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그 거지 새끼 지금 어디에 있어? (2)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주루 안.
"……끄으으으."
종팔의 얼굴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하지만 땀 같은 건 딱히 문제도 아니다.
찐빵처럼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뼈마디가 쑤셔 오는 몸에 비하면 그런 게 대수겠는가?
무엇보다 머리를 어찌할 수가 없다. 머리를.
저 미친놈은 사람 대가리에 무슨 집착증이라도 있는지 사람을 후려 까는 와중에 중간중간 꼭 머리를 같이 갈겼다.
'미친놈이…….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세상에.
화산신룡이 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가?
"허리 내려가지?"
종팔이 재빨리 무릎을 펴며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사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뒷짐을 지는 것 정도는 무인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하지만 일각이 넘도록 얻어맞은 몸과 그의 허리 위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의 존재가 합쳐지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끄으으으으……."
"이게 힘든 척하네? 미쳐 가지고?"
"……."
머리와 발끝만으로 몸을 지탱하는 그의 위에서 청명이 허리를 찰싹찰싹 때렸다.
"자세 똑바로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쯧. 나도 성질 많이 죽었다."
"……."
"예전 같았으면 너는 지금 눈도 못 뜨고 있어. 전신 뼈마디를 그냥 발골해 버렸을 텐데. 쯧, 내가 너무 착해졌지. 아암. 착해졌지."
"……."
"가만히 놔뒀으면 좋게 좋게 끝날 일인데, 왜 내 대가리……. 아, 생각하니 또 열받네."
청명이 종팔의 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의 옆구리를 그대로 뻥 걷어찼다.
"꺄울!"
종팔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생각할수록 열받네! 어디 이 새끼가!"
청명이 나가떨어진 종팔을 인정사정없이 밟기 시작했다.
"아악! 악! 대협! 악! 거기! 거긴 안 됩……. 아악!"
"그 어린 거지가 팰 데가 어디 있다고 복날 개 패듯이 패고 자빠졌어. 야, 이 새끼야! 내가 살면서 누구한테 코피 터지도록 맞아 본 적이 없던 사람인데!"
아. 물론 천마는 예외.
그 새끼는 사람이 아니었어.
"확 마! 둘둘 묶어다가 절벽에서 던져 버릴라!"
종팔을 밟는 발길이 아주 신명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즐거운(?) 광경을 지켜보던 구칠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두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왕초가 얻어맞는다고?'
종팔이 누군가?
젊은 거지들 중에서 손에 꼽게 강한 거지가 바로 종팔이다. 심지어 그 재능을 방에서도 인정하여 벌써 사결을 달지 않았는가?
썩어 빠진 인성을 논외로 두면 개방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인재다.
그런데 그 종팔이 지금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복날 개처럼 두들겨 맞고 있다.
어, 저게…….
'당연하긴 한데.'
당연하지.
저 초삼이가 진짜 화산의 화산신룡이라면 종팔이 아니라 종팔 할애비가와도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짜 저 녀석이 화산신룡이라고?'
대체 그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왕초에게 얻어맞아서 미친 소리를 늘어놓다가 홧김에 움막을 나간 어린 거지가 불과 삼 년 만에 화산신룡이 되어 나타난다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구칠은 혹시나 하여 다시 눈을 비벼 보았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악! 아악! 악! 대협! 살려 주십쇼, 대협!"
"대협? 대혀어어어업? 이 새끼야 내가 말코 도사다, 이 새끼야! 대협은 얼어 죽을! 나 대협 안 해!"
"도장! 도장 살려 주십시오!"
"말코라니까, 이 새끼야!"
"마, 말코! 살려 주십시오!"
"이게 미쳤나. 어디 사람을 말코라고 불러!"
"아, 어쩌라고!"
콰득!
종팔이 발작하듯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얼굴에 틀어박힌 발에 의해 다시 곱게 뉘였다.
"끄르르륵."
그가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었다.
"하. 이 새끼가 또 엄살 부리네? 너 이제……."
그 순간이었다.
턱.
누군가 청명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응?"
청명이 돌아보니 백천이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만해라."
"왜? 뭘 그만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그렇게 때리는 건 아니다. 저 사람이 화산의 문도라면 이해하겠지만, 저 사람은 개방의 문도가 아니더냐."
"……."
"이 이상 때리면 개방과 화산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아니, 이미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니 이 정도만 해 두어라."
그 말에 청명이 종팔의 얼굴에서 발을 떼고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얼굴에 뚱한 기색이 가득하지만 일단은 멈출 생각인 모양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
이제 더 맞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는지 종팔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연신 백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백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다 못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을 이렇게나 패는 거냐? 네가 좀 생각이 없고, 충동적이고, 인성이 나쁘고, 성격이 더러운 데다 위아래를 모르는 망종 같은 놈……."
"어디까지 하려고?"
"……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경우 없이 사람을 패지는 않을 텐데. 말해 봐라. 대체 무슨 일이냐?"
청명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음."
"내가 아직 새끼 거지일 때, 그러니까 화산에 오기 전에."
"그래."
"저 새끼한테 제대로 맞은 적이 있는데."
"……맞아?"
"그때는 약했어."
"……약해?"
뭔 소리냐, 이놈아.
너는 태어나자마자 호랑이를 후려갈겨 타고 다닐 놈인데.
"……하여튼 그랬는데, 그때 저 새끼가 내 대가리를 몽둥이로 제대로 깠거든."
"……대가리?"
청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워낙 강렬한 경험이라 그게 잊히지가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내가 대가리에 집착하는 걸지도 모르겠어."
백천이 청명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 그래?"
"어. 하, 그때 정말 뒈질 만큼 맞았는데. 이 정도로는 내가 분이 안 풀리는……."
하지만 청명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백천이 말을 듣다 말고 종팔 쪽으로 몸을 획 돌렸기 때문이다.
그 눈에 어린 시퍼런 살기를 보며 종팔이 움찔했다.
"대, 대협?"
"너냐?"
"예?"
백천의 발꿈치가 다시금 종팔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커다란 소리와 함께 종팔이 풀썩 쓰러졌다. 그러자 백천이 아예 그의 위에 올라타선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이 개 같은 새끼야! 너 때문에! 어? 너 하나 때문에 지금 화산에 희생자가……! 이 새끼야!"
윤종과 조걸, 그리고 백상도 눈을 까뒤집고 종팔에게 달려들었다.
"이 새끼 때문에!"
"으아아아아! 원수! 불공대천의 원수!"
"죽여 버리겠다!"
화산의 제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종팔을 밟아 대기 시작했다.
심지어 종팔의 머리맡에 자리 잡은 유이설은 쪼그려 앉아 검집으로 종팔의 머리를 콩콩콩 내리쳤다.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대가리."
"아아아아아아아악!"
종팔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매질은 끊이지 않았다.
"이건 백자 배의 몫! 이건 청자 배의 몫! 이건 남궁도위의 몫이다!"
백천의 주먹이 신명나게 종팔의 턱을 돌려 버렸다.
얻어맞느라 눈앞에 별이 번쩍이는 와중에도 종팔은 생각했다.
도대체 화산파인 백천이 왜 남궁도위의 몫까지 챙기는가?
하지만 지금은 그 의문을 입 밖으로 꺼낼 틈이 없었다.
그때 그 광경을 바라보던 청명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어, 저기……."
"왜!"
"그러다 죽겠는……."
"넌 빠져!"
"……."
모두가 눈을 까뒤집고는 인정사정없이 매질을 퍼부었다.
"내가 너 때문에 대가리가 터질 뻔했다 이거지?"
"사숙! 이 새끼 화산으로 끌고 갑시다!"
화산 제자들의 눈에서 이성이 사라졌다.
지난 삼 년간 그들의 머리가 성할 날이 있었던가?
수련 제대로 안 한다고 맞고, 초식 틀렸다고 맞고, 심심하다고 맞고, 진도가 느리다고 맞고.
그런데 그 길고도 험했던 수난의 날들이 다 이 거지 새끼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니 입에서 불도 뿜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애 대가리를 까서! 이 새끼야!"
"네가 안 팼으면 저놈이 화산에 안 왔다는 이야기잖아!"
"죽어! 죽어! 죽어어어!"
청명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아니, 내가 패야 하는데……."
왜 쟤들이 더 열받아 보이지?
왜?
바로 그때였다.
쾅!
문이 부서져 나갈 듯 과격하게 열리더니 누더기를 입은 거지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뭐 하는 짓들이냐!"
"저, 저런!"
"감히 개방의 제자를 건드리다니! 네놈들이 정신이 나갔구나!"
화산의 제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 손에 타구봉을 든 개방의 호걸들이 수십이나 주루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얼굴에 노화가 가득한 것으로 보아, 이미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고 온 모양이었다.
"저, 저런!"
"사람을 저렇게나 구타하다니!"
앞쪽에 선 거지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종팔을 보며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요?"
백천이 슬그머니 일어나 옆으로 비켜섰다.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입을 다물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그대들은 화산의 제자 같은데? 맞소이까?"
백천이 한숨을 쉬고는 앞으로 나섰다.
"화산의 백천이라 합니다."
그가 포권을 했지만, 상대는 그의 포권을 받아 주지 않았다. 예를 차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설명해 보시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화산의 제자들이 개방의 제자를 집단으로 구타했는지.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화산은 개방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것이외다."
백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게……."
그리고 막 그가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아. 비켜 봐! 뭘 이렇게 길을 막고 있어!"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입구를 틀어막고 있던 거지들이 일사불란하게 길을 터 주었다.
'거물이 오는 건가?'
백천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의 앞에 선 이도 육결개. 개방에서는 결코 신분이 낮지 않은 이다.
그런데 더 큰 거물이 온다면 최소한 칠결개는…….
"어?"
"응?"
휘적휘적 걸어 들어오는 거물 거지를 본 화산의 제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간 큰 놈들이 감히 우리 거지 새끼를 건드렸느냐. 내가 거지가 얼마나 무서운……. 화산신룡?"
"……."
"……."
새로이 나타난 칠결개.
그러니까 개방의 화음분타주 홍대광이 고개를 갸웃하며 청명을 바라보았다.
"너 왜 여기에 있냐?"
"왔어요?"
홍대광이 바닥에 널브러진 종팔과 청명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뭔 일이냐? 저놈은 종팔이잖아."
"네."
"데려오라고 해서 데려다 놨더니. 이게 뭔…….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을 좀 해 봐라."
백천과 구칠이 대충 정황을 설명해 주었다.
잠시 후 홍대광이 무거운 눈으로 청명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네."
"저 거지가 예전에 너를 후려 깠다?"
"네."
"그래서 지금 네가 후려 깠다?"
"네."
홍대광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
그의 얼굴에서 어마어마한 노화가 뿜어져 나왔다.
"아니, 저 거지 새끼가 개방 망하게 하려고 작정했나?!"
순간 경공을 전개해 경악할 속도로 땅을 박찬 홍대광이 그 속도 그대로 달려들어 이제 겨우 몸을 일으킨 종팔의 턱을 걷어 차 버렸다.
"아아악!"
영문도 모른 채, 얻어맞은 그는 다시 바닥으로 쓰러졌다.
홍대광이 씨근덕거리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새끼야! 차라리 관에 불을 지르지! 뭐? 누굴 패? 이 새끼야, 솔직하게 말해 봐! 너 개방 망하게 하려고 마교에서 온 첩자지!"
"아악! 분타주! 아닙…… 아닙니다!"
"아니긴 뭘 아니야!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이 새끼야!"
홍대광이 눈을 까뒤집고 종팔을 밟아 대었다.
슬슬 눈치를 보던 화산의 제자들도 홍대광과 합류해 다시 종팔을 밟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화산과 개방의 합작이 벌어졌다.
기세 좋게 몰려왔던 개방도들은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뭔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나도 모르지.'
'뭔가…… 뭔가 벌어지고는 있는데.'
얻어맞는 이.
둘러싸고 패는 이.
그리고 지켜보는 이.
그 기묘한 공존 속에서 청명이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만 패라, 얘들아.
……그러다 진짜 죽어.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