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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49화 (349/1,567)

349화. 내가 화산의 삼대제자 청명이시다. (3)

"끄륵……."

전신이 자근자근 다녀진 현법이 끝내 거품을 물고 혼절했다.

"쯧."

현법을 깔끔하게(?) 처리한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하나 남은 현당을 바라보았다.

움찔.

현당이 사색이 되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너, 너는 너무도 무도하구나."

"무도?"

"그렇다!"

현당의 눈은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목소리는 격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가 과한 짓을 했다 한들, 너는 도인이 아니더냐? 어찌 도인이 되어서 이리 무도한 짓을 한단 말이더냐? 화산의 선조들 보기에 부끄럽지도 않느냐?"

청명이 피식 웃었다.

그 반응을 본 현당이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기사멸조(欺師滅祖)의 대죄다. 화산의……."

"영감님. 화산을 잘 아시나 봐?"

"……뭐라?"

"모르는 모양인데. 화산은 원래 위아래가 없어."

"……이, 이 녀석이 끝까지!"

"댁은 나를 만나서 다행인 줄 알아야 해."

영문 모를 소리에 현당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청명의 말은 완전한 진심이었다.

'네가 장문사형한테 걸렸으면 지금 두 다리로 서 있지도 못해.'

대현검(大賢劍) 청문.

천하에는 더없이 어질고 훌륭한 이로 이름을 날렸지만, 당대의 화산 같은 거대 문파를 이끌어 가는 이가 어찌 어질기만 했겠는가?

"아까부터 선조 운운하시던데, 그 선조가 지금 살아 있었으면, 영감님은 사지근맥이 잘려서 참회동에 처박혔어."

"……."

"선조 보기 부끄럽지 않냐고?"

부끄러울 리가 있나.

지금도 저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들이 거품을 물고 발광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뭐, 그래. 다 좋아. 그럴 수 있지. 사람이 욕심을 낼 수도 있고, 강짜를 부릴 수도 있지. 사람이란 그런거니까. 그런데……."

청명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다른 건 다 참겠는데. 감히 우리 장문인을 무시해?"

현종이 어떤 사람인데.

저들이 버리고 간 화산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받들어 지금까지 지켜 온 이다. 현종이 없었다면, 청명이 돌아왔을 때 화산은 이미 주춧돌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종을 핍박한다?

이건 용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리 와. 너는 죽을 때까지 맞고 한 대 더 맞아야 돼."

현당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아무리 저놈이 기재라고 하더라도…….'

스르르릉.

현당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과거 화산제일기재로 불렸던 일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말이다.

"호오?"

청명은 그 모습을 흥미롭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현당은 이를 악물며 생각했다.

'놈은 지금까지 수련과 비무를 반복했을 뿐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워 본 적은 없겠지.'

아무리 훌륭한 기재라고 하더라도 목숨이 오가는 실전 앞에서는 몸이 굳을 수밖에 없는 법.

그 기회를 노린다면 현당에게도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나를 너무 만만히 보는구나. 너희가 이 깊은 산속에서 편히 수련을 하는 동안, 나는 저 거친 세상에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

"아. 그러셔?"

청명이 피식 웃으며 검 끝을 까딱거렸다.

"그럼 증명해 보시든가."

"이노오오오오옴!"

그 순간 현당이 청명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돌진해 검을 찔러 넣었다.

정확하게 중앙을 노린 검이 순식간에 청명의 가슴팍에 맞닿았다.

'멍청한 놈! 방심했…….'

하나, 그 순간.

빙글.

청명이 몸을 슬쩍 돌려 날아드는 검을 피해 냈다.

'엇?'

단 한 걸음.

단 한 동작만으로 현당의 검이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다.

너무 과한 기세를 실는 바람에 검을 회수할 수 없었던 현당은 한껏 당황한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득의양양한 웃음을 짓고 있는 청명을 말이다.

청명의 어깨가 뒤로 돌아갔다. 허리가 팽팽하게 당겨졌고 발이 바닥을 움켜잡듯 내디뎠다. 그 모든 과정이 현당의 눈에 완벽하게 들어왔다.

그리고.

일순 시위가 끊어진 활처럼 몸을 튕겨 낸 청명의 주먹이 현당의 얼굴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들었다.

'아, 안 돼…….'

콰아아아아앙!

청명의 주먹이 현당의 턱주가리를 돌려 버렸다.

부러진 현당의 이가 사방으로 비산하고, 목이 부러질 듯 고개가 꺾였다.

"꺼, 꺼어억……."

털썩.

현당의 몸이 짚단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청명이 그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고는 검집 씌워진 검을 들어 올렸다.

"검도 제대로 못 쥐는 놈이, 뭐? 죽을 고비? 죽을 고비를 넘겨?"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네가 마교를 알아?

청명이 눈이 새파랗게 빛났다.

"오냐! 진짜 죽을 고비가 뭔지 내가 알려 주마! 죽어! 이 새끼야! 죽어!"

퍽! 퍼어억! 퍼억! 퍼어어억!

청명의 검이 춤을 추듯 현당의 전신으로 날아들었다. 현당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었지만, 청명의 검은 용서를 몰랐다.

"아아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어디 신성한 도관에서 소리를 질러 대! 주둥아리 안 다물어? 오냐! 내가 오늘 너한테 예의가 뭔지도 알려 주마!"

저기요.

그쪽은 지금 신성한 도관에서 사람을 패고 계신데요?

딴지를 걸 부분이 너무도 많았지만, 눈에 광기를 머금고 현당을 후려 패는 청명에게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숙."

"으응?"

"……진짜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

이번엔 진짜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백천이 마른침을 삼키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옆에서 누군가 고개를 쑥 내밀고는 청매관 안을 살폈다.

"앞으로 나오지 말거……. 장로님?"

고개를 내민 이가 현영이라는 것을 알아챈 백천이 깜짝 놀라 옆으로 물러났다.

현영이 영 못마땅한 듯 혀를 끌끌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쯧쯧쯧. 도관에서 이게 무슨."

"……말릴까요?"

"쯧쯧쯧쯧."

현영은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돌렸다.

"저…… 장로님?"

"쯧쯧. 저래서야. 쯧쯧쯧쯧."

그러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휘적휘적 걸어 청매관에서 멀어졌다. 그 멀어지는 발걸음이 더없이 상쾌해 보이는 것은 백천의 착각일까?

"사숙?"

"……."

은연중에 내버려 두라는 지시를 받아 버린 백천은 잠깐 고민하다 빙그레 웃고 말았다.

"나도 이젠 모르겠다."

"……예."

죽이지는 않겠지.

죽이지는.

탁탁.

손을 털어 낸 청명이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에잉. 나도 너무 착해졌어. 예전 같았으면 진짜."

일단 팔다리를 잘라 놓고 생각했을 텐데.

애들을 가르치다 보니 사람이 이리 유해지네. 쯧쯧.

'장문사형이 봤으면 사람 됐다고 눈물 좀 쏟으셨겠네.'

아니. 이번만은 덜 팼다고 화를 내셨으려나.

쯧.

청명이 휘적휘적 걸어 나와 뒤로 턱짓했다.

"저것들 치워."

"……어떻게?"

"뭘 어떻게야? 내다 버려."

"산문 앞에?"

"기왕이면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려."

"……아니다. 내가 잘 알아서 치워 볼게."

"쯧."

청명이 제자들을 밀어 내고는 청매관 밖으로 빠져나갔다.

백천은 말 그대로 걸레짝(?)이 되어 있는 현당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오랑캐가 쳐들어와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청명이 놈에 비하면 오랑캐는 신선이죠."

"도문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더 서글픈 것은 그 말이 그리 틀리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여튼 저 양반들 산문 밖으로……."

그때였다.

"아니! 생각할수록 열받네? 이 새끼들아, 뭐? 화산의 정당한 장문인이 누구라고? 어디 문파 버리고 도망간 새끼들이!"

"말려!"

"잡아!"

도로 벼락같이 달려드는 청명을 보며 백자 배와 청자 배가 기겁하여 막아섰다. 그리고 저마다 청명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졌다.

"청명아! 참아라!"

"더 때리면 진짜 죽는다! 진정해라, 진정!"

"아니, 얘는 왜 뭔 일이든 정도껏이 없어!"

"당과! 누가 가서 당과 가져와!"

청명의 허리를 움켜잡은 백천이 사색이 되어 외쳤다.

"야! 저것들 빨리 갖다 버려! 사람 살린다 생각하고 빨리 내다 버려! 어서!"

"예, 사형!"

나머지 제자들이 부리나케 쓰러진 이들을 들쳐 업었다. 그리고 발에 땀이 나도록 산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본다면 더없이 각박한 행동이겠지만, 알고 보면 말 그대로 활인(活人)의 도를 실천하는 중이었다. 원시천존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기특하다고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물론 한 놈을 보고는 돌아앉았겠지만.

"자자, 청명아! 이제 진정해라."

"다 갖다 버렸다. 싹 다."

그러자 조금 잠잠해진 청명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어야 하는 건데."

"……사람답게 살자. 응? 사람답게."

"쯧."

청명이 백천을 향해 눈을 새하얗게 흘겼다.

"사숙들도 잘한 거 없어. 어디 꼴같잖은 것들이 화산에서 설치는 데 그걸 보고만 있어! 장문인이 괄시를 받으시는데!"

"……미안하다."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생각하지 말고 받아 버려. 알았어?"

"아, 알았다."

"쯧. 배고프네. 식당에 밥 남았나?"

자신을 잡은 손들을 획 뿌리친 청명이 식당 쪽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잘 해결된 건지."

결과만 놓고 보면 잘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백천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어쨌든 속은 시원합니다."

"동감."

윤종과 조걸의 말에 백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속이야 시원하다만……. 아니, 속은 정말 시원한데. 그래도……."

그때였다.

"갔냐?"

"아, 깜짝이야!"

어느새 다시 홀연히 나타난 현영 때문에 백천이 기겁을 하여 뒤로 물러섰다.

"자, 장로님!"

"그것들은?"

"……청명이 놈이 시켜서 산문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래?"

현영이 쯧쯧 혀를 찼다.

"그래도 나름 화산에 적을 두었던 이들인데, 그렇게 보내서야 쓰겠느냐?"

"하면?"

"소금 뿌려라."

"……."

"한 되 다 뿌려 버려."

"……예."

"청명이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현영이 슬쩍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당 쪽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모두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알고 보면 저분이 제일 무서워.'

'사실 청명이가 없었어도 결국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백천이 힘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여기가 도관인지 복마전인지."

누구도 그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그런데 청명이는 어디 갔냐?"

"응? 어제 그러고 방에 든 것 아니었습니까?"

"새벽 수련도 안 나왔던데?"

"예? 방에 없던데요?"

제자들의 얼굴에 불안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청명은 웬만해서는 수련을 빼먹지 않는다. 자기가 수련을 빼먹으면 분명 농땡이를 치는 사람이 나온다고, 잠을 자도 수련장에 나와서 드러눕는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청명이 아침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어딜……."

"사숙! 저기 청명이가 오는데요?"

"응?"

백천이 조걸이 가리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청명이 화산 어디에서 나타나든 이상할 게 있겠는가? 하지만 어제 돌아온 놈이 다시 산문에서 걸어 들어오는 것은 확실히 이상했다.

게다가 한 손에는 술병을 들고 말이다.

어제 들고 온 술병과 그 모양이 다른 것으로 보아, 아예 산을 내려갔다 온 것이 분명했다.

의아함을 이기지 못한 백천이 얼른 청명을 향해 달려갔다.

"어딜 다녀오는 거냐?"

"응?"

그의 물음에 청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아냐. 볼일이 있어서 산 밑에 잠깐."

백천이 눈을 찌푸린다.

"청명아. 너 혹시?"

"내가 뭐 백정이야? 그렇게 패고 또 패게?"

"……그치? 아니지?"

백천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청명이라면 제 성질을 못 이겨 다시 그들에게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백천은 청명이 그곳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미묘한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괜찮겠느냐?"

"뭐가?"

"……어쨌거나 한때는 문파에 적을 두었던 이들이다. 물론 사문을 버린 이들의 패악을 사문이 단죄하는 것이 문제가 될 리는 없지만, 그 방식이……."

삼대제자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건 까딱하면 화산의 명예에 누가 되는 추문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었다. 화산뿐 아니라 청명의 명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다.

"아, 그거?"

"그래. 나는 아무래도……."

"아. 신경 쓰지 마."

"응?"

청명이 피식 웃는다.

"안 그래도 그게 전문인 애들한테 갔다 온 참이니까. 이제 다시는 거기에 신경 쓸 일은 없을 거야."

"……."

"가자."

"……어."

청명이 휘적휘적 수련장으로 걸어가자 백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게 전문인 애들?'

누굴 말하는 거지?

청명의 뒷모습을 보며 내내 고민을 해 보아도 도통 떠오르는 데가 없었다.

백천은 슬쩍 고개를 돌려 산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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