"

"하하하. 이렇게까지 했는데 뭔 문제가 있겠어?"

청명의 콧대가 한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화영문의 문을 열고 들어간 청명은 새삼스레 깨달아야 했다. 언제나 문제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처, 청명아! 청명아아아아아!"

"아이고! 청명아!"

"히이익! 백천 사숙! 왜 이제야 오십니까?!"

"……응?"

화산의 제자와 화영문의 제자 몇이 말 그대로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왔다.

"뭐야! 만인방이 쳐들어오기라도 했어?"

"그, 그게 아니라……!"

"그럼?"

"귀, 귀신!"

"……응?"

화영문의 제자 하나가 겁에 질린 얼굴로 새된 소리를 질렀다.

"귀, 귀신이 나타났습니다!"

"……."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청명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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