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299화 (299/1,567)

299화. 네가 불씨가 될 수 있을까? (4)

눈.

차갑기 짝이 없는 시선이 이송백을 내리누른다.

그 눈과 마주하는 순간, 이송백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에 전율했다.

더없이 날카롭게 벼려진 비수가 심장에 맞닿아 있는 것 같은 감각.

'대체…….'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대하는 이가 어떤 이인지.

하지만 지금의 일격과 저 서늘한 눈을 본 순간 이송백의 생각은 완전히 뒤틀렸다.

'어쩌면 나는 이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우드드득!

"끄윽."

청명이 검을 내리누르자 이송백의 허리가 뒤틀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뭘 추구한다고?"

싸늘한 목소리가 이송백에게 와 닿았다.

"주둥아리로 지껄이는 건 더없이 쉽지. 하지만 그걸 실천하는 건 별개의 문제야. 너 따위가 뭘 해내겠다고?"

쾅!

청명의 손목이 살짝 움직이며 맞닿은 검을 강하게 밀어 낸다. 이송백은 폭풍을 맞은 가랑잎처럼 속절없이 뒤로 날 듯 튕겨 나갔다.

콰당!

바닥에 처박힌 그는 이내 이를 악물고는 몸을 일으켰다.

덜덜덜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자 검을 사선으로 떨치고 걸어오는 청명의 모습이 보인다.

이송백이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모습이 저리 잘 어울리는 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

청명이 가라앉은 눈으로 입을 열었다.

"하루에 만 번 검을 휘두른다. 그건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야."

느릿한 걸음.

"하나 세상은 매일이 같지 않다. 때로는 폭풍우가 치고, 때로는 폭설이 내리고, 어떤 날은 나 같은 놈을 만나게 되지. 그러면 그날 이후로도 네가 계속 검을 휘두를 수 있을까?"

"……."

이송백이 청명에게 검을 겨눈다.

"말로는……."

청명의 검이 다시 한번 강렬하게 내리쳐졌다.

쿠우우우우웅!

검을 들어 청명의 내려치기를 막아 낸 이송백의 입술을 비집고 억눌린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못 할 게 없지."

콰아아아아아아앙!

청명의 검이 다시 이송백을 향해 떨어진다. 검이 부러질 듯 휘어지고 뼈가 비명을 질러 댄다.

검을 잡은 손아귀가 찢겨 나가 피가 흐르고, 꽉 깨문 입술이 터져 입 안에 비릿한 쇠 맛이 감돈다. 실핏줄 터진 눈은 피라도 흘릴 듯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청명은 그런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무심한 얼굴.

평소의 그답지 않은 무감정한 표정이 이송백의 심혼을 얼려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청명이 맞대고 있던 검을 떼고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다시 이송백을 향해 검을 찔러 왔다.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동작.

마치 연습하듯 지르는 검이었다.

하지만 그 검을 맞이하는 이송백의 감상은 전혀 달랐다.

'뭐!'

이송백은 필사적으로 몸을 뒤틀었다.

촤악.

청명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목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검집을 두른 채로 찌른 검인데도, 그 풍압만으로 목의 피부가 찢겨 나가 붉은 선혈이 방울방울 흩날렸다.

'대체 어떻게?'

이송백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뒤로 물러나 상단세를 취하는 청명의 모습뿐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본 것은 어느새 그의 목 바로 앞까지 다가온 검이었다.

중간이 없다.

아니. 아니다!

너무도 완벽한 동작으로 구현된 검이다 보니 검을 찔러 오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한순간에 벌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완벽.

그가 추구해야 할 것.

'이렇게나 멀었다고?'

이송백의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목표를 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해 몸이 으스러지도록 노력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까마득한 목표까지의 거리를 실감하고도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해야 할 목표를 자신의 눈으로 봐 버린 이송백은 그 끝없는 길 앞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잡념."

쾅!

순간적으로 비어 버린 옆구리로 청명의 검이 파고든다.

우드드득.

갈비뼈가 통째로 부러져 나가는 것과 같은 충격과 함께 이송백이 피를 토했다. 그리고 아이가 던진 돌멩이처럼 비무장 바닥에 처박혔다 튀어올랐다.

"끄윽."

쿵!

형편없이 널브러진 그가 비무장 바닥을 움켜잡았다. 코와 입에서 연신 선지피가 흘러내렸다.

부들부들.

하지만 그럼에도 이송백은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힘들어도 의지 하나로 버텨 낸다?"

청명이 차갑게 이죽거렸다.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세상에 고수 아닌 이가 어디에 있지? 일어나. 어디 증명해 봐. 네가 완벽 운운할 자격이 있는 이라는 걸."

이송백이 검을 들어 올렸다.

무릎이 휘청대며 꺾이고, 검을 잡은 손이 제멋대로 후들거렸지만, 이송백은 어떻게든 상단세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하……. 하아아앗!"

그가 기합을 내지르며 청명에게로 달려들었다. 그의 검은 동시에 열 개의 검영을 만들어 내며 청명의 전신 요혈을 노리고 들었다.

후들거리는 몸과 달리 새파랗게 빛나는 검기는 더없이 또렷하고 선명했다.

하나.

"어설퍼."

청명은 자세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 검영들을 일일이 맞받아쳤다.

바닥을 디딘 발은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고, 곧게 뻗은 허리엔 흔들림이 없다. 움직이는 건 오로지 느슨하게 풀린 어깨와 더없이 절도 있게 뻗어졌다 회수되는 검뿐이었다.

쾅쾅쾅쾅!

이송백의 검이 뒤로 휙 밀려난다.

어깨가 열리며 드러난 가슴으로 청명의 검이 사정없이 휘둘러졌다.

쿠웅!

이송백은 다시 한번 피를 내뿜으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다.

이쯤 되니 관중들의 얼굴에도 아연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마, 말려야 하는 것 아냐?"

"상대가…… 안 되잖아."

"이, 이미 끝났는데 심판은 왜 안 말리는 거야? 저러다 죽겠어!"

"대체 저자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지?"

이 정도면 몇 수 차이가 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비무라는 것이 서로의 수준을 겨루는 대련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면, 이 대결을 기점으로 그 의미는 퇴색되었다.

"또, 또 일어난다."

"미친 것 아닌가? 대체 왜 일어나는 거지?"

"……저런."

관중들은 모두 몸을 일으키는 이송백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손목이 퉁퉁 붓다 못해 손과 팔의 경계를 잃었고,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저 단정하고 단아해 보이던 그는 머리마저 산발이 되어 흡사 반쯤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승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송백은 몸을 일으켜 다시 상단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스르르륵.

이송백의 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더니 허공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쇄애애애액!

그의 검에서 발출된 푸르른 검기가 청명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 비무장의 모서리에 틀어박혔다.

서걱!

단단한 청석으로 만들어진 비무대의 모서리가 날카로운 칼로 무를 벤 양 깔끔하게 잘려 나갔다.

콰아아아!

비무장을 베어 버리고도 기세를 잃지 않은 이송백의 검기는 관중석 바로 앞에 있는 땅까지 파고들어 깊은 상흔을 남겼다.

쿵!

허공으로 솟아올랐던, 사람보다 더 큰 크기의 청석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

관중들은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수백 번의 비무가 벌어졌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승을 자신하는 수많은 기재들이 자신의 무학을 남김없이 펼쳐 냈지만, 비무장에 상흔을 남기는 것도 아니고 비무대 자체를 잘라 버린 경우는 분명 처음이다.

"저……."

누군가 입을 열다 말고 다시 꾹 닫아 버렸다.

그들도 알아 버린 것이다.

저 이송백이라는 자가 결코 약하지 않다는 걸.

아니, 어쩌면 지금까지 비무에 올라온 이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럼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대체 뭔가?

그러나 이 큰 소동에도, 청명은 가라앉은 눈으로 이송백을 응시할 뿐이었다.

"나는 종남의 검 같은 건 모른다."

안다고 해 봐야 수박 겉핥기겠지.

청명은 스스로를 과신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구분한다.

종남이 아무리 심혈을 기울였어도 화산의 혼을 얻어 갈 수는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청명이 제아무리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천하삼십육검을 분석한다고 해도 그 안에 담긴 종남의 혼마저 이해할 수는 없다.

그건 온전히 이송백의 몫이다.

청명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가지.

질문하고, 확인하는 것이다.

'너는 걸을 수 있는가?'

어쩌면 청명이 걸어야 하는 것보다 더한 가시밭길이다.

과연 이송백이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인재인지, 그리고…….

스슷.

청명의 발이 부드럽게 보법을 밟는다.

매화검법은 지금 필요하지 않다. 화려한 검도, 화산의 혼도 지금은 의미가 없다.

그는 지금 태산이 되어 이송백을 가로막을 뿐이다.

쾅!

내리쳐진 청명의 검을 이송백의 검이 단단히 틀어막는다.

지금까지 위태위태하기만 했던 검이 아니다. 부드러움 속에 한 줄기 강함을 품은 검이 단호하게 청명을 가로막았다.

'부족해.'

하지만 이걸로는 어림도 없다.

쾅! 쾅! 쾅! 쾅!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연격이 이어졌다.

머리로 내리쳤던 검을 회수하자마자 허리를 찔러들어 간다. 그것이 튕겨 나오는 순간 부드럽게 회전하여 발목을 노린다.

발목으로 향하던 검이 일순 방향을 틀어 다시 옆구리를 찔러 들어가고. 막는 검을 튕겨 낸 뒤 다시 가슴을 베어 간다.

이어진다.

결국 검이란 찌르고 막고 휘두르는 것.

찌르고 막아 내고 또 휘두르는 것을 완벽하게 이어 가는 순간 검은 형이 되고, 형은 법이 된다.

그것이 검법.

단순한 것에서 출발한 검이 일정한 형태를 갖추고, 이내 초식으로 화한다.

그건 마치 검이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만 같았다.

하나 그 결과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마치 폭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연격이 이송백을 향해 떨어진다. 수도 없이 불어난 검의 잔영이 이송백의 전신을 말 그대로 뒤덮어 버릴 기세였다.

그 쏟아지고 쏟아지는 검의 폭풍 속에서 이송백은 자신을 놓아 갔다.

'나는…….'

그는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연신 자신에게로 날아드는 검을 바라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서 있는가.'

육체는 이미 한계를 넘었다. 얻어맞은 옆구리는 아예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잡고 서 있는 것도 힘겹기 짝이 없다.

승리?

그런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주저앉아 버리면 편해질 것을?

하지만 머릿속의 혼란과는 다르게 그의 검은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바람을 맞고, 비를 맞고, 눈을 맞으며 휘두르고 또 휘둘러 온 검은 의지를 담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여 적의 검을 방어해 내고 있었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쏟아지는 검.

하나 겁을 먹을 이유가 있는가?

어차피 세상은 삼십여섯 개의 방위로 이루어진 것. 그 모든 곳을 막아 낼 수 있다면 그의 몸에 닿을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송백의 검이 서른여섯의 방위를 점하며 떨쳐진다. 빠르지 않게, 하지만 느리지 않게.

정도(正道).

그것만큼은 온전히 담아 낸 검이, 깔끔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쾅!

막아 낸다.

쾅! 콰앙!

막아 낸다.

세상은 너무도 두렵고 너무도 급격하다.

그렇기에 나아가려는 자는 스스로를 온전히 지켜 내어야 한다. 그의 검은 막는 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고수하는 검이다.

천하삼십육검.

수백 년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 낸 종남 검술의 정화가 지금 이송백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모두 입을 쩍 벌렸다.

쉼 없이 이어지는 연격과, 그 연격에 함몰되지 않고 중심을 지키며 막아 내는 검.

백천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손목의 상처가 살짝 벌어지며 핏물이 배어났지만, 지금 그에게 고통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았다.

'끝없는 대립인가?'

저 광경은 마치 지금껏 화산과 종남이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워 온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만 같다.

그 환상과도 같은 공방은 이곳에 모인 이들의 시선을 과격하게 빨아들였다.

하나 그 꿈결과도 같은 광경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퍼퍼퍼퍽!

뚫으려는 자와 막는 자.

그 공방은 영원할 수 없는 법.

이송백의 방어를 비집고 열어젖힌 청명의 검이 이송백의 육체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이송백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쿵!

전신이 너덜너덜해진 그는 비무대 끄트머리에 곤두박질쳤다.

"아……."

중인들은 저마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패배다.

더없이 처참한 패배다.

하지만 이곳의 누가 감히 이송백을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겠는가?

모두 치열한 비무가 드디어 끝났다 여겼다. 그리고 패한 이송백에게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턱.

청명만은 바닥에 쓰러진 이송백을 겨눈 검을 내리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불처럼 번졌다.

"설마…… 더 할 셈인가?"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의식을 잃은 자를……."

그때였다.

움찔.

죽은 듯이 바닥에 늘어져 있던 이송백의 손가락이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부들거리며 바닥을 내리누른다.

"……."

모두가 숨을 죽였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던 이송백이 다시 힘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부러진 팔이 몸을 지탱하지 못한 것이다.

그 처절한 광경에 눈을 질끈 감는 이도 있었다.

'그, 그만해.'

'제발 누가 좀 말려 줘.'

하지만 이송백은 멈추지 않았다.

아직 부러지지 않은 다른 팔로 바닥을 짚고, 덜렁거리는 다리를 끌어당기며 몸을 일으킨다. 몇 번을 휘청이고 또 휘청이며.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정적이 소림에 내려앉는다.

또옥. 또옥.

이송백의 몸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이송백이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부러진 손까지 끌어 올려 검을 움켜잡고는 양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린 뒤 검을 앞으로 겨눈다.

상단세.

화산 검의 시작이자, 종남 검의 시작.

모든 것은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의식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송백은 끝끝내 몸을 일으켰다. 검수로서 끝없는 고행의 길을 선택한 그의 의지가 그를 쓰러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청명은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담을 수 있는 최대한의 예의를 담아 입을 열었다.

"화산의 제자 청명이 종남의 이송백에게 비무를 청합니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청명이 검을 늘어뜨린다. 바닥으로 향했던 검이 완벽한 원을 그리며 회전하여 하늘로 향한다.

상단세.

이송백과 똑같은 자세를 취한 청명의 검이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일 검.

지금 그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일 검이 이송백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파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찢을 듯한 파공음과 함께 비무장 위의 공기가 태풍이 되어 사방으로 밀려 나갔다.

"……."

검은 이송백의 이마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청명은 검을 회수하여 허리춤에 차고는 이송백을 바라보았다.

선 채 의식을 잃어버린 이송백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여전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는 나보다 더 어려운 길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청명이 이송백을 향해 포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잘 배웠습니다."

의식이 없음에도 그 말을 들었음인가.

이송백의 몸이 스르륵 쓰러지기 시작한다.

청명은 손을 뻗어 그런 그를 끌어안고 지탱했다.

"넌 훌륭했다."

그의 손이 가볍게 이송백의 등을 두드렸다.

여기에.

종남의 혼이 여전히 살아 있다.

여전히.

97