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나 때는 안 그랬는데! 나 때는! (2)
꾸욱.
허리의 요대를 꽉 조인 남궁도위가 자신의 애검을 내려다보았다.
스르르릉.
천천히 뽑혀 나온 검이 햇빛을 받아 희게 빛난다.
다시 검을 밀어 넣은 그는 동경 앞에 서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하늘색의 무복과 가슴팍에 새겨진 구름 문양, 그리고 창천(蒼天)이라는 두 글자가 오늘따라 더욱 돋보이는 느낌이다.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그는 이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동경에 오만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은 미남이 보인다.
"표정을 조심하라 하지 않았더냐?"
그때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남궁도위가 고개를 획 돌렸다.
"아버님."
그의 아비이자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황(南宮晃)이었다.
"네가 속으로 오만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은 괘념치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순간 너를 따르던 이들이 적이 될 것이라 누누이 말했거늘."
우렁우렁한 남궁황의 목소리에 남궁도위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남궁황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위에 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세인들은 제가 가진 커다란 흠에는 눈을 감지만, 위에 선 이의 조그마한 흠은 결코 참아 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타인을 지배하는 위치에 선 이는 언제나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남궁의 성을 타고난 이의 자세다."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남궁황이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이 이내 다시 언짢은 듯 굳어졌다.
"그나저나 구파일방 놈들이 같잖은 수작질을 부리는구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재추첨이라니. 명분이야 좋다만 실제로는 어떻게든 너를 떨어뜨리겠다는 거겠지."
남궁도위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떠냐? 네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아버님."
남궁도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소림의 혜연이든, 화산의 청명이든 우승을 위해서 언젠가는 꼭 꺾어야 할 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게 조금 빨라진다 해서 뭐가 다르겠습니까?"
"그래. 그래야 남궁의 후예라 할 수 있지."
남궁황의 얼굴에 옅은 비웃음이 어렸다.
'어차피 그놈들은 화산의 청명이든 우리든 누가 떨어져도 손해 볼 게 없다는 의미겠지.'
간악한 구파 놈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그때 남궁도위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사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저 화산이 불만을 표하지 않는데 남궁이 나서서 불만을 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제가 화산신룡을 꺼려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다."
아들의 말에 남궁황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어떠냐. 이길 자신이 있느냐?"
남궁도위는 슬쩍 미소 지으며 답했다.
"화산의 청명. 분명 강하더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런 가벼운 검으로는 제왕의 검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천하제일검문은 화산도 무당도 아닌, 바로 남궁이라는 사실을 제가 오늘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래."
남궁황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걸로 됐다."
전각을 나온 남궁도위를 중심으로 하늘빛 무복을 입은 남궁세가의 식솔들이 도열했다.
"몸은 좀 어떻더냐?"
"최상입니다."
"형님! 형님만 믿습니다."
"물론이다."
"소가주의 어깨에 남궁세가의 명예가 걸려 있소. 결코 상대를 좌시해서는 안 되오!"
"물론입니다, 숙부님."
남궁도위는 연신 쏟아지는 격려와 덕담에 일일이 화답을 해 주고는 남궁황의 걸음에 맞춰 비무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각을 벗어나 조금 걷자 드넓은 광장이 나왔다. 그 광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궁세가다!"
"창천남궁세가(蒼天南宮世家)가 왔다!"
"오오오오오!"
경탄과 찬사가 그들에게 쏟아졌다.
이것이 명문의 힘.
오대세가의 수장으로 불리는 남궁세가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강호제일 명문가 자리를 지켜 왔다. 강호에 조금이라도 적을 둔 이라면 창천남궁세가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할 수가 없다.
그러니 모두가 동경 어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 남궁도위는 쏟아지는 환호에도 딱히 즐겁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사람들의 앞에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가문의 가르침 때문에 표정을 완전히 일그러뜨리지는 못했지만, 그의 내심은 무겁게 가라앉아 갔다.
이유?
그건 무척 간단하다.
"화산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화산이 왔다!"
"화산신룡! 화산신룡이다!"
"청명과 화산파가 왔다!"
남궁세가에게 쏟아지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마어마한 함성이 소림을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남궁도위는 저도 모르게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진금룡과 백천. 그리고 청명과 이송백의 비무가 있은 후, 화산의 인기는 하늘을 뚫어 버렸다.
대회 초반이 지나면서부터 화산의 인기는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구파일방이었다가 몰락하여 제외된 화산파가 뼈를 깎는 인내 끝에 화려하게 귀환했다. 이는 지켜보는 강호인들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였다.
모두가 내심 화산이 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콧대를 꺾어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 기대가 종남과의 비무에서 말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더없이 화려하고 멋진 화산의 매화검법을 모두 앞에서 펼쳐 보인 백천의 이름이 세인들의 입에 쉴 새 없이 오르내렸고, 종남의 이송백을 맞아 모두의 시선을 앗아 가 버린 청명의 이름은 그 이전보다 배로 회자되었다.
그러니 아무리 남궁세가라 할지라도 인기로는 화산을 당해 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슬쩍 인상을 찌푸린 남궁도위가 걸어 들어오는 화산파를 바라보았다.
"헤헤. 뭐 대단한 사람 왔다고. 헤헤헤헤."
가장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청명의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경박하기 짝이 없군.'
고수는 무게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청명은 지금까지 그가 본 어떤 이보다 경박했다. 도무지 강호에 명성을 떨치는 신진고수이자 천하제일후기지수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도 오늘까지다.'
어울리지 않는 위명은 본인에게 해가 되는 법.
청명을 위해서라도 오늘 저자에게 패배를 알려 주어야 한다.
그리 생각을 굳힌 남궁도위가 가라앉은 눈으로 청명을 노려보았다.
남궁황이 그런 남궁도위를 보며 낮게 말했다.
"만만치 않은 자다."
"……."
"상대를 경시하지 마라."
"하지만 겁을 먹을 필요도 없다. 그리 말씀하고 싶으신 거겠죠."
남궁황이 그 대답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가서 보여 주고 오거라. 제왕의 검이 무엇인지."
"물론입니다."
남궁도위가 한 손으로 검을 움켜잡고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랐다.
쏟아지는 환성을 받으며 비무대 위로 오른 그는 비어 있는 건너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무례하긴.'
지금까지 누구도 이렇게 남궁도위를 기다리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저 청명이라는 이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 텐데도 딱히 서두름이 없어 보였다.
그의 눈에 사형제들과 왁자지껄 떠들던 청명이 미적미적 비무대로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청명의 등에 대고 사형제들이 눈을 흘기거나 주먹감자를 먹인다.
'개판이군.'
남궁도위는 일그러지는 얼굴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찌 무파가 저리 경박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고로 무학이란 몸가짐을 바로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법이다. 하지만 저 화산이라는 곳은 숫제 산 도적 같은 것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
저래서야 흑도와 다를 것이 없잖은가?
"기다렸어요?"
기다렸냐고?
남궁도위가 인상을 찌푸리며 건너편에 선 청명을 바라보았다.
슬쩍 옆으로 뻗어 나온 다리.
몸은 분명 탄탄해 보이지만 자세가 삐딱하고 구부정해서 그런지 영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나름 준수하게 생긴 얼굴임에도, 얼굴에 잔뜩 배어 있는 심술과 짜증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남을 이끄는 이는 그 몸가짐과 표정 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 순간 고스란히 이해하게 된 남궁도위였다.
이런 이를 보고 아랫사람들이 당최 뭘 배우겠는가?
"후."
짧게 심호흡을 한 남궁도위가 청명을 향해 반듯하게 포권 했다.
"남궁세가의 남궁도위라 하오."
"화산의 청명이에요."
심드렁한 표정과는 다르게 청명은 나름 예의를 차려 맞포권을 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남궁도위의 눈에 살짝 이채가 어렸다.
'그래도 아주 경우가 없지는 않군.'
건성으로 예를 표하는 이와 나름의 마음을 담아 예를 표하는 이를 구분하지 못할 남궁도위가 아니었다.
확실한 것은 저자의 내심이야 어떻든 예는 제대로 배웠다는 점이다.
살짝 기분이 풀린 남궁도위는 천천히 검을 뽑았다.
"화산의 검이 무척이나 날카로운 것 같던데."
"뭐 보통이죠."
"하나 그 검이 내게도 통할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남궁의 검은 화려함에 휘둘리지 않소. 그대는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오."
"아. 네에. 네에."
청명이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검을 뽑았다.
"거 알았으니 빨리 시작하죠. 내가 지금 마음이 좀 급해서."
"평정을 되찾는 게 좋을 거요. 나는 지금까지 그대가 상대한 적들과는 다를 테니까."
"네. 많이 다르죠. 참 많이요."
청명은 진심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디 마교 놈들 소굴에다 던져 놓으면 앉아서 덜덜 떨다 오줌 싸게 생긴 놈이 자꾸 딴지를 걸어오니 그럴 수밖에.
'그냥 대가리부터 깰까?'
잠깐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니지. 장문인이 좀 상대해 주는 척하라고 했으니까.'
청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침부터 현종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요즘 자신을 보는 타 문파 장문인들의 눈초리가 영 심상치 않으니 적당히 검을 섞는 시늉은 해 주라는 것이었다.
그 말만 아니었으면 저런 놈은 그냥 걷어차 날려 버렸을 텐데.
앓느니 죽어야…….
"이해를 못 하는군."
그때, 남궁도위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
"나는 지금까지 그대가 상대했던 이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고 했소."
남궁도위의 입가에 미묘한 비웃음이 어린다.
"그들의 검을 생각하고 나를 상대한다면 크게 낭패를 볼 것이오. 나는 그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오?"
청명이 묘한 눈으로 남궁도위를 훑었다.
"아, 격이 다르다 이 말씀?"
"그들을 비하할 생각은 없소. 하지만 냉정히 본다면 그들만 한 검수야 세상에 넘쳐나지. 훗날 천하제일에 오를 자격을 갖춘 이는 몇 되지 않소."
남궁도위가 턱짓으로 청명을 가리킨다.
"그쪽이나 나 정도가 그렇겠지."
"호오?"
청명이 고개를 두어 번 갸웃하고는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음?"
"본명이 혹시 은룡이라든가?"
"……그게 무슨 뜻이오."
"아니, 뭔가 재수 없는 게 너무 비슷해서. 그쪽 핏줄인가 했지."
"재수가 없다?"
기분이 상한 남궁도위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청명은 나름대로 억울했다.
'잘생기고 재수 없으면 진가(家)지.'
금룡이가 그렇고, 동룡이가 그러니 은룡이도 그렇겠지.
남궁도위가 애써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쪽의 오만함도 충분히 이해하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지 못했겠지. 저 화정검이나 종남의 진금룡, 이송백 따위는 그쪽을 만족시킬 수 없었을 테니까."
가만 듣던 청명의 고개가 살짝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그쪽은 다르다?"
"그야 겪어 보면 알겠지. 하지만 확실히 실감시켜 드리리다. 격의 차이라는 게 무엇인지."
청명이 빙그레 웃었다.
"아, 그러니까 진금룡도 우리 백천 사숙도, 이송백도 네 상대는 아니다. 이거지?"
아주 자연스럽게 청명의 말이 조금씩 짧아진다.
"당연한 말을."
"네가 천재니까?"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오. 다만……."
"뺄 것 없어."
청명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남궁도위의 말을 잘랐다.
"너는 천재니까. 뭐, 난 인정해."
"흐음. 낯부끄럽소만."
"지랄한다."
"음?"
여유롭게 미소 짓던 남궁도위의 얼굴이 굳어졌다. 더불어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청명은 좌우로 우드득 소리를 내 가며 고개를 꺾어 대고 있었다.
"하여튼 요즘 애새끼들은 희한해. 어디서 말 돌리는 법만 배웠나. 그래서, 네가 천재라 여기 있는 애들이 다 같잖아 보인다 이 말 하고 싶은 거 아냐?"
"그저 가진 게 다를 뿐이오."
"이거 웃긴 새끼네?"
청명이 피식피식 웃었다.
"뭐 좋아. 마지막으로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시오."
"형제는 있어?"
"……그게 왜 궁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있소이다."
"그럼 됐어."
청명이 검을 다시 검집에 꽂고는 검집째 들어 올렸다.
화산 제자들 쪽에서 경악하는 음성이 튀어나왔지만, 남궁도위는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뭐 어쨌든 시작할 거니까. 괜히 나중에 기습이 어쩌고 하지 말고."
"물론이오. 선공하시오."
"이야. 선공까지 양보하시고. 이거 황송해서 제대로 공격해 드려야겠는데."
청명이 이죽이기 시작한다.
먼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백천 무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 사숙!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말려. 비무 중인데."
"저 새끼 저러다 죽어요."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예."
"……그래.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백천이 불안한 시선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뭔가를 시도할 틈 따윈 없었다.
청명이 검을 번쩍 들더니 남궁도위를 향해 빛살처럼 돌진한 것이다.
쇄애애애애액!
검이 어마어마한 파공음을 뿜어내며 남궁도위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남궁도위는 그 속도와 기세에도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검을 들어 올렸다.
"뻔한 수작!"
이 상단세로 상대들을 공격하는 건 벌써 몇 번이고 봤다.
이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머리를 공격하는 것에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인다.
선공을 양보하면 머리를 노려 올 것이라는 건 이미 계산을 끝마쳤다.
'이만한 도발에 넘어오다니. 얕아 빠졌군!'
남궁도위의 검이 청명의 검을 정확하게 막아 갔다.
'검이 마주치는 순간 비껴 흘리고 옆구리를 벤…….'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억!
그 순간 끔찍한 소리가 비무대를 넘어 소림 전체로 퍼져 나갔다.
"히이이이이이익!"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 아아……. 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관객석에서 괴로워하는 비명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일부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고, 일부는 양손을 내려 사타구니를 움켜잡았다.
하지만 반응이 어떻든 간에 모든 이들의 시선은 단 한곳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남궁도위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로,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발.
청명이 뻗은 발이 정확하게 남궁도위의 사타구니에 틀어박혀 있었다.
"……끄륵."
남궁도위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양손으로 사타구니를 움켜잡은 채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그 처절한 비명에 장내의 남자들은 차마 그 모습을 더 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버렸다.
화산의 제자들 역시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진저리를 쳤다.
"으……. 차라리 죽이지."
"죽이기만 할 줄 알았는데. 그래, 저놈이 그걸로 끝내 줄 리가 없지. 으아아아……."
"저 마귀 같은 놈. 진짜 악랄하다, 악랄해."
하지만 그들의 비난이 들리지 않는 청명은 그저 이죽거리며 남궁도위의 골반을 검집으로 톡톡 펴 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형제 있다며. 대는 이을 수 있을 거야."
응?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낄낄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