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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59화 (359/1,567)

359화. 웬 중이 굴러들어 오네. (4)

"내버려 둬도 되는 겁니까?"

"……어쩌겠는가?"

남자명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생각 같아서는 깽판을 치고 싶었다. 검술이 뛰어나건 뛰어나지 않건, 이 서안의 한복판에서 화산의 검술이 펼쳐진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막을 방법이 없다.

종남의 속가로서 화산의 속가를 견제하는 것은 그리 큰 위험이 되지 않는다. 화산도 체면이 있기에 속가 간의 일에 함부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만 않는다면 본산의 개입은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화영문의 행사가 아니라 화산파의 행사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건 알지만 앞으로 나선 이들이 화산파의 제자들이고, 이 일을 주최하는 이가 화산의 장로인 이상은 딴죽을 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종남이 봉문만 하지 않았어도!'

저놈들이 이 서안에서 설치는 일이 생기지는 않았을 텐데!

"그래도 막아 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의 질문에 남자명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화산의 검술이라고 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종남의 검을 보며 살아온 이들이 새삼스레 혹할 것도 없네. 괜히 저러다가 망신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지!"

남자명이 어디 한번 보자는 식으로 화산의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화정검이라고?'

그 별호와 이름은 그도 수없이 들어 보았다.

다음 대의 종남 장문인이 될 인재로 기대를 모으는 그 진금룡을 이기고 종남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린 이.

'하지만 그래 봐야 후기지수다.'

또래에 비해 뛰어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얼마나 뛰어나고 얼마나 잘났겠는가? 고작해야 후기지수인 것을.

하지만 살짝 턱을 치켜든 백천을 보니 그가 잘났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괜스레 짜증이 난 남자명은 신경질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발검!"

백천이 선두에서 소리치자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그 행동들이 마치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화산의 제자들이 얼마나 수련을 해 왔는지, 그 단순한 동작에서도 확실히 보였다.

"오!"

"우와!"

그리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돌아왔다.

무학을 잘 모르는 이들도 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에서는 대단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일제히 상단세를 취한 화산의 제자들. 그 선두에서 백천이 천천히 검을 움직였다.

"육합!"

그 호령에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육합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좋구나!"

"허허. 뭔가 대단해 보이는군."

새하얀 영웅건을 이마에 두른 백천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저자가 화정검이라 이 말이지?"

"화산 백자 배의 대제자라고 하더군."

"그럼 언젠가는 장문인이 될 자로구나."

호기심 어린 눈빛.

그리고 기대가 가득 담긴 시선.

그 모든 것을 한 몸에 받으며 백천이 단호하게 호령했다.

"일식!"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한 발을 내디디며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앙!

검을 선보이는 자리라고는 하나, 화산에 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수련을 하는 것처럼 전력을 다한 검이 검풍을 일으키며 주변의 공기를 밀어 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지켜보던 이들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하나 그 와중에도 화산의 제자들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검을 전개했다. 역시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오는 광경이었다.

"화산 후기지수들이 천하일절이라더니."

"저러니 종남이 뒤질 수밖에 없었던 게지."

"하나같이 헌앙하기 짝이 없잖은가?"

마치 한 사람이 펼치는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검은 마치 군무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겨움을 불러일으켰다.

파아아아앙!

내리친 검의 풍압이 가장 앞에서 그 시연을 지켜보던 남자명의 머리카락을 솟구쳐 오르게 했다.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반응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대단하다!"

남자명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 난리들이란 말인가?'

그래 봐야 기본 검술일 뿐, 이리 호들갑을 떨며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시연을 지켜보는 이들은 대부분 말 그대로 열광하고 있었다.

남자명의 얼굴이 확연하게 일그러졌다.

'이 무지렁이들이…….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나 난리란 말인가!'

그리고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명은 낄낄대며 웃기 바빴다.

'이해하기 힘들겠지.'

대단한 건 검술이 아니라 이 상황이다.

사실 검술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지금 화산의 제자가 검이 아니라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도 놀라 줄 준비가 되어 있다.

이유?

그야 뻔하지. 세상 어디에서 명문의 제자들이 단체로 검술을 시연하는 모습을 보겠는가?

애초에 종남이든 화산이든 구파일방쯤 되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지역이 지역이니 종남의 검은 한 번씩 봤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구파일방의 제자들이 펼치는 검술을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종남에 올라 그들에게 단체로 검 쓰는 걸 좀 보여 달라 할 수 있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한창 명성을 떨치는 화산이 직접 거리로 나와 일제히 검을 펼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평생에 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한, 진귀한 경험인 것이다.

반응이 이리 열광적일 수밖에.

'거기에 제대로 된 검술만 보여 주면 이야기 끝난 거지.'

뭐?

종남도 할 수 있다고?

그럼 봉문 풀고 내려오시든가.

"낄낄낄낄."

청명이 실실 웃어 젖혔다.

그때 마침 화산의 제자들의 육합검 시연이 끝났다. 그리고 미리 말을 맞춰 놓은 대로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시연을 길게 끌어 봐야 강렬함만 떨어지는 법.

육합검으로 적당히 시선을 끌었으면 단번에 치고 들어가는 쪽이 좋다.

"매화인동(梅花忍冬)!"

백천의 커다란 호령과 함께 화산의 제자들의 검 끝에서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와……."

"매, 매화로구나! 매화!"

화산의 제자들이 그려 내는 매화를 모두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검 끝에서부터 늘어진 검기가 마치 매화를 허공에 피워 내는 것만 같다.

물론 앞쪽에 선 백천 무리와는 다르게 뒤쪽의 제자들은 아직 제대로 된 매화를 피워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게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검으로 꽃을 피우는 이들이 눈앞에 있는데.

"낙매분분(落梅紛紛)!"

기세를 몰아 백천이 더욱 화려한 검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려함으로만 따지자면 천하에 화산의 검을 따라올 곳이 있겠는가?

실력이고 나발이고, 일단 사람들을 현혹하는 데는 매화검법만 한 게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일단 화려하고 위험해 보이니까.

"조, 종남의 검과는 전혀 다른데?"

"이래서 화산이 최근에 기세가 좋다는 거로구나. 이런 검술은 처음 보는군. 이게 대체 무슨 검술이지?"

딱 시기 좋게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십사수매화검법이다!"

"이번 소림에서 화산이 이십사수매화검법으로 비무대회를 휩쓸었다고 하더니! 과연 천하일절이구나!"

"저 검에 구파일방들이 혼쭐이 났다지."

"아!"

"그렇구나!"

사람들이 이리 모여 있으니 누가 소리치는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들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세인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화영문의 제자들이 슬쩍 청명 쪽으로 눈짓을 했다. 청명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옳지! 잘했다.'

응?

사기?

에이. 이런 자리에서는 분위기를 북돋울 바람잡이들이 있어야 흥이 나는 거지.

사기라니!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이래 봬도 도산데!

사기든 아니든 효과는 더없이 좋았다.

비무대회. 그리고 구파일방. 마지막으로 이십사수매화검법.

간명한 단어들은 사람들의 뇌리를 파고들기에 더없이 적합했다. 거기에 눈으로 보기에도 화려한 검법, 적절한 실적까지 뒷받침이 되니 지켜보는 이들은 아무런 방해 없이 그 검술에 감탄할 수 있었다.

"대단하다."

"이게 화산파인가?"

그리고 뜻밖의 지원사격도 벌어졌다.

"쯧쯧쯧. 예전 화산파가 마교 놈들 때문에 무너지기 전에는 감히 종남은 화산에 가져다 대지도 못했어!"

"에이이이잉! 어린놈들이 뭘 알아! 내가 어릴 적에는 말이야!"

"종남? 어허어어어. 내가 또 옛날이야기를 꺼내야겠군. 너희가 매화검존이라는 이름을 들어 봤을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신이 나 옛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슬슬 피했을 사람들도 이번에는 함께 흥이 나는지 귀를 활짝 열었다.

그 축제와 다름없는 현장에서 백천이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매화만개(梅花滿開)!"

화산의 매화가 더없이 화려하게 피어났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심지어 종남 속가문의 문주들마저도 그 화려한 매화에 넋을 놓았다.

서안의 중심에서 매화가 만개했다.

마치 오랫동안 말라붙었던 고목이 다시 꽃을 피워 내듯 말이다.

"후."

백천이 천천히 검을 회수해 검집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쥐 죽은 듯한 고요함.

이리 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데도 주변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와아아아아!"

누군가 탄성을 내지르며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다른 이들도 덩달아 손이 부셔져라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허허허허허! 진짜 대단하구나."

"이게 화산파로군! 과연!"

"역시 본산의 제자들은 그 실력이 남달라! 종남과는 전혀 다른데!"

쏟아지는 박수와 감탄.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명의 안색은 시커멓게 죽어 갔다.

'이런…….'

폄하하고 싶다.

저 정도는 별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도 무인이다. 눈으로 이런 검을 봐 버린 이상,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먹힐 만한 상황도 아니잖은가?'

아무리 흠을 논한다 해도 눈으로 본 이들은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저 입을 다무는 게 차라리 이득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화산에는 시간이 흐르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 이가 존재했다.

"자, 자!"

시연에 끼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던 청명이 때가 되었다 싶었는지 재빨리 앞으로 튀어 나왔다.

그리고 백천의 앞에 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이 본 매화는 이번에 새로 연 화영문에 입문하시면 얼마든지 배워서 피울 수 있습니다!"

물론 속가에 허락된 검술은 칠매검까지지만…….

'뭐 어쨌든 칠매검으로도 매화는 피울 수 있으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그리고!"

시선이 순식간에 모이는 것을 본 청명이 단호하게 소리쳤다.

"지금 화영문에 입문하시는 분들께는 앞으로 삼 개월간 수강료를 면제해 드립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발을 쾅 굴렀다!

"공짜! 앞으로 삼 개월간 공짜! 일단 입문해 보시고, 싫으면 그만둬도 돈을 안 내도 된다는 말씀!"

"오!"

"공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짜라는 말에 혹하지 않는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안 그래도 조금 전 직접 본 검술에 매혹되어 있던 이들은 공짜라는 말에 귀까지 솔깃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청명이 뒤쪽에 있던 백천을 확 잡아끌어 앞으로 당겼다.

"화영문에 입문한 생도들은 중간 중간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화정검! 백천 도장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오! 화정검!"

"진짜 본산의 제자가 직접 가르쳐 주는 건가?"

가끔씩.

아주 가아끔씩이지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명성은 써먹으라고 있는 거지.'

적어도 이 서안에서만큼은 화산의 장문인보다 화정검 백천이라는 이름이 좀 더 먹힌다.

그러니 이럴 때 써먹을 수밖에.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요? 그 말을 믿어도 되는 거요?"

청명은 가려운 곳을 긁어 줬다는 듯 씨익 웃었다.

"저는 화산의 삼대제자인 청명이라고 합니다."

"처, 청명?"

"화산신룡!"

"저 사람이 그 화산신룡이다!"

지금까지 들렸던 함성보다 배는 더 큰 함성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엄마야."

천하의 청명조차 그 반응에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좋아해?"

"……그야 네가 화산신룡이니까."

백천이 어이없다는 듯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체 이놈은 자기 자신을 뭐라 생각하는 건가?

비무대회의 실질적인 우승자이자 천하제일 후기지수. 거기에 후대의 천하제일인으로 불리는 게 청명이다.

아무리 백천이 진금룡을 이겼다고 한들, 그 명성으로 청명에게 비빌 수나 있겠는가?

"화산신룡이 직접 왔었어?"

"그럼 저기 입문하면 화산신룡을 검을 지도해 주는 건가?"

"세상에! 두, 둘째가 지금 어디에 있지?"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화, 화영문에 입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지금 여기서 입문할 수 있는 거요?"

언제 당황했냐는 듯 청명이 씨익 웃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저리 달아오른 이들의 기대를 식힐 수는 없지!

"소행아!"

"옙! 도장님!"

"뭐 하냐! 손님 받아라!"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소림에서 도박판을 여느라 명단을 작성하는 데는 진즉에 도가 튼 화영문도들이다.

순식간에 탁자 몇 개가 차려지고 그 위에 장부와 지필묵이 준비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지원을 받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몇몇이 다급하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눈치만 보던 이들도 앞다투어 뛰쳐나갔다.

"나부터! 내 아들부터 받아 주시오!"

"아, 본인 아니면 비키세요! 저는 제가 입문합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비켜라! 저도 입문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종남 속가의 문주들이 망연히 바라보았다. 청명이 의기양양하게 웃는 걸 보고 결국 참지 못한 남자명이 외쳤다.

"……체면도 없이 이런 짓을! 어찌 속가의 일에 본산이 이렇게까지 나선단 말이시오!"

그런 그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명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뭐 어때서요?"

"……뭐, 뭐라고 하셨소?"

"안 해 주는 게 문제지, 해 주는 게 왜 문제예요? 본산이 속가에 일에 발 벗고 나서 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에요?"

"……."

남자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딱 닫았다.

청명은 낄낄 웃으며 쐐기를 박았다.

"억울하면 그쪽도 종남한테 해 달라고 하세요."

아, 봉문 하셨나?

그것 참 안타까워서 어떡하지?

낄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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