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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58화 (358/1,567)

358화. 웬 중이 굴러들어 오네. (3)

서안에서 가장 큰 주루 중 하나인 낙생루(樂生樓)는 오늘도 바글바글했다.

대낮부터 한잔 걸치기 위해 주루를 찾은 이들은 딱히 화젯거리라 할 만한 것 없이 마구잡이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곤 했다.

하지만 이런 이들의 입에도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단연 화산과 화영문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한번 가 보고 싶지 않았는가?"

"으음?"

포목점의 주인인 전육(全六)이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조금 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화산 아닌가."

"끄응. 그렇지."

전육의 말에 그 건너편에 앉은 좌동(左動)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분명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불과 한두 해 전만 해도 화산은 서안을 지배하고 있는 종남에 감히 가져다 댈 문파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그 천하비무대회에서 화산이 가장 좋은 결과를 냈다는 건 이제 천하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지. 그렇지. 실질적으로는 우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지 않는가?"

"그렇지. 게다가 우승은 중요한 것도 아니야. 한 사람이 우승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팔강에 셋이고, 사강에 둘이네. 이 정도면 비무대회를 거의 지배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

좌동이 이번에도 격하게 공감하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더구나 후기지수들의 대회였네. 후기지수가 천하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말인즉, 제자들을 가르치는 솜씨가 천하일절이란 의미가 아닌가?"

"그렇지."

전육이 혀를 찼다.

"어차피 속가문에 입문한다는 것은 지금부터 무학을 배운다는 뜻이지. 그러니 강한 문파가 아니라 잘 가르치는 문파에 가는 게 맞다 이 말일세!"

"비단 좀 팔더니 입에 기름을 발랐나. 자네 말을 들으니, 화산에 입문하지 않는 게 멍청하게 느껴지는군."

"내가 말을 잘한 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 걸세."

잠깐 술로 목을 축인 전육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지금 천하에서 가장 기세가 좋다는 문파가 서안에 속가문을 열었는데 구경도 못 해 본다니. 생각 같아서는 얼굴이라도 한번 들이밀고 싶건만……. 듣자 하니 그 화산신룡도 왔다던데."

"꿈도 꾸지 말게. 거길 들락거리는 순간 서안에서 장사는 다 한 걸세."

좌동은 생각만 해도 겁난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설프게 혹하지 말게나. 서안은 종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곳이네. 당장 서안 성주의 막내아들도 종남의 제자 아닌가. 그런데 이런 종남에서 화산의 속가로 들어간다? 망하고 싶으면 뭘 못 하겠는가?"

"하나 종남은 봉문을 하지 않았는가?"

"어허. 그런 것에 혹해서는 안 되는 법일세. 한눈을 팔았다가 봉문이 풀리면 그땐 어쩔 텐가?"

"끄으응. 그도 그렇지……."

좌동이 연신 혀를 차 댔다.

"그리고 종남까지 갈 일도 아닐세. 당장 서안에 있는 종남의 속가 문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종남이야 체면 때문에라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겠지만, 그들은 체면을 따질 입장은 아니잖은가?"

전육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하고 입맛만 다셨다.

"아쉽네. 그것 참 아쉬워. 화산의 검술이 천하일절이라는데, 마침 우리 막내 놈이 딱 입문하기 좋은 나이란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은 자리마다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한번 구경은 가고 싶은데……."

"화산의 검술이 그렇게 날카롭다던데……. 잘하면 우리 애도 그 후기지수 중 제일이라는 화산신룡처럼 될 수도 있는 것 아냐?"

"화산신룡이면 후대의 천하제일인이지!"

"그것 참 아쉬워. 정말 아쉽네. 거참."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서월문을 비롯한 종남 속가문들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으니, 화영문에 들러 보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관심이 없겠는가?

결국 모두가 술로 아쉬움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시끄럽지?"

"주루가 시끄러운 거야 당연한 일 아닌가?"

"아니. 주루가 아니라…… 밖에서 들리는 것 같은데."

"밖? 밖이 왜?"

전육과 좌동의 시선이 동시에 입구로 향했다.

마침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 하나가 문을 열고 있었다.

"엥?"

전육이 눈을 끔뻑거렸다.

문이 잠깐 열린 사이에 바깥에 인파가 잔뜩 몰린 걸 본 것 같은데……?

"밖에 뭔 일이 있나?"

"그러고 보면 북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도 같고?"

소란을 알아챈 것이 그들뿐만은 아닌지, 주루를 채우고 있던 이들의 시선이 창과 문으로 향했다.

전육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궁금한 일이 생기면 참지 못하는 성정이다 보니, 이리 짐작만 하며 앓느니 눈으로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한 사람들을 헤치고 입구로 가 문을 열었다.

"으응?"

밖으로 나가 보니 안에서 본 것 이상으로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다.

'대체 뭔 일인데, 사람들이 이리 모여 있는 거지?'

낙생루가 위치한 곳은 서안에서도 가장 큰 도로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도로를 사람들이 가득 메우고 있다는 건, 무척 많은 인원이 몰려들었다는 의미다.

근래에는 이런 광경을 보는 게 처음인지라 전육의 의문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는 결국 인파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 잠시만 비켜 봅시다. 안에 대체 뭐가 있는 거요?"

"아! 밀지 마시오!"

"이 사람이 늦게 왔으면 뒤에서 볼 것이지!"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모여 있는 이들을 슬슬 밀고 들어간 전육은 기어이 앞쪽으로 가 고개를 쭉 내밀었다.

"엥?"

그리고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을 크게 치떴다.

사람들이 모인 안쪽은 마치 무대가 열린 것처럼 텅 비어 있었고, 검은 무복을 입은 이들이 옹기종기 서 있었다.

그들의 가슴팍에 새겨진 매화 문양을 본 전육은 저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화산파?"

여기에 왜 화산파가 있는가?

'아, 아니지.'

화영문에 화산파 사람들도 와서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니, 저들이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지.

그런데 대체 뭘 하려고?

화산파 제자들을 보는 전육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이었다.

"……청명아."

"응?"

"진짜 해야 되냐?"

"그럼 가짜로 하리?"

윤종과 조걸이 희미하게 절망 어린 눈으로 청명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청명은 뚱한 시선만 돌려주었다.

"왜? 하기 싫어?"

"아, 아니.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윤종은 살짝 기가 죽은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검을 펼쳐 보는 게 처음이라……."

"소림에서 칼로 사람 썰고 다니던 사람이 잘도 그런 말을 하네?"

"그, 그건 비무잖아. 이건 시연이고."

윤종이 마른침을 삼켰다.

어느새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아, 심장 떨려.'

물론 청명의 말대로 이미 더 많은 이들 앞에서 비무를 치른 적이 있다. 하지만 비무란 말 그대로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청명이 놈은 지금 이 많은 이들 앞에서 그들더러 검술을 시연하라 하지 않는가?

"이, 이게 효과가 있는 거냐? 서안 사람들은 종남의 검술을 수도 없이 봤을 텐데."

"쯧쯧쯧."

조걸의 의혹 어린 말에 청명이 대놓고 혀를 찼다.

"이 사형이 또 멍청한 소리 한다. 사형, 화산 검술의 최고 장점이 뭐야?"

"……장점?"

조걸이 고개를 갸웃한다.

강하다? 빠르다? 아니면…….

"아……."

조걸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화려하구나."

"그렇지."

청명이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검이라고는 내리치고 긋고 막는 것밖에 모르는 종남의 검술만 보던 사람들이 화산의 검술을 보면 눈 돌아가는 건 일도 아니지."

"……그 설화 어쩌고 하는 검술은 엄청 화려했잖아."

"그것도 이미 다 조사해 봤지. 그걸 시연한 적은 없는 모양이더라고. 나름 비밀병기 같은 검술이었으니까."

그걸 또 조사를 해 보네.

용의주도한 놈 같으니.

"그러니까!"

청명이 박수를 쫙 쳤다.

"백문이불여일견. 화산 검이 화려하니, 요즘 잘나간다느니 어쨌다느니 하고 백날 들어 봐야 눈앞에서 보여 주는 것만 못하다 이거지!"

청명이 턱짓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그러니 뻔한 소리 하지 말고 나가서 한번 펼치고 와."

"……."

윤종과 조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나.'

'민망하니까 그렇지!'

삶의 절반 이상을 새도 잘 오르지 못하는 산꼭대기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익숙지 않았다. 게다가 그냥 서는 것도 아니고 시연까지 해야 하다니.

하지만 그들이 달아날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청명이의 말이 맞다."

"사숙?"

백천이 굳은 얼굴로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안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 여부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화산도 화산이지만, 큰 각오를 하고 서안으로 옮긴 화영문에도 도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숙……."

그것 참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왜 자꾸 아까부터 슬슬 뒤로 가십니까?

"크흠. 그러니 다들 잘하고 오너……."

슬금슬금 물러나는 백천의 등을 청명의 검집 끝이 쿡 찔렀다.

"……."

"사숙은 제일 앞에."

"……왜?"

"제일 실력 있는 사람이 앞에 서야 눈이 쏠리지. 뭐 뻔한 걸 묻고 그래."

……청명아.

내가 그걸 몰라서 물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때 현영이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슬슬 모일 만큼 모인 것 같은데 시작하자꾸나. 시간을 너무 끌면 되레 역효과가 나는 법이니까."

"네, 그럴게요."

청명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을 가리켰다.

"얼른 자리 잡아."

끝내 피하지 못한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 싫은 기색이 아주 노골적으로 역력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도장님들. 괜한 수고를 끼쳐 드리는 것 같아서……."

화산 제자들의 시선이 입을 연 이에게로 향했다.

위소행. 그리고 그의 뒤에 선 위립산이 연신 송구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화산 제자들의 얼굴이 싹 일변했다.

"무슨 소리십니까! 당연한 거지요!"

"거기서 보고만 계십시오!"

"그까이 거 시원하게 한번 펼치고 오면 되지."

내내 구겨져 있던 백천의 얼굴도 어느새 무인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는 조금 재수가 없을 만큼 당당한 얼굴로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서안 사람들에게 화산의 검술을 견식시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도장님."

"가자!"

"예, 사형!"

"예, 사숙!"

백천을 필두로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청명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여튼 희한한 애들이 되어 버렸다니까.'

시키면 구시렁대면서 어떻게든 피할 방법을 찾지만, 누군가가 민망해하거나 미안해하면 되레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이래서 화산의 제자들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저벅. 저벅.

당당한 걸음으로 가장 앞에 나선 백천이 작게 심호흡을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조용해졌다.

서안 사람들이 기대감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는 화산의 이대제자인 백천입니다."

"오! 화정검!"

성적으로 따진다면 백천은 청명은 물론이고, 윤종이나 유이설만 못하다. 하지만 이곳 서안에서만큼은 그들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왜냐면…….

"저 사람이 화정검이구나! 그 진금룡을 이겼다는!"

종남 최고의 후기지수를 꺾었다는 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앞으로 점점 몰리기 시작했다. 화정검이라는 별호가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래서 강호인들이 명성을 얻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 것이다.

"오늘 저희는 이곳에서 화산의 무학을 시연하려 합니다. 오랫동안 화산의 검을 보지 못하셨던 서안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자 함이니, 부디 즐겁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혀에 기름이라도 칠한 듯 매끄러운 말솜씨에 청명과 현영이 뒤쪽에서 혀를 내둘렀다.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안 한다고 하더니."

"원래 판을 깔아 주면 알아서 하는 사람이 꼭 있잖아요."

"체질이네. 체질이야."

안 그래도 헌앙하다는 말로도 설명이 부족한 백천이 아니던가. 그런 이가 제자들을 대동하고 선두에서 입을 열자 누구라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림이 그려졌다.

"자, 그럼……."

백천이 막 시작을 하려는 찰나였다.

"비켜 보시오."

"잠시 나와 보시오!"

"아! 누가 자꾸 밀고 그……. 시, 실례했습니다!"

잠깐 군중들 사이에서 소란이 인다 싶더니 웬 무리가 가장 앞쪽까지 밀고 들어왔다.

"호오?"

청명이 눈을 빛냈다.

어제 화영문에 경고를 남기고 갔던 종남 속가의 문주들이었다.

"여기서 뭣들 하는 것이오!"

선두에 선 서월문주 남자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의 뒷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현영이 입을 열었다.

"서월문주."

"……."

"나는 화산의 장로인 현영이네. 어제는 화영문의 행사기에 내 별말하지 않았네만, 이건 화산의 행사네. 지금 자네가 화산의 행사를 방해하려 한다고 받아들여도 되겠는가?"

남자명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검을 들고 나온 이들은 모두 화산파의 제자들이었다.

"그, 그게……."

화영문과는 싸울 수 있다.

하지만 화산과는 싸울 수 없다.

지금 화산이 얼마나 그 기세를 떨치고 있는지 모를 이들이 아니었다.

현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뭐 마침 잘 왔네. 온 김에 화산의 검을 견식하고 가게나. 백천아."

"예."

백천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있는 문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 문주님들 앞에서 검을 펼치려니 민망하기는 하지만……."

시원하게 잘 뻗은 그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부끄럽지 않은 검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어깨를 쫙 편 백천이 검을 뽑아 들었다.

영웅건을 두르고 검을 든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오오!"

"정말 멋지구나."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 가득한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청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거 또 시작이네, 저거.

저쯤 되면 병이지 저것도.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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