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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75화 (375/1,567)

375화. 그 말은 동감이야. (5)

파아아아앙!

도가 공기를 찢어발긴다.

어마어마한 힘이 실린 도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조여들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저 단순한 일 도가 아니었다.

붉은 도기를 품은 도는 맹렬함 그 자체로 화하여 연이어 휘둘러졌다. 마치 붉은 광풍을 머금은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았다.

카앙! 카앙!

카아아아앙!

도를 막아 낼 때마다 백천의 매화검이 부러질 듯 휘어졌다.

일 도, 일 도에 실린 거력이 검은 물론이고, 검을 잡은 손목마저 으스러뜨릴 것 같았다.

"읏!"

백천의 입에서 미처 참지 못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적사도 엽평은 지금까지 그가 겪어 왔던 어떤 적과도 달랐다.

강함?

물론 강하다.

따져 보면 진금룡도 이자의 상대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백천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상대의 강함이 아니었다.

도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느껴지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 말겠다는 맹렬한 살의였다.

일 도, 일 도가 모두 인체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오고 있었다.

단 한 번만 스쳐도 치명상을 입을 만한 공격이 연이어 휘몰아치는 건, 백천이 지금까지 해 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심력이 순식간에 깎여 나가는 느낌이었다. 아직 제대로 몸을 쓴 것도 아니건만 벌써 등골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들었고, 검을 잡고 있는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실전!'

명백한 살의를 가진 이와 검을 맞댄다는 것은, 비무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저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심력이 깎여 나가고, 평소라면 딱히 위협적이지 않았을 도격이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카앙!

백천의 매화검이 다시금 크게 휘어졌다.

끼기기기긱!

한계까지 뒤틀린 검이 비명을 내질렀다. 당가에서 특별히 화산을 위해 만들어 준 게 아니었다면 벌써 부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늘을 찌르던 그 자신감은 다 어디로 갔느냐, 애송아!"

백천의 이가 부러질 듯 맞물렸다.

그는 지금 날아드는 도를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필사적이건만, 상대는 이 말도 안 되는 도격을 연이어 날리면서도 말을 할 여유가 있다.

쾅!

도를 막아 낸 검에서 폭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백천의 몸이 주르륵 밀려났다.

도에 실린 힘을 감당하지 못한 백천의 입가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치렀던 비무였다면 그의 상태를 본 상대가 손을 늦췄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사도 엽평은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도를 더욱 강맹하게 휘둘러 왔다.

'빌어먹을!'

백천이 이를 콱 깨문 채 강 대 강으로 검을 휘둘러 갔다.

쾅! 쾅! 쾅!

검과 도가 허공에서 맞부딪칠 때마다 사방으로 폭발적인 기파가 발산되었다. 그리고 충돌이 이어질수록 매화검의 날부분이 움푹움푹 패이기 시작했다.

무거움으로 상대를 짓눌러 제압하는 팽가의 도와는 달랐다.

적사도 엽평의 도는 그 쾌속함과 패도로 백천을 터뜨려 죽이려는 것 같았다.

"주둥아리로!"

콰앙!

"떠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콰앙!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백천의 몸이 쏜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몇 장이나 튕겨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는 낭패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로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헙!"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허공으로 뛰어올라 도를 내리쳐 오는 엽평의 모습이었다.

백천은 신음을 삼킬 시간도 없이 바닥을 굴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이내 그가 있던 땅에 엽평의 도가 떨어지며 땅을 말 그대로 박살 내 버렸다.

단 일 도만으로 바닥에 사람 몇은 족히 들어갈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엽평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차며 백천을 바라보았다.

"이거, 고매하신 도사님께서 그리 바닥을 구르시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겠군."

"……."

백천은 그 말에 반박하는 대신 몸을 벌떡 일으켜 자세를 잡았다.

'위험했다.'

고개를 들고 상대를 파악하는 게 찰나만 늦었어도, 그는 지금쯤 두 쪽으로 갈라져 염왕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얼굴에 들러붙은 먼지가 흘러내린 땀과 뒤섞여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퉤!"

바닥에 침을 뱉은 엽평은 목을 건들건들 좌우로 흔들었다.

"강호는 실력으로 증명하는 곳이다. 너희같이 입만 산 애송이들이 주둥아리를 털 곳이 아니라는 거지."

말투는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세도 딱히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지금 엽평의 말은 조금 전보다 몇 배의 무게감을 싣고 백천의 귀를 찔러 대고 있었다.

"후기지수로 이름을 좀 날리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어간 모양인데, 그 바람을 빼 주는 게 어른의 역할이지. 조심해라. 네 허파에 바람구멍을 뚫어 줄 테니까. 흐흐."

경박스럽다.

하지만 저걸 단순히 경박함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실력이 없는 가벼움은 경박함이 되지만, 실력을 동반한 가벼움은 여유가 된다.

'여유라고?'

백천이 이를 악물었다.

그를 앞에다 두고도 여유를 부린다고?

달군 숯을 삼킨 것처럼 배 속이 불타오르는 기분이었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그의 눈이 광망을 내뿜는 걸 본 엽평은 재미있다는 듯 도로 허공을 한 번 그었다.

그러더니 일말의 지체 없이 다시 거리를 좁히며 백천의 머리를 쪼개려 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백천의 입으로 핏물이 울컥 솟구쳤다.

도격에 실린 내력이 그의 내부를 있는 대로 진탕시켰다. 무릎이 휘청거리고 전신의 뼈가 비명을 질러 댔다.

이대로라면 도격을 허용하기도 전에 전신이 부서져 죽을 것만 같았다.

'강해.'

상상 이상으로 강하다.

적사도 엽평.

그 이름이야 몇 번이나 들어 봤지만, 그래 봐야 진금룡과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진금룡 역시 천하에 손꼽히는 후기지수로 그 명성이 자자한 이였으니까.

하지만 다르다.

백천은 이제야 절절히 실감할 수 있었다. 실력 하나로 명성을 떨친 이들과 후기지수들의 차이를.

후기지수는 그저 그 가능성을 평가받을 뿐이라는 말에 하나 틀림이 없었던 것이다.

"그 패기는 다 어디로 갔나!"

콰앙!

다시 어마어마한 기세로 도격이 떨어졌다.

가가각!

매화검이 반쯤 패이며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휘어졌다. 백천의 눈에 순간적으로 절망이 차올랐다.

'처, 청…….'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려던 백천의 몸이 움찔하고 경련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아앙!

도를 내리치려는 엽평의 얼굴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속도의 쾌검이 빠르게 다가왔다.

"읏!"

당황한 엽평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휙 젖혔다.

하지만 워낙 순간적으로 변화한 속도라, 그의 뺨에 이내 붉은 선이 생겨났다.

재빨리 두어 걸음 물러나 거리를 벌린 그는 일그러진 얼굴로 뺨에 난 상처를 어루만졌다.

"이놈이……."

백천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 노화가 넘실거렸다.

'음?'

하지만 살짝 백천이 숙였던 고개를 드는 순간, 엽평의 얼굴은 미세하게 굳어졌다.

백천의 눈은 지금까지와 다른 무게를 싣고 한껏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허어?"

배에서 올라온 피가 아니다. 혀를 물어서 난 피라는 것을, 엽평은 금방 알아챘다.

위기의 순간에 백천은 제 혀를 깨물어 정신을 차리고 깔끔한 반격에 성공한 것이다.

'이것 봐라?'

이제 백천의 얼굴은 한없이 검수다웠다. 한 점 동요 없는 눈으로 응시해 오는 모습이 더욱 그를 한 사람의 검수로 보이게끔 했다.

뭔가 바뀌었다.

하지만 그 변화가 어디서 온 것인지 엽평은 알 도리가 없었다.

조금은 더 재미있어지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진각을 내리밟았다.

'나는 머저리다.'

한편 백천은 가라앉은 눈으로 엽평을 응시했다.

'왜 돌아보려 했지?'

뒤에 사형제들이 있으니까?

두려웠으니까?

아니.

등 뒤에 청명이 있으니까.

'병신.'

그리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만류를 무릅쓰고 어깨에 허세를 실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깊은 심중에는, 위기에 처하면 청명이 어떻게든 나서 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던 모양이다.

저 엽평의 말에는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백천은 실력도 없으면서 뒷배를 믿고 설치는 애송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뒷배가 화산이든 청명이든.

그러니 위기라고 생각한 순간이 오자 자신도 모르게 청명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닌가!

그 사실이 백천을 더없이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러고도 내가 화산의 대사형인가?'

이러고도 그리 잘난 듯 떠들어 댔단 말인가?

긴장하지 마라. 기본으로 돌아가라. 자세를 낮춰라.

'잘도 떠들어 댔군.'

자신은 하나도 지키지 못할 것을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백천의 눈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청명이 놈이 말했었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어떻게 그 실수를 만회하느냐는 거라고.

상대는 강하다. 더없이 강한 패도를 휘두르는 이다.

그런 도객을 상대로 힘 대 힘으로 맞붙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그가 배운 화산의 검은 그런 게 아니었다.

'발끝에 힘을 준다.'

엄지발가락이 바닥을 꾹 눌렀다.

'하체는 단단히 낮추고, 언제든 반응할 수 있도록 팽팽한 긴장을 유지한다.'

살짝 벌린 다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느슨하게 풀린다.

"검은……."

한껏 올라간 집중력이 저도 모르게 그의 생각을 입으로 내뱉게 했다.

"검은 한없이 자유롭다."

스륵.

딱히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검이 육합검의 기수식을 펼쳐 내며 중단세를 취했다.

"이노오오오옴!"

그리고 그런 그의 변화를 눈치챈 엽평 역시 백천이 완전한 자세를 취할 틈을 주지 않고 광폭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진 얼굴과 전신으로 내뿜는 기파, 그리고 새빨간 도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도의 형상까지. 보고 있으면 마치 지옥의 수라가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하나 백천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쇄애애애애액!

허리를 베어 오는 도에 매화검이 부드럽게 들러붙었다. 그리고 상대의 힘을 거스르지 않은 채 자신의 힘을 더하여 가볍게 위쪽으로 밀어 냈다.

방향이 틀어진 엽평의 도가 백천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그의 영웅건을 잘랐다.

사르륵.

반으로 갈라진 영웅건이 흘러내리며 백천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산발이 된 머리칼 사이로 가라앉은 그의 눈빛이 차게 빛났다.

파아아앙!

상대의 도를 비껴가게 한 그의 검이 허공을 빛살처럼 내갈랐다.

순식간에 십여 번의 찌르기가 날아들자 엽평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이!"

콰아아아앙!

흥분하여 휘두른 도격이 딱히 맞닿은 것이 없음에도 폭음을 자아냈다.

백천의 검영 역시 그 도격에 맞아 단숨에 박살이 났다.

하나 백천은 이미 엽평과의 거리를 벌려 놓은 후였다.

찌르기.

파아아앙!

또 한 번.

파아아앙!

"이익!"

목, 단전, 그리고 낭심.

막아 내기 껄끄러운 곳만을 노리고 견제하듯 짧게짧게 찔러 들어오는 검에 엽평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발짝 물러난 그는 이내 아차 하는 눈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검수를 상대하는 도객이 거리를 벌리는 건 가장 해서는 안 되는 일이건만!

그리고.

사르르르륵.

백천의 검 끝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명한 매화를 그려 내기 시작했다.

엽평이 노호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들었다.

직접 겪어 본 적은 없지만, 화산의 검수가 매화를 그려 내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건 화산을 아는 모두의 상식이 아니던가?

백 년 전에는 너무도 당연했던 일.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은 엽평만 한 도객조차도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었다.

순식간에 눈앞이 붉은 매화로 뒤덮였다.

검에 실린 검기의 잔영이 매화를 그려 낸다는 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엽평에게도 기경할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놀라운 광경에 정신을 빼앗길 틈 따윈 없었다.

"차아아아앗!"

엽평의 도가 핏빛의 도기를 뿜어냈다.

상대가 완전한 매화를 그리기 전에 힘으로 부숴 버릴 작정으로 있는 힘을 모두 뽑아내 도에 실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초식을 끌어냈다.

"죽어라아아아아아앗!"

콰아아아아앙!

엽평이 만들어 낸 핏빛의 무지개 같은 도기가 피어나는 매화를 향해 쏟아졌다.

미처 다 개화하지 못한 매화들과 엽평의 도기가 충돌하며 고막을 터뜨려 버릴 것 같은 폭음을 일으켰다.

"피해!"

"빌어먹을!"

도기와 검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적사대와 화산의 제자들이 기겁을 하며 여기저기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엽평은 그 순간에도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 같은 눈으로 백천의 종적만을 쫓고 있었다.

'어디냐?'

매화의 숲이 파헤쳐지는 가운데, 그는 집요한 시선으로 백천이 있는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아앙!

완전히 파훼되기 직전의 매화 속에서 섬뜩하기 짝이 없는 검기가 엽평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예측하고 있었다, 이 애송아!"

엽평은 날아드는 검기를 후려치고는 검기가 날아온 방향으로 도기를 뿜었다.

콰앙! 콰아앙! 콰앙!

"사수우우우우욱!"

엽평의 도기가 매화들을 완전히 찢어발기고는 세상 모든 것을 분쇄해 버릴 기세로 연이어 땅을 내리찍었다. 바닥이 움푹움푹 패이며 사방으로 살벌한 기파가 날렸다.

'죽었다.'

엽평의 입가가 비릿하게 뒤틀렸다.

거기에서 검을 휘둘렀다면 이 도기는 절대로 피해 낼 수 없다. 막았든 막지 못했든 결과는 같을 것이다. 저런 애송이가 이만한 내력을 받아 낼 수 있을 리 없으니까.

엽평이 완전한 승리를 확신한 그 순간이었다.

'뭐……?'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마침내 도기가 걷힌 바닥에는 검 한 자루만이 떨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그가 싸웠던 백천이 들고 있던, 매화검.

하지만 그 검을 든 채 죽어 있어야 할 백천의 육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 어디?'

그때.

쿵.

엽평의 등 뒤에서 강렬한 진각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부러져라 뒤로 꺾은 엽평은 눈을 홉뜬 채 입을 벌렸다.

백천이 입에서 피를 쏟아내며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은 엽평의 허리에 틀어박혀 있었다.

콰아아아앙!

우드득.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엽평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피 분수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쿵! 쿠웅! 쿵!

물에 던져진 납작한 돌처럼 몇 번이나 땅에서 튕겨 오른 엽평은 덜덜 떨리는 눈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쿠, 쿨럭!"

입을 벌렸지만 말보다 먼저 나온 건 선지 같은 핏덩어리였다. 그는 피를 쏟으며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거, 검…… 검수가 검을……."

그러자 헐떡거리는 숨을 애써 진정시킨 백천은 낮게 소리 내어 웃으며 이죽거렸다.

"그게 뭐? 실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법이지."

"……."

엽평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몇 번이고 입을 달싹대다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턱.

그의 머리가 마침내 땅에 처박히자 백천은 입에 잔뜩 고인 피를 뱉어 내며 말했다.

"실전에서는 방심하면 죽는 거야. 잘 알아 두라고, 애송아."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청명은 흐뭇하게 웃었다.

'진짜 재수 없네.'

저것도 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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