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360화 (360/1,567)

360화. 웬 중이 굴러들어 오네. (5)

"타앗!"

"타아아앗!"

"악!"

"흐흐흐흐."

청명이 더없이 흐뭇한 얼굴로 수련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화산의 제자들이 더없이 불안한 얼굴로 보았다.

"쟤 왜 저러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자들이 들어오면 당장 바닥부터 굴릴 것 같았는데, 의외로 얌전하네?"

"……듣고 보니 그러네요."

백천이 영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저 마귀 같은 놈이 아이들이라고 해서 봐줄 리도 없는데."

하지만 그들의 염려와는 달리, 청명은 지금 더없이 온화한 상태였다.

'귀엽군.'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은 아이들이 도열하여 주먹을 내지르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절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응?

그럼 예전에 사형들한테는 왜 그랬냐고?

'얘들은 내가 안 가르쳐도 되잖아.'

원래 자식보다 조카가 눈에는 더 예쁜 법이다. 조카는 내가 안 키워도 되니까. 그냥 예뻐만 하면 되거든.

내가 땀을 흘리며 가르칠 필요 없는 어린 제자들이란 얼마나 귀엽고 깜찍한 존재들인가?

게다가.

"자, 손을 살짝 더 뻗어 보자꾸나."

"오옳지! 옳지! 잘하는구나."

"울지 말고! 울면 강한 사나이가 될 수 없다!"

화영문주를 비롯해 화영문의 제자들이 아이들을 지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도 그럴 게, 화영문의 제자들은 마치 이것이 천직이라는 것처럼 아이들을 다루고 있었다.

하기야.

화영문주가 남영에서 무관을 운영한 게 몇 년이던가?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잡아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는 법. 들어온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해 온 경험이 지금 이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반면에…….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청명이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화산의 제자들이 찔끔하여 고개를 돌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일다경도 지나기 전에 애들이 모조리 울면서 집에 간다고 난리를 칠 수가 있냐?"

"……살살 했는데."

"진짜 살살 했거든."

"시끄러!"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청명을 보며 화산의 제자들이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게 다 누구한테 배운 건데!'

'진짜 살살 했다고! 진짜!'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산의 기준으로 '살살'은 어린아이들이 버텨 내기에 너무도 가혹한 구석이 있었다.

"됐다. 내가 너희한테 뭘 바라겠냐?"

식충이를 보는 눈으로 화산의 제자들을 일별한 청명이 다시 눈 녹듯 온화해진 얼굴로 조막만 한 손을 내지르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저게 다 돈이란 말이지.'

청명의 미소가 더욱 흐뭇해졌다.

입문하고부터는 돈을 벌어 오기는커녕 문파의 돈을 아주 그냥 찰떡같이 뽑아 먹는 본산 제자들과는 다르다. 저 속가제자들은 무려 무학을 배우면서 돈을 가져다주는, 세상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지 않은가!

그러면 저들이 낸 돈이 속가의 배를 불리고, 그 속가가 다시 본산에 상납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체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어여쁘지 않겠는가?

병아리처럼 주먹을 내지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다.

"흐흐흐흐."

결국 소리 내어 웃은 청명이 중얼거렸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일단은 화영문을 중심으로 서안에 속가문을 단단히 세운다. 그리고 이 서안을 중심으로, 섬서 전체에 속가문을 점차 늘려 나가야 한다.

"서안에서 섬서로! 섬서에서 천하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화산은 마침내 과거의 영향력을 회복했다고 당당하게 자신할 수 있을 것이다.

"떼돈을 버는 거지! 낄낄낄낄낄!"

청명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언제나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이다.

'……왜 뭐가 좀 빈 것 같지?'

청명이 의혹 어린 눈으로 수련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빈다.

아이들이 수련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사흘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이 할은 넘게 줄어든 느낌이었다.

아니, 느낌이 아니라…….

"왜, 왜 애들이 줄었죠?"

청명의 물음에,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화영문주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본래 처음의 의욕은 열흘을 가지 않는 법이오. 열흘이 넘어서도 남는 아이들이 끝까지 가곤 하지."

"……이제 사흘짼데?"

"안타깝겠지만 받아들여야 하외다, 도장. 저 중에 반수나 남으면 다행이오."

청명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화영문주를 바라보았다.

반?

반이라고?

'그럼 버는 돈도 반으로 준다는 건가?'

심장이 아프다.

"아, 아니. 그럼 내 돈이……."

애초부터 화산의 돈이 그의 돈이 된 적은 없었지만, 그런 건 청명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때였다.

쪼르르르.

열심히 수련을 하던 아이들 중 두 명이 화영문주와 청명이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저, 저기, 문주님."

"음?"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눈이 살짝 풀린 아이들이 말했다.

"그…… 그 꽃 그리는 검은 언제 배울 수 있나요?"

그 귀여운 목소리에 화영문주가 흐뭇하게 웃었다.

"하하. 매화를 그려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너희에게 아직 그건 너무 이르단다. 적어도 앞으로 십 년 이상은 검을 휘둘러야 매화를 그려 낼 수 있다."

"아! 십 년이요?"

"그럼. 십 년만 열심히 하면 된다!"

"네! 그만둘게요."

"……응?"

"아, 힘들었다. 집에 가자."

"응……?"

"안녕히 계세요!"

"으응?"

아이들은 해맑게 인사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화영문을 나가 버렸다.

"……어?"

화영문주와 청명은 차마 막지도 못하고 멍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다시 하루가 흘렀다.

"……왜 애들이 또 반으로 줄었죠?"

"……."

"여기가 뭔 전쟁터도 아니고, 자고 나면 사람이 사라지네."

사기가 지옥까지 떨어져 밤만 되면 탈영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전쟁터에서도 이토록 급격하게 사람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문주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죠?"

"……나한테 그리 말하셔도……."

멍한 얼굴로 연무장을 바라보는 두 사람을 보며 조걸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딱히 열심히 수련을 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모양이다."

"응?"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게, 여기에 입문하겠다고 온 애들은 애초에 무학에 별로 관심이 없는 애들이거든."

"왜?"

"관심 있는 애들은 이미 종남이랑 종남의 속가에 다 입문했으니까."

"……."

어?

그건 생각 못 했는데?

"그 말인즉슨?"

조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러니까 여기에 입문한 애들은 평소에 몸을 굴려 수련을 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단 뜻이지. 부모 손에 강제로 이끌려 왔거나, 그날 본 꽃이 예뻐서 온 애들인데……."

잠깐 말끝을 흐린 그는 슬쩍 수련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턱짓했다.

"계속 주먹질만 가르치고 있으니 애들이 영 흥미를 못 느끼는 거지."

"그, 그럼 검을 가르치면?"

"그래 봐야 비슷할 거다."

대답을 한 건 백천이었다. 그의 표정 역시 살짝 무거웠다.

"화산이 잘나가는 건 알지만, 다니던 도장을 때려치우고 다른 곳에 올 이유는 없는 거지. 검은 지금 다니던 종남의 속가문에서도 배울 수 있거든."

"거, 검술이 다르잖아."

"그렇긴 하지만……."

윤종도 참전했다.

"애초에 저 나이대의 애들에게는 화려한 검술보다 같이 다니는 친구가 중요한 법이다. 다른 검술을 익히기 위해서 친한 친구들과 멀어지고 싶지는 않은 거지."

"친구?"

"그래."

"친구가 뭔데?"

"……."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청명을 보며, 윤종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새끼는 글렀어.'

애초에 이놈은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백천이 단호하게 말했다.

"매화검법을 보여 주거나 강습비를 깎아 주는 걸로 반짝 효과는 낼 수 있지만, 이미 무학을 익히던 이들을 뺏어 올 만한 효과는 없다는 거지."

"아무래도 상대는 구파일방의 종남이고, 우리는 아직 구파일방에 복귀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서안 사람들의 반절은 종남이랑 인연이 있고."

청명이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뻔한 소리 하지 말고. 그래서 대책이 뭔데!"

"……대책이랄 게 딱히……."

"에이!"

청명이 화를 참지 못하고 눈앞의 조걸을 뻥 걷어찼다.

"대책도 없는 놈들이 사람 속 터지는 소리나 늘어놓고 있어!"

"진정해라, 청명아."

백천이 얼른 그런 그를 만류했다.

"수강생이 좀 줄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은 수는 아니다. 차차 늘려 나가면……."

"어느 세월에! 이대로라면 내가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됐을 때나 두 번째 속가문이 생기겠네! 그 전에 소행이가 먼저 죽겠다!"

청명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리고 퉁명스런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종남의 속가문과는 확연히 다른 뭔가를 보여 줘야 한단 말이지?"

"……그렇지. 그래야 하는데."

"그럼 가서 속가문 문주들 대가리를 다 깨 버리면 되는 거 아냐?"

"……본산 제자인 네가 그래 봐야 의미가 없다니까. 깨려면 종남 장문인 대가……. 아니, 그분의 머리를 깨야 하는데 지금 종남은 봉문 중이잖아."

"아, 왜 이럴 때 봉문은 하고 난리야!"

"……."

너 마침 이럴 때 봉문 했다고 엄청 좋아했었잖아.

이 줏대도 없는 놈아.

백천은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끄으으으응."

청명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잠겼다.

"차이점…… 차이점이라. 종남보다 확연히 나은 무언가라니……. 아니, 그게 칼질 잘하는 거 말고 뭐가 또 있나."

그러다 갑자기 또 화가 치밀었는지 냅다 소리를 쳤다.

"안 오는 놈은 그렇다 치고! 나온 놈들은 뭐 얼마나 했다고 때려치워! 하여튼 근성도 없는 것들이 말이야!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나 때는!"

"일단 진정하라니까."

분노가 다시 푹 꺼진 청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낸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다.

천하의 청명이라도 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당장 머리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화산의 이름으로 할 수 있는 건 웬만큼 했는데.'

결국 종남이나 화산이나 검을 쓰는 문파.

아무리 차별성을 두려 해도 단기간에 확연한 차이점을 보여 주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차라리 종남이 봉문 하지 않았더라면 쫓아가 후려 까서라도 차이점을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본산의 제자인 청명이 종남 속가문주들 대가리를 까 봐야 어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이를 괴롭히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야 오히려 사람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끄으으응. 골치 아프게 됐네."

"그리고 아까 말했듯이 차라리 검을 빨리 가르치는 게……."

"그건 안 돼."

하지만 청명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중심의 문제야. 속가문의 제자들은 기본적으로 검을 패용하고 다니기 어려워.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검법을 쓰기 어렵다는 의미지. 권각술은 반드시 가르쳐야 돼."

"하지만 화산의 권각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가 없잖느냐?"

"끄응. 그게 문젠데."

청명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 받은 화영문의 제자들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내 주면 믿고 버티는 이들이 생겨나겠지만, 지금 당장은 검을 미끼로 권각을 가르치고 있는 꼴이다.

그러니 흥미를 가지기 어려울 수밖에.

"이걸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데."

하지만 해결책이라는 게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때였다.

"계십니까?"

입구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안에 있던 모두가 일제히 입구로 시선을 돌렸다.

뭔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린데, 누구…….

"응?"

"어?"

"뭐, 뭐야?"

입구 쪽에 선 인물을 확인한 화산 제자들과 화영문 제자들의 눈이 툭 튀어나왔다.

아니, 저거?

저, 저거 분명히…… 저거?

파르스름하게 깎은 머리.

붉은색 승복.

살짝 하늘하늘한 듯하지만 중심이 잡혀 있는 자세.

"쟤가 여기서 왜 나와?"

입구에 선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청명과 눈을 마주치고는 활짝 웃었다.

"아미타불. 시주! 여기에 계셨구려! 소승, 혜연입니다! 저를 기억하십니까?"

"……."

그 모습을 멍하니 보는 청명의 얼굴엔 답지 않게 황당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청명은 살짝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숙."

"응?"

"쟤가 왜 여기 있지?"

"……그러게."

두어 번 눈을 비빈 그는 황당하다는 듯 웃어 버렸다.

"허……. 허허. 웬 중이 굴러들어 오네."

하늘에서 해결책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설마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사숙."

"응?"

"일단 저 새끼 잡아."

"응?"

청명이 낄낄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찾았다, 해결책!"

한편 혜연은 흐뭇하게 웃으며 제게로 다가오는 청명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잘 온 걸까?'

아니.

너 잘못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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