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내가 화산의 삼대제자 청명이시다. (2)
빠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마, 막아라!"
"누, 누가 어떻게 좀 해 봐!"
선량한(?) 양 떼 사이로 굶주린 늑대 한 마리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뒈지고 싶으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것이지! 굳이 내 손에 죽겠다 이거지? 오냐! 어디 니들 대가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보자! 죽어! 죽어어어어어!"
움찔.
입구에 나란히 서서 청매관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지켜보던 백천과 다른 제자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윤종이 슬쩍 고개를 돌려 옆에 선 백천에게 말했다.
"저……. 사숙."
"음?"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
백천은 슬쩍 안쪽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시선을 돌려 버렸다.
"윤종아."
"예."
"저게 말려지겠냐?"
"……."
윤종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그도 그럴 게,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는 청명이 놈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어떻게 해 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저건 일종의 자연재해다.
태풍은 피하라고 있는 것이지, 맞서라고 있는 게 아니다. 이럴 때는 그저 숨을 죽이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게 옳다.
"그리고 이럴 줄 알았잖느냐."
"아, 아니, 그렇긴 한데……."
물론. 물론.
애초에 청명이 놈을 여기로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일을 좋게 해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저놈을 들이밀어서 곱게 끝난 일이 뭐가 하나라도 있긴 했던가? 그 소림마저 청명이 놈을 들쑤셨다가 다시없는 개망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윤종은 살짝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다짜고짜 패 버릴 줄은 몰랐는데……."
조걸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청명입니다. 언제나 상상한 그 이상을 보여 주네요."
유이설도 답이 없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백천도 사실 좀 당황하긴 했다.
'쟤는 거리낌이라는 게 없나.'
아무리 그래도 장문인인 현종의 사형이었던 사람이다. 물론 백천 역시 저들을 사문의 어른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처럼 막 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내내 망설였던 것 아닌가.
하지만 청명은 청명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정말 존경스럽다.'
어떻게 저리 뒤가 없이 날뛸 수 있는지 정말 괴이할 정도였다.
"근데 진짜 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네……."
"……부정은 못 하겠습니다.
시원한데.
정말 폭포수라도 들이켠 것처럼 속이 시원하기는 한데…….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정말?
이제는 청명에게 절여질 대로 절여져서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아직 모자란 모양이었다. 저 소금 뿌린 미꾸라지처럼 날뛰는 놈을 보고 있자니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 생각하건, 청명은 이미 이성을 반쯤 놓은 상태였다.
"어디서 개가 먹다 버린 뼈다귀 같은 것들이 화산까지 기어 올라와서는!"
청명이 눈앞을 막아선 이를 걷어차며 두 눈을 희번덕거렸다.
"뭐? 장문인 자리를 내놔?"
덥석.
그리고 달아나려는 이의 멱살을 움켜잡고는 자신 쪽으로 쭉 끌어당겼다.
"히이익……!"
사색이 되어 눈빛으로 애원하는 이의 얼굴을, 청명이 머리로 냅다 들이받아 버렸다.
빠아아악!
"아으……."
조금 전의 신음은 맞은 이에게서 나온 게 아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백천의 입에서 흘러나온 신음이었다.
백천은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이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눈은 돌릴 수 있어도 귀는 막을 수 없었다.
빠아아악! 빠아아아아악!
"끄르르르륵."
소리만으로 이렇게 완벽하게 상황이 그려질 수도 있단 말인가.
누군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까지 들은 백천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게 그냥 곱게 가지."
뭐 한다고 저놈이 올 때까지 버텨서 저 고통을 자처한단 말인가?
청명은 이제 아예 바닥에 쓰러진 이의 위로 올라타 허리를 젖히며 주먹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장문인? 장문이인? 이 새끼들이 단단히 미쳐 가지고! 화산 장문인 자리가 노름해서 따는 건 줄 아나? 누가 장문인이라고?"
주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차지게 돌아가는 허리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소림 장문인 법정이 저 모습을 보았다면
'저것이야 말로 권법의 정석이다.'
하고 외치며 연신 박수를 쳤을 것이다.
'아, 아니지. 스님이 저걸 보며 박수를 치면 안 되지.'
백천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제는 청명이 옮다 못해 별 불경한 생각까지 다 하게 된다.
쾅! 쾅!
"어쭈? 기절을 해? 누가 기절하래! 이 건방진 새끼야!"
와…….
이제는 기절한 걸 가지고도 화를 내네…….
"……인성 진짜."
"지옥의 마귀가 겁먹고 도망가겠네."
"원시천존이시여. 저놈이 도삽니다. 저놈이."
오랫동안 청명을 알아 온 이들도 새삼 놀랄 인성인데, 현당과 현법의 충격은 오죽하겠는가.
지금 두 사람은 너무 놀라 목구멍으로 심장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대, 대체 저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저런 어린놈이?'
특히 현당은 이 기경할 일에 정신이 다 혼미했다.
'저 아이들이 저리 쉽게 당할 아이들이 아닌데?'
아무리 화산을 등졌다고는 하나 그들도 한때는 화산에서 무학을 익혔던 이들. 속세를 살아간다 한들 힘이 가지는 이점을 포기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아니, 오히려 속세를 살아가기에 더욱 힘이 필요했다.
때문에 화산의 무학은 버렸을지언정, 각지의 명사들을 초청하여 후손들에게 무학을 가르쳐 왔다.
지금 청명의 아래에 깔려 얻어맞고 있는 그의 손자만 하더라도 같은 나이대의 현당은 비벼 볼 수도 없는 수준의 고수였다.
그런데 그런 이가 지금 삼대제자에게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나고 있었다.
"이 새끼가? 안 일어나?"
퍼억!
기절한 사람을 끝끝내 패서 깨운 청명은 겨우 정신을 차린 이의 멱살을 잡아 허공에 집어 던졌다.
쿠웅!
날아간 이가 청매관의 벽에 그대로 쑤셔 박혔다. 허리까지 벽 밖으로 나가 하체만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차마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멍한 눈으로 지켜보던 현당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뭐, 뭣들 하는 거냐!"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밖에 없다.
그의 후손들 중에 저 청명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천하제일 후기지수로 불리는 것은 물론이고 후대의 천하제일인 자리를 이미 맡아 놨다고 평해지는 화산신룡을 그의 후손들이 무슨 수로 상대하겠는가?
이대로는 모두가 당하고 말겠단 위기감에 현법이 우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네 이놈!"
"왜?"
하지만 청명이 태연하게 반문해 오자 말문이 막혔다.
"너, 너는……. 그러니까……."
"영감님. 엄청 운 좋게 사셨던 모양이네?"
"……뭐?"
청명이 피식 웃고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동안은 운 좋게 상황이 안 좋을 때마다 주둥아리로 모면해왔는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강호야. 강호에서는 입만 산 놈들은 강냉이가 다 털리는 법이지."
"……."
"그래. 화산이 그리웠다고?"
청명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화산이 그리웠으면 매화도 그리웠겠지. 걱정하지 마. 내가 화산의 매화를 제대로 보여 줄 테니까."
청명이 검을 앞으로 쭉 뻗는다.
"그런데 니들이 알까 모르겠는데."
이채 어린 그의 눈이 번뜩거리기 시작했다. 검을 흔들 때마다 눈빛이 더욱 살벌해졌다.
"매화로 처맞으면 그냥 처맞는 것보다 세 배는 더 아프다!"
그 말에 지켜보던 백천과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당연한 거지. 그냥 마구 휘두르는 검집에 얻어맞는 것보다야 검술로 휘두르는 검에 맞는 게 더 아픈 법이니까.
하지만 그 당연한 말이 청명의 입에서 나오면 당연하게 들리지 않는 게 문제다.
"화산에 온 걸 환영한다, 이 새끼들아!"
청명의 검 끝이 순식간에 붉은 매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현당과 현법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들도 한때는 화산의 문하였다.
저 검의 끝이 그려 내는 매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모르겠는가?
"이, 이십사수매화검법?"
하지만 놀라움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오늘따라 더없이 흉흉한 매화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이들을 거세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악!"
"아악! 내 허리! 아아악!"
세상을 살다 보면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법이다.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들은 매화꽃잎에 얻어맞아 허리가 나가는 경험은 해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은 운 좋게도 남들은 평생을 가도 해 보기 어려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아. 운이 좋은지는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문제지만.
매화의 폭풍이 순식간에 청매관을 휩쓸어 버렸다. 집기고 사람이고 걸리는 것은 모조리 박살이 나서 나뒹굴었다.
이미 천하비무대회에서 그 위력을 세상에 증명한 이십사수매화검법이다.
천하제일의 후기지수들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파훼하지 못했는데, 현당의 후손 따위들이 감히 이 검법을 맞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정신없이 맞던 이들이 걸레짝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으으으으……."
"끄으으으으……."
검집으로 맞았다고 해서 무사할 리가 없다. 전신을 작신작신 두드려 맞은 이들이 모두 부러진 팔다리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려 댔다.
그 참상 속에서 두 다리로 서 있는 이는 오로지 셋.
현당과 현법, 그리고 청명이었다.
"쯧."
검을 회수해 허리춤에 찔러 넣은 청명은 꼴같잖다는 시선으로 널브러진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혀를 찼다.
"어디 청자 배 막내한테도 두들겨 맞을 실력으로 화산에 올라?"
물론 화산 청자 배의 막내는, 막내치고는 과도하게 강하지만…… 어쨌든 청명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청명의 시선이 현당과 현법에게로 꽂혔다.
저들이 지금 두 발로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저들의 실력이 뛰어나 청명의 검을 피해 냈기 때문이 아니다. 청명이 공격의 범위에 저들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명이 목을 천천히 좌우로 꺾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까 내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보겠는데."
"……."
"사조가 어쩌고 장문인이 뭐 어쩐다고?"
두 사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왔다.
지금 다가오는 저 미친놈에게는 상식이나 예의범절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들 역시 지금 바닥에 널브러진 이들과 같은 꼴로 나뒹굴게 될 것이다.
현법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화, 화산을 떠나겠다!"
"응?"
"아이들을 이, 이끌고 화산을 떠나겠다. 그리고 다시는 화산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우리가 한때나마 화산에 적을 두고 살았다는 것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
"호오?"
청명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는다.
"그래서?"
"그, 그러니 우리를 그냥 보내 다오."
"아?"
청명이 살짝 입을 벌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그래야지."
청명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이 나오자 현법의 얼굴에 살짝 화색이 돌았다. 그는 내친김에 부드러운 어조로 덧붙였다.
"그, 그래도 우리는 네 사문의 어른이었던 이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하자꾸나."
"아, 좋죠."
청명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현당과 현법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나라고 뭐 일을 키우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아시다시피 제가 도사거든요."
"그, 그렇지?"
현법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뒤쪽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화산 제자들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망했다.'
'죽이지는 않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당과 현법은 그들의 반응을 보지 못했다.
청명이 빙글빙글 웃으며 현법에게 다가갔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게 모두에게 좋은 거죠."
"……그, 그래. 그렇지."
"그런데 말예요."
"응?"
"원래 마무리라는 게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아니죠. 일을 저질러 놓고 웃으며 끝낼 수 있으면 전쟁은 왜 일어납니까? 아실 만한 분들이 거참."
"……."
"마무리라는 건……."
청명이 다시 천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저지른 짓에 대한 대가를 다 치르고 나서야 할 수 있는 거죠. 알아듣겠냐? 이 나이만 헛 처먹은 것들아?"
청명의 눈에 살기가 어리자 현법이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 나는 연장자다! 그리고 네 사조의 배분이다."
"어. 그렇지. 연장자와 사조는 존중해야 하는 법이지."
"……."
"그러니까 니들이 처맞는 거야."
"뭐?"
청명의 검이 빛살처럼 날아들어 현법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현법의 몸이 고꾸라졌다.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가 이내 머리를 움켜잡고 좌우로 뒹굴기 시작하자 청명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어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사조 운운하고 있어! 죽어, 이 새끼야!"
저승에서 돌아온 꼰대를 상대하기에 현자 배는 너무도 어렸다.
안타깝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