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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56화 (356/1,567)

356화. 웬 중이 굴러들어 오네. (1)

부우우웅!

검이 허공을 갈랐다.

부우우웅!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쳐지는 검은 거듭되는 반복에도 단 한 치의 흐트러짐이 보이질 않았다.

정석.

그야말로 정석이라고 부를 만한 완벽한 움직임이었다.

뚜욱.

하지만 검이 변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의 육체는 어쩔 수 없이 변하는 법.

검을 휘두르는 이의 옷은 완전히 땀으로 젖어들어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소매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육천칠백사십구!'

부우우우웅!

다시 검이 휘둘러졌다.

'육천칠백오십!'

꾸우욱.

발끝이 신발을 뚫어 버릴 것처럼 땅을 힘껏 내리눌렀다.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같은 동작을 완벽하게 반복한다는 것은 수련이라기보다는 고행에 가까운 일.

하지만 이 젊은 검수는 그 고행에 가까운 수련을 완벽하리만큼 해 내고 있었다.

'육천칠백오십하나!'

"사형!"

그런데 그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가 완벽한 검 끝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움찔.

이송백은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의 검 끝을 바라보았다.

'실패군.'

일만 번의 완벽한 내려치기를 해내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검 끝이 한 번 흔들려 버리지 않았는가.

그런 그의 모습에 목소리의 주인이 황급히 사과했다.

"아……. 죄, 죄송합니다. 사형."

이송백은 흘러내린 땀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탓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일에도 흔들릴 검이라면 실전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내 수행이 부족한 탓이다. 오히려 네 덕분에 내 부족함을 알게 되었으니 감사해야겠지."

담담한 말에 화소도는 감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이 사람은 정말 격이 다르구나.'

물론 과거의 이송백도 기재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종화지회 이후의 그는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변화가 너무 급격하여 한때는 배척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종남의 많은 제자들이 이송백을 따라하려 하고 있었다.

변화.

작지만 큰 변화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아……!"

화소도가 그제야 하려던 말을 떠올리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형. 화산이 서안에 속가문을 개파 한다고 합니다."

"음? 화산이?"

"예! 지금 전각을 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송백이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 호들갑이냐?"

"아니요. 사형! 그 일 때문에 지금 화정검과 화산신룡이 서안에 머물고 있답니다!"

"청명 도장이 말이냐?"

이송백의 표정이 싹 일변했다.

"그게 사실이더냐?"

"……아, 예! 사실입니다."

그 격한 반응에 말을 전한 화소도가 더 놀라고 말았다.

항상 태산처럼 진중하던 이송백이 이리 놀라는 것은 근래 들어선 본 적이 없었다.

"청명 도장이……."

이송백은 작게 중얼거리며 슬쩍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냉정을 되찾은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정말이지, 한시도 쉬지 않는 사람이로군."

천하비무대회가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단 말인가?

'너무 그렇게 앞서가지 마시오.'

인정머리 없는 사람이다.

뒤쫓는 이들의 사정도 생각해 줘야 할 것 아닌가?

"장로님들께서도 그 사실을 아시더냐?"

"예.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안 보이셨습니다."

"그렇겠지."

이송백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남은 지금 그런 곳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다.

이번 천화비무대회에서 종남은 자신들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깨달았다.

'이대로 간다면 종남은 그 혼을 잃고 말겠지.'

장문인 역시 그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과감한 결정은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최소 일 년, 모든 대외활동을 금지하고 내부를 다스리는 기간을 가진다는 게 쉬이 결정할 일은 아니니까.

누군가는 겨우 일 년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지.'

한 문파가 커져 가면 당연히 그에 따라 이권이 엮일 수밖에 없다. 단 일 년의 휴식만으로도 종남은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어쩌면 대외적인 영향력을 상실케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무학'이라는 뿌리 없이는 헛된 것에 불과하다는 걸 저 화산이 보여 주지 않았는가?

종남은 자신의 뿌리를 다시 되찾아야 한다. 시일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말이다.

"신경 쓰지 말거라."

"하지만 사형……."

"서안이 화산의 손에 떨어지든, 화산이 천하를 쥐고 흔들든, 그건 지금의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해 온 것을 배워야 한다."

화소도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형. 명심하겠습니다."

이송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검을 잡았다.

"그런데 사형……."

"응?"

화소도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혹시 개인 수련이 끝나셨으면, 사제들을 지도해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형께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서."

이송백이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는 내 개인 수련 같은 건 신경 쓰지 말고,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라도 오라고 해라."

"괜찮으시겠습니까?"

화색을 띤 화소도의 물음에 이송백은 선선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명 도장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말했겠지.'

그에게 있어서 개인의 강함은 크게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가 아닌, 화산이 커 나가는 것.

지금 당장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이게 더 빠른 길이라는 것을 청명에게서 배웠다.

"그러지 말고 같이 수련할 시간을 따로 만들자꾸나. 원하는 이가 있으면 내일 아침부터 내가 수련하는 곳에 나오라고 전해라."

"그리 전하겠습니다, 사형! 분명 많은 이들이 좋아할 겁니다!"

"그래."

잔뜩 신이 나서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화소도를 보던 이송백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소도."

"예?"

"……대사형은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

화소도가 뒤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두문불출하고 계셔서."

"음……. 알겠다."

"예. 그럼."

그가 사라지고, 이송백은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천하비무대회가 끝난 이후 종남으로 돌아온 진금룡은 숙소와 지하 수련장만을 오가며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거의 폐관 수련이나 마찬가지지.'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이송백은 다른 제자들처럼 진금룡을 걱정하지 않았다.

'사형은 강한 분이다.'

그도 진금룡도 보았다.

이대로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을.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둘 중 하나다. 포기하든가, 지금까지 해 오던 것 이상의 무언가를 시도하든가.

아마 진금룡은 자신의 벽을 다시 한번 시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 청명 도장을 뛰어넘기 위해서 말이다.

'참…… 여러 사람 괴롭히는 분이라니까.'

그의 시선은 산 아래쪽 저 먼 곳을 향해 있었다.

산 아래에 서안이 있다. 그리고 저 서안에 청명이 있을 것이다.

"다음에 볼 때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겁니다, 청명 도장."

나도.

그리고 종남도.

아직은 멀고도 먼 길이지만, 중요한 건 그 길로 가기 위한 한 걸음을 꾸준히 내딛는 것.

그리고 이송백은 그 점에 있어서는 세상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가라앉은 눈으로 산 아래를 바라보던 그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꽉 움켜잡았다.

'지금 아마 청명 도장도 최선을 다해 수련을 하고 있겠지.'

지지 않을 것이다.

청명 도장처럼 사문을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과 열정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그가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 * *

"어쭈? 누워?"

"……."

위소행의 입에서 침이 주륵 흘러내렸다.

'뭔가…… 뭔가 잘못됐다.'

어리석게도.

이 지경까지 와서야 위소행은 자신이 생각하던 '수련'과 화산이 말하는 '수련' 사이에 커다란 괴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파의 수련이란 무엇인가?

앞선 이는 뒤따르는 이를 이끌어 주고, 뒤따르는 이는 앞선 이의 등을 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훌륭한 문파의 수련법 아니던가?

하지만 이건 뭐랄까…….

'지옥인가?'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입에선 단내가 풀풀 나고,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다 못해 오한이 들 지경이었다.

'수련이 이렇게 힘든 거였나?'

물론 수련은 힘든 것이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가 겪는 수련의 격함은 지금까지 그가 생각하는 힘겨움과는 그 궤를 달리했다.

'이, 이러다가 죽어.'

위소행이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말 그대로 걸레짝이 되어 널브러진 화영문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끄으으으……."

"주, 죽는다……."

그나마 낑낑대고 있는 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게거품을 물고 기절해 버린 이들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 몰골이 처참…….

'아버님?'

아니, 잠깐.

방금 기절해 있는 이들 사이에서 위립산을 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쯧쯧쯧쯧."

그때 위소행의 귀에 청명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래서 무슨 속가문을 열겠다고."

청명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심드렁한 얼굴로 턱을 괴었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청명의 시선에도 위소행은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쉽게 생각했었어.'

화산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좋아했다.

어쨌거나 위소행도 화산의 속가. 본산이 그 명성을 높이고, 타 문파를 압도하는 모습에 어찌 즐겁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위소행은 청명과 그 일행들을 눈으로 지켜보았음에도, 저들이 얼마나 고된 수련을 해 왔는지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게 있을 리 없지.'

쓰러진 화영문도들의 반대편에서는 화산의 제자들이 여전히 수련을 하고 있었다.

"자세가 흐트러지잖아, 이놈들아!"

"아아아아악!"

백천이 귀신과도 같은 얼굴로 그 사이를 오갔다.

'미쳤어.'

자신들은 맨몸으로 하는 수련도 버티기 힘들어 게거품을 물고 있는데, 화산의 제자들은 무거운 납덩어리를 전신에 주렁주렁 매단 채 그들의 몇 배나 되는 수련을 소화하고 있었다.

심지어 아직 쌩쌩하기까지.

"으아아아아! 언젠가는 죽인다!"

"내가 세지기만 해 봐! 사형이고 나발이고 아주 그냥!"

"청명! 청명이 새끼를 죽여야 돼! 청명이 새끼를!"

아, 물론 뭐…….

정신은 나간 것 같지만.

여하튼 정신이 있건 없건 저 수련을 지속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어쩌면 화산의 강함은 검술이 아니라 저 육체의 강건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위소행이었다.

"뭐, 그래도."

청명이 슬쩍 화영문도들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숨은 쉴 수 있게 되었네."

"……하지만 이걸로는 제자들을 가르치는 게……."

위소행이 엎어진 채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화영문은 화산의 속가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화영문은 그저 속가 문파라는 직함을 가지고만 있을 뿐, 천하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화산의 속가를 자처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문파였다.

생각해 보라.

화영문은 화산의 속가 중 대표다. 하지만 화영문은 무당의 많고 많은 속가 중 하나였던 종도관도 감당하지 못해서 본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위소행의 얼굴에 불안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청명이 피식 웃었다.

"왜? 막상 하려니까 겁나?"

"그, 그런 건 아닙니다만……."

위소행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겨우겨우 자리에 앉은 그는 덜덜 떨리는 턱을 들어 청명을 바라보았다.

"겁이 난다기 보다는…… 저희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아 버렸습니다. 과연 이대로 문파를 여는 게……."

"뭐 어때서?"

"……예?"

청명이 턱을 괸 채로 위소행을 물끄러미 보았다.

"생각보다 건방진데? 처음부터 완벽한 문파라도 만들어 볼 생각이셨나?"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만."

"봐."

청명이 턱짓으로 화산의 제자들을 가리켰다.

"몇 년 전만 해도 사람 꼴이 아니었지."

"뭐라는 거냐!"

"아니, 틀린 말은 아니다."

입으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몸은 수련을 멈추지 않는 화산의 제자들이었다.

"새로이 제자를 받아들이는 게 전부가 아냐. 그건 그저 문도를 늘리는 것에 지나지 않지. 이번 개파의 핵심은 화영문이 그 자체로 강해지는 거야."

"……."

"할 수 있겠어?"

위소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내 눈을 빛내며 청명을 보았다.

"이 수련을 버티면 화영문도 화산처럼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한 소리를 하네."

"그럼!"

청명의 확신 어린 말에 위소행의 가슴이 쫙 펴졌다.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청명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는 화영문의 제자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다들 눈빛만은 죽지 않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게 만들어질지도 모르겠는데.'

크으.

화산뿐 아니라 속가까지!

사형!

장문사형!

이쯤 되면 사형도 저를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백 년은 멀었다, 이놈아. 나 때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아. 됐어요. 됐어!

하여간 저 꼰대 양반!

에잉!

그렇게 서안에 화산의 새로운 속가 문파가 열리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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