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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35화 (335/1,567)

335화. 이게 왜 여기서 기어 나와? (5)

쾅!

문을 박차고 들어간 청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점소이이이이이이!"

"예에에에에에에엡!"

그 당당한 목소리를 더없이 활기찬 목소리가 받았다.

"지금 갑니다요오오오!"

입구로 달려오는 점소이의 눈이 번쩍거렸다.

이렇게 과하게 환영하는 이유가 있었다. 커다란 객잔의 내부가 텅텅 비어 파리만 날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얼마 만에 온 손님이냐.'

천하무림대회가 끝나고 숭산으로 몰렸던 이들이 우르르 빠져나가며 낙양마저 객잔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었다. 물론 그들이 제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야 나름 객잔이 꽉꽉 들어찼지만, 이제 빠질 사람은 다 빠지다 보니 평소보다 손님이 더 줄어든 느낌이었다.

"밥! 아니! 방!"

"예입! 방 말씀이시지요? 혼자 묵으십니까."

"아니."

청명이 슬쩍 뒤쪽을 돌아보며 턱짓했다.

"저 사람들 다."

"……히익?"

점소이가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객잔을 향해 대략 오십 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이 우르르 걸어오고 있었다.

거의 정수리를 땅을 뚫어 버릴 기세로 인사한 점소이가 잽싸게 말했다.

"예이! 제가 바로 방을 준비하겠습니다."

"잠깐."

"예?"

"저 수레 말인데."

청명이 가리킨 건 일행의 뒤를 따르는 수레였다.

수레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점소이는 눈을 빛내며 눈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레는 마굿간에……."

"마굿간 내려앉는 소리 하지 말고. 저 수레가 묵을 방도."

"……예?"

"수레가 묵을 방. 아니, 수레를 넣을 방!"

잘못 들었나 잠깐 멈칫한 점소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 그러니까…… 수레를 방에 넣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청명이 씨익 웃었다.

"당연하지. 저 수레가 사람보다 중요해."

"……."

뭔가 이상한 사람들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점소이였다.

"화산이라고?"

"정말 저 사람들이 그 화산파란 말인가?"

"오……."

객잔에 일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간간이 객잔에 들른 손님들까지도 힐끔힐끔 화산의 제자들을 훔쳐보았다.

과거에는 검은 무복에 눈에 띄는 매화 무늬를 새겨 넣어도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이들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화산파를 알아보고 경외의 눈빛을 보내온다.

"저 당당한 체구 좀 보게!"

"오오. 저 정광이 넘치는 눈빛."

"과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제치고 천하비무대회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화산파답구만."

"저 훌륭한 체격이 뛰어난 검술의 비결인가?"

갈 때는 산적패 취급을 받았는데 올 때는 체구가 훌륭한 검수 취급을 받고 있다.

이래서 수많은 이들이 명성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다. 같은 행동과 같은 모습이라도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니까.

대로변에서 구걸하는 이가 평범한 거지라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지만, 그가 개방의 방주라면 흠모의 시선을 보내는 것과 같다.

다만…….

'아, 씨.'

'왜 자꾸 저리 보지.'

'신경 쓰여 미치겠네.'

안타깝게도 화산의 제자들은 쏟아지는 눈길을 그리 즐기지 못했다.

꼼꼼히 수레를 단속하고 아래로 내려온 청명은 사람들의 눈이 최대한 닿지 않는 구석에 콕 박혀 있는 다른 제자들을 보며 얼굴을 구겼다.

"뭐 해?"

"……아니……."

백천이 어물쩍거리며 말했다.

"뭔가 익숙지가 않다고 해야 하나……. 한 번도 저런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소림에서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잘 싸우더만."

"그건 비무대 위잖아."

백천이 뒷머리를 긁었다.

"워낙 산속에 처박혀 있는 생활이 익숙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색한데, 저리 빤히들 보니 뭘 하지를 못하겠구나."

"……가지가지 한다."

청명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명성을 얻고 나름 고개를 뻗댈 수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산은 섬서에 있는 쭈구리 문파 아니었던가.

그러니 저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심지어 그냥 시선도 아니고 저런 초롱초롱한 눈빛을 쏴 대니.

청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모두를 바라보았다.

어색해하는 기색과 미묘하게 의기양양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익숙해져야지.'

명성을 얻으면 관심은 자연히 따라온다.

비무대회 전까지는 누구도 화산에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이제 행보 하나하나를 천하가 주목할 것이다. 이런 시선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이다.

'생각해 보면 옛날에는 엄청났네.'

예전에 청명이 사형제들과 섬서를 떠나 다른 곳에 들를 때면, 가는 곳마다 강호를 아는 이들은 모두 그들을 보기 위해 몰려 나왔었다.

하기야.

당시의 청명은 천하삼대검수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이었다. 천하에 셋밖에 없다는 검의 대가를 볼 기회가 평생에 몇 번이나 있겠는가?

"쯧쯧쯧. 이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야지. 사람이 그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청명이 배를 쭉 내밀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허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저 사람이 그 화산신룡인가?"

"이번 비무대회의 준우승자라는군. 실제로는 우승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나도 들었네. 후대의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이라는 말까지 있던데. 과연! 그래서인지 기도(氣度)가 남다르지 않은가?"

"……."

청명의 어깨가 미묘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크, 크흠."

헛기침을 한 청명이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 때는……."

"소림의 혜연도 몇백 년 만에 한 번 나오는 인재라고 하지 않는가? 그 어려운 칠십이종절예를 몇 가지나 익혔다던데. 그런데 저 화산신룡이 그 혜연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는군."

"그렇지, 그렇지. 화산과 소림의 차이를 감안한다면 몇백 년 만에 나온다는 인재는 오히려 저 화산신룡이 아니겠는가?"

"……헤헤."

청명이 결국 참지 못하고 히죽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보는 백천 일행의 얼굴은 조금씩 썩어 들어갔다.

"좋단다."

"저거, 저거. 누가 당과 준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갈 놈입니다, 저거."

"……사람이 저리 칭찬에 약해서야."

"바보."

쏟아지는 맹렬한 비난에 청명은 크게 헛기침했다.

아니, 좋은 걸 뭘 어쩌라고?

"자자! 여기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렸다. 점소이들이 양손과 팔에 접시를 잔뜩 얹고 달려 나오고 있었다.

"낙양까지 꽤 빨리 왔습니다."

"……그렇구나."

"……정신 좀 차리십시오, 장문인."

"끄으으응."

현종이 괴로운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현종이 눈물 고인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 자하신검의 존재를 말한다고 해도 소림으로 돌아가기엔 늦었다.

그보다…….

'이놈들이 내 편을 들어 줄까?'

현종이 묘한 눈으로 앞에 선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모든 사실을 있는 대로 털어놓는다면 어쩌면 현상은 은근히 그의 편을 들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영은 옛것이나 쫓는 늙은이가 애들 앞길 막는다고 길길이 날뛰겠지.

'그 꼴을 보느니…….'

현종은 에잉, 하고는 고개를 저어 버렸다.

사실 미련이야 끔찍할 정도로 남아 있다. 그러나 화산의 장문인인 그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청명의 말대로다. 그 어떤 신물도, 그 어떤 귀물도 화산의 제자들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그깟 신물 하나 얻자고 저 위험한 북해로 제자들을 보내서는 안 된다.

그건 화산의 장문인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사 훗날 죽어 선조들을 만나 석고대죄를 드리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그렇기는 한데 도무지 미련이……."

"예?"

"아니……. 아니다."

현종은 생각을 털어 내려는 듯 격하게 고개를 젓고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어떠하더냐?"

"다소 피곤해하는 듯하지만, 잘 버텨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화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걸음을 재촉하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상의 말에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사고는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다.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이해지기 마련이고, 이럴 땐 평소에 저지르지 않던 짓을 저지를 위험도…….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그때 현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자꾸만 우리 제자들을 애 취급하지 마십시오. 저 녀석들이 어디 그럴 놈들입니까?"

현영의 말에 현종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현영에게는 제자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때로는 장문인인 그보다 더욱 제자들을 믿는 것 같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청명이 놈이 그 꼴을 보고 있겠습니까? 저놈들 사이에 청명이 있는 이상, 사고를 치는 놈은 화산까지 줄에 묶여 끌려갈 각오를 해야 할 텐데요."

아…….

애들을 믿는 게 아니구나.

조금 서글픈 것은 지금 현영이 한 말에 현종이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화산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많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데 신경 쓰지 마시고 더 먼 곳을 보십시오. 그게 장문인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까?"

현종이 미소를 지으며 맞받았다.

"그래. 그리고 그런 나를 돕는 것이 너희가 할 일이겠지."

"물론입니다, 장문인."

현자 배들이 서로를 보며 마주 웃었다.

안다.

아직은 축배를 들 때가 아니다. 그리고 설사 그때가 오더라도 그 축배를 드는 이들은 여기에 있는 현자 배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오늘은 일찍 침소에 들자꾸나. 내일부터 또 부지런히 가야 할 테니 말이다."

"예, 장문인. 그럼 보중하십시오."

현상과 현영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장문인의 방을 나섰다.

'좋은 표정이로군.'

홀로 남은 현종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저들이 저리 편한 얼굴로 웃는 걸 보니 정말 화산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실감은 나지 않지만.'

때때로 현종은 허공에 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여전히 꿈결 같기만 했다.

'저 아이가 와 줘서 다행이구나.'

하지만 너무 깊은 생각에 빠지는 건 좋지 않다. 현종은 침소를 정리하려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때.

"음?"

현종은 문 쪽을 바라보다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오너라."

끼이이이익.

그의 말에 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더냐."

"……장문인."

유이설.

의외의 손님이었다. 그녀는 도통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로 현종을 바라보았다.

현종은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었다.

"그러고 보니 지척이로구나."

그러자 유이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네가 그곳에 들르지 못한 지도 꽤 오래되었겠구나. 미안하다. 장문으로서 내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래."

현종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다녀오거라. 대신 너무 늦지 않도록 하고. 내일 우리는 먼저 출발할 테니 화산에 도착하기 전에 합류하거라."

"……예. 그럼."

유이설은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가만히 밖으로 나갔다.

현종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음."

잠깐 방 안을 서성이던 그는 결국 자리를 털고 천천히 방을 나섰다.

끼익.

아직 어둠이 내린 새벽.

채비를 마친 유이설이 객잔을 빠져나왔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폐부를 파고들었다.

유이설이 슬쩍 뒤를 한번 돌아보고는 걸음을 재촉하려는 찰나였다.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유이설이 우뚝 멈춰 섰다.

"……윤종?"

윤종과 조걸, 그리고 당소소가 어느새 먼저 나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이설이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자 윤종은 가볍게 웃었다.

"장문인께서 사고를 호위하라 하셨습니다. 뭐 사실 호위는 반쯤 핑계고, 길동무나 되자는 것이죠."

"……."

"어렵겠습니까? 사고께서 진정 원하지 않으시면 가지 않겠습니다."

유이설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직 어둑어둑한 하늘을 올려다봤다.

"괜찮아."

"……사고?"

"남이 아니니까."

그녀의 시선은 어느새 다시 윤종에게로 올곧게 뻗었다.

윤종과 조걸이 흐뭇하게 웃었다.

"사고! 저도 갈래요!"

"……얘는 같이 가라는 말이 없었습니다만."

"저도요! 저도!"

"그래. 따라와."

"네!"

당소소가 활짝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을 보며 유이설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이제 가면 돼?"

"아뇨. 잠시만……."

마침 객잔문이 벌컥 열리더니 오만상을 쓴 백천이 누군가의 뒷덜미를 잡고 질질 끌고 나왔다.

"말 좀 들어 처먹어라! 이 망할 놈아! 술 좀 그만 처먹고! 언제 또 술은 이렇게나 처먹어 가지고!"

"……음냐."

"에라이!"

결국 참다못한 백천이 청명을 번쩍 들어다 유이설 앞에 냅다 던졌다.

그녀는 빠르게 떨어지는 청명을 반사적으로 툭툭 쳐서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놈은 꼭 데리고 가라시는구나. 장문인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

유이설이 어느새 다 모인 인원들을 빤히 바라보다 가볍게 웃고 말았다.

"갈게요."

"걸아! 업어라!"

"……제가 차라리 소는 업고 가겠는데."

"됐으니 업어라."

"끄응."

조걸이 청명을 주섬주섬 주워 들고는 등에 대충 걸쳐 업었다. 그리고 일그러진 얼굴로 한숨을 내쉰다.

"그래서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겁니까?"

누구도 왜 가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현종이 미리 말해 준 것도 아니건만,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산."

"……산?"

"응. 멀지 않은 곳."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출발하자. 가 보면 알겠지."

"네."

유이설을 선두로 화산의 제자들이 어둠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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