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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320화 (320/1,567)

320화. 소림이고 나발이고. (5)

"결승이다."

"미친. 진짜 결승이네."

"……아니,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기는 한데……."

화산의 제자들은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명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짜 인간 같지 않은 놈이라니까."

생각해 보면 이 대회 이전에 우승을 노리니 어쩌니 하던 이들은 모두 떨어졌다.

남궁세가의 남궁도위는 청명의 손에 개박살이 났고, 종남의 진금룡은 심지어 백천에게 패배해 탈락했다.

무당은 나름 좋은 성적을 내긴 했지만 결국은 팔강을 넘지 못했고, 많은 기대를 받았던 팽가조차 유이설에게 패하며 그 체면을 구겼다.

대체로 비무대회는 이런 식이다.

강자라고 평가받는 이들이 무난하게 올라가고 우승한다면 누가 비무대회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비무대회란 언제나 이변과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강호인들이 모두 여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결국 비무대회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천하제일후기지수라 불리면서도 미묘한 저평가를 받아 온 청명과, 비무대회 이전까지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혜연이다.

대체 누가 이런 결과를 상상했겠는가?

"진짜 괴물 같은 놈이야."

"한 번씩 난 저게 정말 사람인가 싶다."

화산의 제자들이 진저리를 쳐 대었지만, 의외로 얼굴은 의외로 모두 뿌듯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화산의 괴물이 천하의 괴물이 되고 있는데.

"세상 사람들도 한 번씩 당해 봐야 해."

"그래야 우리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겠지."

그 대화를 듣던 백천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백천의 마음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진짜 이걸 해내는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정말로 당연하게 해내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하지만 청명은 지금 이 순간까지 별다른 위기도 없이 그 모든 것을 해내어 마침내 결승까지 섰다.

그사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가?

소림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몰락한 문파 취급밖에 받지 못했던 화산이다.

심지어 화종지회에서 종남을 꺾어 낸 실적을 가지고도 금첩도 아닌 은첩을 받았었다.

소림에 와서도 비무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좋은 성적을 낼 거라는 기대나 우호적인 시선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천하의 모든 문파들이 화산을 주목하고 있다.

전각 앞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물이 그득그득 쌓이고 있고, 길을 걸으면 화산의 무복을 알아본 이들이 흠모의 시선을 보낸다.

도무지 익숙하지 않은 그 시선에 겸연쩍을 때도 있지만, 솔직히 으쓱할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명성이라는 걸 얻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까지 달라지는구나.'

어째서 강호인들이 그 작은 명성을 위해 칼부림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호에서 명성이란 그저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아니다.

명성이 발언권을 가져오고, 상대의 양보를 이끌어 낸다.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 소림이라는 이름에 눌렸던 것처럼, 이제 화산을 보는 이들도 화산이라는 이름에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사매. 몸은 좀 괜찮으냐?"

백천의 물음에 유이설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옷자락 아래로 칭칭 감긴 붕대가 보였지만, 유이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담담해 보였다.

하지만 당소소는 그 대답에 적잖은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기는요! 의원이 한 달은 정양에 들어야 한다 했단 말이에요!"

"돌팔이."

"소림의 의약당주잖아요!"

"머리 없는 돌팔이."

"……."

어…….

혹시 이설 사고가…… 혜연과의 비무 이후로 소림에 미묘한 악감정을 가지게 되신 걸까?

당소소가 내심 의심하는 사이, 백천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괜찮다면 다행이지만, 무리하지는 말거라. 부상은 완벽하게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잠깐의 답답함을 참지 못하면 오랜 시간 고생하게 된다. 그게 네가 원하는 바는 아니겠지."

"명심할게요."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백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잠깐."

전각에 모여 있던 모두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쏠리자 그는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고생 많았다."

부드럽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였다.

"이건 결승이 끝나고 해야 할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승을 하건, 하지 못하건 이 말은 미리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다들 정말 고생이 많았다."

"아닙니다, 사형."

"사숙께서도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백천이 가볍게 웃고는 말을 이어 갔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많은 것을 얻었다. 아직 결승이 남았지만, 결승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대회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다. 정진하자. 이곳에서 얻은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더 강해질 수 있다면 화산은 정말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화산의 제자들이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침 아래층으로 내려오던 현종과 장로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슬며시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 속삭였다.

"굳이 저희가 말을 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구나."

현종이 빙그레 웃었다.

'성장했구나.'

물론 과거에도 화산의 제자들에게는 의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이 나아가야 할 곳을 똑바로 보고 걷는 느낌은 아니었다.

현종의 가슴에 훈풍이 불어왔다.

이 대회를 통해 저들은 한층 더 성장했다. 이제는 위에서 굳이 잡아끌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슬쩍 눈가를 훔쳤다.

'여한이 없구나.'

되찾고 노력하였으며, 이제는 증명했다.

화산의 선조들이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다들 웃으며 잘했다고 칭찬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제는 뿌듯한 마음으로…….

"뭐래?"

그 순간 산통을 대번에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

더없이 따뜻한 눈으로 서로를 도닥이던 장로들이 떨떠름한 눈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뭐? 우승을 하건, 하지 못하건? 하지 못하거어어언?"

뿔이 난 청명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장로들은 다시 서로를 보며 푸근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서류 정리가 덜 끝난 것 같은데."

"아, 마침 나도 할 일이 있다."

"으음. 그러고 보니 나도."

현종과 장로들은 슬쩍 시선을 교환한 뒤 약속이라도 한 듯 슬금슬금 계단에서 멀어져 저마다의 방으로 향했다.

'미안하다, 얘들아.'

안타까움이 여실히 묻어나는 현종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향했지만, 그의 다리는 단호하고 재빠르게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어느새 잠에서 깬 청명이 눈을 부라렸다.

"어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정성껏 하고 있어?! 여기까지 왔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승해야지! 죽 쒀서 개 줄 일 있어?"

백천은 청명을 보며 가만히 웃었다.

이 대회에서 화산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비한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하지만 저 인성만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구나.'

이쯤 되면 인성계의 상록수라고 봐도 될 정도다. 문제는 그 일관성이 초지일관 나쁜 방향으로 향해 있다는 정도겠지.

"청명아."

"뭐?"

"네 우승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잃을 게 그리 없다는 거다. 준우승도 훌륭한 업적이 아니더냐? 우리는 네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길게도 하고 있어?"

"……으응?"

청명이 눈을 희번덕댔다.

"세상은 이등 같은 건 기억하지 않아! 오히려 일등만을 기억하지! 화종지회에서 이등한 종남이 무슨 꼴을 당했는지 잊지는 않았겠지?"

"……그걸 이등이라고 해야 하나?"

참가자가 둘인데?

"여하튼 이등은 의미가 없어!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우승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등은 꼴찌나 다름없다 생각한다고!"

강호의 만년 이등인 무당의 장문인 허도진인이 들으면 뒷목을 잡고 넘어갈 만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청명이었다.

"그리고!"

"응?"

"저 땡중 놈들이 우승하면 보나마나 재수 없게 웃으면서

'훌륭하셨습니다.'

라고 지껄여 댈 건데 나는 그 꼴 못 봐. 그 꼴 보느니 눈을 뽑고 말지!"

백천이 사형제들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그럼 그렇지.'

하는 듯한 얼굴로 청명을 향해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낮게 헛기침을 한 백천이 청명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묻겠는데."

"응?"

"너는 우승할 자신이 있냐?"

"……."

청명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저기, 사숙."

"응?"

"지금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말했다.

"여기서 우승한다고 뭔가 대단한 걸 이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이건 그냥 말 그대로 후기지수 비무대회에 불과해. 각 문파의 진정한 전력은 일대제자와 장로들이야. 우리가 여기서 우승한다고 해도 명성을 가져올 뿐 아직 구파의 말석에도 못 들어."

백천이 입을 닫았다.

청명의 냉정한 말이 그를 단박에 현실로 끌어내렸다.

"후기지수가 가장 강하다? 그건 훗날에 문파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지, 미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해. 이건 그냥 거쳐 가는 과정일 뿐이야. 이 대회를 바탕으로 사숙들이 더욱 강해지지 못한다면 나중에는 오히려 비웃음거리가 될걸?"

느슨하게 풀렸던 실이 바짝 조여지는 느낌이었다.

"이 대회는 화산의 시작점일 뿐이야. 나는 밥상에 올라온 건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니까, 모조리 챙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거야."

"……그렇지. 밥상 아래에 있는 술병도 놓치지 않겠지."

"헤헤. 그렇다고 그렇게 칭찬하면 조금 쑥스러운데."

"칭찬 아니다, 인마."

진심으로 쑥스러워하는 듯한 청명의 모습에 백천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이건 그저 통과점일 뿐이지."

해야 할 일이 넘쳐난다.

그들의 소망은 화산을 천하제일문파로 만드는 것. 그렇다면 이건 이제 겨우 시작점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백천은 가슴속에 싹튼 하나의 불안을 지울 수가 없었다.

'청명이 정말 혜연을 이길 수 있을까?'

이전이었다면 절대 이런 의심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청명은 괴물이니까. 너무도 강하니까.

하지만 혜연의 무상대능력을 보고 나니 근본적인 의문이 하나 생겼다.

'화산의 무학으로 정말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를 감당할 수 있나?'

이건 사람의 강함과는 별개의 문제다.

한 사람은 긴 장검을 들고, 다른 사람은 짧은 종이칼을 들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실력과 관계없이 승패가 결정 나 버릴 것이다.

아무리 청명이 강하다고 한들, 소림의 무학이 화산의 무학을 능가한다면 혜연에게 패할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지 않겠는가?

백천의 뇌리에 유이설의 검기가 혜연의 무상대능력 앞에 눈처럼 녹아내리던 광경이 다시 떠올랐다.

"청명아, 이건……."

그때였다.

벌컥!

문이 과격하게 열리더니 백상이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혼이 나간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백천을 발견하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소리쳤다.

"사, 사형!"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백천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일이냐?"

"소, 손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응?"

백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겨우 손님이 왔다니. 대체 그 손님이 누구기에 저리 호들갑을 떤다는 말인가?

"누구?"

"그, 그게……."

그 순간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두 사람이 천천히 들어섰다.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백천은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바, 방장?"

그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지금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소림의 방장인 법정이다.

그리고…….

"혜연?"

그 옆에 선 이는 분명 혜연이었다.

청명 역시 눈을 살짝 크게 치떴다.

얼레?

여기서 니들이 갑자기 왜 나오지?

으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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