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371화 (371/1,567)

371화. 그 말은 동감이야. (1)

"그러니까 사파는 기본적으로 정파보다 강하진 않다. 하지만 그 수는 정파 중 가장 세력이 강성하다 불리는 소림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지."

"……."

"물론 우리 개방에는 그 모든 사파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거지가 득실대지만, 알다시피 그 거지들 중 제대로 전력이 되는 이들은 한 줌에 불과하다."

"……."

"그 많고 많은 사파 중에서도 가장 강대한 다섯 세력이 신주오패라 불리는데, 장강수로십팔채, 녹림칠십이채, 하오문, 만인……. 야! 자냐!"

홍대광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꾸벅꾸벅 졸던 청명이 움찔하며 눈을 떴다.

"하아아아암."

"아니, 이놈이! 지가 설명하라고 해 놓고 지가 졸고 있네!"

"아, 뻔한 소리나 하니까 그렇죠."

"뻔한 소리라니! 이게 다 들어 놓으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피도 충분하고 살도 충분해요. 그래서 그 만인방이라는 곳은 얼마나 강한 거예요?"

"흐으음."

홍대광이 턱을 두어 번 쓸어내리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겠는데?"

"……."

"……."

홍대광을 바라보는 청명의 눈에 경멸이 스쳤다.

"……사람 그런 눈으로 보는 거 아니다."

"개방 분타주라는 양반이 신주오패가 얼마나 센지도 모른다고요?"

"붙어 봐야 알 게 아니냐!"

홍대광은 진심으로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지난 백 년간 정파와 사파가 제대로 싸운 적이 없었다. 정파는 마교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사파를 견제할 여력이 없었고, 사파는 전후의 혼란을 틈타 그 세력을 급격하게 불려 나갔지."

"그놈의 마교 새끼들은 여하튼 도움이 되는 게 없어!"

뭐만 하면 마교! 마교!

귀에 딱지 앉겠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전쟁이 남긴 상흔은 그만큼 깊었으니까. 그건……."

홍대광이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어색함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에 얼른 말을 돌렸다.

"강호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지."

'애쓰네.'

원래 하려던 말은

'너희 화산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듣는 상대의 기분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쪽박은 깨지 않을 거지였다.

"그러니 정확한 전력을 파악하긴 힘들다. 대충 예상하기로는 구파에는 조금 못 미치는 정도고, 오대세가와는 필적할 것으로 보고 있다."

"흐음."

"그중 적사대는 만인방에서도 가장 유명한 무력대 중 하나다. 적사대 자체의 강함이야 다른 무력대에 비해 유별날 게 없지만, 적사대주 엽평은 대주들 중에서도 남다르다."

"흐음."

"아무래도 천하십대도객 중 하나로 꼽힐 만한 강자니까. 그런 사람이 이끌다 보니 적사대는 언제나 요주의 대상이 되어 왔지."

"내가 살다 살다 사파 놈이 요주의 인물 소리를 듣는 걸 다 보고. 어휴."

"뭐 얼마나 살았다고, 이놈아!"

'어린놈이 애늙은이처럼 굴기는' 하며 홍대광이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청명은 그 말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세상 좋아졌다.'

저 사파 놈들 입장에서는 정말 좋아졌다. 백 년 전 매화검존이 화산에 있을 때는 사(邪)자가 붙은 놈들은 화산의 반경 천 리 안에는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굳이 청명이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척사(斥邪)에 굶주린 악귀 같았던 화산의 청자 배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짐승처럼 달려들었을 테니까.

당시는 화산뿐 아니라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도 워낙 힘이 강대할 때라 사파니 어쩌니 하는 것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협행 할 게 너무 없어서 눈을 시퍼렇게 뜬 구파 놈들이 산적을 찾아 온 산을 이 잡듯 뒤지던 시절이었으니까.'

사악한 정파 놈들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사파를 죽어라 괴롭히던 시절이었다. 당하는 사파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놈들도 참 끈질기긴 하다. 그 힘든 시절을 버텨 내고 기어이 다시 세력을 키워 낸 것을 보니 뿌듯…….

아, 이게 아니지.

"여하튼!"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홍대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뭘 어쩌려고?"

"만인방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는 대충 알았으니 됐어요. 그냥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지."

"화산신룡! 만인방을 얕보면 안 된다!"

홍대광이 기겁하여 소리를 질렀다.

"물론 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만인방의 적사대는 지금까지 네가 상대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껏 네가 싸워 온 이들은 후기지수였단 걸 잊으면 안 돼! 후기지수는 본디 그 장래성을 평가하는 것이지 강함을 평가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 결사반대에도 청명의 얼굴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홍대광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쾅쾅 쳤다.

"적사도 엽평은 지금껏 네가 겪어 보지 못한 강자다. 어설프게 상대하려고 하다가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어."

"이야. 살다 보니 사파 놈이 강자 소리를 듣는 날도 오네.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라니까."

"아 그러니까 얼마나 살았다고!"

쯧.

말해 뭐 해.

"여튼 알았어요."

청명이 손을 휘휘 저으며 나가자 홍대광이 와락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대체 어쩌려고 저러지?'

소식을 듣자마자 개방 분타와 주변 문파에 증원을 요청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의 다리에 날개가 달리지 않는 이상 최소 칠 주야는 있어야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칠 주야면 적사대가 서안을 알뜰살뜰 파먹고 떠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큰일은 없어야 할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거지 새끼들이라도 줄줄이 달고 올 것을.

뒤늦은 후회에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관의 말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관여할 생각이 없답니다."

'빌어먹을.'

남자명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성주님 역시 아직도 저희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주변 문파에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만, 오는 데 시간이 적잖이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서안 주변에 딱히 큰 문파가……."

없겠지.

섬서의 최대 문파는 종남과 화산이다. 특히나 종남의 세가 워낙 강성하다 보니 섬서에는 웬만한 문파는 자리 잡지 못했다.

"섬서의 속가들과 연통이 닿는다면 제자들을 보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쯤 도착할지가……."

"끄응."

남자명이 답답함에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항상 단정하던 그가 잠깐 사이에도 머리를 얼마나 긁어 댔는지 벌써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뿐이랴. 두 눈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바람에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있었다.

불과 하루 전의 고아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때 단병립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문주님, 차라리……."

"차라리?"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일?"

"사실 저희의 힘만으로 적사대를 막아 내는 것은 당랑거철이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이리된 이상 차라리 오늘은 몸을 피하시고 저들이 물러가면……."

"헛소리!"

남자명이 말허리를 끊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뜨는 순간 서안이 어떻게 될지 모른단 말이오?! 지금이야 양민들을 건드리지 않는다지만, 저들의 목적이 빤한데 언제까지 참을 것 같소?"

"그건 관이 알아서 할 일이 아닙니까?"

"이 미련한 인간아! 관이 나서는 상황까지 가 버리면 우리는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가!"

"신뢰는 다시 쌓을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잃은 목숨은 다신 구할 수 없습니다."

"……."

남자명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단병립을 바라보았다.

"체면이라는 것도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문주님의 말대로 저들이 언제까지 참을 것 같습니까? 지금이야 일이 끝나지 않아 관의 개입을 막기 위해 살생을 자제한다지만, 수가 틀리면 언제든 살수를 쓸 놈들입니다. 그 칼에 쓰러지는 게 문주님이 아니라고 어찌 장담을……."

"시끄럽소!"

남자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도 그대가 종남 속가의 문주요? 어찌 종남의 이름하에 있는 이가 적에게서 달아난다는 말을 그리 쉽게 입에 올릴 수 있소? 나는 절대 용납 못 하오!"

"문주님!"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긴말할 것 없소! 해가 지는 대로 모두 제자들을 이끌고 서월문에 모이도록 하시오. 저들이 강하다고는 하나 남은 종남의 속가들이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무찌르지 못할 것도 없소이다!"

파들파들 떠는 남자명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 강경한 태도에 다른 문주들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아시겠소이까?"

"……예."

"그리하겠습니다."

떨떠름하고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돌아왔지만, 남자명도 더 이상은 몰아붙이지 않았다. 당장 오늘 밤이 되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지도 모르는 이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의욕을 보이겠는가?

'속가는 어차피 속가다.'

그들이 진정으로 무인이 되어 불의와 싸울 생각이었다면 본산에 남았을 것이다. 스스로 속가문을 만든 이들이야 당연히 제 발로 산을 내려온 이들이고, 속가문을 물려받은 이들도 마음만 먹었다면 언제든 본산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속가를 택한 이유는 무학보다는 재물에 관심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반응도 당연한 결과였다. 속가문을 이끌면서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와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올 거라 예상했겠는가?

"그대들이 진정 종남의 제자이고, 한 사람의 무인이라면 그 자긍심을 보이시오! 믿고 있겠소이다!"

"물론입니다!"

"이래 봬도 저 역시 자랑스러운 종남의 속가입니다! 저런 사파 놈들 따위에게 겁을 먹겠습니까?"

"그럼 제자들을 모아 오겠습니다!"

문주들이 분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단호한 얼굴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명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 사파 놈들에게 이 서안을 내주지는 않겠다.'

그리고 굳건한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자들을 모아라! 지금 당장!"

몇 시진 후.

남자명은 넋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

불신과 허탈함만 남은 그의 눈은 흡사 텅 빈 것처럼 보였다.

"무, 문주님."

"……."

"아무래도 문제가 새, 생긴 모양입니다. 방금 다른 문파들을 확인하러 간 제자들이 돌아왔는데, 이미 텅텅 비어 있었다고……."

"비어?"

"……예."

남자명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열이나 되는 문파가 단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달아났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허."

입이 절로 벌어졌다. 넋이 나간 듯한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다.

"허……. 허허허허."

그러다 돌연 그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수치도 모르는 인간들이! 제 한 목숨 구하겠다고 터전을 버렸단 말인가? 돌아와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도,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 아닙니까."

"……뭐라?"

그런데 그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범 중 하나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했다.

"이, 이곳에 있어 봐야 재물은 모두 빼앗기고 얻어맞아 병신이 되거나 죽을 뿐입니다. 하지만 재물을 들고 달아난다면 다른 곳에 자리를 잡고 풍족하게 살 수는 있잖습니까!"

남자명의 눈이 크게 뒤흔들렸다.

"구, 굳이 문파를 유지하지 않더라도……."

"입 닥쳐라, 이놈! 그게 어디 종남의 속가로서 할 말이더냐!"

"……."

이제 남자명의 얼굴은 처절할 만큼 일그러져 있었다.

사범의 말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와중 마음이 흔들리고 만 자신을 알기에 화가 치민 것이다.

"문주님! 지금이라도 달아나야 합니다. 다른 속가들이 모두 있어도 막아 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데, 저희 서월문만으로 적사대를 상대한다는 건 자살이 아닙니까!"

남자명은 차마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만 짓씹었다. 그의 눈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자꾸 흔들리기만 했다.

그런데 그때.

"무, 문주님! 저기!"

돌연 들려온 소리에 남자명이 고개를 획 돌렸다.

관도를 따라 느긋하게 걸어오는 적사대의 모습이 보였다.

"느, 늦었어!"

"아, 안 돼. 나는……. 나는 못 싸워!"

서월문의 제자들이 기겁을 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이놈들아!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빌어먹을! 죽으려면 문주님 혼자 죽으십시오!"

통제해 보려 했지만, 남자명의 말은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서월문 안으로 박차고 들어간 그들은 서로 소리를 지르며 악다구니를 써 댔다.

"이거 놓지 못해!"

"이 빌어먹을 놈이!"

맨몸으로 먼 길을 달아날 수는 없으니, 문파 내의 값나가는 것들을 서로 차지하려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양이었다.

남자명은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서월문인가?'

그토록 협의를 강조해 왔는데, 조금의 위기만으로도 저리 무너진단 말인가?

그럼…… 평생을 서월문에 바쳐 온 그의 삶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남자명은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망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리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남자명의 앞에 당도한 적사대가 멈춰 섰다.

이윽고 그들의 뒤쪽에 있던 엽평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게 다냐?"

"……."

"허허. 거 정파라는 새끼들이."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반쯤은 남아 있을 줄 알았더니, 한 문파도 아니고 딱 한 놈이 남아 있군. 어이, 방승. 어떻게 생각하냐?"

"원래 정파라는 놈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입만 살았지요."

"쯧쯧. 뒷골목 왈패들도 이러지는 않겠다."

"헤헤. 속가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종남이 봉문 하지 않았으면 이들도 이런 일은 겪지 않았을 테니 생각도 못 했겠지요. 대주님도 종남이 멀쩡히 문을 열고 있을 때는 감히 서안에 들어오지 못……. 아악!"

방승의 뒤통수를 차지게 후려친 엽평이 눈을 부라렸다.

"너는 누구 편이냐! 이 망할 놈아."

"……끄응. 물론 대주님의 편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느긋하게 속가 놈들 재산을 뺏으려는 계획은 틀어진 것 같습니다만."

"퉤!"

엽평이 바닥에 침을 뱉는다.

"어차피 속가 몇 개 털어 봐야 돈이나 되겠느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지."

엽평이 씨익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주 좋은 꼴이다. 관부 놈들은 제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속가 놈들은 저 살겠다고 도망을 가고."

"흔한 일이지요."

"그래. 흔하지. 너무 흔해서 우습다 이거야."

두어 차례 혀를 찬 엽평이 눈을 빛냈다.

"예상보다 빠르지만, 빨라서 나쁠 건 없지. 오늘 서안을 싹 털고 빠진다. 고관들 집은 마지막에 털고, 적당히 있어 보이는 집부터 털어 버려. 반항하는 놈은 죽여도 좋다."

"흐흐. 간만에 재미 좀 보겠군요."

"우선은 저 속가문인가 뭔가 하는 놈들이 다시 서안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전각에 불부터 질러라!"

"예!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방승의 눈이 요사스레 빛났다. 하지만 즐거운 대화를 방해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 그만두지 못할까! 이 간악한 놈들!"

"응?"

엽평이 고개를 돌리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 아직 안 갔네?"

"죽고 싶은 모양이지요."

"그럼 소원대로 해 줘야지. 무어 어려운 일이라고."

스르르릉.

엽평이 허리에 찬 대도를 뽑아 들고 남자명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가까워질수록 남자명의 안색은 점점 더 새파랗게 질렸다.

엽평은 웃으며 말했다.

"애송아. 강호에서 제일 먼저 죽는 놈은 힘도 없이 나대는 것들이다. 염왕에게 가거든 그거 하나 배워 왔다고 하거라!"

엽평의 도가 횡으로 휘둘러져 남자명의 목을 향해 치달았다.

하나 그 순간.

카아아아앙!

커다란 금속음과 함께, 날아들던 엽평의 도가 옆으로 획 꺾였다.

"뭐, 뭐냐!"

엽평이 눈을 부릅뜨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 말은 동감이야."

관도 한쪽을 채우며 걸어오는 한 무리의 무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서 굉장히 심술궂은 표정을 지은 한 청년이 손가락을 꺾어 대고 있었다.

"힘도 없이 나대는 놈이 제일 먼저 죽지. 그러니까……."

청년, 청명이 사악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 같은 놈들 말이야."

엽평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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